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 선거란 쉽게 말해서 우리를 대신해서 국회에서 법을 만드는 사람을 뽑는 투표입니다. 누구나 한 번쯤 “도대체 왜 우리나라에는 이렇게 알 수 없는 법이 많은가,” “무슨 놈의 법이 이렇게 어렵고 복잡한가,” “무슨 이런 말도 안 되는 법이 있을 수 있는가” 하고 생각해 본 적이 있을 겁니다. 단통법, 테러빙자법, 노동개악법, 등등… 사람마다 의견이 조금씩 다를 수 있지만, 어쨌든 살면서 이상하거나 나쁘다고 생각했던 법들이 하나 둘씩 있을 겁니다. 도대체 왜 이럴까요?
우리가 보기에 이상하거나 나쁜 법이 존재하는 이유 중 하나는, 법을 만드는 사람의 생각과 우리의 생각이 일치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일반적인 사람들과 가치관이 다른 사람들이 주도적으로 법을 만들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 동안 이 사회에서 논란이 되었던 여러 법안들은, 철저하게 권력과 자본을 독점한 일부 소수 계층의 이익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기획되고 입안되어 통과된 것들이 많습니다. 왜냐하면 자신들과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다수의 국회의원들을 통해서 그들이 그렇게 할 수 있는 능력과 동기를 넘치도록 가지고 있기 때문이죠.
법을 만드는 사람이 정의로워야 법이 정의롭습니다. 왜 그들은 노동개악법을 만들어서 통과시키려고 할까요? 손 쉬운 해고, 비정규직 확대, 근로시간 연장, 등등… 대다수 노동자들 입장에서 봤을 때 시대를 거꾸로 가려고 하는, 온갖 악법으로 점철된 이 법안이 통과되면 가장 큰 이득을 보는 것은 누구일까요? 굳이 어렵게 설명하지 않아도 다들 손쉽게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도 대다수 사람들은 아침 일찍부터 밤 늦게까지 격무에 시달리고, 집에 와서는 밀린 집안일과 육아에 정신이 없으며, 주말에는 주중에 쌓인 피로를 풀기 위해 하루의 반나절을 잠으로 보내면서, 다람쥐 쳇바퀴 돌 듯 그렇게 고된 일상을 반복하며 사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심지어 주말이라도 보장되면 감사할 만큼 밤낮 없이 일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칼퇴근’이 일생일대의 소원이 되고, 책을 읽거나 공연을 보는 등 삶의 여유를 누릴 수 있는 여가활동에 할애할 수 있는 시간은 턱없이 부족합니다. 그나마도 이런 직업이나마 있으면 하늘에 감사 드릴 만큼 취업은 어렵고 경쟁은 끝이 없습니다. 도대체 왜 이렇게 우리를 정신 없이 바쁘게 굴리고 괴롭히는 걸까요?
바로 책 읽고 소통하며 생각할 시간을 없애기 위해서입니다. 비판적으로 뉴스를 소비하고, 부족한 정보를 스스로 찾아서 진실을 파악하고, 사회적 문제에 관심 갖고 도움이 필요한 곳에 작은 도움의 손길이나마 보내는 것을 점점 더 어렵게 만들기 위해서 이러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먹고 사는 게 팍팍해질수록, 자기 자신과 주변 소수 외에는 신경을 쓰지 않게 되고, 사회적 문제나 정치 이슈 등에 대해서는 무관심해질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수십 년간 일당 체제가 지속되고 있는 옆 나라 일본의 젊은이들이 갈수록 정치에 무관심해지고 삶에 달관하는 경우가 늘어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오랜 시간에 걸쳐 ‘정치 혐오’ 내지는 ‘정치 무관심’을 조장하고, ‘쓸 데 없는 생각을 감히 하지 못할 만큼’ 바쁘고 고달프게 만드는 작업을 지속해 왔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가까운 미래에 그렇게 되지 말라는 법이 없습니다. 참으로 두려운 미래입니다.
정의롭지 못한 사람들이 계속해서 법을 만들어 왔기 때문에, 이 나라 사회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경제가 무너지고 있습니다. 미래가 점점 더 암울해져 가고 있습니다. 따라서 더 이상은 좌시하고 있으면 안 됩니다.
어떤 후보를 국회의원으로 만들어야 하는가? 누구에게 투표해야 되는가? 어느 정당에 투표해야 하는가? 가만히 잘 생각해 보면 답이 나옵니다. 번지르르한 말이 아니라 행동을 보고, 그 사람이 살아온 일생을 보면 됩니다. 살면서 억울한 사람들 등쳐먹은 적은 없는지, 군대는 다녀왔는지, 다녀오지 않고 면제를 받았다 하더라도 그 사유가 충분히 당당한 것이었는지, 세금을 제대로 납부했는지… 간단하게 이런 일차적인 필터를 적용하는 것부터 시작해 볼 수 있습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국회의원 후보자정보공개 자료 조회 http://info.nec.go.kr/
놀랍게도 이런 일차적인 데이터만으로도 함량 미달 자격 미달인 후보들을 꽤 많이 걸러낼 수 있습니다. 그만큼 우리나라의 정치 현실이 혼탁합니다. 심지어 후보 중에 살인미수 등의 강력범죄 전과를 가진 이들도 일부 있습니다. 또한 이런 사람들 중에는 요즘 선거운동을 하면서 “잘못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하면서 무릎을 꿇고 읍소하는 경우를 제법 많이 볼 수 있는데요, 잘못을 했으면 감옥을 가야지 왜 국회를 가려고 할까요?
