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뉴라이트 세력은 2005년 ‘교과서포럼’이라는 단체를 만들었다. 이 단체는 2008년 기존 역사 교과서들을 비판하면서 <대안 교과서, 한국 근현대사>라는 책을 만들었다. 당시 이 책의 필자들은 경제학·정치학 등 사회과학을 전공한 이들이었다. 이들은 2011년 한국현대사학회를 조직하면서 자신들과 성향을 같이하는 소수의 역사학자들을 끌어들였다. 그리고 이번에 이들 가운데 권희영·이명희 교수 등 전·현직 한국현대사학회 회장이 직접 집필자로 나서 교과서를 만들었다. 한국사 교과서의 검정 작업을 맡고 있는 국사편찬위원회는 지난 5월 이들이 만든 교과서가 검정위의 본심사를 통과했으며, 8월 말에는 최종 합격되었다고 발표했다.
9월 초 한국역사연구회, 역사문제연구소 등 역사학계는 이 책에 대한 검증 작업에 들어갔다. 그리고 이들 단체는 9월10일 무려 298개 항의 오류를 지적했다. 필자도 이 책을 전체적으로 훑어보았다. 그 결과 교과서로서 함량 미달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교학사 역사 교과서(위)는 냉전적·이분법적 사고로 광복 이후 현대사를 서술했다. 민주화 운동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짧게 다루었다.
이 책은 우선 그 내용의 편향성을 따지기에 앞서 오류·비문(非文)으로 가득했다. 또 이미 언론에 보도된 것처럼 인터넷에서 떠도는 잘못된 내용들을 그대로 베낀 부분도 있었으며, 낡은 학설이나 학계에서 인정받지 못한 개인 주장을 그대로 쓴 부분도 있었다. 교과서는 무엇보다도 정확한 사실에 기초해서 써야 하고, 또 학계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학설에 기초해야 한다. 그런데 이 책은 이 두 가지 기본 원칙도 지키지 못했다. 그 밖에도 문제는 너무나 많았다. 여기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몇 가지만 짚어본다.
첫째, 사실의 서술에서 잘못된 부분이 너무나 많다. 예를 들어보자. 이 책은 1907년 국내에서 조직된 비밀결사 신민회를 이회영 6형제가 만주에 가서 또 조직했다고 썼다. 한국전쟁의 배경을 설명하면서는 애치슨라인의 선언으로 미군이 철수했다고 썼는데, 미군 철수는 1949년 6월에 이미 완료되었고 애치슨 선언이 나온 것은 1950년 1월이었다. 교과서는 적어도 사실에서는 오류가 없어야 한다. 그런데 이 책은 그야말로 오류투성이다.
둘째, 의도적인 왜곡이 아닌가 여겨지는 부분들도 있다. 예를 들어 김성수에 대한 서술에서 <동아일보> 폐간 뒤 고향에 돌아가 광복 뒤까지 은거했다고 썼는데, 그는 보성전문학교 교장 일을 맡았기 때문에 경성에 남았으며 각종 전쟁협력 단체에 이름을 올리고 있었다는 게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또 5·16 군사정변 시의 혁명공약을 소개하면서 5개 항의 공약만 소개하고, 여섯 번째 공약인 민정이양 내용은 빠뜨렸다.
박정희의 민정이양 공약을 뺀 까닭은?
