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례대표 명단을 보면서 충격을 많이 받았습니다.

제가 더민주에 대해 가지고 있었던 기존의 이미지와 상당히 거리가 멀었으니까요.

새누리가 공천을 제대로 했더라면 이런 모습이었을까, 싶을 정도로

분명히 진보와는 거리가 멀어보입니다.

그래서 지금 김종인 체제를 규탄하는 많은 목소리들에 대해서도 전적으로 이해하고 공감하고 있습니다.

 

다만, 저는 더민주가

우클릭을 '제대로' 시도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지금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비정상적인 정치 지형을 새로 재편할 수 있는,

말하자면 더민주는 '보수 정당'으로의 실질적 변화를 꾀함으로써 1번당을 '극우 정당'으로 위치지을 수 있는, 그런 마지막 기회요.

 

제가 모든 선거를 지켜본 게 아니라 조심스럽습니다만,

만약 더민주가 이제까지 선거전략으로 우클릭을 시도한 적이 있었다면, 그리고 그것이 실패했다면

그건 오른쪽에 이미 견고하게 존재하는 1번당 때문이었을 겁니다.

1번당은 적어도 선거 국면에서 만큼은 비교적 정상에 가까운 '보수'를 표방했으니까요.

(심지어 최근엔 진보적 가치까지 넘봤죠.)

 

말하자면 더민주가 아무리 우클릭 한다고 해도 합리적 보수는 이미 새누리가 적지않은 지분을 가지고 있었고,

따라서 더민주로 끌어올 수 있는 중도의 폭이 제한적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지금 새누리당의 공천을 보세요.

다음 대통령이 어느 분이 되실지 모르겠지만,

비정상적이다 싶을 정도의 견고한 지지율을 바탕으로, 이렇게 막가파식의 공천을 할 수 있는 권력이 앞으로 또 있을까요?

지금까지 1번당의 공천에 문제가 전혀 없었다곤 할 수 없겠지만

적어도 지금 같은 식의 친위대 구성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감히 예상하건데 이런 공천은 지금이 아니고서는 없을 겁니다.

(그분만이 가능한 공천이라 말하고 싶네요.) 

 

그렇기 때문에 

합리적 보수임을 자처했던 사람들은 이번 총선의 선거에 대해 고민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합리적 보수임을 자처하면서 (우리네 입장에선 합리적 보수가 아닌) 새누리를 지지하는 사람은 생각보다 의외로 많습니다.) 

그리고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이 새누리를 대체할 새로운 보수당을 찾을 겁니다.

이 틈새를 사실상 국민의 당이 노렸지만, 다행스럽게도 지금 존재감 거의 없구요.

 

 

지금 새누리가 이번 총선에 어떤 정책을 내놨는지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180석 가능설 때문에 안일해진 건까요, 생각보다 그들은 '이기는 선거'에 집중 못하고 있습니다.

그분이 신뢰할 수 있는 사람들로 채워넣기 위해 당을 흔들고 있는 지금이

사실상 더민주의 우클릭 전략이 적절하게 통할 수 있는 타이밍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김종인 대표 체제로 일단 끝까지 가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제 개인적인 정치 성향은 왼쪽에 있습니다. 

김종인의 경제민주화는 지지하지만 그 외의 다른 가치관에 대해서는 사실 회의적입니다.

다만 새누리가 과반의석을 차지하는 이상 정의당을 비롯한 진보당의 세력이 커지는 데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하며,

소선거구라는 선거 제도를 결코 무시할 수가 없기에

애매했던 위치를 버리고 보수로 선회중인 지금의 더민주라도 지지하고 있습니다.

 

수십년간 계속되어온 한국의 정치 지형이 이번 선거로 완전히 청산되진 않겠지만

그분의 막가파 공천에 제동이 걸리지 않고

동시에 김종인의 우클릭이 멈추지 않는다면

적지 않은 변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번 선거와 김종인 대표 체제에 대한 저의 과한 기대일 수 있겠습니다만

정말 가능하다면, 저는 이번 기회에 더민주가 문 전대표를 중심으로 한 보수 정당으로 완전히 자리매김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