어떤 사람의 행동이나 말에 관심을 갖고 주의 깊게 지켜보면, 어느 순간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어렴풋하게나마 판단을 내릴 수가 있게 됩니다. 간단하게 분류해 보자면, 먼저 뭔가를 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정치를 하고 권력을 잡으려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신이 추구하는 바가 있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정책을 세우고 통과시키기 위해 정치를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반면, 권력 그 자체가 목적인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반대로 정치를 하고 권력을 잡기 위해서 ‘유권자의 마음을 혹하게 하는’ 정책을 만듭니다. 그리고는 당선이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공약 파기를 반복합니다. 권력을 잡고 나서는 자기 자신과 이해관계가 맞는 일부의 측근들을 위한 이익을 쫓는 데 혈안이 됩니다. 그 결과 나라에 대한 걱정은 안중에도 없이 철저하게 이익으로만 뭉쳐진 카르텔이 형성되게 됩니다. 멀쩡한 나라가 순식간에 도둑놈들로 가득 차게 되고, 곳간은 텅텅 비게 됩니다.
사회에 살다 보면 세상에 무서운 사람, 짐승만도 못한 사람 정말 많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떳떳하지 못한 방법을 통해 자기 홀로 백만원을 챙길 수 있으면, 자기랑 상관없는 사람 만 명이 백만원씩 잃어도 상관없다는 사람들, 많습니다. 그렇게 사회적으로 백억원이 사라져 겨우 백만원이 되지만, 그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타인의 아픔에 전혀 공감할 줄 모르기 때문입니다. 평범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 동안 살면서 느낀 바로는 한 번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은 죽을 때까지 뉘우칠 줄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예 그런 마음 자체가 없습니다. 당장 눈앞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처벌을 받게 생겼으니까, 울면서 뉘우치는 척 하다가도, 기회만 생기면 언제든지 뒤에서 칼로 찌르는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이 상식이 통하는 사람들일 것 같았으면 지금 이 나라가 이 모양 이 꼴일 수가 없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이런 사람들이 우리의 삶을 결정하게 놔둬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번 선거의 후보자들 중에는 과거에 잘못된 일로 다른 사람에게 억울한 피해를 입게 하고도, 당사자가 아닌 신에게 기도하여 용서를 빌었으니 다 해결되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말로는 자기가 호남 민심을 대변한다면서, 5.18 광주 민주항쟁에서 자국민을 학살한 전모씨의 최측근과 사돈을 맺은 사람도 있습니다. 마음에 드는 후보가 없다면 총선 투표일에 그냥 투표하지 말고 놀러 가라고 대놓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당 차원의 선거 전략을 “투표율을 떨어뜨리는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발언한 사람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어느 정도는 이기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게 딱히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가 성인처럼 바르게 살 수 있다면 세상에 아무런 근심걱정이 없겠죠. 따라서 기본적으로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기가 먹고 사는 데 별 문제만 없으면 된다고 봅니다. 그것이 맞고 틀리고를 떠나서, 엄연한 우리의 현실입니다. 사실 사람답게 잘 먹고 사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으면, 애초에 아무도 정치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태평성대란 바로 그런 것이겠죠…
그런데 다들 어느 정도 살아봤으니 아시겠지만, 내 인생 내가 걱정하고 나 홀로 노력한다고 내 생각대로 되는 게 아닌 것 같습니다. 넓은 세상 나 혼자 사는 게 아니기 때문이지요. 따라서 다른 누군가가 나를 위해서 걱정하고 노력해 주고 도와주면 더 쉽게 원하는 삶을 살 수 있게 될텐데요, 바로 국회의원들이 그런 일 하라고 돈을 받고 특혜를 받으며 4년 동안 일하게 되어 있는 직업입니다.
