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반쯤 다와 갔을 때 벤치 하나가 보였다. 나는 최대한 집에 늦게 가고 싶은 마음에 느릿느릿 하게 걸어 벤치에 앉았다. 시간을 보니 4시 30분이었다.
그러고 보니 예전, 내가 어렸을 적에 엄마가 나에게 상상력이 풍부한 아이라고 말했었다. 하지만 최근, 엄마는 나에게 ‘너 어렸을 때 참 상상력이 풍부한 아이였는데.’ 라고 말씀 하신다.
내가 그랬었나?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인데 그게 아니었나? 지금은 아닌가? 그런데 왜 그때 그럼 그 말을 하신거지?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나를 비교한 이유는 뭐였을까?
상상력이 풍부하고 하니 공부도 잘 할 줄 아셨나? 지금 날 이렇게 만든 게 누구... 아니지 왜 다른 사람을 탓해... 용기를 내지 못한 채 그저 끌려 다닌 내 잘못이지... 참 살기 싫어진다.
진심으로 하는 말은 아니지만 이럴 때 마다 나는 이런 말을 하곤 했다. 버릇처럼...
어쩌면 큰일일 수도 있다. 살기 싫다는 말을 버릇처럼 한다는 것은...
나 자신을 점점 세뇌시키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다가 큰일 나는 것이긴 하지만 말이다.
나 스스로 생각하는 거지만 난 정신력이 강하다고 생각한다. 이유야 뭐... 여태까지 평범하게 살아 왔다는 게 그 이유이다.
과거 나의 모습이 어떠했는지 생각해 보았다.
초등학생 5학년 때쯤 이곳으로 이사 오고 검도장을 다니면서 사귄 근처 아파트 친구와 매우 친해지면서 중학생 때 까지 계속 그 인연을 이어왔다. 그런데 그 친구와 만나면 가는 곳이라고는 피시방이었다. 하지만 돈이 없었고 나와 친구는 만나면 어떻게든 피시방을 가려고 노력했었다. 게임이 좋았고 게임을 하면서 친구와 웃을 수 있었기에...
그런데 그 노력이 잘못되어 나는 아빠의 지갑에 손을 대거나 저금통에 손을 대곤 했다. 수도 없이...
정말 바보 같은 행동이며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다가 한번 엄마한테 들켜서 크게 혼나던 것을 다행히도 아빠가 살다가 한번쯤 그럴 수도 있다며 용서해 주셨다. 왜인지 그때 아빠가 매우 멋진 사람처럼 보였었고 나의 구세주 같았다.
그 일이 있은 후 그 친구와는 거의 못 만났고 학교도 다른 곳으로 가면서 연락도 잘 하지 않게 되었다. 나의 유일한 친구이기도 했던 그 친구와... 어쩌면 잘 된 일 일수도 있다.
“휴...”
구질구질한 나의 모습을 회상하니 한숨만 나왔다.
다른 과거의 내 모습을 생각해보니 중학교 때 내 누나가 나를 위해 영어를 가르쳐 준 적이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공부랑은 인연이 아닌지 누나와 공부 할 때마다 공부 때문에 매번 싸웠다. 지겹게도 많이 싸웠었다. 언제 한번은 누나가 나에게 화를 내다가 내가 가만히 있으니 다시 즐겁게 공부를 이어가려고 영어문장 같은 걸로 개그는 아니지만 웃긴 말을 했었다.
내가 웃었겠는가? 당연히 웃음기 하나 없이 대꾸했다.
그렇게 누나는 다시 나에게 화를 냈고 나도 같이 화를 내다가 참다못해 방으로 가서 이불을 발로 찼었다. 그리고 뒤에 이어져 오는 누나의 욕... 정말 나는 그때 그동안 생각해 왔던 부당함이라던 지 나의 원통한 마음을 말하려 했지만 왜인지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아 곰이 울부짖듯 소리치고 말았었다. 정말 그때나 지금이나 같은 생각이지만 나를 왜 몰라주는 것인지...
예전에도 엄마와 이런 이야기를 나눈 적 있는데 엄마가 나보고 ‘알아달라고만 말하지 말고 네가 알려줘’ 라는 말을 했었다.
그때 나는 ‘아 내가 표현을 못한 거구나.’ 라고 생각했었는데 다시 생각해 보니 아니었다. 내가 얼마나 표현하고 얼마나 말을 했는데... 말을 해도 틀리다는 답변 뿐 맞다는 말은... 아마 없었던 것 같다.
혹시 모르지, 내가 피해망상 같은 것 때문에 맞다는 말을 기억하지 않는 것일 수도...
“으!”