셋째, 비주체적이고 반교육적인 서술도 있다. 예를 들어 이 책은 명성황후 시해 사건과 관련한 사료탐구 부분에서 이 사건에 가담한 <한성신보> 편집장 고바야카와의 글을 소개했다. 고바야카와는 조선이 러시아와 손잡지 못하게 하는 방법은 “궁중의 중심이요 대표적인 인물인 민비를 제거하여 러시아에게 결탁할 당사자를 제거하는 방법 이외에 다른 좋은 방법이 없었다”라고 하면서, “당시 시행하는 정책은 전부 민비의 계책이었으며 국왕은 허수아비에 지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들은 ‘도움글’난에서 “당시 명성황후는 조정에서 시행되는 모든 정책에 관여하였고, 더불어 결정권을 가지고 있었다”라고 쓰고, ‘생각해보기’난에서는 “당시 일본은 명성황후를 시해하는 과격한 방법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을까?”라고 학생들에게 묻는다. 이 책의 저자들은 명성황후 시해범의 주장에 부분적으로 동의하면서, 학생들에게 시해범의 처지에서도 생각해보라고 유도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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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단체 회원과 학부모들이 “친일과 독재를 미화한 교학사 역사 교과서는 ‘후소샤(扶桑社) 교과서보다 못하다’”라며 검정 합격 취소를 촉구하고 있다.
넷째, 이 책을 마치 이승만의 복권과 영웅화를 위한 교과서처럼 쓰고 있다. 일제강점기 부분에서 이승만은 무려 30회 가까이 언급되었다. 반면 초창기 임시정부를 이끈 안창호는 단 한 번 수양동우회 사건과 관련해 언급되었을 뿐이다. ‘도움글’에서 “이승만은 당시에 한국인들이 가장 존경하고 신뢰하는 지도자였다. 그는 직접 자신의 목소리로 방송함으로써 국민들과 더욱 친밀하게 되었고 광복 후 국민적 영웅이 될 수 있었다”라고 쓰고 있다. 그야말로 ‘이승만 영웅 만들기’의 교과서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다섯째, 친일반민족행위자들에 대한 복권을 시도하고 있다. 예를 들어 “최남선은 공과 과가 모두 있는데, 공과 과를 함께 논한다면 어느 쪽이 클까. 주요 공적에 대해 현재 우리나라의 상훈법에 비추어 포상을 한다면 어떤 상을 수여하면 적절할까?”라고 학생들에게 묻는다. 최남선은 3·1 독립선언을 써서 공을 세운 적이 있지만, 일제 말기에 친일 행위를 함으로써 그러한 공을 스스로 무로 만들어버린 사람이다. 그런 인물을 놓고 공과 과를 분리해서 생각해보자고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공을 강조함으로써 최남선과 같은 이들을 복권시켜보려는 의도일 것이다.
식민지근대화론 시각에서 일제강점기 서술
여섯째, 식민지근대화론의 시각에서 일제강점기를 서술한 부분들이 있다. 예를 들어 일본의 농장들이 호남평야에서 대규모 간척사업과 수리조합 사업을 한 것을 자세히 소개하면서, 당시 전국적으로 전개된 농민의 수리조합 반대투쟁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일곱째, 냉전적·이분법적 사고로 광복 이후의 현대사를 서술했다. 예를 들어 이 책은 이승만의 단독정부수립론, 여운형·김규식의 좌우합작론, 김구·김규식의 남북협상론 등을 열거하고, 학생들에게 ‘이상적인 것’과 ‘현실적인 것’을 구분해보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는 결국 좌우합작론이나 남북협상론을 ‘비현실적인 이상론’으로 규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여덟째, 민주화운동에 대한 인색한 서술이다. 예를 들어, ‘자유민주주의의 발전’이라는 장의 민주화운동에 대한 서술은 다른 교과서에 비해 전체적으로 소략하다. 또 이 장의 ‘탐구활동’ 제목을 ‘북한의 위협과 한국정치의 변화’라고 붙인 뒤, 이승만의 하야 담화문, 5·16 혁명공약, 10월유신 선언, 광주시민군 궐기문, 6·29 선언 등을 실었다. ‘자유민주주의의 발전’이라는 장에서 4·19 선언문이나 유신반대 선언문, 6월항쟁 선언문 대신, 오히려 자유민주주의를 훼손한 선언들을 주로 실은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 책은 사실의 서술에서 매우 부실할 뿐 아니라 친일파 옹호, 냉전적 역사관, 이승만 영웅 만들기 등 시대착오적인 역사관을 담고 있는 책으로서, 교과서 자격이 없는 책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