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
나는 메스꺼움과 갈증을 동시에 느끼며 깨어났다.
'뭐야...여기 어디지?'
나는 주변을 둘러보고는 금방 안정을 되찾았다. 내 방이었다.
'이상하네...어제 대리불러서 집에 가던것까지는 기억이나는데...그 후로 기억이 없네. 집은 대체 어떻게 온거야?'
'........그나저나 어제 그 대리기사의 기괴한 행동은 뭐였을까...내가 꿈이라도 꾼 것인가'
우선 나는 타들어가는 목을 적시기 위해 서둘로 부엌으로 향했다.
간단히 목을 적신 나는 미팅에 늦지 않기 위해 빠르게 채비를 했다.
어제 입었던 정장은 바닥에 보기싫게 널브러져 있었다. 다행히 비싼브랜드라 구김같은것은 생기지 않아서 바로 줏어입었다.
거울을 보며 옷매무새를 다듬는데, 정장 오른쪽 주머니에 무언가가 살짝 삐져나온 것이 보였다.
'뭐야 이거'
손을 넣어 꺼내봤더니 작은 쪽지가 나왔다.
그것을 보니 왠지 기분이 나빠져 나는 주머니에 있던 라이타를 꺼내
종이를 태워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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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듬해 봄은 유난히도 쌀쌀하다.
도깨비도로에 대한 괴의한 소문은 어느새 내 머리속에서 잊혀져가고 있었다.
벌써 그 이야기를 접한지 5개월이 넘게 지나서 그런지 내용도 서서히 가물가물 해지기 시작했다.
작년 10월, 성진이형네 집에서 나와 대리기사를 불러 집으로 갈 때 겪었던 그 괴상한 일을 빼고는,
그 이후 나에게 무슨 특별한 일이 생기진 않았다.
다만, 특별한 일이라고 한다면 드디어 오늘 이 새로 계약한 전원주택에 이사를 오게 된다는 점이리라.
"아 그 선반은 여기다 설치해주세요"
"네~아, 사장님 근데요...여기 이 방은 무슨용도인지 여쭤봐도 될까요?
제가 설치기사를 좀 오래해왔는데 이렇게 생긴 방은 또 처음이네요?"
"아 그 방이요?"
꽤나 눈썰미가 있는 기사다. 아니, 그래...솔직히 이 방은 누가봐도 이상해보인다.
그 방은 창문이 없지만 환풍시설은 있는, 바닥은 마치 화장실에나 쓸 듯한 어두운
색의 타일이 붙여져 있는 정사각형의 작은 방이었다.
"하하, 별거 아닙니다. 와인저장고로 써볼까 해서요"
"아하! 그래서 바닥도 차가운걸로 하고 창문도 없게 설계를 하셨구나. 멋지네요~집안에 와인저장고라니"
"뭐 일종의 재테크라고 해두죠"
사실 예전 TV에서 와인으로 재테크를 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었다.
와인을 재겨둬서 나중에 원래 구매한값에 수십배의 프리미엄을 붙여 되파는 그런 사업.
나도 언젠가 나만의 집을 가지게 된다면 꼭 해보겠다고 다짐했었던 것을 이 전원주택에 와서 실현한 것이다.
'드디어...드디어 나만의 집이다. 내 스스로 여기까지 해낸거야!'
아직 이 멋진곳에서 함께 할 배필은 찾지 못했지만, 이제 그런것쯤이야 시간문제일 것이다.
나는 젊고, 성공했다. 외모도 키도 준수하다. 단지 사람을 만날 기회가 없었을 뿐이었고,
이제는 기회따위야 직접 찾아나서면 그만이다.
"오~~깡준혁이~집 까리한데??"
스스로의 만족감에 한참 젖어들고 있을 때, 등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형? 어라 형수님도 오셨네요"
아저씨냄새 풀풀 풍기는 촌스런 스타일의 형과 그런 형과 대조되게 어깨와
쇄골라인이 드러나는 옷이 매력적인 형수님이 어느새 내 뒤에 와 있었다.
"야! 집들이 선물이다. 뭐 니가 집들이 밥상 차려줄 인물은 아닌거같고...
뭐 맛있는거라도 시켜먹자?"
형은 내가 와인저장고를 만든다는걸 알고있어서 그랬는지,
어디서 구해온지 모를 이름깨나 날리는 와인들을 약 10종류정도 가져왔다.
역시 주당은 주당이다. 집들이선물로 술이라니...
그리고 형의 뒤에서 형수님이 불쑥 튀어나왔다.
"준혁씨. 저도 드릴 선물이 있어요."
형은 흠흠 하고 헛기침을 하더니 나에게 귀엣말로 속삭였다.
"나는 선물로 사온 이 와인들 네 저장고에 집어놓고 있을테니까 얘기나눠"
그러고는 와인을 들고는 저장고안으로 도망치듯 후다닥 들어가버렸다.
"아이고, 형수님까지 안주셔도 되는데..."
감사함에 어쩔줄 몰라하던 나는 형수님이 내민 그 집들이 선물이라는 것에
순간 급격하게 표정이 굳었다가, 이내 순식간에 원래얼굴로 돌아왔다.
형수님은 뭐 당연히 그럴줄 알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내게 말을 걸었다.
"준혁씨가 이런거 정말 싫어한다는거 저도 알아요. 그래도 사람 대 사람으로써 정말 준혁씨가 별 탈이
없이 이 새집에서 잘 살길 바라는 제 진심이라고 여겨주시고 받으시면 안될까요?"
형수님이 건넨 집들이 선물이란것은 다름아닌 부적이었다.
근데 지금까지 보아오고 내가 알고있던 부적과는 뭔가 달랐다.
딱 봐도 고급스러워보이는 검은색 한지에 금색먹을 먹인
괴이한 문양이 그려진 부적.
게다가 사이즈는 주머니에 넣고 다녀도 될 만큼 작았다.
"굉장히 용하다고 소문난 분에게 특별제작한 부적이에요.
이래봬도 무려 세자릿수가 넘어가는 비용을 지불하고 만든 부적이거든요."
세자릿수라면, 이 쪼그만 종이쪼가리가 백만원을 넘어간다는 것인가?
그 이야기까지 들으니 난 더 이상 형수님이 건네는 선물을 거절 할 수가 없었다.
"아니...형수님 그렇게 큰 돈을..."
"그럼 받으시는거죠?네?"
"아...네 받겠습니다. 당연히 받아야죠"
형수님은 조금은 불안한표정에서 완전히 벗어나 어느새 평소의 그 매혹적인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 말을 했다.
"고마워요 준혁씨. 이 부적은 몸에 항상 지니고 다니면 좋으니 지갑에 넣고 다니시는게 제일 좋을 것 같아요.