이상하게 나는 생각만 하면 과거의 일만 생각하지 미래의 일은 잘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 미래의 일... 기쁜 생각 내가 미래에 무슨 일을 하고 싶은지 생각해보자...
그러나 미래를 생각하면 할수록 과거의 일이 생각났고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없는 일로 만들어버렸다.
그냥 게임이 하고 싶어졌다. 아무생각 없이 내가 잘할 수 있는 일... 즐거운 일을...
하지만 지금은 해서는 안 될 것 같았다. 지금 시간이 평소보다 늦은 때라 지금 가봤자 얼마 못할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어디를 갈까... 뭘 할까?...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시간은 가지 않았다.
이놈의 시간이라는 녀석은 의식하면 느려지고 의식하지 않으면 빨라지는 얄미운 존재이다. 정말이지 형체라도 있으면 때려주고 싶을 정도로 얄밉다. ‘왜 이렇게 느리냐고, 왜 날 두고 먼저 가버리냐고...
아쉽고 또 아쉬운 존재가 있다면 시간인 것 같다. 형체는 없지만 우리가 뼈저리게 늦기고 있는 존재... 시간, 이 시간은 누가 만든 걸까... 아니, 어쩌면 우리가 시간 속에서 만들어진 존재일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신비한 존재나 물질에 대해서 연구하고 파헤친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에게 신비하고 흔하지 않고 자연스럽지 않으니까... 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엔 다른 신비한 존재보다도 더 신비한 것은 흔하면서도 자연스럽게 우리와 함께 지내는, 또 모든 사람들에게 평등하게 주어진 시간인 것 같다. 시간은 보이지도 않고 형체도 없어 파헤치거나 관찰 할 수도 없으니...
그저 우리의 관점에서 시간이란 무엇인지 생각해보고 정의를 내리는 방법밖에는 시간을 정의하는 방법은 없는 것 같다.
이쯤에서 나 스스로 시간이란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다. 시간... 최근에 봤던 ‘루시’ 라는 영화도 생각났고, 우주에 관한 영화도 생각났다. 우주 저 멀리 있는 행성에서의 한 시간이 우리 지구에서는 1년이 될 수도 있고 하루가 될 수도 있다는 것...
우리가 움직이고 먹고 소화하고 체력을 보충하고 이러는 것도 모두 시간에 속해있는 것 같다. 그리고 자연재해라던가 비가 내린다거나 혜성이 떨어진다거나 이 모든 것도 시간에 의해 이루어진다. 작은일 하나, 큰일 하나하나 시간이 있어야 생긴다. 그렇다면 시간 속에 우주가 속해있는 게 아닐까?
그러다 문득 무언가 떠올랐다. 예전 어떤 기사인지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읽은 건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사람의 뇌의 신경구조인지 뇌 무언가를 현미경으로 관찰한 사진과 우주 사진을 비교해보니 비슷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글에서 혹시 지금 우리가 사는 우주가 어쩌면 어떤 한 사람의 뇌 속에 속해 있는 게 아닐까 라는 말을 했었던 것 같다.
“음... 그럼...”
나는 잠시 혼잣말을 하며 머릴 감싸 쥐었다. 잠깐 머리가 아파왔기 때문이다.
뇌는, 그러니까 우리의 뇌는 과거에 있었던 일을 상상하고 앞으로 있을 미래에 대해서도 상상하고 없을 것 같은 일도 상상한다. 순간 어쩌면 이게 인간이 가진 시간을 뛰어넘는 능력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즉, 시간은 우리들의 곁에 있으며 우주가 속해있고 우주가 우리의 뇌와 비슷하고, 우리의 뇌는 이런 시간을 뛰어넘는 상상력을 가졌고... 그런데 그 상상은 시간 속에서 이루어진다?
“뭔 개소리야!”
-빵~!
벌떡 일어나며 외친 나의 외침과 함께 지나가던 트럭의 경적이 울렸다. 의외로 큰소리를 질렀는데도 주변을 지나가던 사람들은 나를 쳐다보지 않고 큰소리로 경적을 울린 트럭을 원망스러운 듯 흘겨보고 가고 있었다.
“어휴... 이놈의 이상한 상상은 그만좀 해야겠다. 그러다 정말 me친놈 소리 듣겠네... 어?”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 주위를 둘러보니 벌써 어둠이 내려앉고 있었다. 핸드폰을 꺼내 시간을 보니 벌써 6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집을 가야하나... 야자는 안하니까 못해도 6시 30분에는 집에 들어가야 엄마가 8교시 까지 하고 온줄 알 것이다. 정말 집에 가고 싶지는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집에 가야했기에 나는 어깨를 축 늘어트리고 터덜터덜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