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편에 이어--------
그녀는 인사치레로 한 말이었겠지만
나는 그녀를 좀 더 알고싶었다.
이튿날 고심끝에 그녀에게 문자를 보냈다
"누나 배고파영 밥사주세요. ^^;"
"그래? 잘됬다. 오늘 긱사저녁메뉴 별로였는데
수업마치고 OO앞에서보자"
뜬금없는 문자에도 흔쾌히 수락해 주었고
어제와 같이 수수한 차림으로 등장한 그녀는
반갑게 인사를 하고는 물었다.
"뭐 먹고싶니?"
"된장찌개요!!!"
하고 많은 메뉴중에 하필 된장찌개라니..
그것도 자신있게...
이런 된장...
다행히도 그녀는 된장찌개를 좋아하였고
밥을 먹으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였다.
다른 대학을 다니다 일도 해봤다는 등등
그녀가 뒤늦게 다시 대학에 들어온 이야기를
위트있게 풀어냈다.
식사를 마치고 헤어지는 길에 잠시 편의점에 들르자고 하였고
그녀는 초콜릿을 집으며 말했다.
"과자나 아이스크림 하나 골라"
나는 거절을 모르는 남자였기 때문에
과자를 집어 들어 계산대에 올려놓았다.
"2,200원입니다."
그녀는 작고 귀여운 지갑속을
한참을 골똘히 들여다보더니
"200원만 깍아주시면 안되요?
쵸콜릿 하나 드릴게요 ♡
만원짜리 깨기 싫은데 ㅠㅠ"
라며 애교를 떨며 흥정을 하였고
편돌이와 나는 그녀의 황당하게도 귀여운 행동에
광대가 승천하였다.
편돌이에게도 애교를 부리던 사랑스런 그녀는
온라인상에서 만큼은 탈부크 한마리에
오우거 수백마리도 가볍게 학살하는
잔혹한 플레이어였다.
손무의 가르침을 받들어
지피지기를 몸소 실천하던 그녀는
얼마 지나지 않아 오크의 순수함과
타우렌의 포근함에 빠져들어갔다.
얼라이언스였을 때와는 달리
우리는 별 어려움없이 만랩을 달성하였고
얼라이언스의 명예를 지키기보다는
부두교의 가르침을 받기로 결심했다.
진영을 이동한 뒤에도 옷감을 향한 무한한 그녀의 애정은 사그라들지 않았고
좀더 발전된 형태로 옷감을 수급했다.
다른 플레이어와 어울리는 것을 좋아했던 그녀는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며
퀘스트를 도와주고 그들이 쓰지않는 옷감을 얻어왔다.
플레이 시간이 일정한 그녀에게
지속적으로 옷감을 바치는 플레이어가 2명이나 생겼고
나는 그들을 그녀의 옷감노예라 불렀다.
급속도로 친해진 그녀와 옷감노예들은
나를 포함해 자그마한 길드를 결성했고
"똥꼬가 쓰랄여서 잠시만 오그리마", "아내가 잠들면 아제로스가 열린다"
"부두교의 가래침의 받게" 같은 쎈스있는 길드명을 가지고 싶었던 그녀는
몇날 몇일을 고민한 끝에
'옷감만 스쳐도 인연' 이라는 꽤 괜찮은 길드작명을 선보이기도 했다.
우리는 각자 나름대로 와우를 즐기며 화목하게 지냈다.
노예1은 주로 전장을 다녔으며
오리, 불성시절 자신의 무용담을 종종 들려주었다.
노예2는 레이드를 꽤 하드하게 즐겼고
나(라고 쓰고 노예3이라 불렀다)는 주로 일퀘와 소일거리를 하며 얼라이언스를 괴롭히거나
가끔 얼라이언스 대도시를 침공하는 공격대에 참여하였다.
나는 레이드라는 컨텐츠도 즐겨보고 싶은 생각에
노예2에게 이것저것 물어보았고
노예2는 어렵지 않게 낙스라마스를 탐험할 수 있는 경로를 알려줬다.
골팟이라는 형태의 파티에 손님의 신분으로 참여를 해야하고
손님의 신분으로 아이템얻기 위해서는 충분한 골드가 필요하다고 했다.
덫붙여 노예2는 어느정도의 공략숙지도 필요하다고 일러줬다.
적절한 지식과 충분한 골드가 없었던 나는
찬찬히 공략도 숙지하고 골드도 벌며
레이드탐험의 꿈을 키워가고 있었다.
레이드를 열정적으로 준비하는 내 모습에
그녀도 레이드에 관심을 보였고
나의 레이드 첫 나들이에 동참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골드는 생각보다 잘 벌리지 않았고
수소문 끝에 광물을 캐서 파는 것이 가장 효율이 좋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이미 나의 전문기술은 무두질과 가죽세공이었기에
무두질을 포기하려고 마음먹었다.
