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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6일, 내가 은수미 의원을 만나 눈물 흘린 이유
게시물ID : sewol_5010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프로귀염러
추천 : 12
조회수 : 671회
댓글수 : 11개
등록시간 : 2016/04/17 22:23:52

 




 무기력해져 있었다. 왜 사나. 내 삶의 목적은 무엇일까. 어떻게 살아야 하나. 열여섯부터 시작된 이 질문은 스물아홉의 4월에도 이어져 있었다. 의지는 불타올랐다가도 금세 사그라들었다. 돋기 시작하는 새싹을 보며 황홀해 했지만, 그때뿐이었다. 행복을 느꼈지만, 봄에 나뭇잎이 자라는 걸 보며 기쁨을 느끼는 것이 내 존재 이유의 전부라고 단정하고 싶진 않았다. 그냥, 그건 내 인생의 한 과정일 뿐이었다.

 

 416. 광화문 광장에 선 사람들. 그 사람들 사이를 걸었다. 한겨레 21의 세월호 특별판을 읽으면서 분향 줄을 섰다.

 

 그냥, 다 귀찮아. 그냥. 사라져버렸으면... 을 생각했던 나는. 염치없게도. 세월호 희생자를 생각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세월호 리본을 달고 다니면서 잠에서 깨어나지 않았으면이라고 생각하는 게 우습다고 생각했다. 그래. 열심히 살자. 결국, 오늘도 열심히 살기로 다짐한다. 다짐은 한다.

 

 분향소에 들어갔다. 처음에 묵념하기 시작했을 때,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나지막이, 속으로. 말했다.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미안합니다. 용서하세요. 눈을 떠 희생자들의 얼굴을 보았다. 그러다가 또 부끄러워 다시 눈을 감고 고개를 숙였다. 미안합니다. 용서하세요.

 그들 대신, 그들 몫까지 열심히 살겠다고는 하지 않았다. 아니 못 했다.

 

 

 광화문 광장을 두어 바퀴 더 돌고 교보문고로 갔다. 책 제목들을 보았다. 책은 나의 욕망이었고, 그리고 나의 자부심이었다. 다시. 살고 싶어졌다. 욕망과 무기력 사이를 오가는 나는 서점이나 책으로 무기력 상태의 나를 욕망의 상태로 이동시키곤 했다. 하지만 책은 나를 욕망의 상태에 머물게 할 뿐, 내가 용기를 갖도록 하진 못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교보문고를 몇 바퀴 돌다 보니 목이 탔다. 요즘 따라 목이 많이 탄다.

 

 

 목이 말랐다. 정수기 물 여섯 모금을 마셨다. 많이 먹었다고 생각했는데 금방 갈증이 생겼다. 평소에 먹지도 않던 배스킨라빈스가 먹고 싶어졌다. 416. 그래. 오늘은 특별한 날이니까. 이곳에 온 나에게 선물을 하나 해주자. 배스킨라빈스 싱글 레귤러. 내가 좋아하는 슈팅 스타를 먹자. 천천히, 느긋느긋하게 2 ,800원짜리 여유를 느껴보자. 본전 뽑자. 맛을 음미하면서 차가운 도시 여자 컨셉으로 앉아있어야지.

 

 물을 마시고 교보문고 푸드카페 배스킨에서 내가 좋아하는 슈팅스타를 주문했다. 슈팅스타 색깔이 예뻤다. 사진을 찍으며 만족스러워했다. 색감이 마음에 들어. 그리고 옆에는 은수미 의원이 있었다. 잠깐만, 은수미?

 

 옆에 있는 사람이 은수미 의원이라는 것에 확신이 서자. ‘혹시... 은수미의원님 아니세요?’라고 물어봤다. 맞았다. 그녀다. 그녀는 누군가가 자신을 알아본다는 것에 멋쩍어하는 듯했다. ‘안녕하세요.’ 인사를 했다. 그럴 땐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서, 그냥 반갑습니다고 덧붙였다. 가슴이 두근두근했다.

