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가까워지고 집앞 도로에 차를 둘러보니 아빠와 엄마의 차가 보였다. 뭐하고 계실까? 저녁을 드시고 계실까? 아니면...
나는 멍한 눈을 하고 1층 현관을 지나 계단을 올랐다. 그러고 보니 늘 버릇처럼 확인하던 우체통도 보지 않았던 것 같다.
집 문을 여니 부엌에서 사람 그림자가 보였고 이내 엄마와 아빠가 나왔다. 나는 아무런 표정도 짓지 않고 형식적으로 ‘다녀왔습니다.’ 라는 말을 하고 바로 씻으러 들어갔다.
씻고 나오니 엄마가 저녁을 먹었냐고 물어보셨다. 실제로 아무것도 먹지는 않았지만 나는 학교에서 저녁을 먹고 왔다고 거짓말을 했다. 딱히 엄마가 나를 의심하는 것 같지 않아서 다행이었지만 좀 섭섭한 감도 있었다. 분명 며칠 동안 내가 일찍 왔었고 앞으로도 그 시간대에 올 것 같다고 말했었는데 그런 말을 언급하지 않으니...
방에 들어 가 게임을 할까 하지말까 생각을 하다 책을 읽으려고 노트북을 치우는 순간 아빠의 말 한마디에 기분이 상했다.
“얌마 공부 좀 해라.”
툭 던진 말인지 진심어린 말인지 참 알쏭달쏭한 말이지만 어떤 의미가 담겨 있건 나는 기분이 상했다. 그리고 게임이 하고 싶어졌다.
하지만 분위기상 게임을 했다간 무슨 일이 벌어질지 대충 상상이 갔기 때문에 나는 머릴 절래절래 흔들며 이불위에 앉아 책을 꺼냈다. 원래는 판타지 책을 읽겠지만 이미 다 읽어서 딱히 다시 보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꺼낸 책 제목은 ‘호밀 밭의 파수꾼’이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나는 책은 읽지도 않고 계속 멍을 때리고 있었다.
“휴...”
당연한 거였다. 책을 읽고 싶은 기분도 아니었고 요즘 여러 가지로 잡다한 생각을 하느라 머리가 아팠기 때문이었다.
잠시 머리를 들어 천장을 바라보다 눈을 감았다. 전등의 불빛이 감은 눈을 통해 느껴졌다. 다들 알 것이다. 눈을 감고 불빛을 바라보거나 햇빛을 바라보면 검푸른 빨간 색깔이 보인다는 것을...
잠시 그렇게 있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게임말고도 잘 할 수 있는 게 있을까?
잠시 눈을 뜨고 아래를 보니 책을 잡고 있는 내 손이 보였다.
‘책... 글을 써 볼까?’
문득 떠오른 생각이지만 어쩌면 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엄마의 말로는 내가 어렸을 때 시랑 글을 매우 잘 썼다고 하는데 진짜인지 아닌지 나는 잘 모르겠어서 그냥 그랬었구나 식으로 알고만 있었다.
정말 그 사실이 진짜라면 어렸을 때의 내가아닌 지금의 내가 다시 써본다면 과연 잘 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그리고 조금 더 생각을 해 보니 어쩌면 나 말고도 세상에는 글을 잘 쓰는 사람이 수두룩할 것 같았다. 학교에서 독후감이나 감상문 같은 것을 쓰라고 할 때 보면 매우 잘 쓰는 애들이 매우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엄마가 말하는 어렸을 적 그 이야기는 어리고 상상력도 풍부한 때니까 그럴 수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아니야... 이러지 말자’
벌써부터 나는 부정적인 쪽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부정적인 생각을 떨쳐내기 위해 나는 머릴 흔들며 다시 눈을 감았다. 하지만 계속 부정적인 쪽으로 의식하고 있어서 인지 잘 떨쳐지지가 않았다.
책에 머리를 박고 한숨을 푹푹 쉬던 나는 아직 시간이 있으니 책이나 다시 읽어보기로 했다. 다른 생각은 하지 않은 채 책의 내용에만 집중하기로 마음먹고 책을 펼쳤다.
“어?”
집중해서 읽어보니 주인공의 시점에서 일어나는 일들과 생각을 쓴 간단한 내용이었다. 또, 책의 글쓰기 방식이 책 주인공이 말하듯 쓰여 있어서 읽기 쉬웠고 주인공의 감정이 잘 전해졌다. 그래서 나는 금방 자연스럽게 그 책에 빠져들었고 다 봤을 때는 이미 부모님이 잠자리에 드신 상태였다. 누나는 책상에 앉아 공부 중 이었다.
다시 책을 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마치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하듯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이야기, 만약 내가 글을 쓴다면 이렇게 써보고 싶다고...
“그 책 재미있어?”
그때 누나가 내쪽으로 뒤돌아보며 말했다.
“응? ‘재미있다’기보다는 그냥 읽기 쉬워서 좋던데?”
솔직히 너무 재미있었고 왜인지 책속의 주인공이 나와 비슷하다는 느낌 받아 몇 번이고 다시 읽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래 다행이네...”
“근데 누나...”
나는 무의식적으로 누나를 불렀다.
“응?”
“내가 어렸을 때 엄마가 막, 시 같은 거 잘 쓰고 그랬다고 했잖아...”
