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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깨비도로 - 과거편
게시물ID : panic_8713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Naks
추천 : 11
조회수 : 3250회
댓글수 : 6개
등록시간 : 2016/04/08 03:4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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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괴담의 저작권은 Naks에게 있으며 무단 펌, 배포를 절대 허용하지 않습니다.

생전 처음써보는 괴담입니다. 미숙한 점이 많으니 양해 부탁합니다.



요즘 지역경기가 참 좋아졌다.

다 죽어가던 제주도 경제가 관광객들의 대거 유입으로 급 부상해 나날이 땅부자들이 늘어나고 
여기저기서 하루가 머다하고 건축물들이 올라온다.

"뭐 그 덕택에 나도 돈 맛좀 보고 있긴 하지"

나는 새로 뽑은 내 붉은색 아우디 컨버터블의 핸들을 살짝살짝 흔들며 흥에 겨운듯 도로를 주행하고 있었다.

"평소에 외제차~외제차~ 노래를 부르던 놈이 진짜로 몰고다니니까 기분이 그리도 좋냐?"

보조석에 앉아서 덥다는 듯 셔츠를 반 가까이 풀어헤치고 한쪽발을 차 위에 걸쳐놔 
삐딱한 자세로 나에게 말을 거는 이 사람은 나보다 2살 많은 오성진이라는 형이다.

이제 막 신혼 2년차에 접어든 성진이형은 원래 제주도 출신이 아니었다.

뭐 요즘 젊은사람들이 그렇듯, 이 형도 물 좋고 공기 좋고 바다와 산이 있는 제주도가 그렇게 천국같았다며
결혼과 동시에 이사를 온 형이다.

나는 형의 신혼집을 알아봐주며 친해지게 됐는데, 나랑 나이 차이도 2살밖에 나지 않고 성격도 의외로 잘 맞아
거의 친구처럼 지내고 있는 사람이다.

경기도 외곽지에서 원목사업을 해서 젊은나이에 꽤 큰돈을 만진 모양이다.

"형이야 항상 타고다니니까 모르겠지. 이게 얼마나 부드럽게 잘 나가는데, 가끔 도로를 달린다는것도 까먹는다니까?"

"야, 그것도 길어봐야 3개월이다~나중에 되면 비싼세금내랴, 유지비내랴 어디 긁히지나 않을까 
노심초사할 니 모습이 내눈에 훤히 보인다 깔깔"

나 역시 내가 이렇게 잘 나가는 놈이 될 줄은 몰랐다.
2008년 즈음, 해 먹을게 없어서 뭔가라도 이뤄보자라는 생각으로 따논 공인중개사 자격증이
제주도가 관광객들로 인해 급부상하면서 엄청난 이득을 안겨다 준 것이었다.

땅값은 하루가다르게 치솟았고, 수많은 부자들에게 땅을 소개해주다 보니 어느새 내 통장엔 
억소리나는 어마어마한 금액이 찍혀가고 있던 것이다.

"야 그나저나 준혁이 너 이 근처에 전원주택 하나 계약했다며??? 새끼...진짜 돈좀 많이 벌었나보다?"

형 말대로 부동산이 뛰어오른 덕분에 나는 시내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좋은 위치에 있는 전원주택을 하나 구입했다.

"그건 어떻게 알았대? 뭐..내가 살 집이긴 하지만, 이것도 투자야 투자. 한 2년만 있어봐라.
여기 땅값이 최소 2배는 더 뛸걸?? 그리고 형도 알겠지만 여기 땅값이 얼만데 아무리 나라도 
어디 대출없이 여길 샀겠어? 대부분이 다 대출금이지 뭐"

"얼씨구? 니가 찝은 땅은 뭐 다 올라간다는 보장이라도 있냐? 차라리 부동산 때려치고  
점집이나 차리지 그러냐? 그게 돈은 더 벌거같은데?"

또 형의 툭하면 나오는 비꼼이 시작됐다. 이제 나는 적응이 돼서 저게 별 감정없이 내뱉은 말이란걸 알지만,
처음 친해지고 몇달간은 저런 형의 성격과 말투 떄문에 꽤 다투는 일이 많았었다.

"뭐 집값 안올라가면 형님이 대신 사주시게? 그럴거 아니면 남의 집에 왈가왈부 하지마쇼.
아니 막말로 내가 거래시켜준 형 신혼집도 벌써 시세가 두배나 뛰었잖아. 안그래?"

실컷 쏘아붙이던 형의 입이 쏙 들어갔다. 역시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다.

"그래그래 니 말이 다 맞다. 아오 아주그냥 말만하면 다 이겨먹을려고 어휴....
근데 너, 그 전원주택 주변에 도깨비도로 있지 않냐?"

도깨비도로라...참 오랜만에 들어보는 단어다.
지금은 '신비의도로'라고 그 명칭이 바뀐 도로이다.
제주도 사람중에 이 도로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도깨비도로는 도로의 굴절로 인한 착시현상때문에 마치 내리막길이
오르막길처럼 보이는 반전현상이 생기는 도로다.

이제는 익숙해져 이 길이 그 도로였는지조차 인지하지 못할만큼 신경도 쓰지 않게 된 그 도로.

"어 맞어. 근데 왜?"

"우리 마눌님이 괴담, 미신같은거 엄청 좋아하잖냐~너도 기억나지? 신혼집 처음 들어왔을 때
잡귀 쫓는다고 어디서 요상한부적들 가져와서는 가구들 밑에 덕지덕지 붙여놓던거.
니가 그거보고 학을 떼던게 아직도 눈에 선하다 푸하하하하"

그렇다. 나는 미신같은것을 정말 싫어한다. 특히나 나쁜것을 막는다고 붙여대는 그 부적.
정말 그놈의 종이쪼가리가 무슨 효능이있다고 그 보기만해도 속이 울렁거리는 부적을 붙여대는지
도통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세상에 귀신이 어디있고 초자연적인 현상이 어딨는가? 내 나이가 그리 많지는 않지만
25년 이상을 살아온 나다. 살면서 단 한번도 귀신은 커녕 초자연현상하나 목격하거나 겪은 적이 없었다.

나는 한쪽 손을 핸들에서 뗀 후, 형 쪽으로 말도 마라는 듯 손을 휘휘 저어가며 대답을 했다.

"아니 형도 보면 참 이상한 사람이야. 내 마누라가 그랬으면 난 진짜 대판 싸웠을건데, 
어휴 그 때 진짜 집들이음식 먹는내내 그놈의 부적이 아른거려서 음식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도 몰랐다고"

"이쁘면 다 용서가 돼~뭐 그리고 나도 그런걸 꽤 좋아하는 편이라서 딱히 불편하지도 않고 말이야.
아니 근데 이게 중요한게 아니라 들어봐봐. 우리 마누라가 제주도로 이사오기로 결정한 다음부터
제주도에 관해서 이것저것 알아보다가 제주도 관련 미신이나 괴담을 또 찾아봤었나봐"

"그런데?"

"그러다 어느 괴담사이트 한 곳에 들어갔는데, 제주도의 도깨비도로에 관한 괴담이 하나 있더래."

나는 이런 이야기따윈 믿지 않았지만 살짝 흥미가 돋는 건 어쩔 수 없엇다. 단순한 호기심이었으리라.

"뭐 나도 그때 이사준비하느라 바쁜와중에 마누라가 해준 얘기라 그냥 흘려듣는 정도였긴 했는데,
왜 그 제주도에 516도로 있잖냐"

516도로.jpg

"516도로? 그게 도깨비도로랑 뭔 상관인데."

"아 거 새끼 진짜..암튼 거기서 노역하던 노동자중에 이유 없이 잡혀들어가 범죄자 신세가 된 사람들이
꽤 있었단 말이지. 그 왜 있잖냐. 그 시절에는 막 죄없는 사람들도 말도 안되는 이유로 범법자 만들어서
깜방에 넣고 그랬잖아."

"들어본 거 같긴하네."

"근데 집사람이 읽은 그 글에서, 그 괴담을 쓴 작성자가 말하길, 본인의 아버지가 그 노역자들 중 한명이었다더라고"

"그래?"

"그래. 그래서 아버지가 취해서 집에 들어올때면 항상 그 당시 도로를 만들던 얘기를 아들에게 해줬다나 뭐래나.
본인은 억울하다고. 어느날 이유 없이 빨갱이로 오인받아 잡혀가서 노역을 했다면서 말이야."

"...그 다음엔?"

"아들입장에선 아버지가 술만 먹고 들어오면 허구한날 마룻바닥에 앉혀놓고 그 당시 얘기를 해대니
당사자 본인보다도 더 잘 알만큼 그 때의 일들에 대해서 빠삭하게 알게 된 거지."

"이 516도로 얘기가 왜 나왔냐면, 아버지 자신이 그 당시 강제노역에 동원됐을 때, 
마음이 맞아 친구가 됐던 자기 동료 한명이 있었다고 하더라고."

나는 점점 이야기에 몰입되어가는 것을 느꼈다. 무의식적으로 핸들을 쥐고있던 손에는 어느새 땀이 고여갔다.

"근데 이게 내 시점으로 얘기를 진행하려면 좀 복잡해. 그니까 이제부터 그 작성자 아버지 시점에서
계속 이야기해볼게. 뭔 말인지 알지?"

"알았어요. 해봐요."

"암튼 '이정환'이라는 이름을 가진 그 친구는 인물도 훤칠하니 잘 생기고 성격도 참 쾌활했었거든"

"덕분에 마을여인들은 물론 주변 마을에서도 그 청년을 짝사랑하던 여인네들이 많았었나봐.
잘난놈은 잘난놈들끼리 만난다더니, 다른 마을에서도 예쁘다고 소문난 어떤 여인이랑 둘이 결혼을 했지."

"근데 그 녀석이 아이들을 가르치던 선생님이었는데, 어느 날 무장한 군인들이 교실로 쳐들어와서는
무작정 빨갱이 선동자라고 그 녀석을 그 자리에서 반 죽도록 패고 잡아간거지."

꿀꺽...스스로 삼키는 침 소리가 들릴만큼 난 어느새 이야기에 깊게 몰입되감을 느꼈다.

"녀석이 어느정도 정신을 차리고 회복이 되니, 당시 516도로공사에 강제로 투입된거야.
거기서 나를 만난거지. 그니까 여기서 나라는 사람은 그 작성자 아버지라는거 알지?"

"...내가 그 정도로 이해력이 딸리지는 않으니까 계속 얘기해봐요."

"근데 그 녀석이 자기 마누라랑 자식사랑이 유별났거든. 나야 뭐 결혼도 안했고 부모님도 이제 곧
노환으로 돌아가실 아버지 빼고는 생각나는 사람도 없고 해서 그러려니 했는데, 녀석은 아니었던거지.
그리고 그 녀석의 인내심이 한계에 달했을 때, 녀석이 결심을 한거야."

"무슨 결심?"

"여기를 탈출하겠다고"



"뭐???"


 
 

골목사고.jpg



"야! 스톱!! 브레이크!!"

나도 모르게 골목에서 우회전을 하다가, 옆에서 들려오는 형의 고함소리에 급격하게 브레이크를 밟았다.

급브레이크를 밟은건 그 쪽 역시 마찬가지였다.

형이 옆에서 얘기를 끊고 큰소리로 경고를 하지 않았으면 그대로 그 차와 충돌할 뻔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런 상황보다는 그 이야기가 더 듣고싶다는 생각이 더욱 컸다.

"야, 이 xx끼야! 외제차 타고다니면 다야? 똑바로 안보고다녀???"

상대편 차가 도로에 잠시 멈춰서 창문을 내리더니, 왠 양아치같이 생긴녀석이 삿대질을 해대며 욕을 했다.

근데 니도 외제차잖아...

순간적으로 욱 했지만, 엄연한 나의 잘못이었다.

그 양아치같은 녀석은 그래도 간이 그리 크지 않은 놈인지, 중지를 치켜올리고는 이내 바로 차문을
닫아버리며 빠르게 골목을 도망치듯 빠져나가 버렸다.


해골반지300.jpg


그 와중에도 나는 녀석의 중지에 끼워진 커다란 해골이 박힌 반지가 눈에 들어왔다.
멀리서봐도 꽤 비싸보이는 반지였다.

"야! 이 x친놈아! 갑자기 왜 멍을때려??? 아이고 내 허리...너 때문에 허벅지 찢어질뻔 했잖아 임마!"

아까부터 짜증나게 내 신차에 자신의 맨발을 턱 하니 올려놓고 삐딱하게 앉아있던 성진이형이
결국 봉변을 당해 나에게 투덜거렸다.

"아 미ㅇ...아, 아니 그러게 누가 안전벨트도 안하고 남의 차에 그렇게 한쪽 다리 올려놓고 타래요?
사고라도 나면 차주 아주 엿먹어보시라고 작정을 했어 아오..."

