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란 사람은 친구의 반문을 듣고 잠시 고민하더니 이윽고 말을 꺼냈어요."
"일단 녀석들은 잠시 기절한 듯 하니, 보는 눈이 없을 때 서둘러 자네 집 창고로 옮기세"
"원래 얼굴이 어땠는지조차 구분이 안 될 정도로 안면이 피멍으로 퉁퉁부은
두 사내가 정신을 다 차리게 되기 까지는 창고로 옮겨진 뒤에도 장정 두 시간이나 흘렀어요."
"한 녀석은 머리에 충격이 가해져서 일시적인 기억상실증도 왔는지
정신을 차리자마자 횡설수설 하기도 했죠."
"니...니들 누구야!! 누군데 날 여기묶어둔거야...!!"
"눈두덩이가 심하게 부어 한 쪽 눈을 덮을정도로 튀어나온 그 남자는 자신들의 앞에 서 있는
두 명의 건장한 장성들이 아무 말도 없자 이내 생각에 잠기더니 기억이 차차 돌아오는 듯 조용히 말했어요."
"아! 기억났다... 이 xx끼!! 갑자기 언덕에서 튀어와갖곤 다짜고짜 주먹질..."
퍼억!!
"마음 같아선 당장 네 그 역겨운 주둥아리를 찢어버리고 싶지만, 알아야 할 게 있으니 참겠다.
앞으로 내가 하는 질문에 똑바로 대답하지 않으면 네놈이랑 옆에있는 그 재수없는새끼의 더러운
주둥이를 남은 인생동안 다시는 나불대고 다니지 못하게 만들어 버릴테니 똑바로 대답해."
"그 양아치같은 녀석은 고개를 돌려 미리 깨어서 덜덜 떨고있는 자신의 친구를 보고는 뭔가 상황이
심각하게 흘러간다는것을 직감했죠. 녀석은 곧 묶여있는 자신의 친구처럼 고개를 떨구고 나지막히 말했어요."
"원하는게 뭐야...아니 뭡니까?"
"네 놈들이 언덕길에서 떠들어댔던 그 이야기...! 한 여인과 그 여인의 딸아이에
관한 그 이야기. 그 배경에 대해 아는대로 솔직하게 말해라."
"묶여있던 그 녀석은 순간적으로 온 몸이 경직되는걸 느꼈어요. 자신 앞에 있는 그
사람의 얼굴이 어딘가 낯이 익었거든요. 그리고 그 의문은 점점 확신이 되어갔죠."
"당신...! 설마 그 선생...??"
"그래, 그러니 지금 네놈들이 얼마나 위험한 상태인지는 잘 알겠지.
이제부턴 쓸데없는 말 역시 받지 않을테니 묻는 질문에 대답만해라.
다시 말한다. 어떻게 된 거지?"
"나, 난 모릅니다!! 그저 마을에서 퍼지는 소문을 들었을 뿐, 난 아무것도 모릅니다!!"
"곧 옆에 있던 또 다른 장성 한 명이 거칠게 부러진 각목하나로 사내의
배를 강하게 강타했어요. 괴담작성자의 아버지였죠."
"어억..!!"
"네 놈들이 우릴가지고 말장난을 치려고 하는구나. 먼저 깨어난 네 친구놈이
니가 모든 정황을 잘 알고 있을거라고 했는데...아무것도 몰라???"
"그 말을 들은 그 녀석은 순식간에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하더니 옆에묶인 자신의 친구를 바라봤어요."
"너 이 xx끼!! 친구를 팔아먹어!!"
"뭐, 뭐!!! 사실이잖아 이 쌩양아치 꼴통x끼야!
저... 저기요, 저놈은 다 알고있습니다. 그러니 제발 저는 풀어주시면..!!"
"이런 치사한 x끼가...!!"
"한낱 시정잡배들의 우정은 그 정도가 끝이었어요. 서로가 살기위해 서로를 팔아먹었죠.
하지만 나중에 깨어난 녀석은 이전에 깨어난 녀석의 고발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이야기를 할 수 밖에 없었죠. 이내 녀석은 분을 좀 삭히더니 풀이 죽은 목소리로 말했어요."
"사...사실대로만 말씀드리면 그냥 보내주시는 겁니까?"
"그래. 사실대로만 모든걸 털어놔."
"녀석은 이야기를 할 까 말까 수십번을 고민하며 입만 뻥긋거리다 결국 입을 열었어요.
그리고 그 녀석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는 가히 충격적이었죠."
열심히 이야기하는 와중에도 형수님은 내가 목이 바짝바짝 타는걸 느꼈는지,
얼음이 동동 떠 있는 물을 한잔 따르더니 나에게 건냈다.
순간적으로 손가락에 닿는 차가운 물잔의 감촉에 나는 살짝 놀라며 고개를 숙였다.
"아, 감사합니다."
"아니에요. 목이 많이 타시는 것 같네요."
"예...이야기에 몰입하느라..."
"호호 그거 칭찬으로 받아들여도 되죠?"
"아, 네..."
