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에 적어도 몇 번은 똥 때문에 큰 영향을 받은 적이 있다.
남들이라면 숨기고 싶은 일들도 그리고 똥에 감사한 적도 있는 나의 이야기다.
어린 시절부터 나는 화장실 가는 것을 무서워했다. 화장실에 갈 때면 변기 밑에서 손이 불쑥 튀어나오면 어떻게 할까. 화장실 밑에 귀신이 숨어있으면 어떻게 해 등 화장실에 갈 때면 그런 형들에게 들었던 화장실 괴담들을 떠올리며, 노래를 부르며 응가를 하거나, 최대한 빠르게 일을 보고 나왔다.
뭐.. 지금 같으면 손이 나오면 악수를 할 것이고, 밑에 귀신이 숨어 있으면 똥으로 눌러버리지 하는 생각을 했을 텐데 말이다.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에는 그런 무서움보다 똥에 대한 부끄러움이 더 컸다. 초등학교 1학년 때 같은 반 친구가 수업시간에 똥을 참다
그만 바지에 실수 했는데, 녀석은 그 뒤로 친구들에게 똥쟁이라고 놀림을 당하는 것을 보며 나는 절대 학교에서 똥을 싸지 말아야지 다짐하고는
했다.
하지만 2학년 어느 날 하교가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배에서 사르륵 고통이 오기 시작했다.
"참아야 해. 여기서 화장실에 가면 난 똥쟁이라고 놀림당할 거야." 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결국 학교가 끝나 아이들이 모두 집에 가면
화장실에 가서 몰래 싸야지 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이들이 하나둘 집에 갈 때까지 극심한 고통과 몇 번의 위기가 있었지만, 무사히 참았다.
그리고 아이들이 모두 집에 가고 나만 남았을 때 드디어 안도의 한숨을 쉬며 화장실로 가려는 데 몇 번의 위기의 순간을 극복한 나의 괄약근은
그만 버티지 못하고 똥에 항복하고 말았다. 어린 시절 나의 머릿속에는 아무 생각도 나지 않고 그냥 눈물난 났다. 교실 바닥에 앉아 서럽게
울고 있는데 나의 울음소리를 들으셨는지, 아니면 교실에 무슨 일이 있으셨는지 갑자기 담임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어? 성성아 왜 여기서 울고 있어?"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계속 울고만 있었다. 그리고 선생님은 나를 보며 상황파악을 하셨는지 나를 일으켜 세워주시고
숙직실로 나를 데려가셨다. 거기서 선생님은 나를 먼저 씻으라고 하신 뒤 똥이 묻어 있는 나의 옷들을 간단히 세탁해 주시고 어디선가 체육복
바지 하나를 가져다 입혀 주셨다. 그때까지도 나는 계속 아무 말도 못하고 울고만 있었다.
그리고 계속 울고만 있는 내게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성성아.. 똥을 싼다는 건 부끄러운 게 아니야. 똥을 싼다는 것은 아주 건강하다고 몸이 성성이게 알려주는 거야."
"네. 그런데 똥을 싼 게 너무 부끄러워요. 친구들이 알면 어떡해요." 나는 울면서 선생님께 말씀드렸다.
그리고 선생님도 어렸을 때 성성이처럼 바지에 똥 싼 적도 있어. 선생님도 성성이 오늘 일 비밀로 할 테니까 선생님 어렸을 때
똥 싼 이야기 성성이도 친구들한테 꼭 비밀로 해야 해?. 우리 남자답게 비밀 꼭 지키기다."
"네. 선생님 절대 친구들한테 이야기하시면 안돼요."
그날 나는 선생님과 비밀이 하나씩 생겼고, 그 뒤로 난 선생님의 가르침처럼 똥 싸는 것과 똥을 부끄러워하지 않게 되었다.
그렇게 성장한 나는 지금 똥게에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 내게 똥의 진리를 알려주신 선생님께 지금도 감사하는 마음이다.
그리고 똥이 다시 한 번 내 인생을 바꾼 건 수능을 보던 날이었다. 나는 암기력이 약한 편이어서 수리탐구2 영역이 항상 점수가 가장 낮았다.
수능 시험을 보는 날 언어영역과 수리탐구1 영역은 예상대로 풀었다. 그리고 문제의 점심시간, 함께 고사장에서 시험을 보던 친구들과
점심을 먹었는데, 고등학교 때 절친인 민뽀의 아버지께서 추운 날 따뜻한 음식을 먹어야 한다며 고사장 담벼락으로 휴대용 가스레인지와
매운탕 거리를 넘겨 주셨다.
추운 수능 날 따뜻하고 든든한 점심을 먹고 힘내라는 민뽀 아버지의 사랑에 감동하며 나와 친구들은 매운탕을 끓여 먹고 앞으로 남은
수리탐구 2영역과 외국어에 대한 전의를 불살랐다.
드디어 내가 가장 자신이 없던 수리탐구 2영역..
역시 나는 중요한 순간에도 암기력이 부족했다. 시험지를 대충 살펴봐도 항상 그래 왔듯이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그런데 순간 점심에
너무 맵게 먹었는지 배에서 점점 신호가 오기 시작했다.
"안 돼. 내 인생에 걸린 순간이야. 제발 좀만 버텨줘 나의 오장육부를 비롯한 괄약근아..."
하지만 녀석들은 주인의 인생 따위는 별 관심이 없고 본인들의 똥르가즘만 느끼고 싶었는지 나의 고통은 점점 커지고 있었다.
사람이 생명이 위급한 순간에는 초인적인 능력이 생긴다고 온몸에 소름이 돋고, 한겨울에 식은땀이 줄줄 흐르던 그 순간 갑자기 나에게
초인적 능력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것은 바로 기억력이었다. 수업시간에 열심히 필기했던 내용이 머릿속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내가 이렇게 영특한 놈이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노트를 마치 펼쳐놓고 시험을 보는 것처럼 문제의 답들이 술술 생각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고통이 밀려올 때마다 그 기억력의 강도는 더욱
강해지고 있었다. 똥이 마려우면 뇌에 주름이 펴진다고 하던 말이 사실인 것 같았다.
"으으윽. 갑오경장. 허으으윽 만유인력의 법칙..."
그렇게 나는 수리탐구 2영역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그리고 평소보다 더 좋게 나온 점수 덕에 원하는 대학에 무난히 진학할 수 있게 되었다.
내게는 참으로 고마운, 인생을 바꿔 준 똥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