사과를 하려다 순간적으로 나도 지지않고 말대꾸를 했다.
잠시 골목의 빈 자리에 차를 주차해놓고 우리 둘은 항상 하던대로 5분여간
서로 옥신각신하며 말 싸움을 이어갔다.

"어휴 야 우린 맨날 만나기만 하면 이러냐. 됐다 됐어 그만하자"

"뭐 우리가 하루이틀 이러나..."

분위기가 어느정도 다시 회복되고나니 잠시 잊고있던 그 이야기의 궁금증이 다시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나저나 아까 갑자기 왜 그랬냐?"

"나도 몰라요...그 얘기 듣는데 갑자기 머리속에 뭔가가 떠오르는 느낌이 나서
나도모르게 집중하려다 그런거 같은데...암튼 지금은 뭔지 감도 안잡혀요.
떠오르려는 순간 형이 소릴질러서."

"..."

"그나저나 그 얘기나 계속해봐요"

"흠...어디까지 얘기했더라? 아, 그래!"
 

한 편 영화의 줄거리를 듣는 듯 했다.

왜 전쟁영화나 독재정권 당시를 그려낸 다큐, 드라마를 보면
이런 비슷한류의 전개가 펼쳐지는 이야기들이 꽤 있지 않은가.

어쩌면 그 괴담글 작성자라는 사람이 이런 것들을 많이봐서 짜집기를 해 있었던
것처럼 이야기를 지어내 글을 썼을지도 모를거란 생각도 들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당시엔 왠지 흔히 있을법한 일 같아서 나는 조금씩 혼동이 왔다.
이게 사실일까...? 아니면 말장난일까...? 하긴 성진이형이 그 진실을 알 턱이 없다.

"나도, 그니까 괴담작성자의 아버지도 어느정도 깡다구가 있었거든. 자신이 이렇게
부당하게 끌려와 노역을 하고있다는 것에 대한 반발심말야. 그래서 친구의 계획에 동참하게돼"

"그렇게 우리 둘은 3월 30일 날 밤 탈출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지."

"탈출은 성공적이었어. 평소 노역자들의 행동을 교대근무로 감시하던 녀석들의 패턴을 철저히 조사했거든"

"녀석들은 홀수날과 짝수날을 나누어 조를 이루는데, 짝수날 밤에 야간보초를 서는 놈들이 좀 어리버리 했거든.
잠도 많아서 보조경계 서다가 꾸벅꾸벅 조는놈도 많았고 말이야."


"경비가 허술할때 도주했군."


"그래 맞아. 근데, 사실 한 녀석에게 발각이 되긴 했었어. 근데 그 군인이 친구녀석의 어릴적 친한
동생이었던거야. 참 운명이란게 기구하지? 자신은 군인신분이라서 평소에도 그 친구녀석을
어찌하지도 못하고 지켜보고 있을 수 밖에 없었던거야."

"사실 언제 경비가 허술해지는지 자세한 내용을 알려준 것도 바로 이 동생이었지.
그리고 탈출할 때도 망을 봐주는 역할을 했었고."

가면 갈수록 드라마틱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납득도 갔다. 제주도라는 땅이 워낙 좁으니
서로가 서로를 외면하고 살아가는 현대에도 제주에서만큼은 한다리 건너면 다 아는사람일 만큼
인맥네트워크가 좁기 때문이리라.

탈출.jpg


"그렇게 야반도주에 성공한 우리는 일부러 포장되지 않은 도로를 따라 달렸어. 군인들이 추적하기 어렵게 말야.
그 녀석이 살던곳과 내가 살던곳은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거든. 우리 옆옆마을 녀석이었던거지.
그 위치가 지금의 이 신제주야.  노형동 말이지."

나는 내가 살고있는 동네가 언급되자 이야기에 완전히 몰입되어버렸다.
516도로에서 노형동까지 걸어서 오다니...현대에 살고있는 나로써는 실감이 잘 안났다.
하긴 옛 사람들은 지방에서 상경할때도 걸어서 서울까지 가곤 했으니...

"그렇게 한 이틀밤날을 내리 도망쳤나...수풀너머로 불빛이 보이더군. 그 불빛을 보자마자 우린 둘 다
그 자리에서 두 다리에 힘이 풀리는 것을 주체할 수가 없었어."

"도착한 그 마을은 내가 살던곳이었어. 난 친구녀석을 데리고 바로 내 집으로 달려갔지.
집 안엔 노환에 자식이 사라졌는지도, 그리고 다시 돌아왔는지도 모르고 언제나처럼 벽만을 바라보는
아버지가 누워있었어. 아마 내가 강제로 끌려갔다 왔다는 사실조차도 기억을 못할거야."

"사실 난 아버지가 돌아가셨을거라 생각했거든. 그런데 다행히도 남은 마을사람들이 노역장에
끌려간 나를 대신해 돌아가며 아버지를 보살폈었던거지."

"나야 뭐 그 노역장에서 빠져나왔단 것 자체만으로도 기뻤지만, 그 녀석은 나처럼 마냥 기뻐할 수 만은 없었어.
빨리 자신의 가족들을 만나고 싶어했거든. 하지만 마을에 도착한 날 우리는 이틀간의 강행군으로 인해
온 몸이 만신창이었고, 어쩔 수 없이 잠을 먼저 자고 동이 트기 전 새벽에 다시 이동을 하기로 했지."

"아니 그러다 추적해온 군인들에게 발각이라도 되면 어쩌려구요?"

"야, 너라면 그 상태에서 그런걱정이 들겠냐? 당장에 한 발짝 디딜 힘도 없었을텐데.
사실 둘 다 내심 이대로 그냥 푹 잠들어 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을지도 몰라."

"...형 근데 마치 형이 근처에서 지켜본것처럼 엄청 감정이입하면서 얘기하시네요."

난 형의 그 놀라운 감정이입 연기에 내심 놀라고 있었다.

"그랬나? 내가 원래 이런 얘기같은거 하면 엄청 맛깔나게 잘 해. 너도 알지? 형이 입담하난 끝내주는거.
형이 술자리에서 분위기메이커 역할 한게 한두번이냐? 여자애들이 내가 입만 열었따하면
홀려들어가는거 너도 여러번 봤잖냐."

하긴 형의 입담은 굉장했다. 듣는이로 하여금 그 이야기가 마치 생생하게 눈 앞에 펼쳐지는 것 처럼
흥미진진 했기 때문이다. 그 특유의 말투가 조금 섞여있어서 더욱 그럴지도 모르겠다.

"암튼, 얘기나 계속해줘요."

"우리는 새벽 동이 트기 전, 녀석의 마을로 이동하기 위해 채비를 갖췄어.
사실 우리 옆옆마을이라 걸어서 한 두시간이면 도착하는 곳이었거든."

"나는 그 사이 든 우정도 우정이었지만, 그 녀식이 그렇게나 애지중지하는 마누라와 자식들이
대체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서 같이 발걸음을 했어."

"그 당시에 지금처럼 재밌는 놀거리나 흥미거리가 뭐가 있었겠어. 
이런거 하나하나가 그 땐 삶의 즐거움이었으니까."

"약 한시간쯤 더 걸어가니, 친구녀석의 마을이 보이더군. 아직도 기억나.
마을이름은 '월동마을'이었어. 달이 밝은 마을이란 뜻인데, 그 마을에선 유독 달이 밝게 보였거든."

"친구는 불빛을 보자마자 오랫동안 유지했던 평정심을 잃고는 무작정 마을로 달려가기 시작했어."

"그 속도가 어찌나 빠르던지 내가 따라잡으려고 같이 달려가다 스친 가지에 옆구리가 찢길 정도였으니.
그렇게 또 이분여를 달리니, 그 녀석이 학생을 가르치던 학당을 지나 어느새 그 녀석의
집 대문으로 보이는 곳 앞에 도착했지."



옛 집마당.jpg


"친구는 덜덜덜 떨리는 손으로 대문손잡이를 잡고 천천히 문을 열었어.
그렇게 x친듯이 전력질주로 집까지 달려가서는, 막상 집 앞에선 도둑놈이
몰래 대문열고 들어가듯 그리 조심조심 들어가더란 말이지."

"녀석은 아마도 헐레벌떡 뛰어가고 싶었겠지만, 그 와중에도 자신의 아이들과
아내가 혹여 이른아침부터 깰까봐 신경을 썼었던 것 같아."


"대단한 사람인데요. 그 와중에도 평정심을 유지하다니...그래서요?"


"조심스레 대문이 열리고 난 후의 그의 얼굴을 아직도 잊지못해.
그의 환희에 찬 눈은 삽시간에 썩은 동태눈깔마냥 흐리멍텅해지기 시작했어.
하지만 그건 나 역시도 마찬가지였을거야."

"왜..."




"대문 앞 마룻바닥엔 그 녀석보다 열배는 더 탁해보이는 초점없는 눈을 하고
머리가 헝클어져 군데군데 멍투성이인 한 여인이 허공을 응시하며 앉아있었거든..."



차안의공기.jpg


차 안의 공기가 답답하다.아마 바깥의 날씨가 아직 다 안풀렸기 때문일 것이다.
벌써 10월인데, 올해의 여름은 이상하리만치 그 여운을 길게 남긴다.

어느새 나는 참 추하다고 생각했던 진성의형의 풀어헤친 셔츠처럼내 셔츠의 윗단추를 
하나씩 풀어재끼며 손으로 소맷자락을 잡아 펄럭거리고 있었다.

의도치 않게 숨통을 조여오는 것 같은 이 이야기가 어쩌면 이 차안의 공기를
더욱 더 숨막히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아니 분명히 그럴 것이다.

"처음에 그 녀석은 왠 x친여자가 남의 집에 들어앉았나 했었어.
그 여인은 어딜 봐도 자신이 알고잇던 아내의 모습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부정하고 싶었던 현실이 다시 부정당하는 데에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지.
그 여인은 녀석이 직접 짜서 아내에게 선물했다던 그 국화장식을 딴 연분홍색 모시옷을 입고 있었거든."

나는 이제 어떠한 말대꾸나 추임새도 넣을 수 없엇다.
어느새 차에 올려논 형의 발은 조용히 아래로 내려와 있었다.

"여인은 대문을 열고 자신의 남편이 왔는데도, 마치 무엇도 보고 느끼지 못한것처럼 
아무런 감정의 동요도 없이 여전히 허공만을 응시하고 있었어. 
넋...이 나가버렸다고들 표현하지? 그 표현이 딱 맞을 것 같아."

"..."

"녀석은 그 충격에서 헤어나오기도 전에 또 다시 가슴 한켠이 요동치는것을 느꼈어.
아이들은...? 딸 주희와 아들 중훈이는??? 그렇게 그 친구놈은 정신이 반 쯤 나간 사람처럼
터벅터벅, 그러나 괴이하게 빠른 속도로 마루를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어."

"그리고 마룻바닥 바로 옆으로 붙어있는 아이들의 방을 들어가려던 찰나, 
녀석은 갑자기 왼쪽 팔을 뻗어 넋이 나간 아내의 어깨를 움켜쥐었어. 움켜쥔손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지."

"내가 보기에도 꽤 꽉 쥐어서 아팠을거라 생각했는데, 그 아내되는 사람은 그런 신체적 자극에도
그 어떠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어. 이건 넋이 나간게 아니라 산 송장이라는 말로 표현하는게 더 어울릴지도 몰라."

"어꺠는 왜 쥐었을까요?"

"그것까진 확실하게 모르겠지만, 내 생각에 그 친구라는 사람은 두려웠었던 것 같아.
아이들마저 어찌됐을까 너무나도 두려워서, 상상하기 싫어서 문을 열기가 겁이 났었던 거지."

"해서 아내와의 신체적 접촉을 통해 평온함을 얻으려 했지만, 되려 그런 행동에도 
어떠한 반응을 보이지 않는 아내를 보고선 공포심과 절망감이 더욱 더 커지지 않았을까?"

"그러..겠네요..."


방안.jpg


"녀석은 무덤덤한 아내를 애써 외면하고는 대문을 열때보다 열 배는 더 조심스러운 손길로 방문을 열었어.
녀석이 너무나도 절망적인 상황을 생각해서 였을까? 멍하니 녀석의 옆을 쫓아가던 나는 심하게 일그러진
녀석의 얼굴이 조금은 펴지는 것을 보았어. 그 곳엔 그 녀석의 아들이 새근새근 잠을 자고 있었거든"

나는 내 숨통을 조여오는 이 기분나쁜 공기가 어느정도 풀리는 것을 느꼈다.
나 역시도 그 사람과 같은 절망적인 결말을 스스로 만들어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근데 이상하잖아...아들놈은 있는데 딸은 어딜봐도 온데간데 없었단 말이지.
근데 녀석은 별로 걱정을 하지 않는 눈치였어."

