국민의 알 권리와 이를 실현하는 정보공개제도는 민주주의와 국민주권의 근간으로 여겨진다. 한국의 지난 정권들은 물론이고 현재 각국 정부들이 정보공개를 더 폭넓게 효율적으로 수행해 정부의 투명성과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는 이런 흐름에 대한 인식조차 없는 것인지 국민들의 알 권리와 정보공개에 관한 공약부터 아예 부재했다. 그 결과 임기 초반부터 국민의 알 권리와 대통령실의 투명성이 후퇴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첫 정보공개청구, 대통령실의 반응 지난 5월 10일 윤석열 대통령의 취임식이 국회에서 거행됐다. 예산으로 국고 33억 1800만 원이 배정되었다고 한다. 초대 귀빈들은 4만 1000여 명가량으로 규모면에서 역대 대통령 취임식 중 가장 큰 규모의 취임식으로 기록되었다.
정보공개센터는 취임식에서 지출된 예산의 세부 내역을 알아보기 위해 취임식 이튿날인 5월 11일 대통령비서실에 '20대 대통령 취임식 지출내역'을 정보공개 청구했다.
▲ 대통령실은 20대 대통령 취임식 비용 지출내역 정보공개청구를 접수하지 않고 있다. ⓒ 정보공개센터
청구일이 이미 2주가량이 경과했는데도 아직까지도 정보공개청구가 접수조차 되지 않았다. 공공기관은 통상 정보공개청구가 들어오면 당일 접수해 정보공개처리절차를 시작한다. 접수가 지연되더라도 하루이틀 정도가 고작이다.
그런데도 청구가 발생한 지 2주가량이 경과하도록 접수조차 하지 않는 것은 두 가지 경우라고 볼 수 있다. 아직까지 정보공개를 담당할 담당자가 배치되지 않아 업무를 시작하지 못했거나, 정보공개청구 사실을 알면서도 의도적으로 처리를 지연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둘 중 어느 경우라도 문제가 된다. 아직 담당자를 두지 않은 것이라면 대통령실이 필요한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해 국민의 알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고, 의도적으로 청구 처리를 지연하는 경우라면 청구인에게 불편을 끼치는 악의적인 방식으로 국민의 알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대통령실을 포함한 공공기관의 홈페이지에는 정보공개 관련 메뉴가 접속자들이 쉽게 찾을 수 있는 곳에 배치된다. 이곳에서 시민들은 정보공개제도 안내는 물론이고 공공기관들이 자발적으로 공개하고 있는 주요 '사전공표 정보'를 직접 다운받거나 확인할 수 있고 정보공개청구도 바로 진행할 수 있다.
▲ 문재인 정부 청와대 홈페이지에는 정보공개청구 제도 안내 및 서식 제공, 청구까지 가능한 정보공개 메뉴가 있었다. ⓒ 정보공개센터
▲ 정보 은폐가 많았던 박근혜 정부에서도 청와대 홈페이지에는 정보공개 메뉴가 독립적으로 운영되었다. ⓒ 정보공개센터
그러나 윤석열 정부 대통령실 홈페이지에는 정보공개 메뉴가 아예 없다. 정보공개제도에 대한 안내도, 자발적으로 공개하고 있는 정보도 없다. 정보공개청구도 바로 진행할 수 없고 정보공개포털에 따로 접속해서 진행해야 한다.
▲ 20대 대통령실 홈페이지에는 정보공개 관련 메뉴가 없다. ⓒ 정보공개센터
공공기관의 정보공개 수준 퇴보 정보공개 관련 메뉴와 정보들이 대통령실 홈페이지에서 사라진 것을 작은 변화로 볼 수도 있다. 아니면 그저 조금 불편해진 것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사실상 이는 매우 위험한 퇴보이다.
그 이유는 정보공개 메뉴가 공공기관들 홈페이지 첫 화면에 노출되어 있는 것만으로도 공공기관들은 정보공개를 자신들의 주요 업무로 인식하고 업무에 대한 적절한 부담감과 책임감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시민들은 공공기관 홈페이지를 방문할 때마다 정보공개는 공공기관이 반드시 해야 하는 업무이고 공공기관이 공개하는 정보는 누구든지 접근할 수 있고 원하는 정보는 청구도 할 수 있다는 자연스러운 권리 의식을 갖게 된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는 집권하자마자 대통령실부터 정보공개 메뉴를 아예 없애버렸다. 의도 여하를 막론하고 소통하는 정부를 만들겠다는 윤석열 대통령 본인의 소신과도 배치될 뿐만 아니라 행정부 수장인 대통령실에서부터 정보공개 메뉴가 사라지면 대통령이 정보공개에 관심이 없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다.
따라서 이런 행태는 다른 공공기관들로 하여금 홈페이지에서 정보공개를 삭제하거나 소홀하게 다뤄도 된다고 여기게 만들 수 있다. 그렇게 되면 한국 공공기관들의 전반적인 정보공개 수준 자체가 퇴보하게 되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이 받게 된다.
윤석열 정부가 국민의 신뢰 속에서 임기를 마치고 싶다면 당장 해야 할 것은 대통령실의 정보공개 메뉴부터 되살리는 일이다. 또한 공약에는 없더라도 당장 정보공개제도 실태를 파악하고 더 발전적인 정책을 마련해 정부의 투명성을 제고하기를 바란다. 지금 이런 행정 태도로는 국민에게 신뢰 받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