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포괄간호병동에 입원해 계실 때, 엄마와 동생까지 병원에서 지내면서 간호를 했었다. 아버지의 정신이 완전히 회복되기 전까지는 돌발행동이 종종 있었기 때문에 항상 옆에서 누군가 지켜봐줘야했다.
물리적으로 한 사람이 24시간동안 잠도 안 자고 지킬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3명이 3교대로 간호를 할 수 밖에 없었다. 병원 규정상 공식적으로는 환자 한 명당 간병인 1인까지만 허용되었지만, 아버지의 특수한 상태 때문에 간호사들이 우리 가족의 상주를 묵인해주었다. 간병인 1명이 지낼만한 좁은 공간에서 세 명이 함께 있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밤이 오면 깨어있는 한 명은 병실침대옆에 간이의자에 앉아서 불침번(?)을 섰고, 다른 한 명은 간이 침대에서 잠을 자고, 나머지 한 명은 바닥에 돗자리를 깔고 자거나 아래층 중환자실 입구에 있는 보호자 대기좌석에서 잠을 청해야 했다.
중환자실은 면회 시간이 오전1회, 오후 1회로 정해져있기 때문에 밤이 되면 사람이 아무도 없었고 지나다니는 사람도 없었다. (누워있다보면 가끔씩 중환자실에 환자 침상이 오가는 소리가 들리긴 했다.) 엄마는 중환자실이 무서워 잘 가지 않았지만, 동생과 나는 다리를 쭉 펴고 잘 수 있는 중환자실 대기좌석을 애용했다.
어느 날 밤이었다. 그 날 밤에도 지친 몸을 이끌고 대기좌석에 누워 폰을 만지다가 잠이 들었는데, 비몽사몽인 가운데 대화 소리가 들렸다. 잘 기억은 안 나지만 꿈결처럼 들리던 대화의 내용은 이랬다.
‘한 남자가 전신에 3도화상을 입고 입원했다. 화상 부위를 세척하기 위해 수백리터의 물을 썼지만 아직도 다 되지 않았고, 살이 타서 악취도 심각하다’
아버지로 추정되는 한 남자, 형제로 추적되는 한 남자, 그리고 환자의 치료를 담당한 여의사의 대화였다. 잠결이라 구체적인 내용은 기억이 안 나지만, 짤막한 대화 한토막이 기억난다.
“선생님, 불구가 되어도 괜찮습니다. 살려만 주세요”
“그것도 장담해드릴 수 없습니다.”
여의사의 브리핑 내용은 온통 절망적인 이야기 뿐이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자의 아버지는 아들이 살 수만 있으면 다 괜찮다고 했지만, 여의사는 그것조차 어렵다고 대답했다. 어지간히 심각한 상황인지, 여의사의 목소리에도 떨림이 느껴졌다.
전신에 3도 화상을 입어 피부조직이 전부 괴사한 상태에서, 과연 살아도 사는 것일까. 나라면 차라리 죽고싶지 않을까. 처음부터 끝까지 눈을 감고 미동도 하지 않은 채로 나는 그런 생각들을 했고, 그러다가 다시 잠들었다.
눈을 떠보니 그들은 온데간데 없었고, 병원 복도에는 시리도록 하얀 불빛과 ‘우우웅’하는 기계소리외에는 아무도,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어쩐지 무서워져서 아버지가 있는 병실로 올라갔고, 그 후로 다시는 중환자실 앞에서 잠을 청하지 않았다. 그 환자는 어떻게 되었을까. 나는 아직도 가끔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