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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제주 4.3사건
게시물ID : history_1190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고리독터
추천 : 11
조회수 : 1608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3/10/05 15:13:07

 

4.3사건: 1947년 3월 1일 경찰의 발포사건을 기점으로 하여

1948년 4월 3일 발생한 봉기사태와 그로부터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력충돌과 진압과정에서 양민들이 희생당한 사건 

 

제주도에선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1947년 3월 1일

3.1절 기념식을 하는데

기마경관 말발굽에 어린 아이 하나가 치여죽습니다

 

사건은 그렇게 시작됐죠

 

전번에도 말했지만, 미군정이 일제경찰들을 그대로 썼기 때문에

당시 경찰들은 대부분 일제 치하의 친일경찰들이었고

사람들이 경찰에 대한 반감이 강했어요

 

근데 3.1절 기념식에서

애가 죽은 거에요

 

기념식에 모여있던 사람들은 경관에게 돌을 던지기 시작했고

경관은 경찰서로 도망가요

사람들은 그 경관을 쫓아갔는데

 

웃긴건 여기서부터

 

경찰서로 달려오는 사람들을 경찰서 습격으로 오인하고

경찰들이 발포를 합니다

 

더 웃긴 건

경무부는 이를 '습격사건'으로 규정하고 발포를 정당화했고

그래서 제주경찰들은 관련자들을 체포하죠

 

당연히 빡친 제주도민들은

3월 10일부터 총 파업을 시작해서

경찰 및 사법기관을 제외한 행정기관 대부분인

23개 기관, 105개의 학교, 우체국, 전기회사 등 제주 직장인 95%에 달하는 4만여명이 참여했고, 심지어 제주 경찰의 20%도 파업에 참여했어요

 

하지만 우리 한결같은 경찰은

파업하는 사람들을 다 해고하고 또 체포하죠ㅋㅋㅋㅋㅋㅋ

(잘린 자리는 우익단체인 서북청년단 등이 대신했지)

 

사람들은 이제 시위를 하고

또 총을 쏩니다(3월 17일)

 

이런 사태가 약 1년간 지속되던 상황에서

1948년 5월 10일 제헌국회 총선을 한다는 발표가 있었죠

나라가 반으로 갈라진다고

 

1948년 4월 3일 새벽,

남조선로동당 350여명이 단독정부 수립 반대를 외치면서

경찰서와 우익단체들을 습격합니다

우익단체들은 당하고만 있을까요?

거기에 군대, 경찰 등이 더해져서 좌익단체들을 습격하고 서로 죽고 죽이고..

 

4월 28일에 9연대장 김익렬이 남로당 무장대 대장 김달삼과 평화협상을 했는데

5월 1일에 우익단체들이 오라리에다 불 지르는 바람에 평화협상은 깨져버리고

 

이 와중에 5월 10일은 다가왔고, 결국 선거를 정상적으로 치루지 못하죠

 

하지만 대한민국 정부는 수립 됐어요

이승만은 제주도 문제를 정통성에 위협이 된다고 생각하고

제주도경비사령부를 설치해 병력을 증파하고 제주도에 계엄령을 내립니다

 

그런데 이때 여수,순천에 주둔한 14연대 군인들이 제주도에서 진압 못하겠다면서 반란을 일으키죠

여수,순천,보성,벌교,고흥,광양,구례,곡성까지 점령해버리고

시가전까지 거쳐서 8일만에 반란은 진압되는데

박정희가 다 불고 혼자 살아나면서 군에서 좌익은 몰살되고

민간인을 대상으로 대대적인 협조자 색출이 시작되는데..