 

 주위에 있던 사람이 은수미 의원을 알아보고 다가와서 인사를 했다. 그리고 사진을 찍었다. 나도 용기를 내서 저도 사진 한 장 부탁드려도 될까요?’ 했다. 심장이 벌렁벌렁거리는 소리가 내 귀에도 들렸다. 카메라 렌즈 뚜껑을 여는데 손이 벌벌 떨렸다.

 

 사진을 찍고 나는 또 정신없이 가방을 뒤졌다. 노트와 펜을 들고, ‘한 마디 써주실 수 있으신가요?’ 하면서 부탁드렸다. 그때만큼 노트와 펜을 가지고 다니는 습관에 감사한 적이 없었다. 사진도 좋지만, 사진보다 그녀에게서 한 마디 메시지를 받기를 더 원했던 것 같다. 다짜고짜 한 마디만 써 주십시오했던 게, 뒤돌아보니 무례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가슴이 쿵쾅거리고 그저 좋아서 예의고 뭐고 생각을 못 했다. 이놈의 욕망의 항아리.

 

 

 그녀는 내 이름을 물었다. 이름을 말했다. 내 이름을 듣고 그녀는 노트에 한 문장을 썼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목소리로 그녀가 내 이름을 묻자, 나는 결국 눈물을 터뜨렸다.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다른 사람 앞에서 그렇게 눈물을 뚝뚝 흘려본 적은 처음이었다. 혼자 울 때조차 소리 없이 속으로 우는 나는, 낯선 사람. 잘 알지 못하는 국회의원 앞에서 그렇게 코를 훌쩍이며 소똥 같은 눈물을 떨어뜨렸다.

 

 

 낯선 젊은이가 사진을 같이 찍자고 하더니, 노트에 한마디 써달라고 하고는 눈물을 흘린다. 어쩌면 그녀로서는 당황스러웠을지도 모르겠다.

 

 사실 나는 은수미 의원에 대해 잘 모른다. 필리버스터, 국정원 고문, 노동 운동. 이게 내가 그녀와 관련해서 알고 있는 키워드 전부다. 그리고 하나 더. 나만의 은수미 키워드가 하나 더 있다.

 

 지금까지 나를 울게 한 정치인은 단 두 명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은수미. 현 정치인 중 가장 좋아하는 문재인 전 대표도 나를 울게 하진 못했다. 문재인은 희망이다. 정청래는 기쁨이다. 두 사람은 내게 희망과 기쁨이다. 안희정과 이재명, 박원순도 좋아한다. 그들은 내게 웃음을 준다. 그들을 보며 소리내 웃진 않지만 잔잔한 미소를 띤다. 노무현 대통령은 미안함그리움이다. 가족과 지인을 제외하고 나를 가장 많이 울게 한 타인이다. 그리고, 은수미는. 은수미는 위로.

 

 2월 말이었다. 카페에서 김어준의 파파이스, 87은수미와 필리버스터를 보고 있었다. 은수미에 대해 처음으로 알아가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참으로 오랜만에, 누군가의 말을. 한 자 한 자 따라 적어 내려갔다.

 

 

-

김어준의 파파이스 872시간 10분부터.

 

은수미 : 저는 20대 때 지금의 20대 때와는 정말 달랐어요. 정말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나라와 민족을 위해 헌신하겠노라고 생각했고. 그때의 어쨌든 힘들긴 했지만 열정이나 꿈이나 청춘이나 질풍노도와 같은 그 청춘을 가졌어요. 그리고 심지어 저는 그때의 제 모습은 '비상' 이라고 생각해요. 날아올랐어요. 그래서 태양을 향해 도전을 해 본 경험을 전 가지고 있어요. 그건 정말 놀라운 경험인데.

