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
스스로 생각해서 대답하고 반문 하며 생각을 하니 너무 힘들었다. 그래도 뭔가 뿌듯한 느낌이 들었다고 할까... 그러나 머릿속에서 생각한 것 그대로 입 밖으로 꺼내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 실제로 어른 앞에서 이런 말을 다시 생각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정신적으로 피곤해진 나는 그대로 엎드린 채 잠에 빠져들었다.
한창 엎드려 잠을 자다가 순간 잠에서 깨어났다. 일어나보니 교실이 텅텅 비어있었고 복도에서는 애들의 목소리와 발걸음이 들렸다.
시계를 보니 3시 30분. 집에 갈 시간이었다. 그런데 애들은 자고 있는 나를 깨울 생각을 하지 않고 그냥 가버린 것이었다.
순간 울컥하며 기분이 우울해 졌다. 그리고 혼자라는 생각이 들었고 외롭다 라는 느낌을 받았다.
“휴...”
한숨을 쉬고 있는데 갑자기 교실 앞문이 열리며 낯익은 얼굴이 나타났다.
“어? 너 안가?”
같은 반 지성이였다.
“아! 응! 가야지. 누구 좀 기다리느라고...”
“그래? 알았어! 내일봐!”
지성이는 그렇게 교실 문을 닫고 가버렸다.
밝고 힘찬 목소리, 지성이는 내 누나가 좋아했던, 예전에 음악오디션프로그램에 나왔던 참가자중 한명을 닮았다. 그래서 나는 지성이를 놀릴 때 그 사람의 이름을 부르며 놀리곤 했다. 그런데 더욱 웃긴 건 지성이의 꿈이 가수라는 것이다. 그래서 학교 보충 수업도 빼고 매일 보컬학원에 가서 연습하곤 한다.
나는 가끔 지성이 같은 애들이 부럽다. 자신이 원하는 일을, 자신의 꿈에 대한 확고한 뜻을 가지고 매우 열심히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볼 때면 그 꿈을 이룰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우우웅~
머리위에서 울리던 히터의 작은 소음이 점점 더 작아지더니 이내 아예 꺼진 듯 소리가 나지 않았다. 위를 올려보니 확실히 꺼진 게 맞는 듯 했다.
왜 꺼졌을지 생각해 보니 일단 내가 교실에 있는 제어장치를 건드리지 않았으니 아마도 행정실에서 교실에 이제 학생들이 없을 거라 생각하고 끈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처음에는 못 느꼈는데 공기가 따뜻하고 밀폐된 공간에 있어서인지 숨이 턱턱 막혔다.
-드르륵
나는 환기를 시킬 겸 창문을 열었다. 차가운 바람이 나의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 숨을 깊게 들이쉬니 코 속이 얼어붙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뭔가 청량한 느낌이 들어 기분이 나쁘지 만은 않았다.
창밖으로 보이는 교문풍경을 보고 잠시 창틀에 앉았다. 학교에 있던 모든 학생들이 교문을 통해 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같은 교복 서로 다른
가방들... 기본적으로 이런 것들이 보였지만 나는 이런 생각도 들었다.
저 애들이 학교를 떠나서 어디로 갈까? 학원? 집? 아니면 친구들과 노래방? PC방?... 그래 어딘가 가긴 할 것이다. 그런데 저 애들은 생각하고 있을까? 자신이 뭘 하는지 자기가 뭘 원하는지... 아니 정말 자신이 미래에 직업으로 삼고 싶거나 하면서 살고 싶은 일을 생각하고 있을까?