"녀석이 나와 노역장에서 같이 일을 할 때, 짧은 휴식시간만 되면 나에게 
해대는 자식자랑이 그리도 유별났는데, 자기 딸은 매일매일 여기저기 꼭꼭 숨어다니며 
이상한곳에서 자곤 해서 자기를 놀래킨적이 한 두 번이 아니라고 했었거든."

"장롱속에 들어가서 자기도 하고, 안방 궤짝 뒤쪽에 숨어서 자기도 하고 말이야.
덕분에 녀석은 매일 아침마다 하는일이 의례 숨어자는 딸을 찾는 일이었지.
그 때에도 그 녀석은 딸이 집안 어딘가에 숨어서 새근새근 자고 있을거라 생각했어."

형은 잠시 말을 멈추더니 몸을 비틀어 뒤쪽에 걸어논 자신의 양복 안주머니로 손을 뻗었다.
이내 담배갑 하나를 빼들곤, 안에 넣어둔 라이터와 담배 한개비를 꺼낸 후 나를 쳐다봤다.

"펴도 되지?"

평소같았으면 또 한바탕 신나게 말다툼을 했겠지만, 이번만큼은 내가 지고들어갔다.

"연기는 밖으로."

"알았어 임마. 나도 상도덕이 있는 놈이야."

잠시 담배를 뻐끔거리든 형은 이내 반쯤 타들어간 담뱃재를 창문밖으로 탁탁 털어내며 말을 이었다.

"이제 녀석은 거칠것이 없었어. 조심스러운 손길보단 빨리 딸아이를 꼭 안아주고 싶다는 생각 뿐이었지.
녀석은 아들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고는 집 주변에 딸이 숨어있을 만한 곳들을 찾기 시작했어."

"장롱, 궤짝 뒤, 뒷간 옆 간이창고, 부엌까지...하지만 온 집안을 샅샅히 뒤져봐도 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어."

"그리고 녀석이 그 모든곳들을 다 돌아보고 나와 함께 다시 아들의 방에 왔을 때,
이윽고 그 동안 신경도 쓰지 않던 것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어."

"...?"


시든꽃f.jpg
 
"아이들 방에 놓여진 작은 책상에는 평소 딸이 즐겨입던 흰 옷이 곱게 접혀 포개어져 있었고,
그 옷 위로는 다 말라 비틀어져 꽃잎이 떨어진 꽃이 몇송이 놓여져 있었지.
녀석과 내가 그 꽃의 의미를 눈치채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어..."

 
 

내 입술도 어느새 이야기 속 꽃처럼 바싹 말라붙어 있었다.

나는 오는길에 들렸던 주유소에서 받은 얼음물을 떠올리고는 컵홀더 쪽을 바라봤다.

더운 내부 떄문인지 생수표면엔 이슬이 몽글몽글 맺혀있었고,
꽁꽁 얼어붙어있던 생수는 마침 딱 먹기 좋을만큼 녹아있었다.

"나도 한 모금 마시자. 너무 열심히 얘기했더니 목이 탄다 타."

나는 먼저 한 모금 마신 후, 무의식적으로 생수표면에 맺힌 이슬들을 한 쪽 팔의 
소매를 이용해 닦아내곤 형에게 건넸다. 형은 그런 나를보며 살짝 웃더니 이내
물을 벌컥벌컥 들이마시기 시작했다.

"한 모금이 아닌데..."

"....토달지마 임마"

난 이미 꽁꽁얼은 얼음빼고는 텅 비어버린 생수통을 바라보며 살짝 빈정댔다.
아직 갈증이 완전히 가시지 않아서였는지 이내 아쉬운 나는
얼음만이 남은 생수통을 다시 받아들고는 빙빙 돌리기 시작했다.

텅 빈 통속의 얼음이 표면과 부딫히며 달그달 달그닥 하는 소리를 냈다.

"친구녀석은 천천히 책상으로 다가가 말라붙은 꽃줄기를 손으로 들었어.
그러자 바스락 거리는 소리와 함께 겨우 줄기에 붙어있던 마른 이파리들이, 
그리고 꽃잎들이 우수수 옷 위로 떨어졌지."

"그 녀석의 속도 이러할까? 아름답게 피어있뜬 그 화려함은 말라 비틀어지고, 
허무한 뼈대만 남은 이 꽃줄기처럼 녀석의 마음도 그러할까?"

"나는 감히 그 녀석의 마음을 헤아릴 수가 없었어"

"드디어 녀석은 그 자리에서 참았던 눈물을 터뜨리고 말았어. 
사람이 극한의 절망에 빠졌을 때 울부짖는 울음소리를 들어본 적 있어?
한이 맺힌 그 소리는 슬픔을 넘어 소름끼치게 무서웠어."

"그래, 난 그떄 녀석의 그 비명같기도, 절규같기도 한 기괴한 울부짖음에 슬픔보단 공포감을 느꼈어."

"세상모르게 자고있던 아들은 갑자기 옆에서 들려오는 짐승같은 울부짖음에 깨어났어.
그리고 그 곳에서 자신의 아비가 세상 그 누구보다도 절망적인 모습으로 울부짖는걸 본 거지.
10살도 채 안되보이는 그 어린녀석이 말이야."

어느새 내 손에 있던 생수통은 컵 홀더에 다시 끼워져 있었다.
언제 이것을 여기다 끼웠는지조차 자각하지 못한 채.

"결국 그 녀석은 옆에서 같이 우는 아들을 꼭 껴안으며 울부짖고는, 곧 탈진해버렸어.
그렇게 의지력이 강하던 녀석이, 노역장에서도 그 누구보다도 악바리같았던 그 녀석이
탈진해버릴지 누가 상상이나 했겠어?"

"그 후 나도 경황이 없어서 어떻게 흘러갔는지 기억이 잘 안나. 
대략적인건 우는 녀석의 아들을 잘 구슬려 다시 재웠다는거, 
그리고 그 옆에 그녀석도 합꼐 눕혀 간호했다는것."

"녀석은 그렇게 해가 질 때까지 내리 깨어나질 못했어."

"딸은...죽은건가요?"

"맞아"

"중훈이란 이름을 가진 녀석의 아들은 해가 중천에 떴을 때 일어 났어.
녀석은 아빠가 돌아온게 마냥 신기하고 또 기뻤는지 신이나서는 나와 이야기 꽃을 피웠어."

"사실 난 녀석의 아내와 딸이 대체 어찌된건지 물어보고 싶었어. 하지만 이제 막 열살이 다 되어가는
꼬맹이에게 그런 질문을 던진다는것은 너무도 가혹한 처사라 생각해 엄두가 나질 않았지."

"녀석은 나에게 한 시간 정도를 붙어 그렇게 이런저런 질문과 이야기를 하더니, 
이내 마당앞으로 나가 나뭇가지 꺾은 것을 들고는 혼자 장난을 치고 놀았어."

"그렇게 땅거미가 지고 밤이 찾아올 무렵, 녀석은 겨우 몸을 추스리며 일어났어.
사실 녀석은 그 이전에도 완전히 기절상태는 아니었던 것 같아. 
내 생각이지만 아마도 녀석은 해가 지기전에 이미 정신을 차렸지만, 깨어난 후에도
믿을 수 없는 작금의 현실에 대해 자신을 이해시키고 타이르는 시간을 가졌던 거겠지."

"내가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녀석이 깨어났을 때 녀석은 놀랍도록 냉정한 모습이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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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녀석은 나의 걱정어린 질문에 대답도 하지 않고 마치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벌떡 일어나서는 
마루를 향해 걸어갔어. 그 곳엔 내가 봐도 신기하리만치 변화가 없는 아내가 여전히 허공을 
응시하며 멍하니 앉아 있었어."

"마침내 하늘은 완전한 어둠으로 뒤덮혔고, 하늘엔 동그랗고 밝은 보름달이 떴어.
달이 밝은 마을이란 이름처럼, 그 녀석의 집 마루에서 바라보는 달은 정말이지 크고 밝았어."

"근데 그 달이...그렇게 소름끼치더라고...왜 보름달을 보면 사람이 x친다고들 하잖아.
난 그 말이 이해가 안됐는데, 그 녀석 집 마룻바닥에서 달을 보고 있자니 이해가 될 것 같더라고."

나는 벌건 대낮임에도 불구하고 무심코 창문 밖으로 하늘을 한 번 바라보았다.
그곳엔 달 대신 눈부신 햇빛만이 준혁의 두 눈을 태워버릴 듯이 강하게 내리쬐고 있었다.

"녀석은 아직까지도 마당에서 나뭇가지를 들고 놀고있는 아들을 슬쩍 바라봤다가 이내 아내의 
등 뒤로 가서 그대로 아내를 꼭 껴안았어. 녀석은 아무말도 하지 않고, 그저 아내를 뒤에서 꼭
움켜안은 뒤, 미세하게 몸을 떨었어. 그래고 그 때였어."

형은 말을 하고있는 본인도 스스로 소름이 돋는지 살짝 어깨를 움찔움찔 거렸다.
마치 순간적으로 오한이 들었을 때 움츠러드는 그런 자세 말이다.

"마치 인형처럼 미동도, 반응도 없던 그 여인이 한참 달이 떠 있는 허공을 응시하더니,
입을 열어 무언가를 말하기 시작했어. 목소리는 약간 쇠를 가는 듯 한 탁한 쇳소리가 났지."

"그녀의 말을 듣고 난 후 녀석은 충격을 받은 듯한 표정을, 나는 알 수 없는 공포감에 휩싸였어."


"그녀가... 무슨 말을 한거죠?"



형은 잠시 침묵하더니, 이내 낮게 목소리를 깔고는 조용히 읊조렸다.





도깨비도로1.jpg


"도깨비도로로 가야해. 남편이 거기서 기다리고 있어.
도깨비도로로 가야해...도깨비도로로 가야해..."




"그렇게 친구녀석의 아내는 자신의 남편이 바로 뒤에서 자신을 껴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남편을 만나러 가야한다는 듯이 같은 말을 중얼댔어."

"그 여자, 정신이 완전히 나갔군요."

"맞아, 자신만의 공간에 완전히 갇혀버린거지. 친구녀석은 몸을 돌려 아내의 정면으로 앉아서는
아내와 마주 본 상태에서 아내의 어깨를 흔들며 격하게 외쳤어."

"뭐여...나 여깄는데 어딜 간다는거여..!! 니 남편 이정환이 여기있잖어!
여보 뭐라고 말 좀 해봐...뭐라고 말 좀 해보라고 이 여편네야...!!"

나는 과연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했을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 찰나의 순간에 
적합한 묘안은 떠오르지 않았다.

"친구녀석은 아내의 눈까지 손으로 까뒤집어까고 뺨까지 때리면서 자신을 보라고 그렇게 외쳤지만,
여자의 눈에는 친구가 보이지 않았던건지, 아니라면 친구라는 것 조차 인지하지 못하는건지 같은 말을 반복했어."

"아니에요...나 도꺠비도로로 가야돼요...남편이 거기서 날 기다린다고 했어요."

"그리고는 그 여인은 집에 있던 작은 등을 찾아 불을 붙이더니 터벅터벅 집 밖으로 나가 언덕을 따라
한라산 방면으로 걸어 올라가려 했어. 친구녀석은 잠시 얼이 빠진 얼굴로 아내의 행동을 가만히 바라보더니,
이윽고 아내 앞을 가로막고는 입을 열었어."

"그 녀석이 이를 악 물고 얘기를 하는데, 어찌나 세게 물었던지 잇몸이 터져 피가 흘러나왔지."

"못 가...아니 못 보내! 당신 남편 이정환이가 여 앞에 있으니 당신은 죽어도 그 곳으로 가면 안되는거여 알겄어?
나는 귀신이 아니라 진짜 살아있는 당신 남편이여!! 그내까 절대 못보내!"


"지켜보는 나 역시도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지. 사람이 넋을 놓아도 저리 사리분별이 안 될 정도로 놓아버리다니,
도대체 그 간 무슨일이 있었기에 저리도 사리분간을 못하는 건지 상상조차 되지 않았어."

"부부간에 고성이 오가자 옆에 있던 녀석의 아들 중훈이가 울어재끼기 시작했어.
나는 그런 두 부부의 모습에서 잠시 시선을 떼고 녀석의 아들을 방으로 들쳐업고가 진정시켰지."

"살아있는 사람이 그렇게까지 될 수 있나요?"

"나야 모르지. 그렇다는데 어쩌겠어. 뭐 치매걸린 노인들도 자식이 바로앞에있어도 
못알아보고 그러잖아? 아마 비슷한 케이스겠지."

형은 다시 말을 이었다.

"결국 그날 밤 친구녀석은 아내를 힘으로라도 제압해 강제로 방으로 데리고 들어갔고, 
나는 한참을 울던 녀석의 아들을 진정시켜 재운 후 옆에서 같이 골아떨어졌지."

"한 집안이 한순간에 완전 풍비박살이 나버렸네요."