 

저는 제가 그런 경험을 했기 때문에, 당연히 지금의 20-30대도 그렇게 , 그 보다, 그 이상의 경험을 할 거라 생각한거죠. 꿈을 꾸고, 날아오르고, 항상 날아오르고 싶어서 날개가 근질근질하고. 근데 제가 만났던 20-30대의 절망은. 27살 된 친구가 저한테, 보통의 경우 자기 친구들은 27살이 되면 아, 이 회사가 30대까지 나를 보장해주지 못할 거라는 고민을 시작하고, 그럼 어떻게 바꿔야 되는가를 고민을 하고, 정말 정신이 없어서 ... 사랑할 시간도 없고. 사랑이요? 그러니까 낯선 단어처럼 저한테 말하는 경우도 있고.

 

저는 이건. 이건. 제가. 꿈을 꿔봤고, 날아올라 봤고, 불새가 되었던 세대로서의 저로서는 정말 미안한 일이에요. 그래서 그러면, 그래 우리는. 저같은 사람은. 날아올랐던 기억이 있기 때문에. 그 면에 있어서 두려움도 많지만 되게 용감해요. 용감한 사람들이 도전을 하는 거지. 이 사람들이 날아오를 수 있도록. 만약 그런 기회가 주어진다면.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제 삶에서. 날아올랐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다시는 그런 기회가 주어질 거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그런데 생각을 해보니, 잘만 하면 이제는 다른 사람들이 날아오를 수 있도록 응원하고 지원하는 그런 역할을 할지도 모르고. 그건 사람의 인생에 있어서 엄청난 행운일 수 있거든요. 물론 그게 힘들지 않다는 건 아니지만. 꼭 그렇게 하고 싶어요.

 

김어준 : 그래서 20-30대의 발판이 돼주고 싶은 거예요?

 

은수미 :

 

아니, 상상만 해도 멋있지 않아요? 그냥 정규직이 어떻게 안 될까. 어떻게 괜찮은 기업에 들어갈 수 없을까? 를 고민하는 친구들을. 과감하게. 나는 배낭여행 갈 거야! 나 새로운 경험을 할 거야! 라는 날갯짓을 한다는 상상만 해도. 그건 대한민국이 바뀌는 거예요 ! 날개 소리만 들어도 너무 멋있을 것 같아서. 당신이 어떠한 선택을 한다고 하더라도 당신이 돌아올 곳이 있고, 걸어갈 수 있고, . 노년까지 어쨌든 살아갈 수 있는 공화국을 만드는 게 적어도 비상을 했었던 세대의 책임과 의무가 아닐까.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

 

 눈물, 콧물을 질질 흘리면서 이걸 따라 적었다. 왜 그렇게 눈물이 났는지 정확히는 모르겠다. 고마움과 미안함, 그리고 약간의 죄책감이 섞여 있었다. 20대 초반, ‘꿈을 꾸고, 날아오르고, 항상 날아오르고 싶어서 날개가 근질근질해하던 내가 그려졌다. 맞다. 나도 꿈이 많은 아이였다. 하고 싶은 것도 많고, 잘 하고 싶은 것도 많은 아이였다. 그랬던 내가, 지금은. 자괴감에 빠져 있었다. 등 떠밀리듯이 남들보다 적은 몇 번의 시도를 하기도 했다. ‘, 안되네. 역시 이건 내 길이 아닌가 봐. 난 가치 있고 보람 있고 재미있는 일을 할 거야. 물론. 그게 뭔지는 모르지만약간의 합리화를 담은 핑계로 1년이란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나였다. 날갯짓하고 싶어 했던. 지금은 사랑낯선 단어처럼 말하고 있는 사람이 나였다. 그녀가 나를 알아주고 있는 것 같았다. 안아주고 있는 것 같았다. 꿈을 향해 날아올랐던 그녀에게 위로받음과 동시에 죄책감과 미안함을 느꼈다. 나는 그녀처럼 불새처럼 날아오르려 하지 않았다. ‘? 날개가 꺾였네. 어쩔 수 없지. 다시 오르기엔 너무 힘들어그러면서 내가 이렇게 된 건, 나 때문이 아니야. 이 사회 때문이야. 라고 변명했다. 세상과 꿈을 향해 자신을 불태웠던 그녀가 젊은이들에게 건네는 위로를 내가 과연, 받을 자격이 있을까. 내가 가졌던 열정조차도 나 자신의 개인적인 야망을 향한 것이었으니까. , 그녀가 내미는 손도 제대로 잡지 못하는 나에게 미안했다. . 왜 다른 사람의 위로조차 그냥 고맙습니다하고 감사히 받질 못하는 거니. 이래저래 오락가락 갈팡질팡 마음이 왔다 갔다 했다.