준혁씨가 이런거 워낙 싫어하는거 아니까 그냥 지갑 안보이는곳 아무데나 꽂아넣고 다니셔도돼요"
나는 형수님을 완전히 안심시켜주기 위해 보는앞에서 바로 부적을 지갑에 넣어뒀다.
그러자 형수님은 그 어느때보다 기쁜미소를 지었다.
"어머~그나저나 전원주택 근처에 벚꽃나무가 꽤 있네요. 벚꽃이 피니까 너무
낭만적이에요. 정말 집터하나는 환상적으로 잡으셨네요~!"
나는 그제서야 고개를 돌려 주변을 확인했다.
그랬다.
집 주변엔 어느새 찾아온 봄과 함께 분홍색 벚꽃잎들이 무성하게 피어 있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잊고 지냈던 기억이 내 뇌리속을 스쳐 지나갔다.
'벚꽃 흐드러지는 끝자락에 모든 것이 끝날 것이다...'
그 날은 이사장을 태우고 현장에 들렀다 오는 길이었다.
"그나저나 우리 강사장님. 새 집 벌써 다 들어갔다믄서요?? 집들이는 했쟈??"
"네 뭐 조촐하게..."
"으미 이거 좀 섭섭한디??내한티는 구경도 안시켜주고...오늘 이렇게 본 김에
사장님 집이나 한번 가봅시다! 시간도 늦었는디 재워주면 더 좋구"
"아, 그러실래요?"
마침 그 큰집에 혼자살아서 좀 적적한 참이었다.
오늘은 그래도 사람의 온기가 있는 집에서 간만에 편하게 잠들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렇게 약 5분여를 달렸을까...새로 이사간 집에 거의 도착할 때 쯤이었다.
끼이이이이이익!!!!!!!!!!!!!!!!!!!!!!!
쾅!!!
갑자기 뒤쪽에서 엄청난 굉음이 들려왔다.
옆에서 고개를 땅에 쳐박을듯이 꾸벅대며 졸고있던 이 사장이 그 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며 깼다.
"왐마!!뭔소리여!!"
나도 동시에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이런...!뒤쪽에서 사고가 났나 본데요??"
"사...사고요??"
나는 핸들을 돌려 다시 왔던길로 되돌아갔다.
그렇게 코너를 돌고 약 500m를 더 나아가니 꽤 굵직한 나무 한 그루에 왠 차 한대가 충돌해 있었다.
멀리서 보아도 차체가 상당히 찌그러져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런!!"
나는 재빨리 차를 몰아 사고현장으로 향했다.
가까이 가보니 꽤 값이 나갈 것 같은 외제차 한 대가 앞 범퍼가
심각하게 찌그러진채로 나무에 쳐박혀있었다.
그리고 운전석엔 신원을 알아보기 힘들만큼 피로 범벅이 된 한 남성이
온 몸을 추욱 늘어뜨린채로 운전대 사이로 머리를 쳐박고 있었다.
"우웩!!!!!!!!!!!!"
난 그 토악질 나는 광경에 헛구역질을 해댔다.
너무나도 끔찍했다. 그 사람의 머리는 마치 퍼즐을 마추듯이 운전대사이에 꽉 끼어져 있었고,
그래서 그런지 머리는 마치 외계인처럼 주욱 늘어나 있었다.
얼마나 빠르게 달리다 추돌했으면 운전대에 사람머리가 끼어있을 수 있단 말인가
이사장의 반응 역시 나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우리는 그렇게 한동안 패닉상태에 빠져있다가, 가까스로 정신을 가다듬었다.
"강사장님 우리 이럴때가 아니라 빨리 119에 신고해야 되는거 아녀요?"
이사장이 먼저 말을 꺼냈다.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나는 허겁지겁 내 휴대폰을 찾았다. 하지만 휴대폰은 보이지 않았다.
'이런 젠장. 차 충전기에 꽂아놨구나'
"저 이사장님 제 폰이 차에있는듯 한데.."
"이런! 제 휴대폰도 강사장님 차에 벗어둔 양복에 있는거 같은디요?"
"그럼 일단 제가 차로가서 휴대폰을 가져올게요"
나는 재빨리 걸음을 옮겨 다시 차로 향했다.
차 문을열고 충전기에서 휴대폰을 빼낸다음 다이얼에 119를 누르고 통화버튼을 누르려는 순간,
내 눈에 사고차량과 부딫친 나무가 제대로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벚꽃나무. 벚꽃나무였다.
잎들이 만개해 풍성한 이파리들을 바람에 휘날리는 벚꽃나무.
그 분홍색 벚꽃잎들이 왠지모르게 시리게 붉은 피 처럼 섬뜩하게 보였다.
마치 사람의 피가 나뭇가지에 주렁주렁 매달려 바람에 휘날리는 듯이...
순간, 나는 무언가를 깨닫고는 소름이 온 몸으로 퍼지는 것을 느꼈다.
'생각해보니 저 차량. 우리가 타고오던 도로변 나무에 부딫쳐서 사고가 났는데 왜 반대로 차가 충돌해있지? '
'이 길을 타고오다가 충돌을 했으면 당연히 이 방향으로 그대로 충돌해야 하는데,
어째서 반대쪽 차선에서 오는차들이 사고가 났을때의 방향으로 사고가 난거야.'
물론 우리를 지나쳐온 차량 중 한대가 중앙선을 침범해 반대쪽 차선을 넘어 저 나무와 충돌했다면
이상할게 없지만, 이 도로를 달리는내내 반대쪽에서 오는 차량은 단 한대도 없었다.
이 차가 이 방향으로 박혀있을 순 없는 노릇이었다.
난 의문은 잠시 접어두고 들고있는 휴대폰의 통화버튼을 눌렀다.
약 10분정도가 지난 후, 구조대가 도착했다.
차에는 운전자 한 명만이 타고있었다.
구조대가 들것에 싣기 위해 그 신원불명의 남성을 들어올릴 때였다.
시체의 양쪽 팔이 추욱 쳐지면서 무언가가 내 눈에 들어왔다.
'저건...!'
그 시체의 중지손가락엔, 커다란 해골모양의 반지가 끼워져 있었다.
'작년에 나랑 추돌사고 날 뻔한 그사람이잖아??'
반지가 워낙 커다랗고 독특해서 확실히 기억하고 있다.
그제서야 그 차가 내 눈에 들어왔다. 확실했다. 그 녀석이 타고있던 차였다.
"저...혹시 신고자분 되십니까?"
말끔하게 제복을 차려입은 중년의 경찰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아, 네. 제가 신고했습니다."
"아 일단 제보 감사드립니다. 사고자는 사고현장에서 즉사한 것으로 보입니다.
혹시, 사고당시 주변상황에 대해 좀 더 자세히 말씀해주실 수 있습니까?"
