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양은 원룸에서 혼자 산다.
귀가 후 컴컴한 집이 외롭게 느껴져, 너무너무나 좋아하는 고양이 한마리를 반려동물로 들이기로 했다.
분양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경제적 능력이 충분한 직장인을 선호하는지라, 김양은 별 무리없이 예쁜 하얀 아기고양이를 들일 수 있었다.
처음 데려오는 날, 분양자에게서 아이의 성격과 주의해야 할 점을 잘 듣고, 꼭 아이의 평생을 책임져줘야 한다는 말에 그러마고 다짐했다.
아기고양이는 천사같이 너무 예뻤고, 첫날과 둘째날만 경계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일주일 후 집에 완전히 적응해 김양에게 애교도 부리고, 행복한 나날들이었다.
고양이는 점점 자라고, 김양은 회사일이 바빠졌다. 신입사원이라 적응기간중엔 야근도 별로 없었고 업무도 무리없는 수준이었지만
김양에게 내려지는 책임은 점점 무거워져만 갔다. 이젠 일주일에 나흘은 밤 12시가 넘어서야 집에 올 수 있었다.
안그래도 회사에서의 스트레스에, 육체적으로도 피곤해 죽겠는데 이놈의 고양이는 계속 놀아달라 보챈다.
눈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애옹애옹 한 맺힌 울음소리를 낸다.
집안에 장식해 둔 장식물을 쓰러뜨리고, 예쁘게 친 커텐에 대롱대롱 매달려 커텐을 망가트리기도 하고, 벽지도 뜯는 등 말썽이 끊이질 않았다.
작고 어릴 땐 가볍고 힘이 없어 피해가 크지 않았지만 이젠 감당하기 힘든 수준이다.
가장 괴로운 건, 새벽 3, 4시에 시작하는 우다다는 아무리 화를 내고 혼을 내도 고쳐지지 않는다.
김양은 밤새 잠을 설치고, 아침에 일어나 고양이 먹을 물과 사료를 산처럼 쌓아놓고 출근한다.
주말에는 남자친구와 데이트도 해야하고, 늦잠도 늘어지게 자고 싶은데 이놈의 고양이는 쉬는 날도 휴일도 낮밤도 안가리고 놀아달라 보챈다.
자주 가는 고양이커뮤니티에 고충을 토로했더니, 잘못은 너에게 있다며 화살이 날아온다. 그럴거면 왜 아이를 들였냐고.
고양이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사람들의 의견에 자신도 동의해
일단 야근하는 날엔 귀가시간을 한시간씩 당겨 열심히 놀아주었다.
주로 벽지를 뜯는 공간을 가구로 막고, 스크래쳐를 놓아주었다.
집에 장식해놓은 비즈발이나 자잘한 장식물들을 치웠다.(집이 심플해졌다 -_-)
그리고....
둘째를 들이기로 했다. 사람들이 말하길, 혼자 사는 사람에겐 두마리가 진리라고 했다. 일리가 있는 듯 하다.
일주일정도의 적응기간이 필요했지만 이젠 둘이 꼭 붙어다닌다.
레슬링하며 둘이 우다다다 노는 것도 귀엽고(잘 시간엔 두배로 괴로워졌지만), 잘 때도 둘이 꼭 붙어 자는 걸 보면 보는 사람이 다 훈훈하다.
사료와 모래값 드는 건 별로 걱정할 수준은 안 되었다.
그렇게 일년이 흘러 김양은 남자친구에게서 프로포즈를 받는다.
남자친구도 고양이를 좋아해 결혼해도 같이 기르자고 다짐을 받았다.
결혼하고 나니, 시어머니가 고양이는 임산부와 아기에게 좋지 않다며 당장 애들을 보내지 않으면 사단 낼 기세다.
이미 정이 들 대로 들어버린 내 새끼들이지만, 앞으로 낳을 아이를 위해서 눈물을 머금고 보내기로 했다.
여기까지는 사람의 입장이다.
시로 : 4살. 고양이. 김양과 함께 살고있음.
시로는 터앙 엄마아빠 사이에서 태어난 5형제 중 셋째이다.
형제들이랑 엎치락 뒷치락 하면서 엄마 젖도 쭉쭉 빨고, 처음 사료도 아작아작 씹어먹는 활발하고 튼튼한 아이였다.
어느날 김양에게 입양되었고, 김양은 간식도 주고 잘 놀아주고 아낌없이 예뻐해주는 좋은 엄마였다.
하지만 아침에 어딘가 훌쩍 가버리더니, 12시간도 더 넘어야 돌아온다.
혼자 집에서 기다리는 시로는 쥐돌이도 갖고 놀아보고, 밥도 그냥 먹어보고, 물도 홀짝홀짝 마셔보다가 잠든다.
한번은 놀다가 김양의 작은 고무줄 머리끈을 삼켰는데, 응아로 나왔다. 몇번 그런 적 있었는데 김양은 모른다.
이젠 하루종일 기다려도 김양이 돌아오질 않는다.
물그릇의 물은 바닥에 깔려있고, 먼지도 많고 더럽다. 그래서 씽크대 설거지들에 고인 물을 찹찹 마셨다.
김양은 아주아주 오래 있다가 돌아온다. 시로는 그런 김양이 너무 반가워 놀아달라고 갖은 애교를 다 부려본다.
하지만 김양은 어째서인지 화만 낸다.
새벽이 되고 활동스위치가 켜진(.;;) 시로는 넘치는 힘을 우다다에 쏟는다.
김양이 베개를 집어던진다.
밥도 있고 물도 있고 장난감도 많지만, 사는데 지장은 없지만 왠지 공허하다.
어느날 쪼끄만 노란 고양이가 새로 왔다.
김양이 노란 애만 예뻐한다.
얄미워서 하악질도 하고, 몇번 쥐어박기도 해 봤는데 이녀석이 졸졸 따라다니면서 형 형 한다.
금새 친해졌다. 이젠 김양이 늦게와도 김양이 보고싶긴 한데, 외롭진 않다.
김양이 결혼을 했다.
이사를 한다는데, 그게 뭔진 모르겠고 하루아침에 세상이 바뀌어버렸다.
시로와 노랑이는 패닉에 빠졌지만, 일주일이 지나고 아. 이제 세상은 이렇게 생긴거구나. 하고 적응했다.
웬 할머니가 집에 오더니 손가락질하며 화를 낸다.
김양과 새아빠가 싸운다.
그리고 우리는 또 세상이 바뀌었는데..
세상이 전부 바뀌었는데, 처음 보는 거대한 인간이 우릴 보면서 웃고있다.
무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