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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프 메릭. (1860~1890)
저는 1860년 8월 5일 렛터의 워프 스트리트에서 태어났습니다. 구경꾼들의 주목을 받던 저의 기형적인 모습은 제 어머니가 코끼리의 습격에 놀라 충격을 받은 결과입니다. 어머니가 거리를 지나는데, 마침 동물들의 행렬이 있어 사람들이 그것을 보려고 몰려드는 참에 불행하게도 어머니가 코끼리가 있는데 까리 떠밀려서 질겁하고 말았지요. 이때의 공포가 임신 기간 내내 떠나지 않았고, 그 때문에 제가 기형으로 태어난 것입니다.
제 머리 둘레는 약 90센티미터이고, 머리 뒤에 사발만 한 크기의 살덩이가 붙어 있습니다. 제 얼굴은 너무 무시무시해서 글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오른손은 형태나 크기가 코끼리의 앞발과 거의 비슷합니다. 손목 둘레가 30센티를 넘고, 손가락 굵기는 12.5센티미터쯤 되지요. 왼팔은 10살짜리 소녀의 팔보다 크지 않지만, 모양은 제법 예쁜 편입니다. 발과 다리는 온통 두꺼운 피부로 덮여 있는데다 살이 늘어져 있어요. 몸도 마찬가지고, 피부색마저 코끼리와 비슷하지요. 그래서 나를 직접 보지 않고서는 과연 이런 괴물이 세상에 있을까 하고 믿지 못할 겁니다. 태어날 당시만 해도 이런 증상은 뚜렷하지 않았지만 5살이 넘어가면서 눈에 띄기 시작했어요.
12살 때 저에게 최악의 슬픔이 덮쳐왔습니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거에요. 그러자 아버지는 가구가 딸린 임대아파트로 이사하여 그 건물의 주인과 결혼했는데, 제겐 그것이 불행이었지요. 이때부턴 제게 휴식도 기쁨도 사라졌어요. 새어머니에겐 나보다 아름다운 아이들이 있었고, 기형의 추한 몸을 갖고 있는 제 삶은 더욱 비참해졌습니다. 저는 가출하였으나, 아버지는 조금이나마 저를 걱정하셨던지 저를 집으로 데리고 왔지요.
13살이 되던 해에 새어머니는 어떻게든 저에게 일을 시키려고 했어요. 담배 공장에서 근 2년간 일을 하였지만, 오른손이 점점 무거워져서 담배를 굴릴 수 없게 되었고, 결국 일을 그만두었습니다. 식구들은 다른 일자리를 찾도록 저를 도시로 보냈습니다. 하지만 기형에다 다리까지 저는 저를 고용하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요. 일자리를 찾지 못하자, 아버지가 제게 외판원 자격증을 얻어 주었습니다. 집집마다 방문하면서 물건을 파는 일이었는데, 저의 이런 모습 때문에 아무리 벨을 눌러도 문을 열어주는 사람이 없었어요. 제 삶은 더욱 힘들어졌습니다.
시내로 가면 저를 구경하려고 사람들이 몰려들었어요. 저는 레스터 병원으로 가서 2, 3년 있으면서 100그램 정도의 살을 잘라냈어요. 그러다 이런 생각을 했어요. 전국을 돌면서 이 기형의 모습을 보여 주고 생활비를 벌어야겠다! 전 레스터의 워프 스트리트에 있는 샘 토르 씨가 새로운 인물을 찾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그에게 편지를 썻습니다. 그가 와서 저를 보더니 비하이브 노팅엄에 사는 엘리스 씨에게 추천해 주더군요. 그는 제게 친절했고, 많은 신경을 써 주었어요.
저는 처음으로 사람들 앞에 사는 일을 하게 되었고, 관객들은 제게 잘 대해 주었어요. 솔직히 예전에 매우 비참했던 만큼이나, 지금은 매우 행복합니다. 이제 저는 사랑스러운 독자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리며 작별 인사를 올립니다.