총든 놈이 밥 달래서 준게 피해자지 협조자입니까?-_-;;;

 

암튼 제주도에는 병력이 증파됐고

11월부터 대대적인 진압작전이 시작돼갖고

중산간지대를 통행하는 자는 폭도로 간주해 총살하겠다고 포고;;;;;

이로인한 강경진압으로 마을의 95% 이상이 불타 없어지고

삶의 터전을 잃은 무고한 주민들은 산속으로 들어가 경찰에 대한 반감에 무장대가 되어버리죠

이에 진압군은 가족 중 한명이라도 없으면 무장대 협력자로 분류해서 부모와 형제자매를 대신 죽이기 시작합니다

 

ㅈ같은게

밤에 무장대가 총들고 와서 밥 달라 그러니까 밥을 줬는데

다음날 낮이면 진압군이 와서 '빨갱이한테 밥을 줘? 이런 빨갱이새끼!'하면서 죽이고

밤이 되면 무장대가 다시 내려와서 '친일경찰들한테 꼬질러? 이런 반동새끼!'하면서 또 죽여요

어떡하라고

 

잡으면 잡을수록 사람들이 무장대에 합류하자

1949년 3월부터 진압군은 자수하면 살려주겠다고 했고

마침내 사태가 진정되어가면서 5월 10일에 보궐선거를 성공적으로 치루고

 

사태가 마무리돼 갈무렵..

1950년 6월 25일

...

말 안해도 알겠죠?-_-;;;

 

살려준다고 해서 자수했던 사람들 다 죽었어요

간신히 진정되었던 제주도는 다시 아비규환으로 변해요

서로 죽고 죽이고, 그 사이에 죄없는 사람들만 억울하게 죽어나가고..

 

이 시기의 제주도 상황을 묘사한 걸 보면 이게 바로 생지옥이다 싶은게..

총살은 기본, 비협조적인 사람이나 경찰과 군인의 가족들은 본보기로 참수, 연좌제로 친인척이나 친한 사람들 공개처형, 소 생식기로 만든 쇠좆매라는 채찍으로 때리고 사람들을 모아두고 돌팔매질을 하게 린치하고, 죽창으로 한번씩 찌르라고 하고, 가족들 끌고와서 근친상간시키고부모 총살하면서 만세 안하면 쏴죽인다 협박하고, 서로 죽이지 않으면 니가 죽는다고 협박하고..

 

상황은 1954년 9월 21일이 돼서야 공식적으로 종결됩니다

 

사건의 연루자는 30만 도민 전부, 약 3만여명이 사상자가 발생했고

사망자만 14,000여명이나 돼

이중 확인된 바로는, 진압군에 의한 희생자가 10,955명이고, 무장대에 의한 희생자가 1,764명이야

진압군이 더 많이 죽였다고;;; 분명 최초에 파악한 무장대가 300명이었는데 10700명은 뭐냐?

근데 이게 밝혀진 건 50년이나 지난 뒤였어요

 

진압군에게 죽었다고 하면, 빨갱이가 되어버리니까...

심지어 도민들은 98년 4.3사건 진상규명을 실시할 때 사람들이 괜히 끌려갈까봐 얘기를 안 하려고 해서 애를 먹었다니..

 

사건 이후엔 어떻게 됐냐고요?

남로당 무장대의 대장 김달삼은 월북해서 국기훈장 2급을 수여받고 애국열사릉에 안장됐고

진압군과 우익단체 회원들은 국가유공자로 지정돼서 보훈대상자가 됐죠

낮엔 빨갱이로 진압군에게, 밤엔 반동분자로 무장대에게 죄없이 죽어간 14000여명의 가족들은 50년간 억울함을 숨겨가면서 살아야했는데 말입니다


그리고 60년이 지난 지금, 교학사 교과서는 '4월 3일 남로당 주도로 총선거에 반대하는 봉기를 일으켜 경찰서와 공공 기관을 습격하였다. 이때 많은 경찰들과 우익 인사들이 살해당하였다. 사건을 수습하는 과정에서는 무고한 양민의 희생도 초래되었다'고 서술하고 있습니다...

3만명의 양민이 학살당한게 고작 '사건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양민의 희생'도' 초래'된 거라니..

 

그런데 제주도의 이 ㅈ같은 사건은

한반도 전체에서 보여질 생지옥의 전초이자 연장선일 뿐이였어..

 

1950년 6월 25일 본토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말 안해도 알겠지..


블로그:http://blog.naver.com/csr100/110141248124
민청회:http://2013youth.net/board_fXfu88/548

2.반민족행위자특별조사위원회:http://todayhumor.com/?history_11811

'친일, 독재 미화'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 퇴출 학생/교육자/학부모 서명운동:http://bit.ly/2013yout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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