"아, 저는 집에가는 길이었고, 가는도중 앞에서 큰 굉음이 나길래 서둘러 와봤더니
이렇게 돼 있더군요. 코너를 지나서 발견하게 된거라 어떻게 된 건지는 저도 보지 못했구요."
"아, 그러셨군요. 감사합니다. 그래도 일단 서에가서 간단한 조서를 좀 작셩해주실수 있습니까?"
"예"
경찰과 함께 도착한 서에서 나는 사망자에 대한 신상정보를 대략적으로 알아낼 수 있었다.
「이름은 최형식. 나이는 올해로 26살. 사망당시 술에 만취해 있는 상태로 음주운전을 하다 사고가 난 것으로 추정」
"저... 강준혁씨?"
"네?"
취조실 비슷한 곳에서 경찰이 나에게 파일하나를 건네며 말을 걸어왔다.
"저희가 간단히 현장조사를 했는데, 약간 이상한 점이 나왔습니다.
강준혁씨가 사고가 나기직전 분명 브레이크를 밟는 소리가 났다고 하셨죠?"
"네 났습니다."
"근데 그 정도로 큰 소리가 났다면, 차가 지나간 흔적이 남아야 정상인데, 그런게 없습니다."
"예???"
"여기 현장사진을 보시죠. 차량이 충돌한 방향을 봐서는 분명 강준혁씨가 타고가던 반대쪽 차로에서
오다가 충돌을 한 것으로 보이는데, 그 주변 어디에도 중앙선을 침범하며 남긴 흔적이 없습니다."
"그럴리가..."
그 때, 상관으로 보이는 수사관 한명이 다가오더니 말을 꺼냈다.
"미치겠구만. 또 이런사건이 터지다니"
"아, 안과장님 오셨습니까?"
"또..라뇨?"
등장한 경찰은 내 혼란스러운 표정에 잠시 난감한표정을 짓더니,
이내 머슴쩍은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 악수를 청했다.
"아, 반갑습니다. 수사팀 과장 안철호라고 합니다."
"아, 네 반갑습니다. 근데 아까 말씀하신게 무슨 이야기인지..."
"그게...사실 저희도 이게 연관이 있는건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유독 그 도깨비도로에서만 이상한 사망사건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예??"
"물론 사고때마다 지역신문에만 작게 실렸고, 사고의 주기가 꽤 돼서 사람들이 잘 알지는 못하지만,
이 곳에서 차량사고로 사망한 기록들을 보면 대부분이 비정상적인 경우가 많았죠. 지금 이 사건처럼요"
수사팀장이라는 사람은 사건파일더미를 내 앞에 툭 던지고는, 그 중 하나를 펼치며 얘기했다.
"뭐, 예를들자면 1993년에 일어난 이 사건은 차량이 마주오던 차량과 충돌한 사고인데,
웃긴건 두 차량은 차량의 앞부분이 아니라 뒷부분으로 충돌했어요. 말이안되죠?하하하"
"또 이 사건, 1997년에 일어난 이 사건은, 이번에 일어난 사건처럼 나무와 충돌한 사건인데.
보통 사람이 정면에서 충돌이 가해지면 관성의 법칙에 의해서 앞으로 튕겨저나가기 마련인데,
사망자는 당시 차량뒤쪽으로 튕겨나가 죽었습니다."
"그 외에도 2000년도에도 약 8건가량의 이런 이상한 사고가 있었고,
2010년도에도 이와 비슷한 사고가 약 4건정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희 수사팀 내에서는 이것을 '도깨비도로의 저주'라고 부르죠"
'그런 말도안되는...'
"아 그리고 저희가 하도 이상해서 사고자들 신상을 좀 조사를 해봤는데 한가지 공통점이 있더라구요."
"공통점이요?"
"네. 사고자들의 본적이 전부 이 곳 노형동이더라구요.
월랑마을 쪽 부근에 살던사람들이 거의 대부분이더군요."
난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서에서 약 30분가량의 시간을 보내고 밖으로 나왔다.
안철호라는 이름을 가진 팀장은 나에게 명함을 내밀며 사건경과가 나오는대로 다시 연락을 하겠다고 했다.
서 문을 열고 나오니 미리 밖에서 커피를 뽑고 담배를 피고있는 이사장이 보였다.
"아이구 강사장. 오늘은 아무래도 서로 집으로 가는게 좋을거 같혀"
"네 그게 좋을듯 싶습니다."
"마음 잘 추스리고 빠른시일내에 다시 내가 연락할탱께 그떄 봅시다. 얼굴이 아주 죽을상이 다되셨어."
"예 들어가시죠 이사장님"
이사장이 택시를 잡고 이동하는것까지 지켜보고는 이내 나도 내 차로 돌아갔다.
차에 있는 거울로 내 얼굴을 보니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잠을 제대로 못자서 쳐진 얼굴과 계속된 업무로 짙게 드리운 다크서클.
나는 어느새 반 송장의 모습이 되어있었다.
'이러다간 나도 저세상 사람이 되겠어. 과로사한 망령말이야'
당장 집에가서 기절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사망자가 실려간 병원을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집으로 가던길에 차의 핸들을 틀어 병원으로 향했다.
내가 도착함과 동시에 병원을 향해 괴성을 지르며 달려가는 한 무리가 보였다.
난 본능적으로 그들을 뒤따랐다.
"아이고 형식아!!!!!!!!!!!!!!!!!!!!!!!!!!"
나의 예상대로, 그들은 사망자의 가족인 듯 했다.
나이가 얼마나 들었는지조차 가늠할 수 없을정도의 노인과
부부로 보이는 중년의 두 남녀.
그들은 흰 면포가 덮인 시체를 보고는 이내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주저앉아 통곡을 하기 시작했다.
"우리...우리 아들얼굴좀 보게해줘요"
의사는 난감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말을 이었다.
"아드님의 외관이 많이 손상돼서 충격을 받으실수도 있습니다. 웬만하면 확인을 안 하시는게 좋을 듯 합니다."
그 떄, 휠체어에 앉아있던 노인의 입에서 가느다란 소리가 새어나왔다.
"우리 아가...어디서 사고났다고 하셨소..."
"사망자가 발견된 곳은 도깨비도로 인근입니다"
순간 나는 노인의 표정에서 알 수 없는 공포와 두려움이 스쳐지나가는것을 보았다.
이내 노인은 고개를 떨구고는 혼잣말로 작게 속삭였다.
"자네인가....자네가 그랬나..."
'저 할아버지 무슨소릴 하는거지?'
순간, 나는 피해자의 성이 최씨라는것을 느끼곤 머리에 뭔가가 떠올랐다.
"저 할아버지...혹시 예전에 두부가게 하셨었나요?"
뒤에서 갑자기 내가 던진말에 할아버지는 소스라치게 놀라더니 이내 덜덜 떨기 시작했다.
