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미는 이번 소개팅이 부디 자신의 마지막 소개팅이 되길 바랬다.
어느덧 20대 후반, 어디 내놔도 손색없을 정도의 미모 덕분에 항상 남자가 꼬였지만
만나는 남자마다 항상 영미가 원하는 남자와는 정 반대였다.
오로지 자신의 겉 외모만을 보고 접근했던 전 남자친구들.
그녀의 이상형은 지적이고 매너좋은 전형적인 여성들의 워너비형 남성이었지만
지금까지 만났던 남자들은 무식했고, 단순했으며 문란했다.
그녀는 이제 연애에는 진절머리가 났다.
하루빨리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알콩달콩 살고싶었다.
"아 영미씨 맞으시죠?"
영미가 카페의 문을 열고 주변을 두리번거리자, 바이올렛색이 들어간 묘하게 고급스러운
정장을 입은 한 남성이 일어나며 그녀에게 말을 건냈다.
얼핏 봐도 180은 넘어보이는 키, 뚜렷한 이목구비에 훤칠한 미소, 끼고있는 안경에서 풍겨져나오는 지적인 멋까지.
겉모습만으로는 영미가 그토록 바라던 지적인 매너남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반갑습니다. 장호철이라고 합니다."
영미는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는것을 느꼈지만, 화장 덕분인지 홍조가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았다.
한참 이야기를 나눈 영미는 그가 30대 중반의 나이로 건실한 중견기업의 CEO라는 사실을 알게됐다.
그 뿐만 아니었다. 그는 영미가 그토록 바라던 지적인 남자의 표본이었다.
"영미씨는 진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저는 진리를 탐구하는 것을 아주 좋아합니다. 아 이상하게 생각하진 말아주세요.
전 진리는 곧 '세상 모든 학문'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저는 다양한 학문을 익히는것을 좋아합니다."
대화하는 내내 그는 영미가 부담스럽지 않게 배려해주며, 자신의 지적능력을 마음껏 뽐냈다.
그의 지식은 실로 놀라웠다. 수학, 물리학, 자연학, 경영학, 경제학, 심리학, 의학, 문학, 윤리학등등
모든 학문의 분야에 두루두루 넓은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영미는 지금껏 이렇게 설레고 가슴벅차는 남자를 만나본 적이 없었다.
첫 만남이었지만, 그녀의 머리속은 이미 이 남자와의 장밋빛 결혼생활을 그려나가고 있었다.
"저는 그 중 물리학, 화학, 경제학, 경영학, 생리학을 특히 좋아합니다."
"물리학과 화학은 오늘날 우리의 삶을 이렇게 놀랍게 바꾸는 기술을 낳지 않았습니까?
경제학과 경영학은 말할 것도 없지요. 제가 현재 경영인으로써 당당히 한 자리를 꿰차고 있기도하고
현대사회는 이 경제라는 것이 삶의 중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까요."
"또한 생리학은 생물의 기능이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지에 대한 생명의 놀라움을 담고 있죠."
20대 초반의 영미에게는 이런 소개팅은 다소 따분했을지 모르겠지만, 지금의 그녀에게는
1분이 1초같았다. 장장 한시간 반에 걸친 카페에서의 1차 소개팅이 끝난 후,
영미는 순조롭게 저녁식사에 응했다. 저녁식사에서 와인잔이 오갔고, 어느새 둘은
취기가 듬뿍 올랐다. 영미는 너무 이르다 싶었지만, 오늘 당장이라도 이 남자의 품에
안길 수 있을 것 같다 생각했다.
"영미씨, 단도진입적으로 말하겠습니다. 저는 오늘 첫 만남에 영미씨에게 단번에 사로잡혔습니다."
"저도 이런적은 처음이에요. 저도 호철씨가 마음에들어요."
둘은 결국 첫 만남에서 새벽까지 바에서 술을 마셨다.
너무즐거운 만남에 본인의 주량도 잊고 많은 술을 마신 영미는
점점 이성의 끈이 풀어지는 것을 느꼈다.
호철은 자연스럽게 취한 영미를 에스코트해, 호텔로 대려갔다.
"영미씨, 여기는 제가 운영하는 호텔입니다. 크진 않지만 가장 좋은
vvip룸으로 모셔드릴게요. 괜찮으시죠?"
"네...괜찮아요"
그렇게 영미가 차에서 마지막대답을 하고 잠이 든 후, 정신이 깼을 때
그녀는 정말 화려해보이는 한 방에 누워있었다.
소품이며 조명이며 전체적인 분위기까지 아름답기 그지 없었다.
다만 그녀의 온 몸이 묶여있다는 것 빼고는 말이다.
그녀는 알콜기운이 순식간에 날아가는 것을 느꼈다.
몽롱했던 정신이 점점 또렷해지며 알 수 없는 불안감이 그녀를 덮쳐왔다.
그 때, 방문이 열리며 위생마스크를 쓴 한 남성이 들어왔다.
"아 영미씨 일어나셨어요?"
"읍...으읍읍!!"
입에 재갈이 물린 영미는 어찌된 상황인지 묻고 싶었지만 말이 나오질 않았다.
"아 괜찮아요. 영미씨가 무슨말을 하려는진 저도 알아요. 지금 심정이 어떠신지도요.
영미씨도 아시겠지만, 전 심리학을 꽤 공부했거든요. "
곧이어 남자가 카트하나를 끌고왔다. 그 카트위에는 약품병들로 보이는 것들과
주사기, 수술도구들이 진열돼 있었다.
"물론 의학도 공부를 좀 했습니다 하하하. 이건 국소마취제인데, 통증을 완전히 잡아주진 않아요."
그가 영미의 팔에 맥을 몇번 짚어보더니, 이내 마취제가 담긴 주사바늘을 찔러넣었다.
"끄읍...!!"
"괜찮아요 곧 감각이 사라질테니까."
영미의 왼팔의 감각이 사라지고, 이내 오른팔의 감각도 사라졌다.
잠시 후 남자가 또다시 어떤 약물을 투여하자, 그녀의 정신이 몽롱해졌다.
곧 상냥했던 그의 말투가 순식간에 바꼈다.
"지적인남자 좋아하지? 나도 당신같은 여자가 좋아.
내가 왜 경영학, 경제학을 좋아하는지 알아? 이 경제력이라는 것이
사람을 이렇게 쉽게 이끌리게 할 수 있거든."
"심리학은 또 어떻고? 대화의 기술로 첫만남에서도 단박에 상대방의 환심을 사로잡을 수 있지."
"물리학과 화학은? 지금처럼 이렇게 다양한 인체실험을 하는데 큰 도움이 되지.
과거에도 이 물리학과 화학덕분에 정말 수 많은 사람들이 희생됐었잖아. 정말 낭만적이지 않아?"
"아~!그리고 마지막. 젤 중요한 생리학이 빠졌네. 내가 제일 좋아하는 학문이 생리학이야.
생리학의 발전은 열등한 인종을 규정하는 근거가 돼서 유대인 학살의 명분이 됐지."
"어찌보면 니가 지금 이 꼴을 당하는게 생리학 때문이라고. 넌 나보다 열등하고,
난 너보다 우월하니까. 우월한 존재가 열등한 존재를 찍어 누르는건 죄가 아니잖아?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그의 소름끼치는 웃음소리가 방 전체에 퍼져나갔다.
그리고 곧 그 소름끼치는 웃음소리를 묻어버릴만큼 큰 여성의 비명소리가 방 안에서 끝없이 울려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