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을 돌아다니다 슬픈 소식을 전해들었습니다. 서울대 약대의 청춘 한명이 세상을 등지고 떠났습니다. 그리고 한편의 유서를 남겼습니다. 그 유서에는 생존을 결정하는 것은 수저 색이라고 적혀있었습니다. 그리고 댓글에는 이 사회와 현 상황을 바꾸지 않는 대통령을 탓하는 댓글이 달려 있고 그 댓글에는 뭐든 대통령을 탓한다는 비난의 댓글이 또 달려 있었습니다. 보는 순간 분노가 치밀었습니다. 부의 재분배가 일어나지 않는 사회구조와 한국 최고 대학의 약대생 조차 가난하고 슬픈 현실을 살아야 하는 이 나라. 그리고 이런 문제점을 알면서 고치지 않는 대통령과 자신의 일이 아니라고 이런 대통령을 지지하는 많은 사람들. 문제점을 아는 것은 쉽지만 고치는 것은 많은 용기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문제를 직면 할 용기 조차 없으며 치부를 숨기는 것에 급급했습니다.
건강한 사회는 부의 재분배가 일어나야하며 사회적 안정망이 갖추어져 있어 청춘들의 도전이 그저 아픔으로 끝나는 것을 막아주어야 합니다. 제가 인간윤리 강의와 경제 개론 강의에서 배운 내용은 헛된 것이었나요? 장학금을 받고 알바를 하며 대학생활을 하는 건축학도는 미래가 두렵습니다. 만약 한번 삐긋해 장학금을 놓치면, 알바를 못나가 월세를 못내면. 매일 이런 두려움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와 같은 사람이 많을 것입니다. 청춘이 미래를 두려워 하고 있습니다. 잃을 것이 없어서 도전할 수 있다는 것은 옛말입니다. 실패의 대가는 대출금 고지서가 될 것이며 그깟 종이 쪼가리가 목을 틀어막고 저를 질식시킬테지요. 혹은 목을 막고 저를 굶겨죽일 것입니다.
사회적 안전망이 없는 사회에서 청춘은 도전하지 못합니다. 사람들은 지금의 이 고통이 매마른 흙에 내리는 빗줄기가 되어 나를 꽃 피게 할것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제가 뿌리내린 곳은 비가 오면 쉽게 흘러 갈 버릴 비탈존 곳에 있는 얕은 흙입니다 제 옆에서 저의 뿌리를 잡아주고 있는 또 다른 나의 뿌리들이 있기에 아직 흘러 내려가지 않았습니다. 부디 내가 지금 있는 흙은 비탈 진 곳이라 할 지라도 나의 후손들은 모두 함께 양지 바른 곳에서 자신이 피우게 될 꽃을 이야기하며 자라났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