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후 대추싸움은 다시 시작되었고 결국에는 점심시간 종이 울리고 나서야 끝이 났다.
우리학교의 급식은 주변 다른 학교에서도 입소문이 자자하다. 그 이유는 1주일에 제육볶음이나 불고기가 3번 내지 4번은 나오기 때문이다.
몇몇 사람들은 그게 좋은 거 아니냐고 말 할 수도 있겠지만 지난 2년 동안 불고기를 이틀에 한번 또는 삼일에 한번 먹는다고 하면 누구도 좋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 외에 다른 메뉴들도 괴상하기 짝이 없다. 그중 몇 개의 음식을 소개해보겠다.
첫 번째로 라면전골이라는 메뉴가 있는데 이건 무슨 김칫국에 라면 면발을 넣어둔 것 같은 맛이 제각각인 음식이다.
두 번째로는 해물탕 같은 것인데 새우, 조개, 오징어, 생선 살 등등 여러 해산물이 들어간 국인데 생각과 다르게 이 국에 들어간 해산물들은 모두 잔해(?)밖에 없는 국이다. 정말이지 국물 빼곤 다른 것은 먹을 게 없는 음식이다. 그래서 학교의 대부분의 학생들이 이 음식들을 싫어한다. 하지만 난 이런 음식이 싫지도 좋지도 않다. 그냥 그저 먹어야 하기 때문에 먹는 것이다. 가끔 집에서 어머니가 잘 안하시던 음식을 하셨을 때 나보고 맛 좀 보라고 하시면 그 때마다 '그냥 그래요' '먹을 만해요' 나쁘지 않아요.' 이렇게 말을 한다.
다른 사람이 듣기에는 무례하다고 들릴 수도 있겠지만 내가 그렇게 느끼는 것을 말한 것인데 어쩌란 말인가.
솔직히 맛이 정확히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음식을 먹을 때 마다 맛보다는 씹히는 감각, 식감으로 먹었다. 그래서 몇몇 또래 애들이 싫어하는 닭똥집이나, 닭발 같은 음식을 잘 먹는 편이다. 일부러 맛을 생각하지 않는 것인 내가 맛을 못 느끼는 것인지 나조차 모르겠다.
사람들은 맛있다, 맛없다 라면서 음식의 맛을 구분하는데 그 기준은 무엇일까? 아마 자신들이 음식을 먹었을 때 느끼는 감정이 기준일 것이다.
누군가 ‘이런 맛이 맛있는 것 이다’라고 정한다 해도 다른 사람들의 입에 맛이 없다면 없는 것이다. 즉 결국 맛의 기준은 자신이 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난 기준이 명확하지 않은 이것도 저것도 아닌 중립인 것 같다.
이런 결론에 도달했을 때 쯤 난 이미 밥을 먹고 급식실에서 나오고 있었다. 다른 생각을 하면서 밥을 먹다보니 무슨 음식을 먹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 했다. 그래서 같이 밥을 먹은 반 친구들에게 급식 맛이 어땠는지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모두 제각각 다른 대답을 했다. '맛있었다.' '먹을 만 했다.' '맛이 없었다.' '반찬은 이랬고 국은 이랬다.' 등등 다양한 대답을 했다. 내가 물어봤던 친구들 중 몇몇은 내게 다시 되묻기도 했는데 난 늘 언제 어디서든 똑같이 '그냥 그랬어.' 라고 말했다.
급식시간이 끝나고 자습시간이 다시 찾아왔다. 자습시간은 정말이지 지루한 시간이다. 이제 고3이 되는 나는 아무런 위압감도 느끼지 않고 그저 지금 순간의 내 본능에만 충실했다.
종례시간이 되었을 때 쯤 반에 남아있는 아이들은 반 전체의 1/2 도 되지 않았다.
다른 선생님들이 보면 기가차서 놀랄 테지만 우리 반 담임선생님과 우린 학년 초 때부터 이런 모습을 봐왔기 때문에 별 감흥이 없었다. 오히려 담임선생님은 몇 명이 도망간 것을 신기하게 여기지 않고 몇 명이나 남았는지, 누가 남았는지에 대해 신기하게 여기셨다.
정상수업시간이 아닌 자습시간이나 보충시간 그 외의 선생님이 들어오시지 않는 시간이라면 무조건 몇몇의 무리들은 도망치곤 했다.
그게 점점 계속되고 하다 보니 어느 날 자습시간에 늘 도망치던 애가 남아있으면 "어? 너 왜 안도망가고 남았냐?" 라며 묻는 일도 생겼다.
이런 현상을 보면서 드는 생각은 아주 많지만 그중 도망친 애들을 나쁘게 생각하는 생각 말고도 좋게 보는 생각도 들었다.
다른 사람들의 생각에는 좋은 쪽으로 생각하기엔 힘들 것 이다.