"뭐, 그런 셈이지. 근데 진짜 비극은 이제부터가 시작이야. 근데 내가 처음 얘기할 떄 말했지?
이사하느라 바쁜와중이라 제대로 못 들었다고."

"어떄? 어차피 니는 이런 얘기 믿지도 않겠지만 그래도 흥미진진 하지 않았냐?"

나는 순간 짜증과 조급함이 밀려왔다.

"아니 형, 얘기를 여기서 뚝 끊고 가시겠다고? 나 궁금한거 못 참는 성격인거 알죠? 빨리 다음얘기 해봐요."

"야! 너 지금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알어? 벌써 다섯시 반이야 반. 너 여섯시에 손님이랑 브리핑 있다며.
내가 니 일정까지 하나하나 다 체크해줘야되냐? 엉?"

"그리고 형도 오늘 저녁약속 있다 그랬잖아. 궁금하면 내일 주말이니까 우리집오든가!"

아차, 너무 이야기에 몰두하다보니 오늘 일정이 있었다는 것을 깜빡 잊고 있었다.
그래. 아무리 흥미진진해도 괴담은 괴담일 뿐이다. 현실보다 중요한 것은 없는 것이다.

"아, 시간이 벌써 그렇게...그럼 형 어디서 내려드려요?"

"어, 여기서 쭉 가다가 한국병원 사거리 안 쪽 골목있지? 거기다 내려주면 된다."

나는 주차해 있던 차에 다시 시동을 걸고 목적지를 향해 운전을 시작했다.
목적지로 향하는 내내 우리는 기묘한 공기속에서 서로 어떠한 말도 꺼내지 않았다.

평소에 느낄 수 없던 이질적인 공기가 차 내부에 감돌았다.

약 오분여를 달려 목적지에 도착한 후, 형은 차에서 내려 뒷자석을 열고는 자신의 양복을 집어들었다.

문이 닫히고 출발하려는 순간, 형이 보조석의 창문을 똑똑 두드렸다.

"내일...올거냐 우리집?"

"가죠 뭐. 간만에 형수님 요리솜씨도 다시 맛보고 싶고."

"야 그 요리솜씨 보고싶으면 비싼 양주 최소 두병은 들고와라? 그럼 생각해볼게."

"그 정도야 뭘. 콜"

형은 피식 웃으며 얼른 가보라는 제스쳐를 취했다.

나는 차의 핸들을 돌려 약속장소로 향했다. 다행히 늦진 않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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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서 이런식으로 설계를 하고 다시 이 토지를 분할해서..."

손님이 자신이 살 땅의 계획을 읊고 있는 와중에도 나는 나도모르게 멍하니 초점없는 눈을 하고있었다.

"...강사장님?"

"아...아 예?"

"아이고 우리 강사장님이 오늘 많이 피곤하셨나 보요. 내 잘~아는 보약집이 하나 있는데
우리 강사장님 하나 지어서 보내드려야 하겄는디요?"

넋이 나간 내 얼굴 앞에 손을 흔들어가며 날 바라보는 이철호라는 이름을 가진 이 사람은
전라도에서 부동산 투자로 꽤 많은 돈을 벌어들인 땅부자이다.

제주도엔 전라도에서 내려와 터를 잡은 사람들이 상당히 많은데, 이사장도 그 중 한 사람이었다.

얼마 전 좋은 토지를 소개해주고 그 토지의 가격이 많이 뛰자, 날 사장님이란 호칭까지 붙여가며
극진히 모시는 분이 되었던 것이다. 

나 역시도 귀한 손님이었기 때문에 서로에게 사장님이란 호칭을 붙였다.

"우리 강사장님이 이리 기운이 빠져버리면 내가 다 슬프지라. 피로푸는데 아주 좋~~은 곳이
하나 있는디, 우리 사장님 오늘 내가 거하게 쏠탱께 나랑 가서 피로좀 푸실라요?"

"하하, 아 아닙니다. 이렇게 근서한데서 식사를 대접해주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합니다."

"아이고 우리 사장님은 참 겸손하당께요. 내가 이라서 우리 사장님을 겁나게 좋아한다니께?
사람이 알맹이가 꽉 찼어야."

"저...이사장님"

"예?"

"혹시 도깨비도로에 관한 소문 아시나요?"

"와요. 거기 땅에 무슨 문제라도 생겼는가??"

...누가 땅부자 아니랄까봐. 어떤 지역에 대한 얘기만 나오면 바로 부동산과 연관지어 버린다.
하긴, 눈앞에서 중개사가 도로얘기를 꺼내는데 굳이 땅부자가 아니더라도 이런쪽으로 생각하겠지.

"아...아닙니다 그냥..."

"우리 사장님이 뭔가 깨림칙한게 있는 모양인디, 뭔일인디 그라요?"

"사실 지인분이 거기에 얽힌 이상한 소문을 얘기해줘서..."

그제서야 이사장은 자신의 이마를 탁! 하고 치더니 나에게 한방 먹었다는듯이 호쾌하게 웃었다.

"아하~내가 눈치가 드럽게 없었구마~난 또 부동산 얘긴줄 알았네. 지금 괴담 얘기하는거 맞어야?"

"네, 뭐...이상하게 생각하시진 마시구요. 제가 최근에 계약한 전원주택이 그 주변이라서 하하..."

"아~ 그러셨구마~ 근디 도깨비도로라면 워낙 뜬소문이 많은 곳 아니여라? 아, 그러고보니
예~~전에 제주도 토박이 친구놈이 술자리에서 해 준 얘기가 하나 있는디.."

"거시기 뭐였더라...거기서 어떤 여자가 남자를 기다리다 목을 매서 자살을 했다고 했었나?
그때가 4월, 그라서 4월달 어느날 밤만 되면 그 도로에서 머리가 산발인 여자구신이 보인다 했었제?"

"나도 이게 뭔 개소린가 해서 잘 기억은 안나는디, 그거 하나는 기억이 나네.
그 구신을 본 사람들이 처음에는 왠 x친년이 오밤중에 여기를 지나가나 한다는거여."

"근디, 지나쳐서 백미러를 보면 여자는 분명 나와 반대쪽으로 가고있는디, 아니 시방 이상하게 백미러에선
여자가 나랑 점점 가까워 지고 있다고 하는거 아니여라? 분명 여자는 반대방향으로 걸어가는디."


4월...머리가 산발인 여자?

난 등줄기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4월이면...성진이형이 이야기 하던 그 때와 같은 달이야.'

나는 이야기속 두 명의 노역자가 3월 30일날에 탈출을 감행했다는 사실을 기억해냈다.
형이 현재까지 진행한 이야기로는 탈출 한 날로부터 약 4일이 흘렀으니, 시기상으로 4월이 맞았다.

그렇다면 이사장이 말하고 있는 이 이야기속 여인은 그 친구라는 사람의 아내란 말인가?

아직 단정짓긴 너무 이르다.
그 시절 산발한 머리를 한 여인이 한둘이었겠는가.

하지만 난 이 기막힌 우연의 일치에 마음속에서 궁금증이 끝도 없이 번져가는것을 느꼈다.
마치 투명한 물 위에 물감을 스포이드로 한 방울 떨어뜨리듯이, 그 작은 물감방울이 삽시간에 퍼져
내 마음속을 호기심이란 색으로 급격하게 물들이고 있었다.

난 애써 이러한 내 모습을 숨기려고 태연히 스스로를 정돈하고는 평상시의 약간은 냉정한 듯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아, 정말 괴담같은 이야기군요. 반대로가는데 오히려 거리가 좁혀지는 귀신이라니 소름돋네요 하하.."

"내~참 유치혀서 하하하. 뭐 우리같은 사람이 시방 그런걸 믿을린 없지라. 안그라요??"

이사장은 넉살좋은 너털웃음을 지으며 이야기를 끝냈다.
아마 내가 평소의 나의 모습을 되찾은 것을 보고는 끝맺음을 한 것 같았다.

"아이고 우리 사장님. 그나저나 별 희변덕스러운거 신경쓰느라 젓가락질도 못하셨는디 어서드쇼. 다 식어부렀네!"

나는 접시에 음식을 덜어놓고는, 애써 맛있단 표정을 지으며 음식을 꾸역꾸역 우겨넣었다.
이사장은 그런 나를 만족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더니, 이내 자신도 다시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그렇게 우리는 한시간여를 더 있은 뒤 헤어졌다.
사실, 그 과정에서도 내 머리속은 온통 그 이야기에 쏠려있었다.

식당문을 나와 이사장을 배웅한 후 나는 급하게 내 휴대폰을 들어 통화기록을 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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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당장이라도 그 얘기를 이어서 듣기 위해 밤중에라도
형의 집을 찾아갈 기세로 형과의 통화기록을 찾아내 통화버튼을 눌렀다.

'뚜루루루...뚜루루루...고객이 전화를 받을 수 없어 소리샘으로...'

나는 순간 내가 왜 이렇게 평정심을 잃고 나답지 않게 구는지 스스로에게 당황했다.
형은 원래 일을 할 때 전화를 받지 않는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

그렇게 연결에 실패하고 몇 분 지나지 않아 바로 형에게 문자가 왔다.

'무슨일이야. 형 미팅중이야지금'

나는 순간적으로 뭐라해야할지 말문이 막혀버렸다.


'아니 전화가 잘못갔네요.'

'...알았다 내일 보자.'

난 대충 얼버무린 후 답답하게 조여져있던 넥타이끈을 당겨 약간 느슨하게 풀었다.

'그래..밤도 깊었고 한숨만 자고 일어나면 마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잖아.
강준혁. 뭐가 그렇게 급해. 오늘은 집에가서 쉬자.'

난 그렇게 스스로를 타이르고 차를 타 집으로 갔다.


하지만, 유난히도 그날 밤은 잠이 오지 않아 잠을 설치고 말았다.

 

다음 날, 나는 약간은 퀭한 눈으로 일어나 부스스한 채로 가벼운 복장으로 갈아입고
검은색 모자를 푹 눌러 쓴 채, 집 앞 5분거리에 있는 주류마트로 향했다.

마트에서 양주 두 병을 사서 다시 집으로 온 후 거울을 보니, 
간밤에 잠을 많이 설쳤는지 얼굴이 매우 초췌해져 있었다.

'몰골이 말이 아니군...'

난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쉐이빙크림을 짜내 얼굴에 덕지덕지 바르기 시작했다.


"이야~그래도 이놈 양심은 있네? 조니워커 골드라벨?"

형은 나보단 내가 가져온 술이 더 반가운지, 나를 힐끗 보고는 이내 술을 쳐다보며 입맛을 다셨다.

'누가 주당아니랄까봐...'

난 정오가 지나 점심시간이 될 즈음 형의 집으로 향했다.
마음은 이미 아침부터 그 곳을 향해 있었지만, 예의상 점심시간 때 즈음 간 것ㄷ이다.

"야 강준혁이. 간만에 우리집에서 달려보자! 이게 얼마만에 먹는 낮술이냐??"

부엌에서는 형의 아내분이 열심히 음식을 만들고 있었다.

"어머, 준혁씨 오셨어요? 어제 남편한테 대강 얘기 들었어요~
음식준비 다 됐으니 곧 술상 내드릴게요~"

"예, 형수님. 간만에 뵙습니다. 힘드실텐데 적당히 하시고 형수님도 합석하시죠."

"네, 그럴게요."

다행히 형수님도 술을 즐기는 편이라 부담감은 덜했다.

거실에 놓여진 앉은뱅이 식탁에 앉으니, 정면으로 보이는 거실벽 좌측으로 
괴이한 문양이 그려진 부적들이 붙여져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언제봐도 적응이 안되는군...'

난 애써 그곳에 시선을 두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잠시 기다리니, 곧 술상이 거나하게 차려졌다.
성진이형의 눈은 어느새 어린아이처럼 초롱초롱 빛나고 있었다.

잠시 서로 건배를 하고 가볍게 음식 몇 점을 먹으며 2시간정도 일상적인 대화를 이어갔다.
그 후 나는 본론으로 들어가기 위해 주제를 돌렸다.

"그래서 말인데...그 뒷 얘기가 도저히 궁금해서 참지를 못하겠네요."

형은 술을 따른 컵을 한 손에 쥔 뒤, 그 중 검지손가락을 펴서 나를 가르키고는 말했다.

"여보 저거저거 귀신 안믿는다더니 순 허당이야. 어제 그 얘기 듣는내내 
저놈 얼굴이 얼마나 웃겼는지 알아? 푸힛"

"당신도 참..사람한테 손가락질 하는거 아니랬잖아요. 준혁 씨, 어제 어디까지 들으셨다고 하셨죠?"

"아, 그 친구라는 사람이 아내를 들쳐없고 방으로 들어가고 본인도 아들을 데리고 들어간 부분 까지요."

"아, 맞아요 거기까지랬죠. 그럼 그 후 이야기가 궁금하신거죠?"