물잔을 들어 안에 있는 물을 순간적으로 들이키니, 차가운 얼음물로 인해
순간적으로 머리가 띵해졌다. 그리고 곧바로 탁해졌던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 찾아왔다.
하지만 그 맑아진 정신은 곧 다시 탁해지기 시작했다.
이야기의 충격적인 전말은 맑은 물을 흐리는 미꾸라지의 몸부림처럼
곧 내 정신을 순식간에 불투명하게 물들이기 시작했다.
"사실 이제 들려드릴 내용이 다소 충격적이고 비위가 상할 수 있기 때문에 물을
미리 건내드린거에요. 그래도 정신이 좀 트이신 것 같으니 이제 이야기 해 볼게요."
"비극의 시작은 그 여인의 남편이 노역장으로 끌려간 후 한 달이 지난 후였어요..."
형수님이 말해준 사건의 전말은 이러했다.
월동마을 이장에게는 망나니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얼마나 성격이 고약하고 여색을 밝히는지 하루하루 사고를
치지 않는 날이 없었다고 한다.
그는 폭력, 갈취, 협박은 기본이고, 잦은 노름에 심한 술주정, 그리고 뭇 여인들이
그에게 겁탈을 당했다는 아주 안좋은 소문도 공공연하게 다 돌 정도로 인간말종이었는데,
이장의 가문이 워낙 지역구에서 힘이 세고 권력이 컸기 때문에 그 누구도 그 망나니 아들의
패악질을 막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외아들에 장손인 그 망나니는 어릴때부터 누구의 통제도 받지않았고,
사고를 쳐도 모두 감싸주는 든든한 부모와 조부모, 친척들이 있었다.
어느 날 마을에 선남선녀부부가 이사를 왔다는 소문을 들은 그는
그 집을 방문했다가 부인에게 한 눈에 반해버리고 만다.
그 후 그는 이장인 자신의 아버지에게 저 여인을 자신이 가지고 싶으니
어떻게든 남편을 떼어달라는 말도 안되는 부탁을 하게된다.
하지만 그 말도 안되는 부탁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금쪽같은 외아들의
부탁이라면 거절을 못하는 이장은 정신나간 계획을 하나 세우게 된다.
이장은 은근슬쩍 마을안에 선생님인 그 남편이 아이들에게 이상한 사상을
주입시키고 있다는 말도 안되는 헛소문을 퍼뜨렸고, 당시의 무지몽매했던
마을 주민들은 그 소문에 너무나도 손쉽게 선동되어 버렸다.
그 작은 소문은 입소문에 입소문을 타서 삽시간에 마을 전역으로 퍼져나갔고,
결국 신고를 받고 출동한 군인들에 의해 남편은 끌려가게 된다.
사람들은 그 누구도 끌려간 남편을 동정하지 않았으며,
도리어 자신들의 아이들을 세뇌시키려고 했다며 그를 거세게 비난했다.
그런 와중에 이장의 망나니 아들은 홀로남은 그의 아내에게 수작질을 했다.
하지만 오로지 남편과 아이들만을 바라보며 사는 부인은 그 망나니에게 일말의 관심조차도
주지 않으며 매몰차게 굴었고 결국 그 망나니는 비뚤어진 애정으로 인해 끔찍한 계획을 세운다.
'네년따위가 감히...'
어느 날, 마당에서 남편이 선물한 연분홍색 모시옷의 헤진 부분을 손수 짜고있던 부인에게 마을 이장이 찾아온다.
이장은 그녀에게 그녀의 남편인 정환이 극적으로 노역장에서 탈출했고, 현재 추적해오는자들 때문에 마을로
들어오지 못하고 도깨비도로 인근에 숨어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는 희소식을 전하게 된다.
낮에는 위험하니 해가 지면 자신과 함께 그 곳, 도깨비도로로 가서 남편을 만나자는 제안을 하고,
그녀는 날 듯이 기뻐하며 자신이 수선하고 있던 모시옷을 더욱 부산하게 짜고 간만에 환하게 펴진 얼굴로 꽃단장을 하였다.
그날 밤, 부인은 일찍 아이들을 재운 후, 등을 들고 이장과 함께 도깨비도로로 향했고,
약 한 시간여를 걸어 도착한 그곳에서 그녀는 남편대신 기다리고 있던 이장의 아들과
그 패거리들에게 끔찍한 봉변을 당하게 되었다고 한다.
비극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이장의 망나니 아들과 그 패거리는 마을에 그 여인이 남편을 버리고
이 남자 저 남자에게 꼬리를 치고 다니며 문란한 생활을 한다는 소문을 낸 것이다.
결국 화가난 마을의 여편네들이 그녀의 집에 몰려와 돌팔매짓을 하였다.
'네 년이 감히 우리 남편에게 꼬리를 쳐?!!'
'남편은 빨갱이교사에, 아내는 구미호라니! x친년놈들이 따로없구만!!'
'우리 마을에 저런 년놈들이 있는건 마을의 수치야 수치!!'