"미안허이...미안허이...내가 다 잘못했네 미안허이...용서해주시게"
할아버지는 마치 자신의 뒤에 저승사자라도 서 있다는 듯이 바들바들 떨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이내 발작을 일으켰다.
"커어억!!허억!"
"아버님!!"
"이 간호사! 어서 응급팀 불러! 빨리!"
옆에있던 의사도 지금 일어난 상황에 적잖이 당황한 것 같았다.
그 때 울고있던 중년의 남성이 일어나며 내 멱살을 잡아챘다.
"너이새끼..! 너 뭐야? 너 누군데 여기있는거야 어!!!니가 우리아들 죽였어??!!어?!!!"
"아니! 이거놓으세요 좀!"
난 중년남성의 손을 뿌리치며 말했다.
"전 사고현장에서 신고한 사람이라구요!"
"근데 우리가 두부가게 했던건 어떻게알아 엉??!!"
"그건..."
난 순간적으로 할 말을 잃었다. 무슨말을 해야하는지 떠오르지 않았다.
여기서 괴담이야기를 꺼낸다면 얼마나 황당할까.
"경찰이 피해자 신상을 알려주는중에 알게됐을 뿐이에요"
말도안되는 변명이라는것을 알았지만, 지금으로썬 이 말 외에는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상대방역시 정상적인 사고를 하기 힘든상황이라 그런지, 이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진 않았다.
나는 그 말을 던지고 잠시의 침묵이 지난 후 바로 병원밖으로 빠져나왔다.
그리곤 차를타고 집으로 향했다.
'뭐야...그게 괴담이 아니었나?'
운전하는동안 잊고있던 괴담들이 다시 머리속에서 선명해져갔다.
난 어느새 다시 사고현장근처에 다다르고 있었다.
집으로 가는 길목에서 사고가 난 것이라 내키진 않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사고현장에 다다르자, 현장주위로 노란색 폴리스라인이 쳐져있는 것이 보였다.
경찰들은 이미 다 철수했는지 보이지 않았다.
그 때, 나는 뭔가를 느끼곤 도로변에 차를 세워 그 곳을 쳐다봤다.
그 폴리스라인 한가운데, 연붕홍색 옷을 입은 한 여인이 서 있었다.
그 여인은...만족스러운듯 웃고있었다.
"으....으악!!!!!!!!"
나는 급하게 차의 시동을 켜고 엑셀을 밟기 시작했다.
어느정도 달리고 난 후, 나는 오른쪽 사이드미러를 봤다.
사고현장은 어느새 시야에서 사라져 있었다.
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고개를 돌렸을 떄, 왼쪽 사이드미러가 눈에 들어왔다.
그 곳엔 폴리스라인이 쳐 진 그 사고현장과 함께 여인이 보였다.
내 오른쪽에 있어야 할 광경이 왼쪽 사이드미러에 비치고 있었다.
'사, 살려줘...'
그때부터 모든 정신을 놓고 나는 오로지 앞만보며 차를 몰았다.
곧 넓직한 마당이 있는 전원주택이 보였다.
집이었다.
나는 주차할 겨를도 없이 재빨리 집주변에 차를 세워놓곤 집안으로 냅다 달려갔다.
문을 닫으려고 하던 그 때, 내 눈에 저 멀리 그 연분홍색 옷을 입은 여인이 눈에 들어왔다. 여인은 등을보이고 집 반대쪽으로 가고 있었다.
그런데, 자세히보니 여인은 분명히 반대쪽으로 걸어가고있는데, 점점 집쪽으로 가까워져가고 있었다.
"으아아아아악!!!!!!!!!!"
나는 재빨리 문을 잠그고 창문들을 모두 걸어잠근 후 블라인드를 모두 내렸다.
온 몸이 사시나무 떨리듯 떨렸다. 팔과 다리에는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시간이 얼마쯤 지났을까...
끼릭...끼릭...쿵쿵쿵!
현관문손잡이를 돌리는 소리가 나더니 이내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나는 거실에 널브러져있는 담요를 뒤집어쓰고 두 귀를 틀어막았다.
곧 문을 두드리는 소리는 멈추더니, 이내 사방이 조용해졌다.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을까....난 담요를 뒤집어쓴채 잠들었고 정신을 차리니
하늘이 밝아오고 있었다.
'괴담 원작자를 찾아야해. 찾아서 만나봐야겠어.'
나는 컴퓨터를 키고 괴담을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어디에서도 그런 괴담은 찾을 수 없었다.
난 이내 휴대폰을 들고 형수님의 연락처를 찾기 시작했다.
뚜루루루...딸칵!
"어머 준혁씨 이른아침부터 무슨일이에요?"
"형수님 혹시 그 괴담 보신곳이 어딘지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다짜고짜 본론부터 얘기하는 내 행동에 형수님의 목소리가 약간 당황한 듯 미세하게 떨렸다.
"네? 괴담이요?....아, 도깨비도로괴담 말씀하시는건가요? 사실 그게...제가 얼마전에 뭘 좀
확인하려고 들어갔다가 간 김에 그 괴담을 보려고 했더니 글이 삭제됐더라구요. 이거 미안해서 어쩌죠?"
나는 망연자실해졌다.
"아...그런가요. 알겠습니다."
"근데 갑자기 그건 왜 찾으세요?"
"아, 아닙니다. 제가 뭐 좀 확인할게 있어서..."
여기서 형수님께 내가 겪은 이야기를 했다간 또 무슨 호들갑을 떨 지 모른다.
나는 터져나오려는 말문을 애써 틀어막았다.
게다가 성진이형은 더더욱 안된다. 만약 이런얘기를 꺼냈다간 앞으로 최소
10년간은 이걸로 날 놀려먹을게 뻔하다.
"저, 제가 이걸 찾았다는걸 성진이형한텐 비밀로 해주세요.
아시겠지만 괜히 이거가지고 허구한날 놀릴거 같거든요"
"호호호 저도 그 정도 눈치는 있어요. 혹 무슨 안 좋은일 생기면 연락주세요 아셨죠?"
"예 감사합니다"
뚜.
'후우....'
갑자기 앞이 막막해졌다.
도대체 이럴 땐 어찌해야 하는 것인가?
초자연적 현상에 대해서 믿음도, 관심도 없던 나에게 벌어진 이 사태는
나를 생각이상으로 패닉상태에 빠트렸다.
그렇게 아침부터 한참을 머리를 쥐어싸고 고민하던 도중 휴대폰 벨소리가 울렸다.
삐리리링~삐리리링~
'아침부터 누구야...'
폰 화면을 보니 '어머니'라는 단어가 보였다.
"어머니? 아침부터 왠일이세요?"
"왠일이긴 우리 아드님 잘 살고있나 전화해봤지. 그래 밥은 먹었고?"
난 어머니가 괜한 걱정을 하지 않게 거짓말을 했다.