생각을 한다고 해도 '문제아 아이들이 없어지면 그래도 착한 아이들에게는 피해를 주지 않으니 다행이다.' 라고 생각 할 것이다. 나또한 그런 생각이 들긴 하지만 그 외에도 다른 생각이 난다.
도망친 그 아이들이 밖으로 나가서 겪는 경험들이 쌓이고 쌓여 나중에 살아 갈 때 그 경험들을 기반으로 사회에 잘 적응해 갈 수도 있고 그전에 학생 때 여러 일들을 경험 하며 자신의 적성에 맞는 직업을 발견해 낼 수도 있다. 그러니 선생님들이 문제아라고 부르는 아이들의 이러한 행동을 무조건 나쁜 시각으로 보는 것은 이기적일 수도 있다. 그렇다고 그 학생들이 하는 행동 또한 옳은 것이 아니기에 나는 그저 중간에 서서 각각 사람들의 생각을 듣고 나의 생각을 말할 뿐이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벌써 종례시간이 되었고 이제 집에 돌아갈 시간이었다. 난 오래된 육중한 돌문이 열리듯 천천히 몸을 이끌고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가는 길...
다른 반 학생들도 보이고 1학년 후배들도 보였다.
나는 늘 같은 길로만 다닌다. 어쩌다가 친구를 만나게 되면 가는 길이 달라질 때도 있지만 거의 늘 같은 길로만 걸어 다닌다. 별다른 이유는 없지만 있다면 그 길 주위의 모습이 바뀌는 과정을 보고 싶었다. 하지만 생각과 다르게 지난 2년 동안 그 길에서 일어난 변화라고는 건물 두개가 헐어지고 지어지고 매달 5일장이 열린 것과 도로공사 말고는 변화가 없었다.
그리고 며칠 전 내가 다니는 철도 밑 굴다리 길 옆의 건물들이 헐렸는데 그중 '불교사'라는 불교 용품을 파는 오래된 가게가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매일 아침 등교 시간마다 그 가게는 문이 열려있었고 주인아저씨가 길을 청소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매일 봐서 그런지 건물들이 철거 될 때 '불교사' 가게만큼은 철거 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뭐랄까... 그 가게를 볼 때마다 마지막으로 하나 남은 희망의 씨앗 같은 느낌이었다.
과연 언제까지 있을까? 내가 졸업 할 때까지 있을 수 있을까? 제대로는 알 수는 없지만 뭔가 그 가게를 볼 때면 '나'같은 느낌이 들었다. 변화가 없고 늘 같은 모습을 유지하는 그 모습이 마치 '나' 같았다. 이유 따위는 없었다. 그냥 ‘나’ 같은 기분이 들고 ‘나’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불교사 주변 길을 지나는 사람들 모두 바뀌고 변화 했다. 하지만 그중 한명이 오랫동안 나와 같은 길을 걸은 적이 있었다. 내 또래의 여학생이었는데 내가 사는 근처의 여고의 학생이었다. 키는 160쯤에 머리는 어깨에 닿지 않는 단발머리였다. 얼굴은 연애인중 닮았다면 한가인 정도? 내가 사람의 외모를 잘 따지는 편이 아니라 모르겠지만 그래도 평범하게 생기지는 않았다. 아침 등교시간에는 거의 늘 마주쳤었고 하교시간에는 가끔씩 마주쳤었다. 처음에는 그냥 몇일 보이다가 말겠지 했는데 며칠이 지나고 몇 주가 지나도 계속해서 그 여학생이 보였다. 그런 일이 계속 되자 나는 그 시간만 되면 그 여학생을 찾았다.
스토커 같을지도 모르겠지만 난 무안가에 이끌린듯이 늘 그 길을 걸으며 여학생을 찾았다. 그러다가 여학생을 보게 되면 마음속에 무언가 색다른 느낌이 들었다. 연애의 감정은 아닌것 같고, 그 느낌은 마치 나만의 세계 혹은 길에 다른 사람이 나와 함께 하고 있다는 그런 느낌이었다. 기쁘고 만족스런 느낌이었다. 그래서 그 여학생을 볼 때마다 난 가슴속에서 늘 미소 짓고 있었다. 하지만 여름 방학이 시작되자 그 여학생을 1개월 정도 보지 못했고, 개학 후에도 보지 못했다. 처음에는 며칠 안보이다가 다시 보일 줄 알았는데 몇주가 지다도 여학생은 보이지 않았다. 아마 고3이었는지 원서를 쓰고 대학교 면접을 보러 다니느라 볼 수 없었던 것 같았다.
여학생의 이름도 나이도 목소리도 들어 본적 없지만 그녀와 나만이 잠시 동안 변하지 않고 같은 길을 걸었다는 게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