"...네"

얘기하는 도중 형이 또 다시 끼어들어 한마디 거들었다.

"나보다 실감은 나지 않겠지만 우리 와이프가 정확하게 알고 있으니까 우리 와이프한테 들어라~~알았지??"

그리곤 딸꾹질을 한 번 하더니 이내 바닥에 대자로 누워버렸다.


어쩐지 너무 빨리 달리더라니...

"이이는 무시하세요. 곧 일어날거에요."

"하하, 저도 압니다. 저랑 술 마실때도 항상 저러거든요."

형수님은 살짝 입꼬리를 올려 미소를 지었다.
난 갑자기 어제 저녁 약속때의 일이 생각나 먼저 말을 걸었다.

"아, 사실 어제 제가 고객 한 분과 저녁식사를 하다가 도깨비도로 얘기가 나왔는데..."

난 그때 이사장과 했던 대화내용을 형수님께 말씀드렸다.
형수님은 그 얘기를 듣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안그래도 큰 눈이 더욱 더 커지고 있었다.

"그래요? 그 사람이 그런말을 했다구요??....이거 놀랍네요!"

"예? 그게 무슨..."

"아...!"

형수님은 잠시 호흡을 가다듬는 듯 하더니, 이내 이야기를 시작했다.

"일단 이야기를 들려드릴게요. 그럼 제가 왜 놀랐는지 아실거에요."

"그러니까, 그 다음날 그 친구라는 사람은 사건의 내막을 밝히기 위해
동이 트는대로 마을을 조사하겠다며 나갈 채비를 했어요."




마을모습.jpg

"괴담 작성자의 아버지란 사람은 친구의 아들과 부인을 봐 주며 집에 머물고 있어야겠다 생각했지만,
이성을 잃은 친구가 만에하나 어떤 사고를 칠 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에 같이 나갈 채비를 했죠.
친구가 이성을 잃어버린다면, 통제해 줄 사람은 자신밖에 없었으니까요."
 
"근데 어제까지만해도 정신없이 집으로 달려가느라 몰랐는데, 밖으로 나와보니 마을 분위기가 조금 이상했어요."
 
"친구녀석을 쳐다보는 마을 사람들의 표정이 마치 못 볼것을 봤다는듯이 쳐다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시선을 피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수군거리기도 하고...아무튼 호의적인 모습을 보이는 이는 단 한명도 없었어요."

"친구녀석과 아버지란 사람은 단번에 자신들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이상하다는 것을 알았어요.
하지만 친구녀석은 이 불안한 징조를 어느정도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이 무덤덤한 표정이었죠.
하긴, 이것보다 비교도 안 될 만큼 끔찍한 경험을 어제밤에 했으니..."

"먼저 친구녀석은 최씨라고 부르는 두부집 가게주인을 찾아갔어요.
평소에도 둘의 친분은 매우 두터웠다는걸 노역장에서 익히 들어 알고있었죠."
 
"최 씨는 약간은 상기된 얼굴의 친구가 갑자기 눈 앞에 나타나자, 짐칫 놀라는 표정을 짓더니
곧바로 어두운 표정으로, 그리곤 다시 불편한 표정으로 바라봤어요."

"짧은 순간에 만감이 교차하는듯한 표정이 최씨아저씨란 사람의 얼굴에서 스쳐갔죠."
 

"아니, 자네...노역장에 끌려간 것 아니었나?"
 
"오랜만이요 최씨아저씨...운좋게 거기서 도망쳐 나왔수다"

"..옆, 옆에있는 청년은 누군가?"

"같이 도망친 내 친구요. 뭐, 인사차례는 여기까지하고. 내가 왜 찾아왔는지 아저씨는 아시죠?"


"최씨아저씨는 다시 처음의 그 오묘한 표정을 짓기 시작했어요.
그러더니 친구녀석의 시선을 슬금슬금 피했죠,"
 
"나..난 자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모르겠네."
 
"내 아내..그리고 내 딸!! 정말 모른다고 하실거요?? 사람이 저리 됐는데??!!
제발 뭐라도 아는게 있으면 나에게 말을 해 주소. 제발...!!"
 

"친구는 이내 감정이 격해져서는 얼굴이 시뻘개지며 두 눈에 울분이 찬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어요."
 

"나..난 모르는 일일세! 그러니 더 이상 자네와 할 말이 없네!!"


"당황하는 최씨아저씨의 몸짓과 행동에서 분명히 무언가를 알고있다는것을 확신했지만,
최씨는 뭐가 두려운건지 아니면 걸리는게 있는건지 끝까지 모르쇠로 일관했어요."
 
 
"친구는 복창이 터질 것 같았죠. 알면서도 숨기는데 알아 낼 방법이 없으니 말이에요.
그리고 또 일말의 배신감과 증오가 동시에 일어났어요. 
그만큼 전에는 서로 믿고 의지하며 동거동락하던 사이였기 때문이었죠."


"이보쇼 최씨아저씨...아니 최 씨..내가 만약 이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게 된다면...
그리고 혹여나 최씨가 이 일에 연루된 일이 있다면...그 간의 정따윈 모두 잊고
당신을 가만두지 않겠수다...그렇게만 아시오!"
 
 
"친구는 귀신같은 얼굴로 최씨를 바라봤고, 최씨는 그 모습에 짐짓 얼음장처럼 굳어갔죠."
 
"이보게 정환이...이만하면 됐지 않나. 더 이상 추궁해도 나올 것 같지 않으니 이만 가세."
 
"아버지라는 사람은 친구녀석의 소매를 잡고 얼른 자리를 뜨려고 했어요. 
마치 그 자리에서 칼부림이라도 날 듯한 분위기가 피어올랐기 때문이었죠."
 
"그 후 둘은 마을에서 친분이 있는 사람을 만나는 것을 기본으로, 이것저것을 조사했지만
마을 사람들은 뭔가를 숨기는 느낌만을 풍기며 그들을 배척해, 정보라고 할 만한것을 얻지 못했죠."

"와중에는 그들이 오니 굵은 소금을 뿌려가며 썩 꺼지라는 듯이 박대를 하는 주민들도 있었어요."
 
"그렇게 시간이 흘러 어느새 노을이 붉게 물드려 하는 무렵,
그 둘은 별 성과도 내지 못한 채 다시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어요."
 
"이보게 정환이...나는 도대체 작금의 상황이 무언지 이해가 가질 않네..뭐 내가 자네만큼 하겠냐만은"

"그러게 말일세..저들이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 것은 분명한데..."

"그 때, 그들은 그들이 걷고 있던 언덕길 밑으로 두 명의 사내가 지나가며 무언가를
이야기 하는것을 보았어요. 딱 보아도 시정잡배같은 꼬라지를 한 녀석들이었죠."

"그 곳엔 그 사내둘과 친구와 작성자의 아버지 이렇게 넷밖에 없었기
때문에 그들이 하는 이야기는 또렷이 둘의 귀에 들어갔어요."

"...너 아랫동네에 그 예쁜여자 알지?"
 
"아~ 그 엄청 예쁜 누나? 지금 완전히 정신을 놨던데? x친년이 됐더라고"
 
"키킥 그러게 말이야. 남편은 빨갱이 주동자로 잡혀들어가고, 홀몸이 되어 그리 이 남자 저 남자에게 농락당하더니...
남편하나 잘못 만나서 인생꼴이 그게 뭐람? 딸래미도 죽어버리고, 그 충격에 넋까지 완전히 나가버렸으니..."

"그나저나 참~ 고왔는데 나도 한번 눕혀보지 못한게 아쉽..."
 
"그 청년은 말을 더 이어나가기도 전에 얼굴 한 쪽 턱에 엄청난 충격을 받고는 그대로 바닥에 고꾸라졌어요.
그리고 같이 있던 일행이 놀라 뭐라고 말을 꺼내기도 전에, 남은 한 명도 누군가의 주먹에 의해
코뼈가 으스러지며 그 자리에 쓰러졌죠"
 
"아악!! 내 코!! 누구야 x발!!"


"하지만 그 녀석은 그 말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어요. 
쉴 새도 없이 또 여러번의 주먹이 녀석의 얼굴에 강타했기 때문이죠.
곧 그 녀석은 지렁이처럼 축늘어져 버렸죠."

"그들을 그렇게 만든건 다름아닌 작성자 아버지의 친구였어요.
정환이라는 그 친구는 이미 이성의 끈을 놓아버린 상태였죠."

"처음에 그 얘길 듣자마자 그들을 향해 언덕을 쏜살같이 뛰어가는 그가 
얼마나 빠르던지, 아버지란 사람은 한참 후에야 그 곳에 도달할 수 있었죠."


"헉헉...! 이보게 정환이!! 일단 좀 진정하세! 좀 진정하고...!"

"이거 놔!!! 놓지않으면 자네도 똑같이 만들어주겠어!!"
 
"아버지란 사람은 그 말을 하며 고개를 돌려 자신을 쳐다보던 그 때의 친구 얼굴을 결코 잊을 수 없다고 했어요.
그 얼굴은 마치 악귀...아니 악귀라는 단어조차 순화가 된 단어일 정도로일그러져 있었죠." 

"너무나도 공포스러운 그 표정에 온몸이 덜덜덜 떨렸지만 마냥 이대로는 둘 수 없었어요.
아버지란 사람은 친구의 소맷자락을 더욱 더 꽉 부여잡으며 말했죠."
 
"그...그래! 자네가 지금 여기서 이 녀석들을 묵사발을 만들면 이 사건의 내막은 
미궁속으로 빠질지도 몰라!이 녀석들이 중요한 실마리가 될텐데, 
이 녀석들을 인사불성으로 만들면 대체 자네에게 그 누가진실을 이야기해준단 말인가...!! 제발...!!"
 
"아버지란 사람의 말의 효과는 제대로 먹혀들어갔어요. 
눈을 반쯤 뒤집어 까던 친구는 빠르게 이성을 찾기 시작했죠."
 
나는 너무나도 충격적이고 긴박한 이 이야기 전개때문에, 목이마르다는 신호를 온 몸이 보내고 있는것을 
본능으로 느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물 한잔, 술 한잔 입주변으로 가져다 대지도 못하였다.
 
"그래 자네말이맞아...그래 맞지...내가 자네한테 무슨 못할말을..미안하네"
 
"이 사람아, 내가 자네였어도 그랬을 터이니 너무 개의치 말게. 
그나저나 이 둘을 어찌 할 생각인가??"

"...자네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거 같나?"
 
 
"아버지란 사람은 친구의 반문을 듣고 잠시 고민하더니 이윽고 말을 꺼냈어요."
 
 
"일단 녀석들은 잠시 기절한 듯 하니, 보는 눈이 없을 때 서둘러 자네 집 창고로 옮기세"
 
 

 
 
창고.jpg
 
"원래 얼굴이 어땠는지조차 구분이 안 될 정도로 안면이 피멍으로 퉁퉁부은
두 사내가 정신을 다 차리게 되기 까지는 창고로 옮겨진 뒤에도 장정  두 시간이나 흘렀어요."
 
"한 녀석은 머리에 충격이 가해져서 일시적인 기억상실증도 왔는지
정신을 차리자마자 횡설수설 하기도 했죠."
 
"니...니들 누구야!! 누군데 날 여기묶어둔거야...!!"


"눈두덩이가 심하게 부어 한 쪽 눈을 덮을정도로 튀어나온 그 남자는 자신들의 앞에 서 있는 
두 명의 건장한 장성들이 아무 말도 없자 이내 생각에 잠기더니 기억이 차차 돌아오는 듯 조용히 말했어요."
 
 
"아! 기억났다... 이 xx끼!! 갑자기 언덕에서 튀어와갖곤 다짜고짜 주먹질..."

퍼억!!

"마음 같아선 당장 네 그 역겨운 주둥아리를 찢어버리고 싶지만, 알아야 할 게 있으니 참겠다. 
앞으로 내가 하는 질문에 똑바로 대답하지 않으면 네놈이랑 옆에있는 그 재수없는새끼의 더러운 
주둥이를 남은 인생동안 다시는 나불대고 다니지 못하게 만들어 버릴테니 똑바로 대답해."

"그 양아치같은 녀석은 고개를 돌려 미리 깨어서 덜덜 떨고있는 자신의 친구를 보고는 뭔가 상황이
심각하게 흘러간다는것을 직감했죠. 녀석은 곧 묶여있는 자신의 친구처럼 고개를 떨구고 나지막히 말했어요."
 
 
"원하는게 뭐야...아니 뭡니까?"

"네 놈들이 언덕길에서 떠들어댔던 그 이야기...! 한 여인과 그 여인의 딸아이에
관한 그 이야기. 그 배경에 대해 아는대로 솔직하게 말해라."
 
 
"묶여있던 그 녀석은 순간적으로 온 몸이 경직되는걸 느꼈어요. 자신 앞에 있는 그
사람의 얼굴이 어딘가 낯이 익었거든요. 그리고 그 의문은 점점 확신이 되어갔죠."

