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우석 교수를 (어떤 이유로든) 지지하는 사람에게 내려진 '칭호'는 황빠, 신도 등이고 황우석 교수를 (어떤 이유로든) 비난하는 사람에게 내려진 '칭호'는 황까 더군요. 심지어 스스로를 '황빠였는데 황까가 되었다'라든지 하는 표현도 적지 않게 보게 됩니다. 자기 자신을 일컬어 '난 황빠야'라든지 '난 황까야'라든지 스스로 비하하는 것이야 개인적인 일이니 그렇다 치더라도,
상대방에게 '빠', '까'등 극단적인 단어를 쓰는 수법은 지극히 딴나라적인 화법입니다. 상대방을 한 쪽의 극으로 몰아붙임으로써, 자기 자신은 '빠'나 '까'가 아님을 은연중에 어필하고, 상대적으로 '왠지 중도적인', '왠지 괜찮은', '왠지 그럴싸한' 위치로 가는 것 같은 착각을 하는 게 인지상정입니다.
조선일보와 딴나라가 애용하는 화법이죠.
비근한 예를 들면, 박근혜가 사학법을 색깔론으로 몰고 가는 것이 그런 예입니다. 사학법은 '전교조가 한국 교육을 장악하여 학생들의 사상을 붉게 물들이려는 ~~.'라면서 사학법을 옹호하는 사람들을 '좌파', '빨갱이'로 몰아붙이고 있죠. 이를 통해 자기 자신은 상대적으로 '온건'하고 '중도'적인 '건전'한 '보수'인 양 하는 것입니다.
눈씻고 찾아봐도 찾기 힘든 '참여정부'의 '좌파적 경제정책'이라는 것도 그렇습니다. '참여정부'의 '경제정책'은 레이건 시절의 신자유주의를 연상시키는 수준의 (우파적) 정책임에도 불구하고 딴나라와 조선일보는 '좌파적'이며 '대중영합적'이라고 비난하며 더 오른쪽으로 경제정책을 이동시키라고 아우성입니다.
사람들이 '참여정부는 좌파적이다'라고 믿기 시작하면, 딴나라와 조선일보는 자연스럽게 (극우의 위치 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왠지 중도'적이며, '왠지 그럴싸한' 이념적 스펙트럼을 확보해 나가게 됩니다.
뭐...굳이 조선과 딴나라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빠'나 '까'등의 극하칭 표현을 삼가하는 것은 글을 쓸 때 기본적인 예의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표현을 쓰기 시작하면, 이미 그 표현의 대상인 상대와는 '대화를 하지 않겠다'는 입장이 됩니다. 한쪽 극에 가 있는 (보내버린) 사람과는 평행선을 긋기 쉬우므로, '대화할 가치도 없'고, '대꾸할 가치조차도 없'는 상대가 되기 때문입니다.
비단 황교수 사건만이 아니라, 다른 어떤 사안이든 상대가 어떤 의도로 무슨 글을 쓰든, 거기에 대해 '빠'라던지, '까'라던지 하는 표현은 좀 삼가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