나는 지금 내가 뭘 하고 싶은지 잘 모르겠다. 어른들은 이런 나보고 그냥 학교 공부 열심히 하면서 지내다 보면 알게 될 것이라 말한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전에도 생각했던 것처럼 지금 고등학교시기에 자신의 꿈을 찾고 이루기 위해 노력해야 행복한 삶을 살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 어른들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대기업에 취직해라. 회사에 취직하고 안정적인 직장을 가져라. 즉, 성공해라. 하지만 나는 이런 걸 원하지 않는다. 돈을 많이 벌지 못하더라도 나의 꿈을 이루고 행복해하며 살고 싶다. 성공해야 행복 해지는 게 아닌 행복해야 성공하는 그런 삶을 살고 싶다. 그래서 나는 끊임없이 나의 꿈을 이루기 위해 아무도 모르게 노력을 하고 있긴하다. 변수라면 내가 최선을 다해 노력을 했는데도 적정 수치에 다다르지 못하거나 그 수치를 다다랐다 해도 부모님이 반대한다면 불가능할 수도 있다.
뭐... 앞으로 잘 해갈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해볼 것이다. 이상하게 학교에서 혼자있는 시간에 이런 생각을 자주 하곤 한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교문으로 나가는 애들이 더는 보이지 않았다.
“흐휴....”
나는 깊게 숨을 내뱉고 창문을 닫은 뒤 가방을 챙겨 학교를 떠났다. 집에 가려고 막상 걷다보니 집에 가기 싫어졌다. 집에 가면 게임을 하는데 엄마 아빠가 분명 뭐라고 하실 것 같았기 때문이다. 게임을 안 하고 그냥 노트북 앞에 앉아있어도 뭐라고 하신다.
“흐음....”
멍하니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살짝 회색빛에 노을빛이 겹쳐진 색을 띄고 있었다. 뜬금없지만 정말 자연의 색은 그 어떤 물감으로도 똑같이 나타낼 수 없는 것 같다. 예쁘다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멋지고 예쁜 하늘이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내가 하늘을 보고 있으니 이상한 듯 쳐다보았다. 그리고 나처럼 하늘을 한번 쳐다보더니 한 5초간 가만히 있었다. 사람들도 하늘이 예쁘다는 것을 느꼈는지 도 모른다. 그렇게 몇 분간 하늘을 보다 목이 아파왔다.
내가 다시 목을 바로세우고 주변을 보니 여러 사람들이 하늘을 보고 있었다. 아마 나를 보고 따라했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해 보니 내가 바쁜 사회생활을 살아가며 하늘을 올려다 볼 여유를 가지지 못했던 사람들에게 그런 여유를 느끼게 해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겠지만 일단 집 쪽으로 발을 옮겼다. 그리고 매우 천천히 걸으며 주변풍경을 모두 눈에 담았다.
자동차, 나무, 건물, 풀, 사람 그리고 그것을 이루는 일부들... 예를 들면 자동차의 바퀴 창문, 나무의 가지와 잎, 사람이 입고 있는 옷과 메고 있는 가방, 혹은 장신구 같은 것을 보았다. 문득 생각난 거지만 내가 어렸을 때 길을 걸으면 주변을 너무 두리번거린다며 엄마한테 혼난 적이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 행동이 왜 잘못된 행동인지 이해가 되지 않아 웃길 뿐이다. 사람들에게 피해를 줄만한 행동으로 보이지는 않는데 말이다. 내가 죽일 듯 막 째려보는 것도 아니고 고개를 돌리다가 그냥 보는 것뿐인데...
조금 더 걸어가니 불교사가 보였다. 잠시 멀리 떨어져 불교사와 그 주변을 바라보았다.
내가 왜 불교사가 나처럼 느껴졌던 것일까?
불교사 주변에 있던 건물들이 허물어지고 새로운 건물을 짓기 위해 준비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다른 곳은 변해가고 있는데 그 환경에 휘둘리지 않고 변하지 않는 그 모습... 아! 어쩌면 이게 나와 닮은 게 아닐까? 새해를 맞아 변화의 시기에 다른 애들은 미래, 자신의 진로를 위해 열심히 스펙을 쌓고 시험 점수에 신경을 쓰고 있는 반면에 나는 그런 것에 무관하게 아무 생각 없이 내가 하고 싶은 데로만 행동하고 있다.
나의 행동과 불교사의 그 모습을 대조해 보니 내가 불교사가 나 같다는 느낌을 받은 게 납득이 갔다. 나는 왜인지 모를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발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