"그럼요. 제가 언제 아침거르든가요. 이미 든든하게 먹었어요."
"그래그래...어휴 사실 엄마가 간밤에 꿈을 꿨는데 말이다, 글쎄 시아버님이
나와가지고선 손주놈 간수 잘 하라고 호통을 치시는 거 아니겠니.
어휴, 살아생전 그렇게 지독한 분이셨는데 돌아가시고 난 후엔
꿈에도 한 번 안나타나시더니...별일 없는거지? 그치?"
난 순간적으로 휴대폰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휴대폰이 바닥에 부딫히며 요란한소리를 냈다.
"아들, 아들???"
나는 잠시 무언가를 생각한 후 이내 다시 휴대폰을 집어들었다.
"어머니, 지금부터 아무것도 묻지마시고 제가 묻는 것에 대답좀 해주세요.
아시겠죠?"
"그, 그래 무슨일인지는 모르겠다만..."
"어머니 점집같은거 자주 다니시잖아요...혹시 용한 무당이나
퇴마사같은 사람 아시나요...?"
"무당??니가 왠일이래니 그런걸 다 찾고?? 진짜 무슨일 있는거니??"
"어머니 제발..."
"아, 알았다. 메세지로 명함 하나 찍어서 보내줄게 알았지?"
"네"
전화를 끊고 약 5분 후, 사진파일이 첨부된 메세지 하나가 내용과 함께 날아왔다.
'무당이나 퇴마사는 아닌데, 이 계통에선 아주 용하다고 소문나신 스님이야. 제주도는
일주일에 한 번씩 내려와. 매주 토요일마다 내려오시니 5일뒤면 만나 뵐 수 있을거야.
근데 아들, 나중엔 꼭 무슨일인지 알려줘야한다. 알겠지?'
명함에는 한자로 휘갈겨 쓴 이름과 그 밑에 한글풀이가 적혀져 있었다.
'진운거사라....'
명함에 적힌 번호로 전화를 거니 불경을 음악으로 만든 곡이 컬러링으로 흘러나왔다.
'거 참 취미하고는...'
"네 전화받았습니다."
"아 반갑습니다. 혹시 진운거사님 맞으신가요?"
"예 맞습니다만, 소승에게 무슨 볼일이라도...?"
"예, 어머니의 소개로 전화를 드렸습니다. 사실 지금 제가..."
난 그간 있었던 일들을 대강 설명해줬다.
스님은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는 잠시 생각에 빠지는 듯 하더니 이내 말을 꺼냈다.
"말로만 들어선 아주 지독한 원귀가 낀 것 같습니다. 말씀하신 것이 사실이라면
보통 위험한 원귀가 아닐지도 모르겠군요. 제가 매주 토요일마다 제주도를 방문하니
5일 뒤 찾아가도 될련지요."
난 5일이란 시간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단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그 공포의
세계에 다시 들어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부터 생겼기 때문이다.
"조금...일찍은 안되시는 겁니까?"
"시주님 그것은 조금 곤란할 것 같습니다. 사실 토요일에도 제주에서 잡혀있는
일정이 있지만 시주님께서 하신 이야기가 워낙 위험해보여서 제가 특별히
시간을 내드리는 것이니까요."
"아 그러시군요...알겠습니다. 그럼 토요일날 뵙기로 하겠습니다."
"나무아미타불...토요일까지 부디 무탈하시길..."
뚜욱.
'젠장! 무탈하라니? 이건 뭐 걱정이야 저주야???'
난 스님의 마지막말에 소름과 동시에 분노섞인 짜증이 밀려왔다.
전화기를 침대에 던지듯 내팽겨치고 다시 침대에 몸을 뉘였다.
천장을 바라보니, 방금 어머니와 통화한 내용이 다시금 떠올랐다.
'꿈에 할아버지가 나오셨다고...'
난 문득 어릴적이 생각났다.
할아버지는 심한 알콜 중독자셨다. 젊은 날부터 술을
입에서 떼어 사시지 못하던 할아버지는 결국 그 술 때문에 돌아가셨다.
단순히 술중독으로 돌아가셨다면 모르겠지만,
할아버지의 말로는 정작 술을 많이 마셨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렇게 술만을 찾던 할아버지는, 어느날 사리분별이 안 되는상태에서
농약을 술로 착각하고 소주잔에 따라 드셨던 것이다.
농약은 평범한 농약이 아닌 극독농약물로, 현재는 판매가 중지된 10ml만
섭취해도 엄청난 고통속에 몸부림치면서 죽는 약품이었다.
그것을 소주잔에 가득 담아 마셨던 할아버지는,
형용할 수 없는 고통속에서 하루종일 몸부림치다 돌아가셨다.
어린시절 봤던 할아버지의 고통에 절규하는 그 모습은 나에게는
트라우마로 남아 아직도 생생히 뇌리속에 박혀있다.
다만, 그 때 할아버지는 환각마저 보이셨는지 내가 이해 못 할 이상한말을
뱉으셨었는데, 그게 무슨 말이었는지는 기억이 흐릿하다.
어머니는 할아버지를 좋아하지 않았다. 아니 무서워 하셨었다. 항상 술만마시면 어머니를 찾기
일쑤였고 그 때마다 어머니는 할아버지의 욕지거리를 받아주는 역할을 해야만 했다.
'네 년은 좋은 집에 시집와서 부귀영화 누리는 줄 알아! 엉??!!'
어머니에게 그것은 부귀영화가 아닌 한낱 허물만 좋은 악몽의 나날이었을텐데.
어머니와는 반대로 할아버지는 나를 지극히 아끼셨지만, 나는 그런 할아버지를 좋아할 수 없었다.
그래서 사실 나는 아직까지도 그런 할아버지에게 연민의 감정이 없다. 어릴적 나에게 그렇게
분노감과 상처만을 안겨주시다 돌아가실땐 끝내 그런 끔찍한 트라우마까지 선물하고 가셨으니...
그런 할아버지를 두고 있던 어머니여서 그런지 어머니는 할아버지에게 꾸중을 듣고
너무 힘이 들 때면 종종 무당들에게 가서 점을보며 심리적 안정을 찾곤 했다.
아직도 확실히 기억나는데, 어머니는 항상 나에게 본인의 점을 봤던
이야기들을 해주셨고, 그럴때마다 너무 신기하다고 하셨었다.
'엄마가 벌써 점을 10군데나 넘게 봤는데, 가는곳마다 무당들이 하는말이 똑같지 뭐니. 정말 신기하지 않니?'
'할아버지가 엄마한테 저렇게 못되게 구는것을 무당들은 다 아는지 다들 이렇게 말하더라구.
'초를 칠 집안에 시집을 가서 네 팔자가 꼬였구나' 라고 말이다.'
