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철하게 현실을 직시해서 사태를 보고 판단하는 것이 우리에게는 필요합니다. 올바른 상황 인식 위에서만 목표를 위해 노력할 수 있으니까요. 야권연대는 실패입니다.
더민주와 정의당이 서로 연대를 통해서 저기 서있는 거악,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을 무너뜨리고 정권을 교체한다는 계획은. 그리고 그 자리에 진보적인 권력교체를 통해서 더 민주는 여당으로 서있고 정의당은 그것을 바람막이로 삼아 교섭단체 이상으로 성장하는 계획은. 이제 적어도 20대 총선에서는 이루어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러한 상황에서 왜 정의당을 지지해야하는지, 사표가 되는게 뻔한 지역에서도 표를 진보정당에 찍어야하는지, 그리고 이게 결국에는 새누리의 독주체제를 공고하게 해주는 분열이 아닐지 묻습니다. 이에 대해서 저는 정의당 입장에서 왜 더민주를 쥐어박는지 쓰겠습니다.
흔히 개발도상국들에서 이루어지는 일당독재의 어두운 터널을 지나면 대의민주주의는 흔히 두가지로 대표되는 목적지 중 하나를 선택해야합니다. 한 방향은 소선구제에서 이루어지는 영미식 양당제. 또 다른 방향은 비례선거제도에서 이루어지는 대륙식 다당제.
되게 단순한게 표현한거고 스펙트럼 역시 다양합니다. 그리고 제도적인 수많은 장단점도 존재하구요. 하지만 적어도 이 2가지 민주제에서는 평화로운 정권교체와 민의 수렴의 가능성이 존재하여 민주주의의 최소요권을 만족하기라도 합니다.
우리나라는 일당독주의 체제 아래서 오랫동안 살아왔습니다. 그렇기에 국가와 집권당을 구별하지 못하는 국민들이 존재합니다. 그 사람들은 또한 역시 집권당에 대한 반대와 국가에 대한 반역을 구별하지 못합니다. 이러한 체제 아래서 정권교체는 기적입니다. 실제로 민주정부 10년은 다른 아시아권 국가들과 비교해보면 기적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경험을 통해서 우리는 유사양당제라는 형식에 가까워졌습니다. 현실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가 1번과 2번 밖에 없으니까요.
하지만 이는 위에서 말했던 영미식 양당제나 대륙식 다당제와 비교하면 민주주의라고 부를 수 없습니다. 만약 진보적인 의제가 생겨났고 그것을 통해 세상을 바꾸고 싶은 집단이 존재한다고 한다면 민주주의에서는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하지만 그 가능성이 존재합니다. 미국과 같은 양당제에서라면 진보적인 집단은 민주당 안으로 들어가, 그 속에서 다른 주장들과 경쟁하고 의견 통일을 이루면 공화당과의 타협과 견제를 통해서 국가권력을 쟁취하는게 가능합니다. 독일과 같은 다당제라면 진보적인 집단은 당을 만들고 선거를 통해서 지지율만큼의 의석수를 얻은 뒤에, 다른 당들과의 연정을 통해 통치에 참여하는게 가능합니다.
전 대륙식 다당제가 올바르다고 생각하지만, 우리나라의 정치 전통과 상황에 비추어 볼 때에 영미식 양당제 역시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진보 진영에게 어떤 선택이 가능하겠습니까?
민주당에 들어가서 당내 정파 경쟁을 통해서 의견을 통일한 후에, 새누리당과 경쟁한다? 그게 어떻게 가능하겠습니까? 유시민 작가가 말한대로 이번 김종인 비대위 체제의 민주당은 왜 진보진영이 독자생존을 선택해야만 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만약 진보진영이 민주당 아래 있었다면 그 ‘정무적인 판단’ 아래 숙청을 피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이 상황이 긴급한 상황이라는 예외 때문이기에 어쩔 수 없고, 정상적인 당 체제로 돌아가면 그럴 리가 없다고 주장하는 더민주 지지자들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이 긴급한 상황을 결정하는데 민주당원들이 어떠한 절차적 민주적 투표를 했었는지 저는 묻고 싶습니다. 그렇다면 또 다시 이번 총선이 지나가더라도 다음 선거에 이름이 바뀐 민주당 지도부가 어쩔 수 없는 상황이기에 김무성을, 유승민을 대표 자리에 앉히지 않을거라고 무엇으로 담보할까요?
민주정부 10년을 통해서 배운 것은 정권교체가 이루어지더라도, 민주당이 우선 당내 민주주의를 확립하고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사회 개혁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역사적 과정에서 정의당은 그렇기에 어쩔 수 없는 의무를 부여받았다고 생각합니다.
민주당을 쥐어박아서라도 정신 차리게 하는 겁니다. 어쩔 수 없다고 넘어가면 바꿀 수는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