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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예전에 다니던 교회
게시물ID : panic_8736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매릴린맨슨
추천 : 23
조회수 : 4458회
댓글수 : 12개
등록시간 : 2016/04/18 04:5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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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 손에 이끌려 교회를 들락날락 거렸다.
 
일요일이면 하는 예배는 나의 일상이었다.
 
아버지는 내가 기억을 하는 나이가 되기도 전부터 돌아가셔서 어머니는 외로움을 신앙심으로 달래곤 하였다. 
 
그래서 나는 일찍부터 교회에서 자랐다.
 
어렸을 때부터 사귀던 친구들, 나를 동생처럼 여겨주던  형과 누나들, 잘 따라주던 동생들, 맛있는 거 요리해주는 아줌마, 인자하신 목사님......
 
모두가 그냥 한 가족처럼 지냈다. 나는 신을 경배하기에 앞서 그들이 좋았다. 그래서 교회에 다녔다.
 
교회는 시골 중에 시골.... 깡촌이라고 할 수도 있는 동네에 위치해 있어서 마을 사람들과 가까운 인근 마을 사람들 모두 한 교회에 다녔다.
 
그러다 보니 그냥 마을 사람들이 곧 교회 사람들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그렇다고 우리가 무슨 문명에 유리된 그런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면 실례다. 자전거 타고 30분이면 읍내 마트도 갈 수도 있고 텔레비전, 인터넷 등등 문명의 이기를 누리는 당신들과 같은 문명인이다.
 
다만 대부분 신도들, 곧 마을 사람들은 농사로 먹고 살고 있었고 그냥 평범하기 그지없는 농촌 마을이었다.
 
교회 다니던 친구들은 뭐 나랑 같은 학교 다니는 아이들이었고.... 우리 읍에 초등학교가 하나, 중고등학교가 6개 학년 통합해서 하나이다.
 
우리 어머니는 이 집 저 집 돌면서 밥, 빨래, 청소 등을 도와주며 반찬도 얻고 돈도 벌어오는 모양이었다.
 
아버지는 애초에 농사꾼이 아닌 면사무소 직원이어서 우린 땅도 없었고 그냥 좁은 집 하나뿐이었다.
 
아무튼, 뭐 소개는 마무리하도록 하고...... 내가 어렸을 때부터 겪은 기이한 일을 적어볼까 한다.
 
초등학교 2학년 때의 일이다.
 
우리 교회는 일 년에 한 번 부흥회라는 것을 했는데 부활절, 성탄절보다 더 큰 행사였다.
 
일요일에 바빠서 평일에 예배 참석 하던 사람들, 아픈 사람들, 일정이 잡힌 사람들, 모두가 부흥회만 있는 날이면 교회로 모였다.
 
뭐 그렇다고 특별한 일이 있는 것은 아니였다.
 
말 그대로 우리 교회의 부흥을 기원하는 좀 큰 규모의 예배로 전부다 큰 소리로 기도하며 흐느끼며.... 뭐 인터넷에 봤던 그 영상들처럼 하는 게 부흥회다.
 
마치 모두가 접신해 있고 미친 듯 온 몸을 부르르 떨며 광적인 모습을 보이는 날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근엄하고 진지하신 목사님도 이 날만큼은 이 광란의 흐느낌에 물꼬를 틀고 시작하며 눈물을 흘리신다.
 
이상하게 초등학교 2학년이었던 내 또래 애들도 거기에 동참했다. 어린 아이들이 신의 사랑에 대해서 감복하고 교회의 부흥을 강력히 염원할 정도의 감정적  자극을 받았다는 게 지금은 신기하다.
 
아 본인은 그 때 무엇을 하고 있었냐고? 나는 물론 열심히 기도하고 있었으나 남들처럼 흐느끼거나 울지는 않았다. 얌전히 기도만 했을 뿐이다.
 
그런데 그 다음 날이 문제였다.
 
다음 날, 학교에서 전 날 교회에서 봤던 아이들이 무언가 서로 소근거리고 있었다.
 
내가 무언가 하고 다가가서 이야기를 들으려고 했는데 왠지 모르게 아이들이 나에 대한 적대적인 모습을 보였다.
 
내가 어제 부흥회에서 울지 않았다는 것이다. 난 처음에 그게 대순가 싶어서 그냥 넘기려고 했으나 아이들 표정은 좋지가 않았다.
 
어린 마음에 나는 본능적인 두려움 - 즉 소외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느꼈고 즉각적으로 사과했다.
 
