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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번남들에게 화나고 이제 너무 지쳤다는 4050분들께
게시물ID : sisa_119892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니네집고양이
추천 : 13
조회수 : 1002회
댓글수 : 66개
등록시간 : 2022/03/11 18:18:16


이제 막 40이 된 여성입니다.

2030에게는 꼰대가 되어가는 나이, 4050에게는 이제 막 합류한 후배쯤 되겠네요.

지금껏 이렇게 나누는 게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이번 대선 결과에서만큼은 나뉘는 양상이 뚜렷이 보였고, 이에 대해 분석하고 이해하는 과정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다음 설득이든 통합이든 다음 전략을 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대선만큼 정치에 관심을 둔 적은 처음입니다.

물론 이명박이 돈 헤쳐 먹을 때 욕도 하고, 노무현 아저씨 돌아가셨을 때 슬퍼도 하고, 박근혜 국정농단에 분노하고, 문재인 대통령 당선에 기뻐했지만 저에게는 이번 대선만큼 절실하게 참여한 선거가 없었습니다.

 

사회성이 필요할 때 아니면 극내향인이라 뉴스 기사에 댓글도 한 번 단 적 없었는데(오유도 2년간 눈팅 후 가입, 이후 2년 동안도 눈팅만 했습니다.) 이번엔 네이버, 다음 포털 가입자에게 주어진 하루 댓글과 좋아요를 모두 사용하고 하루씩 차단도 당해가면서 댓글 달았습니다. 난임으로 일을 쉬는 상태라 시간도 많았거든요.

 

그런데 기울어진 언론에 대한 비판, 국민의 힘과 윤후보측 비리에 대한 의혹 제기, 이재명 후보를 향한 모함·욕설에 반박만 해도 대댓글에는 북괴, 빨갱이, 좌파, 대깨문, 찢녀 등등의 얘기가 달리더군요. 살면서 한 번도 겪은 적 없는 취급에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내가 좌파인가? 민주당원도 아닌데? 빨갱이가 21세기에도 쓰이는 단어 맞나? 이 컴퓨터 화면 밖 사람들은 과연 누구일까 궁금했고, 좀 찾아보고 나서는 국힘 댓글 알바나 신남성연대, 일베 정도가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참담한 투표 결과 이후에 다시 보니 그런 대댓글을 달았던 사람들 중 상당수는 이대남 2번남인 것 같더군요..

 

페미니즘이 젊은 세대에 많은 논란이 되고 있다는 건 알았지만, 한 나라의 대통령을 뽑는 선거에 이 정도 대립을 가져올 줄은 몰랐습니다. 여성으로서 저도 살면서 느꼈던 차별적 대우와 두려움에 공감할 수밖에 없기에 페미니즘은 필요하다고 생각하면서도, 3년을 꽉 채워 군대 다녀오신 돌아가신 아버지와 작정하고 괴롭히는 선임 때문에 고통스런 군 생활을 했다는 남편, 청춘의 시기 나라 지키다 제대해서 알바와 학업을 병행하는 남동생, 또 수많은 미투 중 몇몇 의구심이 드는 사례를 보면 극단적 페미니즘과 역차별에 대한 남성들의 분노와 억울함도 일면 이해가 되었습니다.

 

남편과는 평소 대화를 많이 합니다. 남편은 여러 사례를 듣고 본 후에도 저에게 지금껏 몰랐더라도, 낯설더라도 고통에 몸부림치다 터져나오는 이야기는 들어야 한다. 이 모든 사례에도 불구하고 여성의 목소리를 들을 필요가 있다라고 얘기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정말 제 얘기를 진심으로 들어줍니다. 그래서 저는 페미니즘을 지지하면서도 남성이 싫지 않고, 아버지가 그립고, 남편과 남동생을 사랑합니다.