어쩌면 나는 그런 어머니의 맹목적인 모습들을 과거에 봐버렸기 때문에
더더욱 이런쪽에 불신이 커졌을지도 모른다.
일종의 반발감이나 거부감이 들어서 배척하게 되는 그런 것 말이다.
'그랬던 내 꼴이 우습게됐군 후후후후후후...'
나는 허탈한웃음을 지으며 베개로 얼굴을 덮어버렸다. 오늘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아니 그렇다기보단 그 어디도 나가기가 무서웠으리라.
결국 나는 하루일정을 모조리 취소하고 집에서 하루종일 재밌는 영화도 보고, 새집정리도
하면서 그간의 일들을 잊으려 노력했다. 그러니 그 동안 쌓인 피로나 스트레스도 같이 풀리는 기분이었다.
나는 어느새 마음이 개운해지는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렇게 다시 밤이 찾아왔다.
개운해지고있던 마음은 해가 모습을 감추자 해와 같이 사라지려는듯
서서히 사라져가고 다시 공포감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제발 제발 아무일도 없길, 어제일이 그저 환상이길'
나는 집안에 불이 들어오는곳은 몽땅 불을 켠 후, 모든 창문에 블라인드를 내리고 티비를 켰다.
케이블 채널에선 예능프로그램의 재방송이 한창이었다.
"네~ 오늘은 특별히 납량특집으로 권모씨가 과거 살았던 전원주택에서 겪었던 기괴한 이야기들을..."
"으아악!!"
나는 반사적으로 티비를 껐다.
'이런 미친! 하필 방송이나와도 저딴 방송이'
티비는 이제 더 이상 내 마음을 안정시켜줄 도구가 되지 못했다.
나는 다시 내 방으로 향했다. 집의 모든 스위치는 리모컨으로 원격조종이 가능하게
만들어 놨기 때문에, 나는 방에 들어간 후 리모컨을 이용해 켜놨던 불들을 다시 다 꺼버렸다.
'젠장....그냥 일찍 자버리면 괜찮을까? 그래 차라리 일찍 잠들어버리자'
시간은 아직 저녁 9시밖에 안됐지만, 나는 은은한 침대조명등만을 켜놓은 후
이불을 얼굴까지 뒤집어쓰고는 휴대폰과 연결된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그리곤 불면증에 좋다는 asmr동영상을 틀어놓았다.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렇게 또 다시 시간이 어느정도 흘렀을까....이어폰에서 조금은 이질적인 소리가 났다.
끼그득 끼득...꾸드득 꾸득
'뭐야, 이건 무슨 음향이지? asmr에 왜 이런 기분나쁜 소리가 있는거야'
나는 도대체 무엇으로 입체음향을 내고있는지 도무지 참을 수가 없었다.
나는 핸드폰을 들어 재생되고 있는 동영상을 확인하려고 했다.
그리고 곧 난 얼어붙어 버렸다.
휴대폰은 이미 꺼져있었다.
'그럼...이게 이어폰에서 나는 소리가 아니란 거야?'
난 떨리는 손으로 조심스레 이어폰을 양 귀에서 뺐다.
끼그그득 끼그득, 꾸드드득 꾸드득
오히려 이어폰을 빼니 그 소리는 더욱 선명하게 들렸다.
그것은 인간의 관절이 괴기하게 뒤틀리는 듯한 소리였다.
마치 스트레칭을 하며 나는 뚜두둑 소리를 거꾸로 틀어놓은 듯한 그런 소리.
어느새 내 호기심은 공포심을 넘어서 금단의 영역을 파헤치려 하고 있었다.
'강준혁 이 미친놈아! 그냥 귀틀어막고 침대에 쳐박혀있어! 제발!'
하지만 내 마음과는 다르게 어느새 내 몸은 조심스레 방문을 열고 있었다.
방문을 여니 깜깜한 거실이 보였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한 10초정도 보고있었을까...눈이 어느새 어둠에 적응되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거실이 달빛에 비춰 조금이나마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 눈엔 소름끼치는 광경이 펼쳐졌다.
온몸이 원래 있어야 할 방향의 정 반대로 뒤틀린 끔찍한 사람, 아니 사람이라기 보단 괴물처럼
보이는 것들이 천장과 바닥, 벽등 여기저기에 붙어 괴기스럽게 움직이고 있었다.
난 터져나오는 비명을 가까스로 억눌렀다.
그들은 뭔가를 찾는듯 부산히 움직이고 있었다.
마치 집을 수색하듯 여기저기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뭘 찾는 것 같은데...대체 뭘 찾는거지'
그렇게 정적이 흐르는 순간...
'띠리링! 열두시입니다.'
끼그그그그그그그득!!!!!!꾸드드득!!꾸드득!!!!
그 순간, 그것들이 일제히 고개를 기이하게 꺾으며 내 방쪽을 쳐다봤다.
그리곤 곧 빠르게 내 쪽으로 기어오기 시작했다
사사사사사사사사삭!!!!!!!!!!!!!!!!!!!!!
나는 그 순간 분명히 보았다.
머리가 외계인처럼 늘어난 사람을.
그리고 그의 괴기하게 꺾인 손가락에서 달빛에 반사되고 있는 은색 해골반지를...
그리고 그것들의 입에선 이상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까니십계 기여"
"?까니십계 기여"
"?기여 ?기여 ?기여 ?기여 ?기여 ?기여 ?기여 ?기여 ?기여 ?기여 ?기여 ?기여
?기여 ?기여 ?기여 ?기여 ?기여 ?기여 ?기여 ?기여 ?기여 ?기여 ?기여 ?기여 ?기여"
마치 백워드마스킹을 틀어논 듯이 거꾸로 말하는 소리.
그 모습까지 본 나는 이후 정신을 잃었다.
바로 다음 날 나는 성진이형에게 도움을 요청하려 했지만,
형 역시 그럴 상황이 되질 못한다고 나를 설득했다.
게다가 몇 일 전부터는 아예 연락조차 되질 않는다.
그 이후부터 토요일이 찾아오기 전 까지는 계속 악몽의 나날이었다.
매일 밤만되면 어김없이 그들은 내 집을 찾아왔고, 항상 그래왔듯이 집안에서
무엇인가를 찾으려는듯 이곳저곳을 부산하게 돌아다녔다.
그리고 날이갈수록 개체수가 점점 더 느는 기분이었다. 게다가 이젠 돌아가신 할아버지까지
꿈에 나오기 시작했다. 꿈 속에서 그 때의 그 끔찍한 절규를 내지르며 입에서 거북스런
토사물을 울컥울컥 뱉어내는 그 모습은 그로테스크 그 자체였다.
현실에서도 꿈에서도 나는 점점 쇠약해져가고 있었다.
이러다간 정말 정신병자가 될 것 같았다.
그리고 토요일 아침이 밝았다.