사과 안 하면 안 될 것 같은 분위기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들은 내 사과를 쉽사리 받지 않았고 나는 눈물 울먹거리며 다음에는 내가 잘할께를 연발해도 무시할 뿐이었다.
 
충격적인 것은 기억나는 것 중에 아이들이 내게 했던 말 중 '악마의 자식', '마귀가 들렸어' 등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 날 집 가서는 학교에 있었던 일을 어머니한테 얘기하려고 했으나, 왠걸... 어머니한테 혼났다.
 
교회 어른들, 그러니까 교회 다니는 아주머니 아저씨들이 내가 제대로 기도하지 않는 모습을 봤다고 어머니한테 제보했다는 것이다.
 
나는 하루종일 꾸중을 들었고 학교에 있었던 일은 얘기조차 못했다.
 
부흥회가 있었던 그 다음 주 주일에는 교리 담당하시는 아주머니께서 나를 따로 불러 그러면 안된다고 하였다.
 
아주머니께서 바로 그 다음 주 학생들 앞에서 '사과 간증'을 하라고 내게 말했다.
 
나는 그게 무엇인지 몰랐으니 사과문을 준비해서 학생들 앞에서 읽고 자신의 불경함을 뉘우치는 것이라고 했다.
 
나는 그게 트라우마로 남았다. 그 다음 주 주일 교리 시간에 열 여명의 또래 아이들 앞에서 사과문을 읽었다.
 
"제가 저번 부흥회 때...."로 시작하여, 또래 학생들, 교회 사람들, 목사님, 예수님, 하느님에 대해서 어떠한 죄를 저질렀고 앞으로 그러지 않겠다고 울먹이며 읽어나갔다.
 
교리 담당 아주머니께서는 수고했다고 하고 친구들과 포옹하라고 했다. 그렇게 우리는 화해 아닌 화해를 했고 나는 왕따가 될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됐다.
 
그 이후로 나는 부흥회에서 매년, 누구보다 열렬히 흐느끼며 몸을 떨었고 눈물을 쥐어짜내려고 안간힘을 다했다.
 
그리고 주일 뿐만 아니라, 평일에도 교회를 다니면서 나의 죄가 씻겨지기를 기대했다.
 
내가 자라면서 느낀 것은, 부흥회가 단순히 미친 듯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부흥회가 있는 날이면 교회가 잘 되라고 사람들의 기부가 줄을 이었고 신앙 간증을 하면서 하느님 덕분에 집값 올랐다, 취직했다, 대학 붙었다라고 단상에 간증을 하는 등 무언가 신앙심과는 별개로 이루어지는 일들이 이루어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부흥회는 말 그대로 정말 부흥회였다.
 
그리고 중학생이 되었다.
 
중2 때 한 학생이 도시에서 전학 왔다.
 
발랄한 성격의 여자 아이였고 우리는 얼른 그 아이보고 교회로 오라고 했다.
 
그 아이는 흔쾌히 알겠다고 하였고 얼마간 우리와 함께 교회를 다녔다.
 
그런데 부흥회 날, 그 아이는 교회에 나오지 않았다. 부모님께서 가지 말라고 하신 것이었다.
 
다음 날, 학교에서 그 아이는 여기 저기서 매도 당했고 나도 거기에 동참하였다. 어렸을 적 내가 당했던 것의 배로 되갚아주겠다는 심정으로.
 
그리고 놀라운 것은 내가 저녁 예배 드리고 집 가는 길에 어디선가 불길이 치솟아 오르는 것을 봤다.
 
저 멀리서 선명히 불타오르는 형상이 보여 자전거 페달을 더 세게 밟고 그 쪽으로 향했을 때 나는 흠칫했다.
 
비닐하우스, 논밭, 그리고 그 옆에 있는 집이 불타고 있었다.
 
얼른 핸드폰을 꺼내서 나는 119에 신고했고 안도감을 느끼며 한 숨을 쉬었다.
 
다음 날 학교에 갔더니 전학 온 아이는 없었다.
 
선생님께서는 도로 다시 전학 갔다고 하였다. 나는 설마 해서 왜냐고 선생님께 여쭤봤지만 선생님도 모른다고 하셨다.
 
나는 또 다시 불타버린 현장에 가봤다.
 
경찰이 폴리스라인을 치고 여기저기 조사하고 있었다.
 
경찰들이 하는 얘기 엿돋고 인명피해는 없는 모양이었으나 계획된 방화일 것이라는 거였다.
 
소름 돋는 것은 한 두명이 아니라 여러 명이 조직적으로 했을 것이다라는 얘기가 돌고 있었다는 것이다.
 