 

 

 그렇게, 은수미는 내게 위로라는 존재가 되었다. 은수미가 내게로 와서 위로가 된 날. 나는 노트에 이렇게 적었다.

 

 

세상과 사람에 더 많은 애정을 가져야겠다.

은수미 의원이 그러한 것처럼.

 

...

 

위로받음에 잠깐 안도하고,

알아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한순간 만큼은 위로받았다는 것에

눈물을 흘리고 그칠 것이 아니라,

나도 그런 위로가 되어야겠다.

 

그녀가 세상과 젊은이들을 사랑하는 것처럼

나도 세상을 사랑하고 싶다.

 

투정부리고, 사랑해달라고. 알아달라고. 나 좀 이해해 달라고.

응석부리는 그런 존재가 아니라.

위로가 되는 존재가 되어야겠다.

 

더 많이 사랑하고, 더 많이 기여하는 사람이 되자.

 

내가 받은 위로 ,

그녀에게서 느낀 것들을

그녀의 방식대로 되돌려주자.

 

은수미 의원님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미안합니다.

 

 

-

 

 그녀가 내게 위로가 되었던 날, 그때 들었던 목소리와 꼭 같은 목소리로, 그녀가 나에게 너의 이름이 뭐니라고 묻고 있었다.

 

 그녀는 내 이름이 예쁘다고 말했다. 이름 예쁘다는 말에 나는 또 신이 나서 왜 그런 이름을 갖게 되었는지 얘기했다.

 

그녀는 4월 한가운데 서서, 세월호 아이들에게 이런 말을 했다. “봄꽃보다 예쁜 아이들아, 봄 햇살보다 더 찬란한 아이들아, 잘 살게. 네 언니와 오빠와 동생들이 형과 누나들이 지금과는 다른 세상에 살 수 있도록 많이 애쓸게 세 번째 봄, 네 번째 봄에는 우리 엄마 아빠 그만울게 해 주세요그 부탁 들어줄 수 있도록 ...더 노력할게.”

 

 그때까지는 그녀가 20164월의 한가운데를 어떻게 보내고 있었는지. 나는 알지 못했다. 그녀는 몇 번이고 내 이름이 예쁘다고 했다. 내 이름에는 자가 들어간다.

 

 

 416. 슈팅스타 아이스크림이 유난히 먹고 싶었다. 정확히 기억하는데, 7개월 만이었다. 작년 9월 슈팅스타를 마지막으로 먹지 않았으니까. 그 날도 슈팅스타를 먹었다. 당시 남자친구는 취업 준비로 힘들어하고 있었다. 슈팅스타를 먹은 그 날, 우리는 헤어졌다. 그가 대기업에 취업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물론, 축하의 말은 못했다.

 

 

 그 날 광화문 교보문고 푸드카페로 들어가도록 손짓한 것은 하늘에 있는 노란 천사들, 그들일까? 노란 리본을 달고 다녀주어 고맙다고. 그 날 그렇게 은수미 의원을 나와 만나게 해 준 것일까? 그녀의 발걸음을, 나의 발걸음을. 그 시간, 그곳으로 이끌어 준 걸까? , 더 열심히 살라고. 자신 몫까지 열심히 좀 살라고. 혼내면서 내게 선물을 보내준 걸까. 그런 거라면 나는 살아야겠다. 나는 다시 날갯짓해야겠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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