그녀가 갖은 모욕을 당하며 돌팔매짓을 당하던 그 때, 방에서 울고있던 그녀의 아이들이 뛰쳐나와
그녀를 감싸안아 보호하며 그들에게 하지말라며 소리를 치며 울어제꼈고
그 과정에서 누군가가 던진 커다란 크기의 돌이 딸 아이의 머리에 맞으며 그녀의 딸은
그 자리에서 끔찍하게 머리가 터져 즉사하였다고 한다.
결국 그 날을 기점으로 부인은 완전히 정신을 놓아버렸고, 매일 해가지고 밤이 되면 그 연분홍색 모시옷을 입고
등을 키며 도깨비도로로 남편을 만나러 가야한다며 그 곳을 찾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충격과 분노로 할 말을 잃었다. 어느새 내 손은 얼음만이 남은 물컵을 꽉 쥐고있었다.
나는 내가 너무 강한 힘으로 컵을 쥐고있다는 사실을 느끼고는 서둘러 손에 힘을 풀었다.
아마 조금만 더 세게 쥐었으면, 이 유리컵은 사정없이 깨져서 사방에 파편이 튀었을 것이다.
"얘기를 모두 들은 작성자 아버지의 친구는 다리에 힘이 풀려 그 자리에 주저앉아버렸다고 해요.
작성자 아버지는 충격과 차오르는 분노로 자신이 쥔 부러진 그 목각을 손이 찢어지도록 꽉 쥐었어요."
"그 목각으로 당장이고 그녀석들의 머리통을 내려치고 싶었지만, 자신에겐 그럴 자격이 없다는걸
너무도 잘 알았죠. 그는 심호흡을 가다듬고는 자신의 친구에게 다가갔어요."
"정환이, 자네 괜찮은가?"
"...허어억...허억...헉...!!"
"정환이란 그 친구는 너무 큰 충격에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할만큼 극심한 통증을
호소했어요. 그는 그렇게 약 십여분간 그의 친구를 진정시켰어요.
이내 친구는 어느정도 냉정함을 되찾고 일어나더니 그 녀석들 앞으로 걸어갔어요."
"지금까지 말한... 이 믿지못할 이야기들이.. 전부 사실인가?..."
"죄...죄송합니다. 하지만 저희는 관련이 없습니다! 저희는 그저 노름하면서 들은 소문으로만
이 이야기를 알고있을뿐 직접적인 관련은 없습니다! 하늘에 맹세코...!!"
"그래..그렇단 말이지..."
"정환은 자신의 옆에 있던 삽을 들어 그 녀석들의 허벅지를 찍기 시작했어요.
창고안에는 끔찍한 비명이 울려퍼졌죠."
"끄으으아아아아아악!!!!!!!!!!!"
"작성자 아버지는 차마 친구의 그 광기어린 행동을 말릴 수가 없었어요.
그 역시 그들이 죽지만 않는다면, 그들을 죽도록 패고싶은 심정이었으니까요."
"그렇게 삽으로 몇번을 내려찍던 친구가 다시 입을 열었어요."
"두부가게... 최씨 알지?... 그 사람도 혹시 이 사건에 연관되어있나...?"
"그들은 의지와는 상관없이 덜덜덜 떨리는 다리를 한 손으로 부여잡고
눈물콧물이 범벅이 된 상태로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하더니,
이내 더욱 더 굳어진 얼굴로 천천히 입을 열었어요."
"그...그 사람. 그 집에 드나들면서 넋이 나간 그 여인을 상습적으로 겁탈했다는 소문이..."
"순간의 침묵이 흐른 후 다시 작성자 아버지의 친구인 정환의 얼굴이 악귀처럼 변해갔어요."
뎅! 뻐꾹뻐꾹!!
급작스럽게 나는 큰 소리에 한참을 집중하고 있던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버렸다.
순간적으로 들어올린 내 다리에 부딫쳐 상이 한번 크게 휘청거리긴 했지만,
신기하게도 상 위의 그 무엇도 흘러넘치진 않았다.
'아, 깜짝이야...간떨어지는 줄 알았네. 아니 요즘 시대가 어느시댄데 뻐꾸기 자명종을'
"저희집 오는 사람마다 다 준혁씨처럼 반응해요."
형수님은 그런 나를 보며 소리죽여 웃더니 이내 옆머리를 귀 뒤로 넘기며 자세를 살짝 바꾸었다.
난 무의식적으로 그 자태가 매우 고혹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말을 이어갔다.
"정환이란 친구는 악귀같은 표정으로 옆에 있던 커다란 낫을 움켜쥐었어요."
"니놈들도, 최씨도, 이장도 그 아들놈도 모조리 죽여주겠다."
"그리고는 자신의 손에 꽉 쥔 낫을 위로 치켜들기 시작했어요.
갑작스런 그의 돌발행동에, 청년 두명도, 작성자의 아버지도 당황했어요.
그들의 눈에는 자신들이 곧 죽는다는 생각에 형용할 수 없는 공포가 비추는 듯 했죠."
"정환이란 친구가 낫을 들어 녀석들의 머리를 찍으려 할 때,
순간적으로 작성자의 아버지가 그의 들어올린 팔을 양손으로 저지하며 말렸어요."
"이보게 정환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잖은가!!"