'잘가.. 나의 낡은 손칼이여...'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그녀는
"왜? 지우게?"
"어.. 채광으로 바꿀라고..
광물캐는게 돈이 잘벌린다 카데.."
"왜 골드필요해?"
"응 레이드 갈려면 필요하다 그카던데"
"골드 빌려줄까?"
"누나 골드있나?"
"응 많아"
그녀는 여러 컨텐츠를 즐겼으나 특히 경매장을 자주 들락 거렸다.
귀속이 아닌 아이템들은 모조리 경매장에 올려
판매를 시도했다.
필드를 누비며 획득한 아이템, 손수 제작한 여러 아이템,
이름이 특이한 아이템, 룩이 이쁜 아이템, 낚시대에 걸린 쓰레기 등등을 판매했다.
그녀가 판매물품에 가격을 매기는 방법은 다소 독특했다.
애덤스미스가 그녀의 상행위를 목격했으면 아마
전혀 새로운 내용의 국부론은 편찬했을 것이다.
그녀는 공급과 수요의 곡선을 가볍게 무시했고
그녀 자신이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만큼의 값에 물건을 팔았다.
노예들이 가져다 바친 물품들은 터무니없는 헐값에 판매를 하였고
그녀가 손수 획득한 물건에는
온갖 스토리텔링기법을 사용하여 폭리를 취하려고 시도했다.
박리다매와 후리소매 사이 어딘가 존재하는 그녀의 판매전략은
의외로 성공적이었다.
물론 이유없이 높은 가격때문에 쉽사리 팔리지않는 물품들이 있었지만
그녀는 팔릴때까지 불쌍한 고블린들을 귀찮게 했고
그녀의 집요함이 골드를 벌어올 때도 있었다.
그녀의 일과는 항상 정성스럽게 편지를 열어보는것으로 시작되었고
편지에 동봉된 골드를 수금할때 나는
"짤랑~" 소리를 좋아했던 그녀는
수수료를 매기던 고블린들을 무척이나 아니꼽게 생각했다.
'지는 편의점에서 당당하게 10%DC도 요구하면서....
그리고... 그정도로 굴려먹었으면 좀 더 줘도 돼.....'
그녀가 가진 골드의 출처는
노예들이 뼈빠지게 모아 바친 공물들을 헐값에 내다팔고
수수료도 아까워하는 알뜰한 씀씀이 였을것이다.
"얼마나 필요한데?"
"ㅇ... 오천골드...
너무 많지?"
"그래 빌려줄게"
"오 진짜? 누나 돈 많어?"
"대신 이자는 월 50%
첫달은 무이자로 해줄게"
"-_-누나.. 사채업자도 월 50%는 안받아
아니 그거 위법이야 위법 그렇게 이율을 매겼다간
누나 경찰에 잡혀간다고 경찰!!!"
"싫으면 말고~~"
"아이.. 사장님.. 거 성질 참 급하시네..
뭔가 오해가 있으신거 같은데
제말은요. 월 50%는 너무하다 이거죠.
제가 언제 싫다고 했습니까?
다만 국가에서 책정한 법정금리만 좀 지켜주십사~ 하는거죠."
하루라도 빨리 레이드를 탐험해보고 싶었던 나는
한달 무이자이면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고 판단했고
제10금융쯤 되어보이는 그녀와 초기계약조건으로 덜컥 계약했다.
그렇게 우리는 노예1,2의 도움을 받아 첫 레이드를 경험하게 되었다.
첫 레이드 나들이는 모르는 것 투성이라 참 다사다난했다.
낙스라마스 입구에서 얼라이언스들과 투닥거리느라 공장님에게 혼나기도 하고
파티원들에게 낙스라마스의 고양이에 얽힌 전설을 전해듣기도 했다.
낙스라마스에 진입을 하자
그녀는 그간 갈고 닦은 음식솜씨를 발휘하였고
우리는 영약과 음식을 섭취하며 전의를 다졌다.
나는 얼마 안되는 화력이지만 공대에 도움이 되고싶어
열심히 몬스터의 뒤를잡고 엉덩이춤에 단검을 찔러넣었고
호기심이 많던 그녀는
던전 이곳저곳을 꼼꼼히 구경하며 다녔다.
그녀는 공대장의 지시를 어기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많은것들은 건드리며 다녔다.
웅덩이란 웅덩이에는 죄다 빠져보고
녹색 젤리를 건들이다 비명횡사를 하고..
바닥에 깔린 독가스가 얼마나 아픈가 살짝 발을 담구고는
화들짝 놀라 노예들에게 외부생존기를 요구하는 손놈이 되기도 했다.