나는 집에 가서 2학년 학생번호표를 보고 그 아이의 번호에 난 누구고 왜 떠났냐고 문자 보냈다.
 
'다신 연락하지마' 한 시간이 지나서 돌아온 대답이었다.
 
이윽고 고등학교로 진학한 나는 여전히 교회를 열심히 다니고 있었고 입시를 준비하는 고3이 되었다.
 
어느 날 밤, 어머니께서는 유독 밤 늦게 집에 돌아왔다.
 
나는 무슨 일이냐고 물어도 엄마는 대답 없이 침대에 눕고 잠을 청하였다.
 
보통 기도하시고 잠드는데.... 나는 희한하다고 생각하면서 공부하다 잠들었다.
 
주일에 교회를 가서 예배를 드렸다.
 
그런데 주위 어른들이 나를 보면서 소근거리는 것이 눈에 띄었다.
 
신경 쓰였다. 무지 신경 쓰였다. 그렇다고 넉살 좋게 왜 그러냐고 물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런데 어떤 아저씨께서 나한테 대뜸 말을 걸었다.
 
"너 애미가 목사님 꼬셨다매?"
 
나는 이게 무슨 소린가 싶어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네?"라고 밖에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너는 무슨 죄니.... 휴...." 하고 옆에서 어떤 아주머니가 거들었다.
 
그들의 경멸하는 눈빛이 내가 반문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어떤 아주머니께서 "목사님 꼬시다가 실패해서 성추행인가 뭔가로 목사님께 덤태기 씌우려 하는 것 같더라 쯧쯧"라고 귀띔해주셨다.
 
이 상황이 뭔지 파악조차 못하고 나는 같이 예배 온 어머니를 찾으려고 교회를 다 돌아다녀봐도 보이지 않았다.
 
핸드폰으로 계속 전화해도 받지 않을 뿐이었다.
 
일단 집으로 갔다 그리고 밤 늦게 되도록 어머니는 오지 않았다.
 
그래서 그 때부터 진짜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내 핸드폰으로 엄마한테서 전화가 왔고 나는 황급히 받았다.
 
"여보세요?" 나는 침착히 응대했다.
 
"응, 영민(내 이름)이니?" 순간 몸에 소름이 확 올라왔다. 남자 목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굵직한 중년 목소리.... 익숙하다. 그런데 내 이름도 알고 있다. "응, OO교회 목사님인데, 다른 게 아니라 어머니께서 핸드폰을 내 사무실에 두고 갔는데 이거 가지러 올래?"
 
뭔가 잘못되었다.
 
"오늘은 늦었으니 내일 가져갈 수 있을까요? 그리고 제 어머니 지금 어디있는지 아세요?"
 
"아, 지금 집이니? 안 그래도 읍에 갈 일이 생겼는데 가는 김에 돌려줄까?"
 
"아..... 저, 목사님 저희 어머니 사무실에 왜 가셨나요?"
 
"......그게 너희 어머니께서 상담 하고 싶은 내용이 있다고 해서 말이야." 몇 초 간 정적이 흐르고 다시 낮은 목소리로 목사님께서 말문을 텄다. "혹시 어머니께서 교회 이야기 요즘 안 하시니?"
 
"교회 이야기요?"
 
"음, 아니다, 됐어. 내가 금방 그쪽으로 갈게."하고 끊었다.
 
나는 처음 느껴보는 이런 공포에 몸을 떨었다. 부흥회에서도 떨었을 때와는 다른 느낌이다.
 
가지고 있는 돈과 챙길 수 있는 거 다 챙기고 바로 자전거 타고 읍내로 최대 속도로 달렸다.
 
나는 그 날로 고속버스 타고 최대한 먼 곳으로 가서 새로운 삶을 살고자 했다. 번호, 집, 인맥 모두.
 
가끔 공중전화로 어머니 핸드폰 전화해도 안 받거나 꺼져 있을 뿐이다.
 
나는 아직도 어머니가 어디 있는 지도 모른다.
 
얼마 전 내가 다니던 교회가 인터넷 기사로 떴다. 횡령, 여신도 추행, 집단 폭행 등등...
 
안 좋은 죄목은 거기다 죄다 붙어 있었다.
 
그래서 나는 예전에 썼던 핸드폰을 켰는데 아니나 다를까 부재중 전화가 엄청 쌓여있다.
 
그러더니 모르는 번호로 어제 문자가 와 있다.
 
'어머니는 내가 데리고 있다.
살아계신다.
이상한 생각 말길'
 
나는 이 이야기는 어디 가서도 못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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