"또 그 소리군! 이 쓰레기같은 놈들이 정말로 살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나? 이 금수만도 못한 놈들이??!!!"
"그 때, 밖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아들의 말소리가 들렸어요."
"아빠, 어딨어 아빠?"
"그들은 그제서야 집에는 아들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죠."
"중훈이!!"
"정환이란 친구는 순간적으로 정신을 차리고 마당으로 뛰쳐나가기 시작했어요.
작성자의 아버지는 숨을 돌린 후, 공포에 덜덜덜 떨고있는 녀석들을 힐끔 바라보곤
한마디를 하곤 곧 친구를 따라 밖으로 나갔죠."
"입도 뻥끗하지마. 소리내면 정말로 죽인다."
"밖으로 나가 보니 해는 이미 자취를 감췄고 어두운 밤과 함께 쌀쌀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어요.
4월의 밤은 겨울만큼은 아니어도 꽤나 쌀쌀했죠."
"친구의 아들은 잠에서 막 깨어난듯 비몽사몽한 걸음과 반쯤 감긴 눈으로 아빠를 찾고 있었어요."
"그런 아들을 본 그 친구는 방금 전 자신이 아들의 바로 근처에서 사람을 죽이려
했다는 것을 깨닫고는 혼란스러운 듯한 표정으로 아들을 꼭 껴안았어요."
"그리고 그 때 작성자의 아버지와 정환이란 그 친구 둘은 무언가 이상한 느낌을 받았어요.
마룻바닥에 앉아 있어야 할 여인이 보이지 않았던거죠."
"보이지 않는다면...아! 설마 밤이 돼서 그 도깨비도로로...?"
"네 맞아요. 그 여인은 해가지고 언제나처럼 등불을 켜고 그 도로로 간 것이었어요.
작성자 아버지와 그 친구는 자신들이 벌려놓은 일 들 때문에 그 부분을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던거죠."
"여보...여보!!"
"정환이란 친구는 얼른 방으로 들어가서 여분의 등불을 들고는 아들을 둘러업고 도깨비도로로 향하기 시작했어요.
작성자의 아버지역시 순간적으로 사고회로가 막혀버렸는지 무작정 친구를 따라 나서기 시작했죠."
"이봐! 정환이 같이갑세!!"
"그때까지 그 둘은 몰랐어요. 그 날 밤이 일생일대에 가장 끔찍한 날이 될 줄은요."
끔찍한 밤...? 지금까지 들려주었던 이 이야기보다 더욱 더 충격적인 결말이 존재한다는 것인가?
나는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믿어야 할 지 감이 오질 않았다.
또한 어떻게 이보다 더한 잔혹사가 있을지조차 짐작할 수 없었다.
다시 목이 타들어갔다. 이번에는 잊지않고 옆에있던 얼음이 담긴 위스키잔을 단숨에 비웠다.
목이 시원해지는 청량감과 동시에 뜨거운 알콜의 기운이 가슴속을 태울듯 들어왔다.
"그날 밤, 탈주자들을 찾아 수색하던 군인들이 그 마을에 도달했어요."
툭...투둑..투두두두둑 투둑! 투둑툭!...툭툭!
오전까지만해도 햇빛이 쨍쨍나던 일요일이었는데 어느새 창문에는 빗방울 부딫치는 소리가 요란하게 나기 시작했다.
"어머 비가오네?"
그녀는 창문을 통해 잠시 흐려진 하늘을 바라보더니 이내 무엇인가가 생각난 듯이 말을 했다.
"저기 준혁씨, 죄송하지만 제가 어제 아파트 옥상에 이불빨래를 넣어놨거든요. 걷어내고 와야될 것 같아요."
"아, 신경쓰지마시고 다녀오셔도 됩니다. 혹시 제가 도와드릴게...?"
"아니에요. 저는 거의 안마셨으니 제가 몇번 수고하면 돼요."
그러더니 그녀는 무언가가 생각났다는 듯이 방에 들어가서는 노트북 가방을 들고왔다.
"여기 노트북 바탕화면에 '도깨비도로 괴담'이라고 저장되어있는 텍스트파일을 클릭하시면
그 이야기에 대한 모든 것이 들어가있는데, 제가 다녀오는동안 읽어보시겠어요?
아무래도 직접 글을 읽으시는게 더 자세할 것 같아서요."
"아, 그래도 됩니까?"
"물론이죠. 그럼 저는 다녀올게요."
"예..."
그녀는 다시 방으로 들어가 방수코팅된 후드자켓을 대충 걸치고는 아파트 옥상으로 향했다.
나는 어느새 부팅이 다 되어있는 노트북 바탕화면에서 그 텍스트파일을 찾아 클릭했다.
글은 꽤 장문의 글이었다. 대부분의 내용은 내가 성진이형과 형수님께 들은 이야기와
거의 동일했기에 나는 망설임없이 스크롤을 내려가며 내가 듣지못한 곳의 부분을 찾기 시작했다.
드륵...드르륵...
"아 여기군"
나는 군인들이 마을에 도달했다는 그 지점을 찾아내었다. 그리고 글을 읽기 시작하였다.
