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나는 하루에 세 권씩 드래곤 라자를 읽었다 도서관 대출 한도가 세 권이었기 때문에..
그 시간을 잊지 못할 것 같다 책을 빌리고 집까지 걸어가는 시간이 아까워서 희미한 가로등 불빛에 침침한 글자들을 하나씩 읽으며 걸어가던 그 시간을 외로움에 사무쳐도 소설만 읽으면 그네들과 멋진 모험을 할 수 있었던 그 시간을
그 후로도 나는 많은 판타지 소설을 읽었다 이영도의 소설 말고도 전민희의 소설들을 재밌게 읽었다 얼불노 얼음나무숲 룬의아이들 세월의돌 퇴마록 SKT 쿠베라 눈마새 퓨쳐워커 그림자자국 월야환담 라크리모사 다크엘프트릴로지 하얀 로냐프강 폴라리스랩소디 피마새 태양의탑 갑각나비 심지어는 무슨 게임판타지 소설도 읽었다 제목이 아크였나 뭐 기억은 안나지만 유명하다는 건 죄다 찾아 읽어본 것 같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저 위에 열거한 것 중에서도 재밌는 건 정말 몇 편 되지 않는다 대여점에 줄지어 꽂혀있던 판타지 소설들은 빌리는 데 드는 돈인 800원도 아까울 정도로 재미가 없었고 아무리 재밌는 판타지 소설을 찾아다녀도 내 초6 시절을 되돌려줄 책은 없었으며 혹시나 해서 기웃거렸던 판타지 연재 사이트는 글 같지도 않은 글이 인기작이랍시고 뜨고 있었다 그런 소설들을 비하할 생각은 아니다 그것들도 그것 나름의 재미는 있겠지, 다만 내가 이해하지 못할뿐 그렇게 나는 판타지 소설을 거의 읽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가끔씩 공부하는 게 지긋지긋해지고 역시나 또 인간관계로 피로해질 때 책장에 꽂힌 판타지 한 권을 읽어내리며
나는 가끔 서러워진다 왜 내가 좋아하는 판타지는 이것들 뿐인걸까, 하며 왜 나는 나를 설레게 할 판타지를 읽을 수 없는걸까, 하며
누가 제발.. 진짜 재밌는 판타지를 써서 출판해줬으면 좋겠다... 드래곤 라자 정도는 바라지도 않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