5일동안 어딜 나가지도, 음식을 제대로 먹지도 못하며 엄청난 공포와 스트레스의
연속, 불면증의 연속으로 내 몰골은 그야말로 끔찍했다.
매일 밤 나를 찾아오는 그들에 견줄 만 한 얼굴이었다.
'지금이 무슨요일이지...아...오늘이 토요일인가'
'근데 여긴 어디지...아...내집이지'
반쯤 정신이 나간 내가 혼잣말을 중얼중얼 거리고 있을 때, 누군가 초인종을
누르는 소리가 났다. 나는 그 소리에 반쯤 나가던 정신이 번쩍 깼다.
'스님!'
나는 인터폰에 대고 다짜고짜 누군지도 묻지않고 외쳤다.
"스님??스님이십니까??!!!!"
"시주님 댁이 맞는지요."
"예! 맞습니다. 스님 제발 저 좀 살려주십시요"
스님은 나의 다급하고도 쇠를 가는듯한 목소리에 적잖이 당황한 듯 했다.
"아니 시주님 그간 무슨 변고라도 있으셨습니까?"
"이, 일단 안으로 드시지요"
현관문을 열고 들어온 스님은 내 얼굴을 보고는 짐짓 눈이 커지더니 이내 깊은 한숨을 쉬며 경을 외웠다.
"나무아미타불...그 몇 일 사이 많은 고초를 겪으신 듯 하군요."
"스, 스님 매일 밤마다 괴상하게 생긴 귀신들이 저희집을 찾아와 이상한 행동을 합니다. 제발 저 좀 살려주십시요. 네??"
"시주님. 일단 진정하시고 원기회복부터 하셔야 할 듯 합니다. 어디 근처에가서 밥이라도 같이 한 술 뜨시지요."
스님은 나를 본인이 몰고온 차에 태우고는 근처에 있는 식당으로 데려갔다.
스님의 곁에 있으니 그간 불안했던 마음이 편안히 풀어지며 잊고있던 식욕이
급격하게 올라가기 시작했다. 나는 식당에 들어가자마자 나오는 음식들을 눈 코 뜰새 없이
게걸스럽게 먹어치웠다.
살 것 같았다. 이제야 사람이 사는 세계에 온 것 같았다.
스님은 같이 한 술 뜨자고 말은했지만, 그저 내가 먹는것을 지켜 볼 뿐이었다.
"이제 좀 마음이 평안해 지셨습니까."
"예 스님덕분에."
"그럼 식사 마치는대로 집으로 다시 가시지요."
집으로 도착한 후 스님은 대충 집의 이곳저곳을 둘러보더니 거실 소파에 멍하니
앉아있는 나에게로 왔다.
"이건...어떤 힘이 이 부근에서 사고를 당해 죽은 이들을 떠나지 못하게 묶어두고 있는
것 같습니다. 혹여 음기가 강한곳에 부적같은걸 붙여놓으신게 아니신지..."
나는 순간 멍해졌다. 여긴 내가 지은 새 집인데 그런게 있을리가 없지 않은가?
"저...스님 이런말씀 드려도 될 진 모르겠지만, 이 집은 제가 새로 지은집이고
저는 그런것들을 붙여본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음기가 강한곳이라뇨,
그게 무슨말입니까?"
스님은 두 눈을 지긋이 감더니 나에게 말했다.
"음기가 강한곳이라 하면 보통 빛이 들어오지 않는 곳, 어둡고 서늘한 곳입니다.
집에 혹시 그런 장소가 있습니까?"
빛이 들어오지않고 어둠고 서늘한 곳...
나는 곧 한 장소가 떠올랐다.
'와인저장고??'
"저, 스님 이 방을 한번 보시겠습니까"
나는 스님을 이끌고 와인저장고로 향했다.
문을 열자 서늘한 기운이 온 몸에 감돌았다. 자재들도 차가운 것들을 썼고
더군다나 창문없이 환풍시설만 있다보니 내부는 싸늘했다.
"흐음...역시 그랬군요. 시주님꼐서 귀신들이 매일 밤 집에서 무엇인가를 찾는
듯 했다고 하셨지요? 아마 귀신들은 이 방을 찾아다녔던 모양입니다."
"예...?대체 왜..."
"아마도 본인들을 성불하지 못하게 막아두는 기운이 이 곳에 들어있었기 때문이겠죠.
녀석들이 시주님께 처음부터 어떠한 악 감정을 가지고 접근한 건 아니었을 겁니다."
"다만 이 곳에 자신들을 명계로 못보내게 하는 것을 시주님께서
들여놨다고 오해해서 시주님을 그리 괴롭혔던 것일 테지요."
"그런데 시주님. 그들이 시주님께 직접적인 해를 끼치진 않았다고 하셨지요?"
"네...그러진 않았습니다."
"허...그것 참 이상하군요. 보통 그 정도의 원귀들이 그리 화가났다면
사람에게 충분히 해코지를 할 수도 있었을 텐데..."
스님의 그 말을 들으니 나는 간담이 서늘해졌다.
스님은 다시 고개를 돌려 와인저장고 쪽을 바라봤다.
"이 포도주, 즉 과실주는 신성함을 담고있어서 원귀들이 함부로 접근하지 못하는 술입니다.
그래서 귀신들이 자신들을 묶어두고 있는게 이 안에 있는 줄 알면서도 이 안에 들어오지 못했던 것이겠죠.
그래서 더더욱 시주님께서 자신들을 농락하고 있다 생각해 화를 냈을 테구요."
"대체 무슨말씀을...스님 여긴 포도주 말곤 그 무엇도 없습니다."
"흐음...제가 한번 살펴볼까요."
스님은 수백개의 와인이 꽂혀있는 진열장을 주욱 훑어보더니 이내 어떤 곳에서 눈을 멈추었다.
"이 곳에서 기운이 강하게 느껴지는군요. 이 포도주들 뒤에서 말입니다."
'이 술들은...'
스님의 눈이 멈춘 곳에 있는 와인들은 분명 성진이형이 집들이 선물로
가지고 온 와인들이었다. 스님이 그 와인들을 꺼내자 그 뒤쪽으로
부적 두개가 벽에 붙여져 있었다.
"이것이군요. 아마 이 부적들때문에 이곳에 묶인 영들이 이 집에 갇혀
떠돌아 다녔던 것 같습니다. 정말 시주님이 붙이신게 아니신지요"
'말도 안 돼....'
머리를 한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지금의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드려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나는 잠시 생각을 정돈하고는 말을 했다.
"사실 이 와인들은 저와 아주 친한형님이 집들이 선물로 사온 와인입니다.
그 형이 제가 다른 일을 할 때 이 와인들을 저장고에 넣으러 갔었구요."
스님은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은 뒤 바로 나에게 답했다.