《ㆍㆍㆍㆍㆍㆍ 우리는 한참을 걸어갔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찾을 수 없었다.
아마도 그녀는 이장이란 작자의 안내를 받아 이 곳으로 올 때, 군인들의 눈을 피한다고
포장이 되지 않은 길로 온 듯 했다. 정환의 표정은 굳어있었다. 그 어느때보다도 굳어있었다.
나는 그를 따라가는 동안에도 이 사건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보고 있었다.
만약...만약 그녀가 그 위치에서 정환을 만난다면...?그렇다면 뭔가 변화가 생길 수 있을까?
나는 순간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어떠한 생각이 떠올라 심각하게 굳어있던 그에게 말을 건냈다.
"이봐 정환이. 자네 아내가 항상 도깨비도로에 자네를 만나러 갔다가 돌아온것이라면,
혹여나 그곳에서 자네를 발견하지 못해서 돌아오는것이 반복되는 것이라면,
그곳에 자네가 있을때는 어떻게 되는거지?"
굳어있던 표정으로 묵묵히 걸어가던 그의 발걸음이 일순간 멈췄다.
그는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는듯 하더니 미세하게 몸을 떨기 시작했다.
굳어있던 얼굴은 무언가 한줄기 희망의 빛을 본 듯 서서히 풀리고 있었다.
"맞아..! 내가 만약 그녀보다 더 먼저 그곳에 도착해서 그녀를 마주한다면,
그녀가 그 곳에서 날 본다면, 나를 알아볼지도 몰라!"
그는 곧 자신의 아들을 나에게 맡기고는 말했다.
"고맙네 친구, 정말로! 내 부탁하나만 함세. 나는 먼저 그 곳에 가있을테니
아들을 데리고 천천히 그 곳으로 와주겠나?"
그는 그렇게 말하고는 내가 뭐라 대답하기도 전에 언덕을 따라 뛰어가기 시작했다.
나 역시도 혹시나 하는 기대감에 녀석의 아들을 허리춤에 꼭 끌어안고는 녀석이
먼저 지나올라간 길을 따라 올라가고 있었다.
그렇게 십여분 쯤을 더 갔을까...
사박사박... 사박...저벅저벅
나는 주변에서 여러명의 발소리가 숲을 헤지며 이동하고 있는 소리를 들었다.
처음에는 혹시 그의 아내가 이 근처에 있는것인가 생각했지만,
이내 그 생각은 접게되었다.
한명의 발소리도 아니었거니와, 그 보폭은 절대 여성의 것이 아니었다.
묵직한...마치 구둣발로 숲을 짓이기며 걷고있는듯한 소리.
생각과 판단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나에겐 너무나 익숙한 소리였다.
나는 그 소리가 군인들이 무언가를 수색하고 있는 소리라는 것을 직감했다.
그리고 그 대상이 우리들일 것이란 생각에 미치자, 일말의 망설임 없이
길을 벗어나 숲으로 몸을 던졌다.
"분대장님! 방금 무슨소리 못들으셨습니까?"
"무슨소리?"
"방금 도로변쪽에서 숲으로 들어가는 듯한 소리가 났습니다!"
"확실해? 이 근처에는 노루가 아주 많다. 노루소리 아니야?"
"노루는 이동하면 지속적으로 숲을 헤지는 소리가 나는데,
방금 그 소리는 숲으로 들어간 이후 그런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뭐야? 위치가 어디야!"
"저쪽입니다!"
"분대원들 지금부터는 빠르게 이동해서 탈주자를 찾는다.
늑장부리는놈은 복귀해서 좋은 꼴 못볼줄알아!"
거리가 가까워서 그랬던지, 그들의 대화소리는 내 귀에 똑똑히 들려왔다.
그들은 그들나름대로 소리죽여 얘기를 나눈 듯 하지만,
이 적막한 숲에서는 그마저도 생생히 들려왔다.
나는 중훈이에게 절대 소리를 내지 말것을 강조하며 옆쪽에 홈이 깊게 패인
작은 동굴 같은 돌구덩이 속에 몸을 숨겼다. 친구의 아들녀석을 대리고 이 곳에서
무작정 도망을 쳤다간 십중팔구 녀석들의 포위망에 걸릴것이 분명했다.
나는 중훈이의 입을 틀어막고 죽은듯이 숨을 쉬며 서 있었다.
주변에서 숲을 탐색하는 소리가 나며 점점 이곳으로 가까워 지는 것을 느꼈다.
결국 이대로 죽는건가?라고 생각할 무렵, 하늘이 도왔는지 내 근처에서
작은 새끼노루가 튀어나왔다.
꽤엑!!!!
"으악!! 뭐야?? ....이거 새끼노루잖아?"
"이런 씨발...! 가뜩이나 본대에서 감시소홀로 우리를 잡아먹지 못해서
안달인데, 노루새끼를 사람을 착각해서 시간까지 지체시켜?"
곧 군홧발로 누군가가 채이며 내는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악!"
"너 이새끼. 복귀하면 보자. 다시 이동해! 마을 사람들의 제보에 의하면
그 녀석들이 아직 그리 멀리 도망치지는 못했을 것이다! 알겠나!"