설령 내 키가 극점까지 닿을지라도,
설령 내 팔이 바다 밑까지 닿을지라도
사람들은 내 영혼으로 판단할 것이다.
우리는 정신으로 인간을 판단한다.
조지프 메릭이 남긴 짧은 자서전입니다. 유년시절부터 몸에서 부풀어오르기 시작한 종양은 금새 얼굴까지 뒤덮었고, 이러한 기형적인 모습 때문에 주변에서는 그를 반기는 이가 없었습니다. 더욱이 골반을 다침으로서 다리까지 절게 되었으니 말이지요. 하지만 교사였던 그의 어머니는 아들을 사회와 격리시키고 싶지 않아했습니다. 그러한 이유로 조지프는 12살때까지 학교를 다녔습니다. 그 이후로는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 새어머니와 같이 살게 되었기에 학교를 중퇴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새어머니는 혐오스러운 신체를 가진 의붓아들에게 별로 애정을 쏟지 않아서, 어린 그를 일터로 보냈습니다.
하지만 어떠한 일도 제대로 되지 않았고, 그렇게 생활고에 시달리던 조지프 메릭은 사람을 구한다는 서커스 단장의 소식을 듣고 당장 지원하였습니다.처음 그의 얼굴을 본 서커스 단장은 적지 않게 당황하였으나 이 점을 이용하면 많은 돈을 벌 수 있을 거라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자 그를 채용하였습니다. 서커스 단장은 조지프가 등장할 때면 이렇게 소리쳤다고 합니다.
"신사 숙녀 여러분,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십시오. 기절할지도 모릅니다. 여태껏 이렇게 끔찍한 생물이 살아숨쉰적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십시오. 헤치지는 않습니다!"
조지프 메릭은 관중들에게 자신을 소개할 때 '어머니가 자신을 임신하고 있던 중에 코끼리를 보고는 놀라서' 이러한 생김새를 가지게 되었다고 설명하였고, 이 때문에 '엘리펀트 맨(elephant man)' 이라는 별명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후 나름대로 많은 돈을 벌었으나 사기꾼에게 속아 전재산을 탕진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그에게 호기심과 연민을 가졌던 프레더릭 박사는 그를 비참한 상태로 내버려두지 않았습니다. 박사는 조지프 메릭과 평생을 함께 살며 그를 관찰, 연구하였고 사교계 인사들에게 소개시키기도 하였습니다. 이로서 많은 인기와 돈을 얻었지만 어느 누구도 자신을 인간으로 대해주지 않았기에, 그는 별로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프레더릭 박사와의 관계는 매우 좋았습니다. 박사는 그와 같이 지내며 자신의 환자가 우울증을 앓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고, 이를 극복하도록 지원하였습니다. 자신을 '사람처럼' 대우해주는 그에게 조지프 메릭은 많이 의지했습니다. 조지프 메릭은 무거운 머리 때문에 항상 앉아서 자야했고, 이런 불편함을 프레더릭 박사에게 호소하기도 했습니다. 박사는 이러한 일을 다음과 같은 말로 회상하였습니다.
"그는 종종 다른 사람들처럼 누워서 잘 수 있게 해달라고 나에게 부탁하였다."
1890년 4월 11일, 조지프 메릭은 갑작스럽게 숨을 거두었습니다. 원인은 목뼈가 부러져서. 의사들은 그가 똑바로 누워서 자려다 목뼈가 부러졌고, 결국 급사하였을 거라 추측했습니다. 인간이지만 인간의 모습으로 태어나지 않았던 조지프 메릭의 죽음은 많은 이들의 충격을 불러왔습니다. 그의 삶은 데이빗 린치 감독에 의해 영화화되기도 하였습니다. 평생을 괴물로 살았던 조지프 메릭의 유일한 소원은, 다른 사람들처럼 사는 것이었습니다.
조지프 메릭이 쓰고 다녔던 모자와 복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