금융회사들이 언제나 주요 마케팅 포인트로 삼는 게 바로 자산관리는 전문가에게 맡기라는 겁니다. 이들 회사의 소위 말하는 ‘전문가’들이 딱히 막 엄청나게 똑똑하고 잘나서라기 보다는, 자산관리가 ‘업무’인 사람들이 전업으로 일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좀 더 신경을 많이 쓸 수 있다는 뜻으로 보면 됩니다. 본업을 하면서 동시에 수시로 자산시장을 기웃거리면서 일희일비 하기보다는, 돈은 전문가에게 맡기고 본업에 충실하여 몸값을 높이는 게 서로 이득일 것입니다. 이처럼 나를 위해 특정한 일을 대신 해주는 대리인을 골라서, 나의 걱정을 대신 해주고 나의 이익을 위해 일해달라고 고용하는 것이 여러 가지 면에서 효과가 좋은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가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것도 본질적으로 똑같은 이치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을 위해 일하라고 있는 국회의원 자리에, 자기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일하려는 사람을 뽑으면 어떡합니까? 어떠한 정치적인 철학도 신념도 없이, 단지 이익으로만 똘똘 뭉쳐 자기들끼리 해먹으려는 사람들을 당선시켜 국회로 보낸다면, 이는 그 사람들에게 ‘마음대로 해 드세요’라며 등 떠미는 것과 다를 바 없지 않습니까? 더 이상 이런 일이 반복되어서는 안 됩니다.
일본 만화 중에 우리나라에서 드라마로도 제작되어 유명한 [라이어 게임]이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이 작품에서 주인공을 포함한 ‘라이어 게임’ 참가자들은, 정해진 규칙에 따라 경쟁하면서 서로 배신하고 속이는 과정을 통해 승부를 결정하여 승자는 상금을 벌고 패자는 벌금 즉 빚을 지게 됩니다. 승자는 그 동안 벌어들인 상금의 절반을 포기하여 ‘드롭 아웃’을 선언할 수 있고 이 지긋지긋한 게임에서 벗어날 수 있는데, 그렇게 되면 패자들의 빚으로 이루어진 그 상금의 절반은 주최측이 가져가게끔 되어 있는 아주 악독한 구조입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인 칸자키 나오는 이러한 대회의 불합리함에 반발하여 참가자들 모두가 주최측에 대항하여 모두의 승리와 자유를 향해 투쟁할 것을 결심하게 됩니다. 이 상황의 본질적인 문제는 ‘이런 비인간적인 게임이 존재한다’는 것 그 자체이지, 그 안에서 남을 밟고 일어서는 게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대회의 여타 참가자들은 주인공의 말대로 연대를 하게 되면 분명히 주최측에 승리(자유의 몸으로 귀가)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늘 눈앞의 욕망이나 공포에 사로잡혀서 분열하고, 결과적으로 패배의 나락에 빠지게 됩니다. 우리들에게도 너무나 익숙한 모습이지 않습니까?
“니가 노오력이 부족해서 지금 못 사는 거야,” 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같은 노력을 했는데 누구는 저만큼 누리면서 살고 누구는 아무 것도 얻지 못하는 것은 당신의 잘못이 아닙니다,” “당신의 노력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라고 말해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힘을 모아 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다 같이 이 지긋지긋한 악마의 게임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잘못된 게임의 규칙과 주최자의 악의적인 농간이 문제의 본질이지, 참가자들이 그 안에서 서로를 속여 가면서 경쟁해서 무언가를 얻는 들, 그것은 결국 우리 모두의 패배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반드시 승리해야 합니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기 때문에 승리해야 하고, 더 이상 좌절할 것이 남아있지 않기 때문에 반드시 희망을 갖고 끝까지 저항해야 합니다. 투표하십시오. 이번이 마지막 기회입니다. 이번이 아니면 다음에는 우리에게 목소리를 낼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부탁 드립니다.
마지막으로 단 한 분이라도 더 희망찬 내일을 위해 투표하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이제는 우리 곁에 없는 한 분의 목소리를 빌어 이번 총선 특집 글쓰기를 마무리 하려고 합니다. 그 동안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깊이 감사 드립니다.
“존경하는 의원 여러분, 그리고 국무위원 여러분
부산 동구에서 처음으로 국회의원이 된 노무현입니다.
국무위원 여러분
저는 별로 성실한 답변을 요구 안 합니다.
성실한 답변을 요구해도 비슷하니까요.
청년 학생들이 죽어가는 것은
감옥에 가서 참회해야 될 사람들이
권력을 잡고 온갖 도둑질을 다 해 먹으면서
바른 말 하는 사람 데려다가 고문하고 죽이는 바람에 생긴 일이니까.
그 사람들이 임명한 국무총리와 국무위원에게
무슨 대책이 있으리라고는 믿지 않습니다.
물으면 제가 그르지요.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사회는
더불어 사는 사람 모두가
먹는 것, 입는 것 이런 걱정 좀 안 하고
더럽고 아니꼬운 꼬라지 좀 안 보고
그래서 하루하루가 좀 신명나게 이어지는
그런 세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일 이런 세상이 좀 지나친 욕심이라면
적어도 살기가 힘이 들어서
아니면 분하고 서러워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그런 일은 좀 없는 세상
이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노동자와 농민이 다 함께 잘 살게 되고
임금의 격차가 줄어져서
굳이 일류대학을 나오지 않는다 할 지라도
그리고 높은 자리에 안 올라가도
사람 대접 받을 수 있는
그런 세상이 되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