그들은 소리죽여 대답한 이후 다시 길을 따라 올라가기 시작했다.
나는 지금 이 상황을 어찌해야 할 지 몰랐다.
분명 저 녀석들이 올라가면 정환이와 그의 아내를 발견할 확률이 높을 터였다.
하지만 내 발걸음은 쉽사리 떨어지지 않았다.
나는 비겁했었는지, 그 때에 녀석과 녀석의 아내의 안위보다는 내 목숨의
안위를 더 걱정했던 것 같다.
"중훈아. 우리는 이제 동이 틀 때까지 이곳에 있어야 된다 알겠지?
네 아버지랑 어머니는 무사하실거다. 분명."
난 바람이 들지않게 주변에 있는 돌무더기들을 소리나지않게 조심조심
동굴입구에 쌓아놓고는 중훈이를 꼭 껴안았다.
'여기서 움직이면 죽는다.'
내 머리속엔 온통 그 생각 뿐이었다. 나는 비겁했고, 살고싶었다.
그렇게 체감상 한 시간쯤 시간이 흘렀을 때, 저 멀리서 총소리가 울려퍼졌다.
나는 참지못하고 울음을 터뜨리는 중훈의 입을 틀어막고선 애써 귀를 막았다.
'아닐거야 아닐거야 아닐거야...'
총소리는 몇번을 더 울리더니, 이내 숲은 다시 잠잠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또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하늘은 점점 검은색에서 짙은 남색으로,
그리고 회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동이 트려하고 있었다.
중훈이는 어느새 나의 무릎을 배게삼아 쓰러져 잠들어 있었다.
나는 조심히 녀석의 머리를 바닥에 뉘이고,
입고있던 두터운 외투를 벗어 녀석에게 덮어주고는 조심스레 동굴밖으로 나왔다.
주변은 한참전부터 고요해져 있었다. 아직 추운 날씨 때문인지
새벽이슬이 차갑게 맺히며 옅은 안개를 자아냈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길을 따라 천천히 도깨비도로로 향하기 시작했다.
그 곳은 머지 않은 곳에 있었다.
십분여를 걸어 올라가니 나무팻말이 보였다.
「도깨비도로」
나는 잠시 발걸음을 멈췄지만, 이내 다시 발을 떼어 앞으로 이동했다.
이제 이 곳에는 아무도 없다는 그 안정감이 내 발을 움직이게 했다.
그렇게 다시 오분쯤을 더 갔을까...?
옅은 안개사이로 무언가 길다란 것이 나무에 매달려 왔다갔다 하는 것이 보였다.
나는 아직 누군가가 남아있는 줄 알고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느낌을 받았지만,
곧 그것이 위협적이지 않은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곳엔 위협따위를 훨씬 넘어서는 소름끼치는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그 나무가 있는 곳엔, 전신에 총구멍이 난 형체를 알아보기 힘든
남자의 시체 한 구와, 그 옆으론 온 몸이 시퍼렇게 멍들고 혀는 허리까지 쭉 뺀
속옷만 입은 한 여인의 시체가 나뭇가지에 목이매여 데롱데롱 흔들리고 있었다.
연분홍색 모시옷을 꼬아 만든 줄에 매달린채.... 》
사건의 전말은 거기까지가 끝이였다.
후의 이야기는 작성자의 아버지가 지금까지 겪었던 충격적인 일 및
추격하는 군인때문에 제 정신을 유지하기 힘들어 정환이라는 사람의
아들을 동굴속에 재워논것도 잊어버리고 무작정 몇날몇일을 도망만 쳤고,
그렇게 여차저차 정신없이 도망쳐 현재 중문관광단지로 유명한 색달동에 도달하여
그 곳에서 몸을 숨기며 살아온게 현재까지 이어졌으며
작성자의 아버지는 몇 년 간은 매일같이 끔찍한 악몽에 시달려야 했고,
그로인해 하루하루를 술이 없으면 버티지 못하는 반 폐인이 되어서 전전긍긍 하루하루를 살다
여차저차 작성자의 어머니를 만나 결혼을 하고 그 곳 중문에서 살림을 차려 현재까지 살고있다고 나와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대목에는 놀라운 사실이 적혀있었다.
"혹시나 도깨비도로에 가시는분은 4월, 특히 저녁 9시 이후를 조심하세요.
만약 그 곳에서 행동을 거꾸로 하는 사람을 본다면, 절대로 뒤도 돌아보지말고
백미러도 보지말고 빠르게 그 도로를 벗어나세요."
"혹여나 태우려는 생각은 절대 하지 마세요. 그건 사람이 아니라 귀신이니까요.
망자중에서도 도깨비의 저주를 받은 망자는 살아있는 자가 어떠한 자든 반드시
저승길로 데려가려 할 겁니다."
"이상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거꾸로 행동하는 사람?
난 저번에 이사장과의 저녁약속자리에서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글쎄 그 귀신이 분명 반대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는데 거리가 오히려 가까워 지더라니까??"
다시 등줄기에 소름이 돋았다.
