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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구에 대한 잡설입니다.
게시물ID : history_1193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tetraisol
추천 : 8/4
조회수 : 733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3/10/07 11:34:57
동아시아의 해적이라고 해면 신라 해적이나 여진 해적등 다른 이 들도 여럿이 있었지만 가장 유명한 것은 아무래도 왜구이지요, 일본을 근거지로 하는 해적으로 이 들의 준동은 대개 일본의 정치적 상황과 밀접한 관련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소말리아의 현 상황과 같다고 할수 있겠지요.
 
왜구는 크게 전기와 후기로 나누어 볼수 있습니다, 간단하게 보자면 전기는 그 구성원이 대부분 일본인이며 활동 지역은 한반도와 중국 일부입니다, 후기는 주로 중국 대륙이며 사실상 이 시기에는 일본인보다는 외국인이 그 중에서는 중국인이 가장 많았습니다, 이를테면 국제화라고 해야할까요?
 
이 글에서 간략히 적어볼 전기를 본다면 그 원인으로 일본 내의 정치 상황이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가령 두 차례의 여몽 연합군의 원정으로 쓰시마와 고려간의 진봉 관계는 소멸된데다, 이키, 히젠, 치쿠젠등을 다스리는 쓰시마의 영주 소가씨로서는 주요한 경로들이 하나같이 자신의 영지였다는 점에서 정치 상황의 변동으로 중앙 정부의 개입이 느슨해진 호기를 볼때 고려를 침공(...)할 명분은 충분한 셈입니다, 실제로 불발에 그쳤지만 원정이 끝난지 2년뒤에는 나름의 계획도 세웠고 말입니다.
 
이러한 정치적 문제는 당시 일본의 정치 상황을 보면 명확한데 이미 1245년인가 즈음에는 반체제 인사들을 처벌하고 단속해야 할 지방 관리들이 오히려 이들을 숨겨주고 보호해주는 사태가 벌어집니다, 빈고노쿠니 즉 산요도에 있던 빈고국의 지방관은 이러한 반체제인사들을 규합하여 일본 내에서 대규모 약탈을 벌인 전적까지 있을정도인데 이 들이 국경을 넘어서 활동하면 바로 왜구가 됩니다.
 
물론 왜구라는게 이러한 이 들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남북조 시절에는 북조에 대한 공세가 뜸한 시기에 한반도의 왜구 출몰 횟수가 급증하는등 사실상 규슈 일대를 비릇하여 해상 세력을 보유한 일본 영주라면 왠만한 이 들은 한번쯤 발을 담가봄직한 제법 수익성 높은 사업이었지요, 다만 이러한 전기의 왜구는 조선 초의 쓰시마 정벌과 외교적인 노력으로 어느 정도 통제에 성공하게 되지만 이후에도 삼포, 사량진, 을미 왜변등 쉽사리 그치지 않았으며, 일본내의 정치적 경제적 문제로 후기로 접어들게 되지만 이 글에서는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
 
위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왜구라는 것은 천떼기 하나로 국부만 가리고 칼을 들고 소리지르며 달려오는 그러한 상상속의 미개한 이 들이 결코 아닙니다, 다년간의 전쟁 경험을 갖춘 정예병들이 심지어는 기마병이 오는 경우까지 있을정도로 높은 수준의 무장을 하고 조직적으로 바다를 넘어 약탈을 행한 것이 대부분으로 그 목적은 상대적으로 무장이나 규모가 미흡한 사조직들의 경제적인 활동부터 남조의 난신들이나 영주간 전쟁에서 있어 규슈 지역의 영주들이 군수물자의 확보를 위해 오는 것까지 다양했는데, 상대적으로 왜구에 비하여 항해 능력이 미흡하였고 기동성이 상대적으로 떨어졌던 연안 해군에 머무른 중국이나 한반도의 국가들로서는 바다 위에서 대적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가령 최영 장군이 양성하려했고 또 그 자신이 무너뜨린 고려 수군의 사례나 을묘 왜변 당시 조선에서 자국의 수군의 저조한 능력을 실감하고 건조한 판옥선등이 그 사례라 할수 있겠습니다.
 
때문에 공통적으로 나온 결론이 육지에서 대적한다입니다, 후기의 고려군이 해안가를 포기하고 강안에 주요한 요새를 건축하는 것이나 왜변에 대비하여 조선에서 행한 대개의 전술적인 노력들, 성벽과 해자를 보강하며 육군의 군사 물자를 보강하는 등의 모습에서 찾아볼수 있는 이러한 전술은 비단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중국도 마찬가지로 의도에 상관없이 무조건 적으로 상륙한 일본인은 처형한다거나 공무역을 중단시키는가 하면 해안가에 단 한척의 배나 사람이 보이지 않게 해안을 봉쇄하고 주민 소개령을 내리는 것을 들수 있겠습니다, 육지에서라면야 해적의 장기인 기동성을 막을수 있고 동원할수 있는 병력과 물자에서 앞서는 등 해봄직하다는 것이지요.
 
이 처럼 왜구라는 것은 당시의 국가들로서는 쉽게 볼 상대는 아닙니다, 물론 그 인식이 도적에서 벗어나지를 않았지만 그 들의 전력은 국가적으로 큰 위협과 고충으로 남을수 밖에 없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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