 

2번남들도 어쩌면, 본인들의 얘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없었을까요? 억울하고 답답한데 알아주는 상대가 그들밖에 없었을까요? 그래서 이준석의 여가부폐지라는 입발린 공약에 그렇게 맹목적으로 반응했을까요? 일베들처럼 인격을 상실한 일부를 제외하면 어느 정도의 2번남들은 힘들고 외로운, 대화가 필요한 평범한 이대남일 수도 있다고 작은 희망으로 생각해 봅니다. 조금씩 대화와 설득을 해나갈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의 참담함과 분노가 가라앉고, 정신을 좀 차린 다음에는요. 요며칠 네이버 다음 포털 정치 뉴스 댓글들을 보면 마냥 좋아하는 게 아닌 억울함을 표현하는 2번남들의 글이 종종 보입니다. 본인들이 원하는 대로 됐으면 자기들끼리 축배를 들거나 신나서 조롱하거나 하면 그만인데, 왜 그들은 자꾸 변명 아닌 변명과 합리화를 하고 싶어하는 걸까요? 본인들도 전혀 개운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20대에는 정치 돌아가는 게 뭔지 파악이 어렵습니다. (제가 그랬다는 뜻입니다.) 당장의 알바, 연애, 앞날, 내 안의 열등감과 두려움, 욕심에 훨씬 더 치중해 있었습니다. 지나가며 듣는 뉴스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내용에 그런가 보다 할 때가 더 많았습니다. 대학 다닐 때 학보사에 있었는데 예술대라는 이유로 예술문화에 대한 기사 싣기에 바빴고, 정치에 대해 겉핥기 식으로 아는 척만 했지 실체를 아는 게 하나도 없었습니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 탄핵이 있었는데 제대로 찾아보지도 않고 나름 중립을 지킨다고 양측의 입장에 대해 적은 후 지켜봐야 한다는 식의 논조로 기사를 썼던 것 같습니다. 노무현 대통령 돌아가신 날 검은색으로 꽉 찬 신문 한 면을 보고서야 가슴 한 켠이 서늘했던 것 같습니다. 부끄러운 기억입니다.

 

4050분들이 지쳤다는 글에, 더 이상은 참여하고 싶지 않다는 글에 마음이 많이 아픕니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과 서거하셨을 때, 이명박 대선할 때, 세월호 때, 박근혜 대선할 때, 국정농단 있을 때, 문재인 대통령 대선할 때, 민주당 180석 몰아줄 때, 그 모든 때마다 분노하고 설득하고 뛰쳐나가고 시위하고,, 정말 지겹고 지치실 것 같습니다. 이번 대선 나름 열심 참여한다고 밭 조금 갈다가 얼마나 에너지가 소모되고 진빠지는지 체험했습니다. 4050이라고 인생이 더 쉬운 거 절대 아닙니다. 현재 대한민국은 모든 세대가 힘듭니다. 그렇지만 2030 젊은 동생 후배들의 얘기 더 많이 못 들어주고 더 공감 못 해줘서 나도 미안합니다. 우리 좀 더 얘기합시다.

 

그리고 4050분들 조금 더 젊은 저희가 앞으로 더 뛸 테니까, 지금 이 순간부터 한시도 정치에 눈 돌리지 않고 살펴보고 분노하고 뛰쳐나가야 할 때 뛰쳐나갈 테니까, 지금의 슬픔과 분노가 가라앉으시면 응원해 주시고 체력 될 때 조금만 더 함께 해주세요. 저 같은 정치 어린이가 오유 덕분에 정치판 돌아가는 상황 많이 배웠습니다. 뉴스로만 기사로만 읽으면 재미도 없고 진위가 뭔지 헷갈리던 것들도 오유에서 유머 섞어서 재미있게 알아갔습니다. 정치에는 옳고 그름의 완벽함이 없으니 스스로 찾아보고 판단해야 한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고맙습니다. 정치는 생물이라 하니 지금 암담하고 고통스럽지만, 앞으로 5년간 쉽지 않겠지만 언제든 전복의 기회도 있겠지요.

 

하도 답답하여 제 마음 정리하고 싶어 너무 길게 적었습니다. 그냥 고맙다는 말, 힘내자는 말 하고 싶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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