그래서 형수님은 내가 이 얘기를 하자 그렇게 신기한 표정으로 봤던건가?
이제서야 왜 형수님이 일단 이야기를 먼저 들어보라고 한 건지 이해가 되었다.
근데...도깨비의 저주를 받은 망자라는건 대체 뭐지?
귀신에도 종류가 있나? 그 영화에서나 나오던 그 끔찍한 원귀를 말하는 것인가?
본래 나는 이런 분야엔 관심이 없어서 이것이 무엇을 뜻하는 건지 당최 알 수 없었다.
순간 나는 지금 내 모습이 어떨지 궁금해져 고개를 돌려 옆쪽 거울을 바라보았다.
술기운으로 드려진 붉은 홍조는 어느새 사라지고 내 얼굴은 식중독이라도 걸린 것 마냥 창백해져 있었다.
"왁!!!!!!!!!!!!!!"
"와 씨!! 뭐야!!!!!"
나는 옆에서 갑자기 들리는 큰 비명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 그만 노트북을 위로 던져버리고 말았다.
노트북은 낮게 붕 뜨더니 이내 바닥에 쿵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와나!! 이 x친놈이!! 얌마 그 노트북이 얼마짜린줄 알어???"
"아니!!! 미쳤어요??? 갑자기 옆에서 튀어나와갖곤!!!....하 심장떨어지는줄알았네 진짜!!"
날 놀래킨건 방금전까지도 시체처럼 뻗어있던 성진이 형이었다.
형은 항상 이런식이었다. 술을 먹다 어느새 시체처럼 뻗어버리곤 어느정도 시간이 흐르면 갑자기
벌떡 일어나서 다시 술을 마셔대곤 했다. 내 인생에서 가장 특이한 주사를 하는 인간을 뽑으라고 하면 단연코 이 인간이다.
"너 오늘 좀 이상하다? 평소엔 이런거에 눈하나 꿈쩍 안하던놈이 오늘은 갑자기 왜 이렇게
소스라치게 놀라냐?응? 해도 다 안졌는데 귀신이라도 봤냐??"
형은 의아하다는듯이 바닥에 널부러진 노트북을 바로세워 그 곳에 활성화된 창을 보더니 이내
그 특유의 높은톤의 키득키득 거리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푸하하하하하하!! 천하의 강준혁이 내가 알려준 괴담을 보고는 완전 넋이 나가버렸구만???!!
야! 너 귀신 안믿는대매~본적도 그런거 느껴본적도 없대매??"
"그런적이 없다는거지 그게 안무섭다는 건 아니잖아요!"
"어...?그건 그렇네...쩝..암튼 이 이야기 다 읽어본거냐?"
"...네"
"어때? 좀 무섭지? 그치?"
"아니 뭐 무섭다기보단 솔직히 좀 딱하네요..."
"맞아. 참 안됐지. 뭐 이게 실화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아이고 우리 마누라 쫄딱 젖었네 어딜갔다왔어? 우산도없이."
현관문을 바라보니 후드만 입고 나갔다가 온몸이 빗물로 젖은 형수님이 들어와 있었다.
"참, 갑자기 비가와서 어제 옥상에 널어둔 이불들을 걷으러 갔는데 글쎄 이놈의 이불들이
사방에 널부러져 있는거 아니겠어요? 분명 비는 와도 바람은 안불었는데 집게로
꼼꼼히 집어둔 이불들이 무슨 태풍이라도 분 듯이 옥상 사방팔방에 널부러져 있더라니까요."
"덕분에 다시 더러워진 이불 기왕 나간거 세탁소까지 가져가서 맡겨버리고 왔죠 뭐."
"그래? 또 애x끼들이 옥상가서 장난치면서 이불을 막 널부러뜨렸나보지 뭐"
"어휴 짜증나...! 아, 근데 준혁씨는 글 다 읽어보셨어요?"
"아, 네. 다 읽었습니다."
형수님은 짜증이 난 표정을 풀더니 어느새 상냥한 표정으로 살짝 웃으며 말했다.
"제가 이런 얘기를 엄청 좋아하거든요~호호~ 그래도 꽤 재밌었죠?"
그러더니 젖은 후드를 현관앞에 탁 벗어두고는 갑자기 나에게 다가와 근처에
착!하고 붙으며 귀엣말로 속삭이기 시작했다.
"사실 우리집에 지니고있으면 귀신들로부터 보호해주는 아주 강력한 부적이 있는데
가져가실래요?? 새 집이 도깨비도로 바로 옆이라면서요?네?네?"
나는 순간적으로 다가오며 말을하는 그녀에게 당황하며 손사래를 쳤다.
"아, 아닙니다...저한텐 그냥 무서운 이야기일 뿐 전 이런걸 안믿는 타입이여서 하하.."
우리는 어느새 이 이야기는 까마득하게 잊고 다시 즐거운 술판을 벌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간이 또 얼마나 흘렀는지 어느새 해는 모습을 감추고 완연한 어둠이 찾아왔다.
형수님은 많이 피곤했는지, 노을이 지기 시작할 떄 부터 이미 깊은 잠에 빠져있었다.