"당신...! 설마 그 선생...??"
 
"그래, 그러니 지금 네놈들이 얼마나 위험한 상태인지는 잘 알겠지. 
이제부턴 쓸데없는 말 역시 받지 않을테니 묻는 질문에 대답만해라.
다시 말한다. 어떻게 된 거지?"
 
"나, 난 모릅니다!! 그저 마을에서 퍼지는 소문을 들었을 뿐, 난 아무것도 모릅니다!!"
 
 
"곧 옆에 있던 또 다른 장성 한 명이 거칠게 부러진 각목하나로 사내의 
배를 강하게 강타했어요. 괴담작성자의 아버지였죠."


"어억..!!"
 
 
"네 놈들이 우릴가지고 말장난을 치려고 하는구나. 먼저 깨어난 네 친구놈이 
니가 모든 정황을 잘 알고 있을거라고 했는데...아무것도 몰라???"

"그 말을 들은 그 녀석은 순식간에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하더니 옆에묶인 자신의 친구를 바라봤어요."

"너 이 xx끼!! 친구를 팔아먹어!!"
 
"뭐, 뭐!!! 사실이잖아 이 쌩양아치 꼴통x끼야! 
저... 저기요, 저놈은 다 알고있습니다. 그러니 제발 저는 풀어주시면..!!"
 
"이런 치사한 x끼가...!!"
 
 
"한낱 시정잡배들의 우정은 그 정도가 끝이었어요. 서로가 살기위해 서로를 팔아먹었죠. 
하지만 나중에 깨어난 녀석은 이전에 깨어난 녀석의 고발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이야기를 할 수 밖에 없었죠. 이내 녀석은 분을 좀 삭히더니 풀이 죽은 목소리로 말했어요."

"사...사실대로만 말씀드리면 그냥 보내주시는 겁니까?"
 
"그래. 사실대로만 모든걸 털어놔."

"녀석은 이야기를 할 까 말까 수십번을 고민하며 입만 뻥긋거리다 결국 입을 열었어요.
그리고 그 녀석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는 가히 충격적이었죠."
 
열심히 이야기하는 와중에도 형수님은 내가 목이 바짝바짝 타는걸 느꼈는지,
얼음이 동동 떠 있는 물을 한잔 따르더니 나에게 건냈다. 
 
순간적으로 손가락에 닿는 차가운 물잔의 감촉에 나는 살짝 놀라며 고개를 숙였다.
 
"아, 감사합니다."
 
"아니에요. 목이 많이 타시는 것 같네요."
 
"예...이야기에 몰입하느라..."
 
"호호 그거 칭찬으로 받아들여도 되죠?"
 
"아, 네..."
 
물잔을 들어 안에 있는 물을 순간적으로 들이키니, 차가운 얼음물로 인해
순간적으로 머리가 띵해졌다. 그리고 곧바로 탁해졌던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 찾아왔다.
 
하지만 그 맑아진 정신은 곧 다시 탁해지기 시작했다.
이야기의 충격적인 전말은 맑은 물을 흐리는 미꾸라지의 몸부림처럼
곧 내 정신을 순식간에 불투명하게 물들이기 시작했다.
 
"사실 이제 들려드릴 내용이 다소 충격적이고 비위가 상할 수 있기 때문에 물을
미리 건내드린거에요. 그래도 정신이 좀 트이신 것 같으니 이제 이야기 해 볼게요."

"비극의 시작은 그 여인의 남편이 노역장으로 끌려간 후 한 달이 지난 후였어요..."



형수님이 말해준 사건의 전말은 이러했다.

월동마을 이장에게는 망나니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얼마나 성격이 고약하고 여색을 밝히는지 하루하루 사고를
치지 않는 날이 없었다고 한다.
 
그는 폭력, 갈취, 협박은 기본이고, 잦은 노름에 심한 술주정, 그리고 뭇 여인들이 
그에게 겁탈을 당했다는 아주 안좋은 소문도 공공연하게 다 돌 정도로 인간말종이었는데,
이장의 가문이 워낙 지역구에서 힘이 세고 권력이 컸기 때문에 그 누구도 그 망나니 아들의 
패악질을 막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외아들에 장손인 그 망나니는 어릴때부터 누구의 통제도 받지않았고,
사고를 쳐도 모두 감싸주는 든든한 부모와 조부모, 친척들이 있었다.
 
어느 날 마을에 선남선녀부부가 이사를 왔다는 소문을 들은 그는
그 집을 방문했다가 부인에게 한 눈에 반해버리고 만다.
 
그 후 그는 이장인 자신의 아버지에게 저 여인을 자신이 가지고 싶으니
어떻게든 남편을 떼어달라는 말도 안되는 부탁을 하게된다. 
 
하지만 그 말도 안되는 부탁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금쪽같은 외아들의
부탁이라면 거절을 못하는 이장은 정신나간 계획을 하나 세우게 된다.
 
이장은 은근슬쩍 마을안에 선생님인 그 남편이 아이들에게 이상한 사상을
주입시키고 있다는 말도 안되는 헛소문을 퍼뜨렸고,  당시의 무지몽매했던
마을 주민들은 그 소문에 너무나도 손쉽게 선동되어 버렸다.
 
그 작은 소문은 입소문에 입소문을 타서 삽시간에 마을 전역으로 퍼져나갔고,
결국 신고를 받고 출동한 군인들에 의해 남편은 끌려가게 된다.
 
사람들은 그 누구도 끌려간 남편을 동정하지 않았으며,
도리어 자신들의 아이들을 세뇌시키려고 했다며 그를 거세게 비난했다.
그런 와중에 이장의 망나니 아들은 홀로남은 그의 아내에게 수작질을 했다.
 
하지만 오로지 남편과 아이들만을 바라보며 사는 부인은 그 망나니에게 일말의 관심조차도
주지 않으며 매몰차게 굴었고 결국 그 망나니는 비뚤어진 애정으로 인해 끔찍한 계획을 세운다.

'네년따위가 감히...'
 
어느 날, 마당에서 남편이 선물한 연분홍색 모시옷의 헤진 부분을 손수 짜고있던 부인에게 마을 이장이 찾아온다.
 
이장은 그녀에게 그녀의 남편인 정환이 극적으로 노역장에서 탈출했고, 현재 추적해오는자들 때문에 마을로 
들어오지 못하고 도깨비도로 인근에 숨어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는 희소식을 전하게 된다.
 
낮에는 위험하니 해가 지면 자신과 함께 그 곳, 도깨비도로로 가서 남편을 만나자는 제안을 하고, 
그녀는 날 듯이 기뻐하며 자신이 수선하고 있던 모시옷을 더욱 부산하게 짜고 간만에 환하게 펴진 얼굴로 꽃단장을 하였다.
 
그날 밤, 부인은 일찍 아이들을 재운 후, 등을 들고 이장과 함께 도깨비도로로 향했고, 
약 한 시간여를 걸어 도착한 그곳에서 그녀는 남편대신 기다리고 있던 이장의 아들과 
그 패거리들에게 끔찍한 봉변을 당하게 되었다고 한다.
 
비극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이장의 망나니 아들과 그 패거리는 마을에 그 여인이 남편을 버리고 
이 남자 저 남자에게 꼬리를 치고 다니며 문란한 생활을 한다는 소문을 낸 것이다.
 
결국 화가난 마을의 여편네들이 그녀의 집에 몰려와 돌팔매짓을 하였다.
 
 
'네 년이 감히 우리 남편에게 꼬리를 쳐?!!'
 
'남편은 빨갱이교사에, 아내는 구미호라니! x친년놈들이 따로없구만!!'
 
'우리 마을에 저런 년놈들이 있는건 마을의 수치야 수치!!'

그녀가 갖은 모욕을 당하며 돌팔매짓을 당하던 그 때, 방에서 울고있던 그녀의 아이들이 뛰쳐나와 
그녀를 감싸안아 보호하며 그들에게 하지말라며 소리를 치며 울어제꼈고

그 과정에서 누군가가 던진 커다란 크기의 돌이 딸 아이의 머리에 맞으며 그녀의 딸은
그 자리에서 끔찍하게 머리가 터져 즉사하였다고 한다.
 
결국 그 날을 기점으로 부인은 완전히 정신을 놓아버렸고, 매일 해가지고 밤이 되면 그 연분홍색 모시옷을 입고 
등을 키며 도깨비도로로 남편을 만나러 가야한다며 그 곳을 찾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충격과 분노로 할 말을 잃었다. 어느새 내 손은 얼음만이 남은 물컵을 꽉 쥐고있었다. 
나는 내가 너무 강한 힘으로 컵을 쥐고있다는 사실을 느끼고는 서둘러 손에 힘을 풀었다.
 
아마 조금만 더 세게 쥐었으면, 이 유리컵은 사정없이 깨져서 사방에 파편이 튀었을 것이다.
 
 
"얘기를 모두 들은 작성자 아버지의 친구는 다리에 힘이 풀려 그 자리에 주저앉아버렸다고 해요. 
작성자 아버지는 충격과 차오르는 분노로 자신이 쥔 부러진 그 목각을 손이 찢어지도록 꽉 쥐었어요."
 
"그 목각으로 당장이고 그녀석들의 머리통을 내려치고 싶었지만, 자신에겐 그럴 자격이 없다는걸 
너무도 잘 알았죠. 그는 심호흡을 가다듬고는 자신의 친구에게 다가갔어요."

"정환이, 자네 괜찮은가?"

"...허어억...허억...헉...!!"
 

"정환이란 그 친구는 너무 큰 충격에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할만큼 극심한 통증을
호소했어요. 그는 그렇게 약 십여분간 그의 친구를 진정시켰어요.
이내 친구는 어느정도 냉정함을 되찾고 일어나더니 그 녀석들 앞으로 걸어갔어요."

"지금까지 말한... 이 믿지못할 이야기들이.. 전부 사실인가?..."

"죄...죄송합니다. 하지만 저희는 관련이 없습니다! 저희는 그저 노름하면서 들은 소문으로만 
이 이야기를 알고있을뿐 직접적인 관련은 없습니다! 하늘에 맹세코...!!"

"그래..그렇단 말이지..."

"정환은 자신의 옆에 있던 삽을 들어 그 녀석들의 허벅지를 찍기 시작했어요.
창고안에는 끔찍한 비명이 울려퍼졌죠."

"끄으으아아아아아악!!!!!!!!!!!"

"작성자 아버지는 차마 친구의 그 광기어린 행동을 말릴 수가 없었어요.
그 역시 그들이 죽지만 않는다면, 그들을 죽도록 패고싶은 심정이었으니까요."
 
"그렇게 삽으로 몇번을 내려찍던 친구가 다시 입을 열었어요."

"두부가게... 최씨 알지?... 그 사람도 혹시 이 사건에 연관되어있나...?"

"그들은 의지와는 상관없이 덜덜덜 떨리는 다리를 한 손으로 부여잡고
눈물콧물이 범벅이 된 상태로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하더니,
이내 더욱 더 굳어진 얼굴로 천천히 입을 열었어요."

"그...그 사람. 그 집에 드나들면서 넋이 나간 그 여인을 상습적으로 겁탈했다는 소문이..."
 
 
"순간의 침묵이 흐른 후 다시 작성자 아버지의 친구인 정환의 얼굴이 악귀처럼 변해갔어요."



뻐꾸기.jpg


뎅! 뻐꾹뻐꾹!!
 
 
 
 
급작스럽게 나는 큰 소리에 한참을 집중하고 있던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버렸다.
 
순간적으로 들어올린 내 다리에 부딫쳐 상이 한번 크게 휘청거리긴 했지만, 
신기하게도 상 위의 그 무엇도 흘러넘치진 않았다.

'아, 깜짝이야...간떨어지는 줄 알았네. 아니 요즘 시대가 어느시댄데 뻐꾸기 자명종을'
 
"저희집 오는 사람마다 다 준혁씨처럼 반응해요."
 
형수님은 그런 나를 보며 소리죽여 웃더니 이내 옆머리를 귀 뒤로 넘기며 자세를 살짝 바꾸었다. 
난 무의식적으로 그 자태가 매우 고혹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말을 이어갔다.
 
"정환이란 친구는 악귀같은 표정으로 옆에 있던 커다란 낫을 움켜쥐었어요."

"니놈들도, 최씨도, 이장도 그 아들놈도 모조리 죽여주겠다."

"그리고는 자신의 손에 꽉 쥔 낫을 위로 치켜들기 시작했어요.
갑작스런 그의 돌발행동에, 청년 두명도, 작성자의 아버지도 당황했어요. 
그들의 눈에는 자신들이 곧 죽는다는 생각에 형용할 수 없는 공포가 비추는 듯 했죠."
 