"이상하군요. 이 부적은 귀신을 쫓는 부적이 아니라 귀신을 볼 수 있는 귀안을 강제로
트이게 하는 강령부적입니다. 다른 한 부적은 제가 말씀드렸듯이 귀신들을 묶어두는 부적이구요."
"그럴리가...."
"시주님께서는 여태껏 귀신의 존재를 본 적도, 느껴본 적도 없으시다 하셨지요?
허나 이제와서 그런 경험을 한 것은 다 이 때문일 겁니다."
"어찌할까요, 제가 여기서 가볍게 염을하고 이 부적들을 태우면 원귀들도 오해를
풀고 명계로 올라갈 것이고 시주님께서도 더 이상 귀신의 존재를 느끼시지 않을 겝니다."
"그래...주시겠습니까."
"예, 그럼 잠시 앉아계시지요. 생각할게 많으신 듯 합니다."
스님의 말을듣고 나는 터벅터벅 소파로 걸어가 주저앉아버렸다.
'성진이형이 대체 왜...'
'성진이형의 정체가 뭐지? 왜 나에게 이런짓을 한거야'
내가 이런생각을 하고있을 때, 어느샌가 스님이 염을 끝내고 왔는지 내 곁으로 다가왔다.
"시주님 방금 염을하고 부적을 다 태웠습니다. 허나 아까부터 의심갔던 문제는
여전히 풀리지 않은 것 같군요. 바로 이 원귀들이 시주님께 직접적인 해코지를
하지 못했던 점 말입니다. 혹시 또 짚이는게 없으신지요."
아직 무언가가 남았단 말인가?
"아마 시주님을 직접적으로 건드리지 못했으니 시주님이 자주 지니고 다니는
것들 중에 제가 찾는 것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스님의 말을 들으니 곧 잊고있던 한 가지가 떠올랐다.
'형수님이 줬던 그 부적!'
나는 침대 옆에있는 지갑을 들어 그 안에서 자그마한 부적을 꺼냈다.
스님은 그 부적을 보자마자 인상을 깊게 썼다.
"그 형이란 사람의 아내되는분이 저에게 선물하기위해 거금을 들여 제작했다는 부적입니다."
스님은 또 다시 깊은 고뇌의 표정을 짓더니 입을 열었다.
"나무아미타불...대체 이들이 시주님께 무슨 억하심정이 있어서 이런 짓을 했단 말입니까.
이 부적역시 령을 붙잡아두는 부적입니다. 그것도 아주 강력한 부적이지요."
"아, 아닙니다. 분명 이건 저를 지켜줄 것이라고...
그래서 그 원귀들도 저한테 해코지를 못한게 아닙니까??"
"시주님...이것이 시주님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생각은 버리시는게
좋습니다. 이 역시 시주님을 해하려는 의도가 다분한 부적이니까요."
"다만, 의도치않게 이 부적에 붙어있는 그 강한 령이 시주님꼐 접근하려던
그 령들의 접근을 막게된 꼴이 된 셈이지요."
"뭐...라구요...."
나는 도저히 지금의 상화이 이해가 가질 않았다.
그럼 그 두 사람은 똑같이 나를 해하려는 목적으로 이것들을 두었다는 말 아닌가?
대체 왜???
"스님 지금까지 하신 말이 진정 사실입니까?"
"허허 이 노파가 무슨 악감정이 있어서 시주님께 거짓을 고하겠습니까.
정 제 말을 믿지 못하시겠다면, 용한 점술가나 퇴마사를 한번 불러보시지요.
아마 그들에게서도 똑같은 대답을 들을 것입니다."
스님이 그렇게까지 말하자 난 더 이상 의문을 제기할 수 없었다.
스님은 이번엔 제주에 당분간 머물고 있을 것이니,
조만간 다시 만나자 하며 그 검은색 부적을 가지고 돌아갔다.
스님의 말에 의하면 이 부적은 전의 두 부적과는 달리,
쉽게 처리해서는 안되는 위험한 물건이라고 했다.
일단 나는 성진이형에 대한 신상 및 소재를 파악해야했다.
나에게 도대체 왜 이런짓을 했는지, 그리고 왜 갑자기 연락이 두절됐는지
얼마 전 갔던 서에서 만난 안철호 과장이 생각났다.
그가 준 명함을 찾은 후 번호를 눌러 통화버튼을 누르려는 순간이었다.
'아차! 내가 정신이 나갔구나.'
생각해보니 경찰에 성진이형을 신고할 명분이 없었다.
내 집에 저주를 내리는 부적을 붙이고 갔으니 소재를 파악해달라 신고 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그 방법뿐인가'
이쪽 부동산분야 사람들 중 흥신소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은 꼭 존재하는 법이다.
나는 지인중 그런 흥신소를 잘 아는 이에게 전화를 걸어 제주도에서 가장
유명한 곳을 알아내 그 곳을 찾아갔다.
"아까 전화주신분??"
"네. 이 두 사람에 대한 정보와 소재를 파악하고 싶은데요. 이름은 오성진 나이는
올해로 30살. 6살 연하의 여인과 결혼한 상태입니다. 아내의 이름은 오은영입니다."
"이야~ 부부가 같은 오씨야? 천생연분이네~ 어쨌든 이정도면 뭐, 오늘내로 다 찾아내서 연락드릴게."
"정말입니까?"
"에이~고객님 우릴 잘 모르시네. 아무것도 없이 몽타주만 그려와도
제주바닥에만 붙어있으면 3일이면 다 찾아내는게 우리니까 너무 걱정하지마쇼."
그 날 저녁, 정말 흥신소에서 바로 연락이 왔다.
"아 고객님? 저희가 그 이성진이란 사람이랑 이라는 사람 둘 다 알아봤는데,
아무래도 고객님이 뭘 잘못 알고 있는거같아."
"예? 뭐가 말입니까?"
"이 두사람, 부부가 아니라 남매야 남매, 친남매."
"뭐..."
"아 그리고, 이 사람들 특별히 뭐 어디 안갔어. 그냥 이 아파트에서
계속 정상적으로 지내고있어서 뭐 소재지 파악할 것도 없었구.
암튼 우린 정보 다 알려드렸으니 내일 오후 1시까지 꼭 잔금 보내주셔요잉?"
"...일단 알겠습니다."
통화종료 버튼을 누른 후 내 손은 휴대폰을 부서질듯 움켜쥐고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나에게 왜 이런 거짓말까지....대체 내가 당신들에게 뭘 잘못했길래!'
나는 더 이상 참지못하고 한바탕 할 요량으로 바로 차를 몰고 성진이형이 사는 아파트로 향했다.
아파트에 도착해서 올려다보니 성진이형이 살고있는 호수는 불이꺼져 캄캄한 상태였다.
'지금이 오후 9시....아직 사람이 안 들어온건가?'
나는 엘레베이터를 타고 7층을 눌렀다.
곧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며 7층을 향해 올라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