"하~~오늘 정말 잘~마셨다. 우리 언제 또 이렇게 마셔보냐??"
"뭐 다음주에 계약서 쓰고 바로 새 집으로 이사할거니까 그 때 집들이오시면 또 먹죠 뭐"
"오~그럴까?? 그럼 날을 미리 비워둬야겠군. 오늘 우리집에서 자고갈거냐?"
"그러고 싶긴 한데...내일 또 브리핑하러 가봐야 돼서 집은 가야겠네요."
"그러냐? 야 그건그렇고 니네 새집이야기나 좀 해봐라. 방은 몇개야??"
"그러니깐..."
그렇게 대화하다 어느정도 시간이 지났을까...나도 잠시 정신을 놓고 잠이 들었다
꺤 것 같았다. 시간은 어느새 밤 10시 정각을 향하고 있었다.
고개를 돌려 형쪽을 바라보니 형은 이미 술이 다 깼는지 멀쩡히 소파에 누워
손님들에게 받은 서류를 검토하고 있는 듯 했다.
"일어났냐? 그냥 아침까지 계속 잠자지 그랬냐. 아, 맞다 내일 브리핑있댔지?"
"그럼 슬슬 대리불러서 가야지. 대리불러줘??"
형은 옆에있는 집 수화기를 들어 능숙하게 번호를 눌렀다.
번호를 외우고 있는 것을 보니 한 두번 불러본 솜씨가 아닌 듯 했다.
딸칵!
"야 5분내로 온다니까 바로 내려가야겠다. 그럼 다음주에 보자?"
"네. 아, 근데 형...그 괴담말인데요..."
나는 갑자기 머리속에서 무언가 한가지 의문점이 생겨서 말을 했다.
"뭔가 좀 이상하지 않아요?"
"또 뭐가~"
"마지막 부분에, 도깨비도로에서 행동을 거꾸로하는 사람을 보면 조심하라고 하는데,
원래 도깨비도로라는 곳이 그 이름이 붙게 된 이유가 그냥 도로가 착시를 일으켜서
내리막길이 오르막처럼 보이는 것 뿐이잖아요."
"게다가 이 괴담의 배경은 1960년대인데, 제가알기로 도깨비도로는 1980년대쯤에 발견된 것으로 아는데..."
확실히 이상한 점이 많았다. 도깨비도로라는 명칭은 무슨 초자연적인 현상이 발생해서
붙여진 이름이 아니라, 단순한 착시현상 때문에 붙여진 도로명이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이 도로가 도깨비도로라고 불린것은 불과 30년전, 50년이 더 된 과거에도
이 도로가 도깨비도로라고 불렸을리는 없잖은가?
내가 이렇게 질문을 해놓고 혼자 생각을 할 때, 형도 형답지않게 진지하게
무언가를 곰곰히 생각하는 듯 하더니, 이내 인상을 억지로 찌푸려가며 나에게 말했다.
"야! 그걸 내가 어떻게아냐?"
나는 괜시리 짜증을 내는 형을 보고는 피식 웃곤 현관문을 나섰다.
대리기사는 어느새 아파트 1층 현관에 와 있었다.
나는 대리기사에게 가볍게 목례를 하고는 내 차 보조석에 앉았다.
성진의형의 집에서 잠깐 자둬서 멀쩡할 줄 알았는데,
차에 오르니 사라졌던 술기운이 다시 오르며 몸이 급속도로 피곤해지기 시작했다.
"어디로 모실까요??"
"밸리지아 201동이요............"
나는 갑자기 밀려오는 노곤함에 차에 타자마자 흐늘거리는 목소리로
목적지를 말하고는 이내 목을 뒤로 젖히곤 눈을 감았다.
..................................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나는 게슴츠레 눈을 떴다. 피곤함이 아직 완전히 가시지 않아서였는지
눈꺼풀이 무거워 눈을 제대로 뜰 수 없었다. 몸 역시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축 늘어져있는 상태였다.
차는 아직도 깜깜한 도로 한복판을 달리고 있었다. 이상하게 주변엔 지나가는 차 한대도 보이지 않았다.
'이놈의 비는 그칠 생각을 하지 않는군....그나저나 꽤 오래 달린거 같은데 아직도 도착을 안한건가?
게다가 이상하네...끽해봐야 10시정도일텐데, 원래 이 시간에 도로에 차들이 이렇게 없나?'
나는 고개를 살짝 돌려 대리기사를 바라봤다. 대리기사는 라디오에서 나오는
요즘 유행하는 걸그룹 노래를 따라 흥얼거리며 운전을 하고 있었다.
'생긴건 한주먹 하실거 같은데, 저런노래를 흥얼거리니 묘하구만.'
나는 다시 고개를 살짝 반대쪽으로 돌렸다.
내 눈에 차의 오른쪽 백미러가 눈에 들어왔다.
순간 나는 무언가가 상당히 부자연스럽다는 것을 느꼈다.
대리기사가 부르는 노래가 뭔가 이상했다.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었다.
마치 가사를 거꾸로 부르는 것 같은....
상편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