“응 그랬지! 지금 봐도 감탄이 나오던데?”
“그럼 내가 글을 쓰면 어떨까? 잘 쓸 수 있을까?”
“글쎄... 아직 한 번 도 글을 제대로 써본 적 없으니까 잘은 모르겠는데. 누나가 생각하기엔 너는 그런 쪽에 재능이 있으니까 쓴다면 잘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래?”
순간 잘 할 수 있을 거란 말을 듣자 나의 마음속에서 무언가 피어나는 느낌이 들었다. 정말 글을 써볼까? 라는...
“그럼 글이나 써볼까 누나?”
“그래? 그래봐! 수필 같은 거 쓰면 잘 쓸 것 같아.”
그렇게 나는 처음으로 게임 다음으로 하고 싶은 일이 생겼다.
다음날부터 나는 글을 써보기 위해 여러 가지 이야기를 머릿속으로 구상했다. 처음에는 판타지 소설 쪽으로 생각을 했다가 수필이나 에세이 같은 쪽으로도 생각해보았다.
방학을 하기 전까지 계속 이야기를 생각하고 수첩이나 노트에 적기도 했다. 그리고 방학을 하고 나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처음 시작이 힘들었지만 조금씩 쓰고 읽어보며 고쳐가니 어느 정도 재미가 붙기 시작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가족끼리 앉은 저녁 밥상에서 아빠가 말하셨다.
“너 이제 고3인데 앞으로 어떻게 할지 진로 정해야하는 거 아니냐?”
그동안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아빠 앞에서 뚜렷이 밝힌 적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지금 아빠한테 내가 하고 싶은 일은 글 쓰는 것이라고 말하기로 결심했다.
“어... 저는 글을 쓰고 싶어요.”
“글? 소설 쓰고 싶다는 거냐?”
“음... 네.”
“야. 너 글써가지고 돈 빌어먹고 잘 살 수 있겠냐? 글쓰는 거 그거 돈 얼마나 번다고 그래?”
“그래도...”
“그래도가 아니라 현실적으로 생각해 보라고 글 써서 잘 살 수 있겠어?”
점점 아빠의 목소리가 높아져 갔다. 현실적인 삶을 우선시 하는 아빠는 이런 나의 말이 달갑게 느껴지지 않으실 것이다.
말하는 아빠의 기분이 얼굴 표정에 다 들어났다.
“그럼 니가 공장 다니면서 글 쓴다면 그건 인정해줄게 아빠가. 그런데 글만 쓰는 건 안돼.”
“네?”
난 할 말을 잃었다. 그리고 왜인지 ‘공장 다니면서’ 라는 말이 싫었다.
나는 ‘생각해 볼게요’ 라는 말로 대충 마무리를 지은 뒤 저녁식사를 마쳤다. 그리고 방으로 급히 들어가 이불위에 누웠다.
어찌 보면 공장을 다니든 뭘 하든 일을 하면서 여가 시간에 글을 쓸 수 있는데 왜 나는 그게 싫었을까?
나 스스로 왜 그런 느낌을 받았는지 생각해 보았다. 왜일까... 왜 그런 느낌을 받았을까? 아마도 현실적인 아빠의 발언이 싫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아니, 맞다. 아빠의 그 현실적인 ‘공장 다니면서’ 라는 말이 싫었다. 그냥 싫었다.
언제나 아빠는 뭔가 말을 할 때 마다 인정하는 것 같으면서 인정 안하는 것 같은 말을 하셨다. 어쩌면 엄마도 그랬을지도 모른다. 내가 확고하게 나의 뜻을 말하지 못한 것도 있지만 나는 아무리 그래도 자식이 하고 싶다는 일이 좀 뜬구름 잡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더라고 그게 정말 뜬구름인지 아닌지 잡아볼 수 있게 도와는 줘야한다고 생각한다.
괜히 이상하게 해보라는 말을 하면서 자기가 생각하기에는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의 말을 섞으면 자식들은 그 말을 계속 신경 쓴다. 뭐, 전부다 그렇지는 않을 테지만 적어도 내 경우에는 그렇다.
이제 와서 내가 이런 말을 부모님께 해서 부모님이 ‘그래 열심히 해보렴!’ 이라는 말을 해준다 해도 엎드려 절 받기 식으로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고 오히려 더 신경쓰일게 분명했다.
“휴... 어떻게 하면 좋을까.”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이불을 머리까지 덮었다.
어렵사리 나 스스로 잘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는데 불구하고 할 수 없다는 상황과 나의 모습에 한숨만 나왔고 가슴에서 울컥하는 느낌을 받으며 눈물을 흘렸다.
내 마음은 추위에 휩싸여 시린데 이불 속은 더럽게 따스하기만 했다. 눈물이 흐를 때마다 나의 가슴속에서는 울컥거림이 계속되었고 시간이 지나 난 지쳐 잠들었다.
다음날 굴다리 밑을 지나가다 불교사를 보았다. 멀리서 보았는데 문에 이상한 현수막이 걸려있는 게 보여 다가가니 불교사가 없어지고 다른 건물이 들어선다는 내용이었다.
“결국 변하는구나...”
나도 불교사도 모든 사람들이 변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변하고싶어서 변하는 게 아니라 외부의 힘이 작용해 변하는 것이다. 정말 이렇게 변하는 내가 싫어졌다.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