"정환이란 친구가 낫을 들어 녀석들의 머리를 찍으려 할 때, 
순간적으로 작성자의 아버지가 그의 들어올린 팔을 양손으로 저지하며 말렸어요."

"이보게 정환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잖은가!!"
 
"또 그 소리군! 이 쓰레기같은 놈들이 정말로 살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나? 이 금수만도 못한 놈들이??!!!"

"그 때, 밖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아들의 말소리가 들렸어요."

"아빠, 어딨어 아빠?"

"그들은 그제서야 집에는 아들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죠."

"중훈이!!"

"정환이란 친구는 순간적으로 정신을 차리고 마당으로 뛰쳐나가기 시작했어요.
작성자의 아버지는 숨을 돌린 후, 공포에 덜덜덜 떨고있는 녀석들을 힐끔 바라보곤
한마디를 하곤 곧 친구를 따라 밖으로 나갔죠."

"입도 뻥끗하지마. 소리내면 정말로 죽인다."

"밖으로 나가 보니 해는 이미 자취를 감췄고 어두운 밤과 함께 쌀쌀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어요. 
4월의 밤은 겨울만큼은 아니어도 꽤나 쌀쌀했죠."
 
"친구의 아들은 잠에서 막 깨어난듯 비몽사몽한 걸음과 반쯤 감긴 눈으로 아빠를 찾고 있었어요."
 
"그런 아들을 본 그 친구는 방금 전 자신이 아들의 바로 근처에서 사람을 죽이려
했다는 것을 깨닫고는 혼란스러운 듯한 표정으로 아들을 꼭 껴안았어요."
 
"그리고 그 때 작성자의 아버지와 정환이란 그 친구 둘은 무언가 이상한 느낌을 받았어요. 
마룻바닥에 앉아 있어야 할 여인이 보이지 않았던거죠."
 
"보이지 않는다면...아! 설마 밤이 돼서 그 도깨비도로로...?"

"네 맞아요. 그 여인은 해가지고 언제나처럼 등불을 켜고 그 도로로 간 것이었어요.
작성자 아버지와 그 친구는 자신들이 벌려놓은 일 들 때문에 그 부분을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던거죠."

"여보...여보!!"

"정환이란 친구는 얼른 방으로 들어가서 여분의 등불을 들고는 아들을 둘러업고 도깨비도로로 향하기 시작했어요.  
작성자의 아버지역시 순간적으로 사고회로가 막혀버렸는지 무작정 친구를 따라 나서기 시작했죠."

"이봐! 정환이 같이갑세!!"

"그때까지 그 둘은 몰랐어요. 그 날 밤이 일생일대에 가장 끔찍한 날이 될 줄은요."

끔찍한 밤...? 지금까지 들려주었던 이 이야기보다 더욱 더 충격적인 결말이 존재한다는 것인가?

나는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믿어야 할 지 감이 오질 않았다.
또한 어떻게 이보다 더한 잔혹사가 있을지조차 짐작할 수 없었다.

다시 목이 타들어갔다. 이번에는 잊지않고 옆에있던 얼음이 담긴 위스키잔을 단숨에 비웠다.
목이 시원해지는 청량감과 동시에 뜨거운 알콜의 기운이 가슴속을 태울듯 들어왔다.

 

"그날 밤, 탈주자들을 찾아 수색하던 군인들이 그 마을에 도달했어요."




툭...투둑..투두두두둑 투둑! 투둑툭!...툭툭!

오전까지만해도 햇빛이 쨍쨍나던 일요일이었는데 어느새 창문에는 빗방울 부딫치는 소리가 요란하게 나기 시작했다.
 
"어머 비가오네?"
 
그녀는 창문을 통해 잠시 흐려진 하늘을 바라보더니 이내 무엇인가가 생각난 듯이 말을 했다.
 
"저기 준혁씨, 죄송하지만 제가 어제 아파트 옥상에 이불빨래를 넣어놨거든요. 걷어내고 와야될 것 같아요."
 
"아, 신경쓰지마시고 다녀오셔도 됩니다. 혹시 제가 도와드릴게...?"
 
"아니에요. 저는 거의 안마셨으니 제가 몇번 수고하면 돼요."
 
그러더니 그녀는 무언가가 생각났다는 듯이 방에 들어가서는 노트북 가방을 들고왔다.
 
"여기 노트북 바탕화면에 '도깨비도로 괴담'이라고 저장되어있는 텍스트파일을 클릭하시면 
그 이야기에 대한 모든 것이 들어가있는데, 제가 다녀오는동안 읽어보시겠어요?
아무래도 직접 글을 읽으시는게 더 자세할 것 같아서요."
 
"아, 그래도 됩니까?"
 
"물론이죠. 그럼 저는 다녀올게요."
 
"예..."
 
그녀는 다시 방으로 들어가 방수코팅된 후드자켓을 대충 걸치고는 아파트 옥상으로 향했다. 
나는 어느새 부팅이 다 되어있는 노트북 바탕화면에서 그 텍스트파일을 찾아 클릭했다.
 
글은 꽤 장문의 글이었다. 대부분의 내용은 내가 성진이형과 형수님께 들은 이야기와
거의 동일했기에 나는 망설임없이 스크롤을 내려가며 내가 듣지못한 곳의 부분을 찾기 시작했다.

 
드륵...드르륵...

"아 여기군"
 
나는 군인들이 마을에 도달했다는 그 지점을 찾아내었다. 그리고 글을 읽기 시작하였다.

《ㆍㆍㆍㆍㆍㆍ 우리는 한참을 걸어갔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찾을 수 없었다.
아마도 그녀는 이장이란 작자의 안내를 받아 이 곳으로 올 때, 군인들의 눈을 피한다고
포장이 되지 않은 길로 온 듯 했다. 정환의 표정은 굳어있었다. 그 어느때보다도 굳어있었다.

나는 그를 따라가는 동안에도 이 사건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보고 있었다.

만약...만약 그녀가 그 위치에서 정환을 만난다면...?그렇다면 뭔가 변화가 생길 수 있을까? 
나는 순간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어떠한 생각이 떠올라 심각하게 굳어있던 그에게 말을 건냈다.

"이봐 정환이. 자네 아내가 항상 도깨비도로에 자네를 만나러 갔다가 돌아온것이라면,
혹여나 그곳에서 자네를 발견하지 못해서 돌아오는것이 반복되는 것이라면,
그곳에 자네가 있을때는 어떻게 되는거지?"

굳어있던 표정으로 묵묵히 걸어가던 그의 발걸음이 일순간 멈췄다.

그는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는듯 하더니 미세하게 몸을 떨기 시작했다.
굳어있던 얼굴은 무언가 한줄기 희망의 빛을 본 듯 서서히 풀리고 있었다.

"맞아..! 내가 만약 그녀보다 더 먼저 그곳에 도착해서 그녀를 마주한다면,
그녀가 그 곳에서 날 본다면, 나를 알아볼지도 몰라!"

그는 곧 자신의 아들을 나에게 맡기고는 말했다.

"고맙네 친구, 정말로! 내 부탁하나만 함세. 나는 먼저 그 곳에 가있을테니
아들을 데리고 천천히 그 곳으로 와주겠나?"

그는 그렇게 말하고는 내가 뭐라 대답하기도 전에 언덕을 따라 뛰어가기 시작했다.

나 역시도 혹시나 하는 기대감에 녀석의 아들을 허리춤에 꼭 끌어안고는 녀석이
먼저 지나올라간 길을 따라 올라가고 있었다.

그렇게 십여분 쯤을 더 갔을까...


사박사박... 사박...저벅저벅


나는 주변에서 여러명의 발소리가 숲을 헤지며 이동하고 있는 소리를 들었다.
처음에는 혹시 그의 아내가 이 근처에 있는것인가 생각했지만,
이내 그 생각은 접게되었다. 

한명의 발소리도 아니었거니와, 그 보폭은 절대 여성의 것이 아니었다.
묵직한...마치 구둣발로 숲을 짓이기며 걷고있는듯한 소리.


군인들수색.jpg


생각과 판단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나에겐 너무나 익숙한 소리였다. 
나는 그 소리가 군인들이 무언가를 수색하고 있는 소리라는 것을 직감했다.

그리고 그 대상이 우리들일 것이란 생각에 미치자, 일말의 망설임 없이
길을 벗어나 숲으로 몸을 던졌다.


"분대장님! 방금 무슨소리 못들으셨습니까?"

"무슨소리?"

"방금 도로변쪽에서 숲으로 들어가는 듯한 소리가 났습니다!"

"확실해? 이 근처에는 노루가 아주 많다. 노루소리 아니야?"

"노루는 이동하면 지속적으로 숲을 헤지는 소리가 나는데,
방금 그 소리는 숲으로 들어간 이후 그런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뭐야? 위치가 어디야!"

"저쪽입니다!"

"분대원들 지금부터는 빠르게 이동해서 탈주자를 찾는다. 
늑장부리는놈은 복귀해서 좋은 꼴 못볼줄알아!"


거리가 가까워서 그랬던지, 그들의 대화소리는 내 귀에 똑똑히 들려왔다.
그들은 그들나름대로 소리죽여 얘기를 나눈 듯 하지만, 
이 적막한 숲에서는 그마저도 생생히 들려왔다.


나는 중훈이에게 절대 소리를 내지 말것을 강조하며 옆쪽에 홈이 깊게 패인
작은 동굴 같은 돌구덩이 속에 몸을 숨겼다. 친구의 아들녀석을 대리고 이 곳에서 
무작정 도망을 쳤다간 십중팔구 녀석들의 포위망에 걸릴것이 분명했다.

나는 중훈이의 입을 틀어막고 죽은듯이 숨을 쉬며 서 있었다.
주변에서 숲을 탐색하는 소리가 나며 점점 이곳으로 가까워 지는 것을 느꼈다.

결국 이대로 죽는건가?라고 생각할 무렵, 하늘이 도왔는지 내 근처에서
작은 새끼노루가 튀어나왔다.


꽤엑!!!!


"으악!! 뭐야?? ....이거 새끼노루잖아?"

"이런 씨발...! 가뜩이나 본대에서 감시소홀로 우리를 잡아먹지 못해서
안달인데, 노루새끼를 사람을 착각해서 시간까지 지체시켜?"


곧 군홧발로 누군가가 채이며 내는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악!"

"너 이새끼. 복귀하면 보자. 다시 이동해! 마을 사람들의 제보에 의하면
그 녀석들이 아직 그리 멀리 도망치지는 못했을 것이다! 알겠나!"


그들은 소리죽여 대답한 이후 다시 길을 따라 올라가기 시작했다.
나는 지금 이 상황을 어찌해야 할 지 몰랐다.

분명 저 녀석들이 올라가면 정환이와 그의 아내를 발견할 확률이 높을 터였다.
하지만 내 발걸음은 쉽사리 떨어지지 않았다.

나는 비겁했었는지, 그 때에 녀석과 녀석의 아내의 안위보다는 내 목숨의
안위를 더 걱정했던 것 같다.

"중훈아. 우리는 이제 동이 틀 때까지 이곳에 있어야 된다 알겠지?
네 아버지랑 어머니는 무사하실거다. 분명."

난 바람이 들지않게 주변에 있는 돌무더기들을 소리나지않게 조심조심
동굴입구에 쌓아놓고는 중훈이를 꼭 껴안았다.

'여기서 움직이면 죽는다.' 

내 머리속엔 온통 그 생각 뿐이었다. 나는 비겁했고, 살고싶었다.


그렇게 체감상 한 시간쯤 시간이 흘렀을 때, 저 멀리서 총소리가 울려퍼졌다.
나는 참지못하고 울음을 터뜨리는 중훈의 입을 틀어막고선 애써 귀를 막았다.

'아닐거야 아닐거야 아닐거야...'

총소리는 몇번을 더 울리더니, 이내 숲은 다시 잠잠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또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하늘은 점점 검은색에서 짙은 남색으로,
그리고 회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동이 트려하고 있었다.

중훈이는 어느새 나의 무릎을 배게삼아 쓰러져 잠들어 있었다.
나는 조심히 녀석의 머리를 바닥에 뉘이고,
입고있던 두터운 외투를 벗어 녀석에게 덮어주고는 조심스레 동굴밖으로 나왔다.

주변은 한참전부터 고요해져 있었다. 아직 추운 날씨 때문인지
새벽이슬이 차갑게 맺히며 옅은 안개를 자아냈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길을 따라 천천히 도깨비도로로 향하기 시작했다.
그 곳은 머지 않은 곳에 있었다. 

십분여를 걸어 올라가니 나무팻말이 보였다.

「도깨비도로」

나는 잠시 발걸음을 멈췄지만, 이내 다시 발을 떼어 앞으로 이동했다.
이제 이 곳에는 아무도 없다는 그 안정감이 내 발을 움직이게 했다.


그렇게 다시 오분쯤을 더 갔을까...?
 
