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 전염병' 시민 속수무책 … 질병퇴치·보건 혼신 기울이다
일제강점기 사망률 최고 … 가난·비위생 등 원인
1940년 '연수장' 인천결핵요양원 남한 최초 개원
시, 침·가래뱉어 담는 '타구' 설치 이색예방 행정 요양원 환자 증가 … '병실 증개축' 편의 제공도
2015년 06월 28일 23:24 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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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7년 인천결핵요양원 앞뜰에서 고아 결핵 환자들이 간호사들과 햇볕을 쬐며 놀이를 즐기고 있다. |
메르스 만큼이나 무서운 전염병이 결핵이다.
'후진국 질병'이라 여긴 결핵이 다 퇴치된 걸로 알고 있지만 지금도 우리나라에서 매년 2000명 이상이 결핵으로 목숨을 잃는다.
인구 10만 명 당 5% 정도의 사망률을 보이는 전염병이다.
얼마 전 연수구의 한 중학교에서 103명(학생 101명·교사 2명)의 결핵 환자가 발생해 임시 휴업에 들어간 적도 있다.
일제강점기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결핵 사망률을 기록했다.
불결한 환경과 굶주림 속에서 집단 노동에 시달린 것이 주원인이었다.
특히 외부로 열려 있는 항구이면서 전국 노동자들이 모여 일하는 공장들이 많았던 인천은 전염병에 쉽게 노출되었다.
결핵 환자가 계속 늘어나자 조선적십자사는 결핵요양원을 설립하기 위해 전 조선을 뒤져 물 맑고 공기 좋은 곳을 물색했다.
낙점된 곳은 당시 사람의 발길이 거의 없었던 부천군 문학면 연수리(현 연수구 연수3동) 구릉지였다.
인천결핵요양원은 1940년 11월20일 '연수장(延壽莊)'이란 이름으로 개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