긴 플레이 타임에 지루했던지
1인칭 시점으로 보스들의 얼굴을 품평하고
그들의 패션 센스를 논하기도 하였다.
그외에도 우리는 거미줄에 엉켜 발버둥 치기도 하고
포자를 피해 이리저리 날뛰기도 했다.
각자 (-)혹은(+)를 부여받고 견우와 직녀가 되기도했으며
얼어버린 그녀를 방패삼아 해골용의 차가운 숨결을 피하기도 했다.
그렇게 낙스라마스를 성공적으로 탐험하고
적절한 가격에 많은 아이템을 구입하였다.
나는 다음주 부터 골드를 벌 수 있다는 생각에 기뻐하며
죄없는 허수하비를 마구 찔러댔고
그녀는 자신이 구입한 아이템 이름이 웃기다며 낄낄거렸다.
시간은 흘러 그녀에게 꾼돈을 갚아야 할 시기가 왔고
나는 원금을 상환하기 위한 마지막 레이드에 명단을 올렸다.
무리없이 각 구역의 보스들를 하나하나 격파해 나갔고
어렵지 않게 마지막 보스인 켈투자드를 물리쳤다.
"사복(도적용 좋은 단검) 나왔네요."
평소 무진장 탐내던 아이템이었기에
침을 꼴깍 삼키며 나와 동행한 도적님의 눈치를 조용히 살폈다.
그 도적님은 짧게 한마디했다.
"드디어.."
억장이 무너졌다.
저 단검만 있으면 리치왕도 한방에 보낼 수 있을것만 같았지만
나의 지갑사정은 넉넉하지 않았고
그마저도 내돈이 아니었다.
단검에 눈이 멀었던 나는 골룸신을 영접하였고
'일단 경매는 해보고 낙찰되면 닌자당했다고 거짓말해?'
'아냐 일단 원금부터 상환하자 누나가 어떻게 번 돈인데'
'이때까지 한번도 저 단검을 본적 없었잖아? 지금 아니면 또 언제 나올줄 알고
돈이야 다시 벌어서 갚으면되지'
'아니야 참아야해 저 단검을 사버리면 빚은 빚대로 늘고 넌 신뢰도 잃어버릴거야'
'일단 경매에 참여나 해봐 ㅋㅋ 혹시모르잖아? 싼값에 구입할지?'
고민하고있는 사이
공대장님은 카운트 다운을 했다.
"도적님 1000골드 상위입찰자 더없으시면 마감합니다. 좋은 단검인데..
5..............4................3................2....................."
나는 골룸신의 달콤한 속삭임에 넘어가 경매에 참여하였고
도적님은 의외로 순수히 물러나주셨다.
나는 비교적 싼값에 단검을 구입할 수 있었고
그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 기쁨도 잠시
비어버린 지갑과 남아있는 잔금을 보니
속이 울렁거렸다.
'어쩌지?... 아 몰라 그냥 사실대로 말해야겠다..'
다음날 나는 여자친구에게 어제 있었던 일을 사실대로 고하였고
그녀는 의외로 내게 환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괜찮아 ^^ 다음에 돈 벌어서 줘"
"어...? 진짜가? 그래도 되나?"
"그럼~~그럴수도 있지 그아이템 좋은거라며?
골드가 없다는데 어떻게 받니?"
"누나같은 여자친구는 정말 세상에 없을거야 누나..
정말 고ㅁ.."
"가만있어보자.....
한달간은 무이자였고 오늘이 넘어가면 두달째니까
복리로 계산하면 음.......
총 11,250골드네 ^^ 천천히 줘~"
나는 그녀에게서 돈을 빌릴때 복리라는 말을 듣지 못했다고 거의 울다싶이 말했고
이는 곧 사기계약임을 알리고 이 거래는 무효라는 것을 강력히 주장했지만
씨알도 멕히지 않았다.
독한냔....
나는 그녀가 대학을 들어오기 전에 했다던 일이
분명 대부업 상담원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와우에 접속하자 마자
"앞으로 자주 뵐것 같은데.. 잘좀 부탁드립니다..."
광부npc님에게 예의바르게 인사를 하고
적절해 보이는 채광용 곡괭이를 하나 구입하였다.
한동안 나는 빚을 탕감하기위해
그녀의 충실한 노예가 되었다.
내가 곡괭이고.... 곡괭이가 내가 되는 몰아일체의 경지, 혼이 담긴 곡괭이질로 광물을 수집하였고
작업장 중국인들이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경지에 이르렀다.
그리고
이 일을 계기로 사채의 무서움을 뼛속까지 느끼고
2016년 현재까지 단돈 오천원도 빌리지 않고 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