 

옅은 안개사이로 무언가 길다란 것이 나무에 매달려 왔다갔다 하는 것이 보였다.
나는 아직 누군가가 남아있는 줄 알고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느낌을 받았지만,

곧 그것이 위협적이지 않은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곳엔 위협따위를 훨씬 넘어서는 소름끼치는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벚나물ㄹ.jpg


그 나무가 있는 곳엔, 전신에 총구멍이 난 형체를 알아보기 힘든
남자의 시체 한 구와, 그 옆으론 온 몸이 시퍼렇게 멍들고 혀는 허리까지 쭉 뺀
속옷만 입은 한 여인의 시체가 나뭇가지에 목이매여 데롱데롱 흔들리고 있었다.

연분홍색 모시옷을 꼬아 만든 줄에 매달린채....                                             》





사건의 전말은 거기까지가 끝이였다.
 
후의 이야기는 작성자의 아버지가 지금까지 겪었던 충격적인 일 및
추격하는 군인때문에 제 정신을 유지하기 힘들어 정환이라는 사람의
아들을 동굴속에 재워논것도 잊어버리고 무작정 몇날몇일을 도망만 쳤고,

그렇게 여차저차 정신없이 도망쳐 현재 중문관광단지로 유명한 색달동에 도달하여
그 곳에서 몸을 숨기며 살아온게 현재까지 이어졌으며
 
작성자의 아버지는 몇 년 간은 매일같이 끔찍한 악몽에 시달려야 했고, 
그로인해 하루하루를 술이 없으면 버티지 못하는 반 폐인이 되어서 전전긍긍 하루하루를 살다 
여차저차 작성자의 어머니를 만나 결혼을 하고 그 곳 중문에서 살림을 차려 현재까지 살고있다고 나와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대목에는 놀라운 사실이 적혀있었다.
 
"혹시나 도깨비도로에 가시는분은 4월, 특히 저녁 9시 이후를 조심하세요.
만약 그 곳에서 행동을 거꾸로 하는 사람을 본다면, 절대로 뒤도 돌아보지말고
백미러도 보지말고 빠르게 그 도로를 벗어나세요."

"혹여나 태우려는 생각은 절대 하지 마세요. 그건 사람이 아니라 귀신이니까요. 
망자중에서도 도깨비의 저주를 받은 망자는 살아있는 자가 어떠한 자든 반드시 
저승길로 데려가려 할 겁니다."

"이상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거꾸로 행동하는 사람? 


난 저번에 이사장과의 저녁약속자리에서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글쎄 그 귀신이 분명 반대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는데 거리가 오히려 가까워 지더라니까??"

다시 등줄기에 소름이 돋았다. 
그래서 형수님은 내가 이 얘기를 하자 그렇게 신기한 표정으로 봤던건가? 

이제서야 왜 형수님이 일단 이야기를 먼저 들어보라고 한 건지 이해가 되었다.

근데...도깨비의 저주를 받은 망자라는건 대체 뭐지? 
귀신에도 종류가 있나? 그 영화에서나 나오던 그 끔찍한 원귀를 말하는 것인가?
 
본래 나는 이런 분야엔 관심이 없어서 이것이 무엇을 뜻하는 건지 당최 알 수 없었다.
 
순간 나는 지금 내 모습이 어떨지 궁금해져 고개를 돌려 옆쪽 거울을 바라보았다. 
술기운으로 드려진 붉은 홍조는 어느새 사라지고 내 얼굴은 식중독이라도 걸린 것 마냥 창백해져 있었다.

"왁!!!!!!!!!!!!!!"

"와 씨!! 뭐야!!!!!"

나는 옆에서 갑자기 들리는 큰 비명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 그만 노트북을 위로 던져버리고 말았다. 
노트북은 낮게 붕 뜨더니 이내 바닥에 쿵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와나!! 이 x친놈이!! 얌마 그 노트북이 얼마짜린줄 알어???" 
 
"아니!!! 미쳤어요??? 갑자기 옆에서 튀어나와갖곤!!!....하 심장떨어지는줄알았네 진짜!!"
 
날 놀래킨건 방금전까지도 시체처럼 뻗어있던 성진이 형이었다.
 
형은 항상 이런식이었다. 술을 먹다 어느새 시체처럼 뻗어버리곤 어느정도 시간이 흐르면 갑자기 
벌떡 일어나서 다시 술을 마셔대곤 했다. 내 인생에서 가장 특이한 주사를 하는 인간을 뽑으라고 하면 단연코 이 인간이다.
 
"너 오늘 좀 이상하다? 평소엔 이런거에 눈하나 꿈쩍 안하던놈이 오늘은 갑자기 왜 이렇게 
소스라치게 놀라냐?응? 해도 다 안졌는데 귀신이라도 봤냐??"
 
형은 의아하다는듯이 바닥에 널부러진 노트북을 바로세워 그 곳에 활성화된 창을 보더니 이내 
그 특유의 높은톤의 키득키득 거리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푸하하하하하하!! 천하의 강준혁이 내가 알려준 괴담을 보고는 완전 넋이 나가버렸구만???!! 
야! 너 귀신 안믿는대매~본적도 그런거 느껴본적도 없대매??"
 
"그런적이 없다는거지 그게 안무섭다는 건 아니잖아요!"

"어...?그건 그렇네...쩝..암튼 이 이야기 다 읽어본거냐?"
 
"...네"

 
"어때? 좀 무섭지? 그치?"
 
"아니 뭐 무섭다기보단 솔직히 좀 딱하네요..."
 
 
"맞아. 참 안됐지. 뭐 이게 실화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아이고 우리 마누라 쫄딱 젖었네 어딜갔다왔어? 우산도없이."
 
현관문을 바라보니 후드만 입고 나갔다가 온몸이 빗물로 젖은 형수님이 들어와 있었다.
 
"참, 갑자기 비가와서 어제 옥상에 널어둔 이불들을 걷으러 갔는데 글쎄 이놈의 이불들이 
사방에 널부러져 있는거 아니겠어요? 분명 비는 와도 바람은 안불었는데 집게로
꼼꼼히 집어둔 이불들이 무슨 태풍이라도 분 듯이 옥상 사방팔방에 널부러져 있더라니까요."
 
"덕분에 다시 더러워진 이불 기왕 나간거 세탁소까지 가져가서 맡겨버리고 왔죠 뭐."
 
"그래? 또 애x끼들이 옥상가서 장난치면서 이불을 막 널부러뜨렸나보지 뭐"
 
"어휴 짜증나...! 아, 근데 준혁씨는 글 다 읽어보셨어요?"
 
"아, 네. 다 읽었습니다."
 
형수님은 짜증이 난 표정을 풀더니 어느새 상냥한 표정으로 살짝 웃으며 말했다.
 
"제가 이런 얘기를 엄청 좋아하거든요~호호~ 그래도 꽤 재밌었죠?"
 
그러더니 젖은 후드를 현관앞에 탁 벗어두고는 갑자기 나에게 다가와 근처에 
착!하고 붙으며 귀엣말로 속삭이기 시작했다.
 
"사실 우리집에 지니고있으면 귀신들로부터 보호해주는 아주 강력한 부적이 있는데 
가져가실래요?? 새 집이 도깨비도로 바로 옆이라면서요?네?네?"
 
나는 순간적으로 다가오며 말을하는 그녀에게 당황하며 손사래를 쳤다.
 
"아, 아닙니다...저한텐 그냥 무서운 이야기일 뿐 전 이런걸 안믿는 타입이여서 하하.."

우리는 어느새 이 이야기는 까마득하게 잊고 다시 즐거운 술판을 벌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간이 또 얼마나 흘렀는지 어느새 해는 모습을 감추고 완연한 어둠이 찾아왔다.
 
형수님은 많이 피곤했는지, 노을이 지기 시작할 떄 부터 이미 깊은 잠에 빠져있었다.
 
"하~~오늘 정말 잘~마셨다. 우리 언제 또 이렇게 마셔보냐??"
 
"뭐 다음주에 계약서 쓰고 바로 새 집으로 이사할거니까 그 때 집들이오시면 또 먹죠 뭐"
 
"오~그럴까?? 그럼 날을 미리 비워둬야겠군. 오늘 우리집에서 자고갈거냐?"
 
"그러고 싶긴 한데...내일 또 브리핑하러 가봐야 돼서 집은 가야겠네요."
 
"그러냐? 야 그건그렇고 니네 새집이야기나 좀 해봐라. 방은 몇개야??"
 
"그러니깐..."
 
그렇게 대화하다 어느정도 시간이 지났을까...나도 잠시 정신을 놓고 잠이 들었다
꺤 것 같았다. 시간은 어느새 밤 10시 정각을 향하고 있었다.
 
고개를 돌려 형쪽을 바라보니 형은 이미 술이 다 깼는지 멀쩡히 소파에 누워 
손님들에게 받은 서류를 검토하고 있는 듯 했다.

"일어났냐? 그냥 아침까지 계속 잠자지 그랬냐. 아, 맞다 내일 브리핑있댔지?" 
 
"그럼 슬슬 대리불러서 가야지. 대리불러줘??"
 
형은 옆에있는 집 수화기를 들어 능숙하게 번호를 눌렀다. 
번호를 외우고 있는 것을 보니 한 두번 불러본 솜씨가 아닌 듯 했다.

딸칵!

"야 5분내로 온다니까 바로 내려가야겠다. 그럼 다음주에 보자?"
 
"네. 아, 근데 형...그 괴담말인데요..."
 
나는 갑자기 머리속에서 무언가 한가지 의문점이 생겨서 말을 했다.
 
"뭔가 좀 이상하지 않아요?"
 
"또 뭐가~"
 
"마지막 부분에, 도깨비도로에서 행동을 거꾸로하는 사람을 보면 조심하라고 하는데,
원래 도깨비도로라는 곳이 그 이름이 붙게 된 이유가 그냥 도로가 착시를 일으켜서
내리막길이 오르막처럼 보이는 것 뿐이잖아요."
 
"게다가 이 괴담의 배경은 1960년대인데, 제가알기로 도깨비도로는 1980년대쯤에 발견된 것으로 아는데..."
 
확실히 이상한 점이 많았다. 도깨비도로라는 명칭은 무슨 초자연적인 현상이 발생해서 
붙여진 이름이 아니라, 단순한 착시현상 때문에 붙여진 도로명이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이 도로가 도깨비도로라고 불린것은 불과 30년전, 50년이 더 된 과거에도
이 도로가 도깨비도로라고 불렸을리는 없잖은가?

내가 이렇게 질문을 해놓고 혼자 생각을 할 때, 형도 형답지않게 진지하게 
무언가를 곰곰히 생각하는 듯 하더니, 이내 인상을 억지로 찌푸려가며 나에게 말했다.
 
"야! 그걸 내가 어떻게아냐?"
 
나는 괜시리 짜증을 내는 형을 보고는 피식 웃곤 현관문을 나섰다.

 
대리기사는 어느새 아파트 1층 현관에 와 있었다.
나는 대리기사에게 가볍게 목례를 하고는 내 차 보조석에 앉았다.
 
성진의형의 집에서 잠깐 자둬서 멀쩡할 줄 알았는데, 
차에 오르니 사라졌던 술기운이 다시 오르며 몸이 급속도로 피곤해지기 시작했다.
 
"어디로 모실까요??"
 
"밸리지아 201동이요............"
 
나는 갑자기 밀려오는 노곤함에 차에 타자마자 흐늘거리는 목소리로 
목적지를 말하고는 이내 목을 뒤로 젖히곤 눈을 감았다.


밤길상향등.jpg


..................................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나는 게슴츠레 눈을 떴다. 피곤함이 아직 완전히 가시지 않아서였는지 
눈꺼풀이 무거워 눈을 제대로 뜰 수 없었다. 몸 역시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축 늘어져있는 상태였다.
 
차는 아직도 깜깜한 도로 한복판을 달리고 있었다. 이상하게 주변엔 지나가는 차 한대도 보이지 않았다.
 
'이놈의 비는 그칠 생각을 하지 않는군....그나저나 꽤 오래 달린거 같은데 아직도 도착을 안한건가? 
게다가 이상하네...끽해봐야 10시정도일텐데, 원래 이 시간에 도로에 차들이 이렇게 없나?'
 
나는 고개를 살짝 돌려 대리기사를 바라봤다. 대리기사는 라디오에서 나오는 
요즘 유행하는 걸그룹 노래를 따라 흥얼거리며 운전을 하고 있었다.

'생긴건 한주먹 하실거 같은데, 저런노래를 흥얼거리니 묘하구만.'
 
나는 다시 고개를 살짝 반대쪽으로 돌렸다.
내 눈에 차의 오른쪽 백미러가 눈에 들어왔다.
 
순간 나는 무언가가 상당히 부자연스럽다는 것을 느꼈다.

대리기사가 부르는 노래가 뭔가 이상했다.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었다. 






마치 가사를 거꾸로 부르는 것 같은....
 
 

 
 상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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