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태는 무능을 부른다
'나태는 무능을 부르고 무능은 빈곤을 부른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말이지만 지금 나태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나에게는 눈 앞이 하애지는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흰 세상이 걷히고 나자 내 머리 속에서는 이런 의문이 들었다.
나태가 무능을 부른다면 성실은 유능을 부른 다는 걸까? 이 명제의 참,거짓은 제쳐두고 유능이라는 단어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유능하다는 것은 무엇일까? 이 '유능'을 나에게 적용시켰을 때 이러한 생각이 떠올랐다. '효용높고 훌륭한 도구'. 그렇다면 나는 도구가 되어야한다는 것일까?
그러나 나는 오류에 빠졌다는 것을 금방알 수 있었다. 이 '유능'을 다른 사람에게 적용시켜보았을 때 그 사람은 '훌륭한 사람'이 되었다.
내가 적용한 사람은 유능한 사람이다. 센스도 있고 말도 조리있게 잘하고 인간관계도 좋으며 실력도 있고 신념도 있다. 난 그에게 '유능'을 적용했을 때 '도구'라는 것은 느낄 수 없었다. 반대로 나에게 적용했을 때는 내가 '사람'이라는 것을 느낄 수 없었다.
무엇 때문일까. 그것은 그 능력을 사용하는 주체가 다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 사람은 그 능력을 자기자신이 주도해서 발휘하지만 나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 의해서 능력을 발휘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즉 능력의 주체가 가지는 능동성이 차이를 만든것이다. 나는 수동적이다. 그러므로 도구로 인식될 수 밖에 없다. 이러한 생각의 결과는 나의 인생관에서 찾아 볼 수 있었다.
나는 광석이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제련되어 철이 되었고 지금은 대장간의 모루에 얹혀있다. 지식과 경험이라는 망치가 나를 단련시킴으로써 더욱 단단해지고 모양을 갖춰간다. 아직 그 최종본을 알 수 없지만 계속 나를 단련시키면 어딘가에 쓰일 수 있는 도구가 될 것이다. 땅을 파는 삽이 될 수 도있고 어딘가의 손잡이가 될 수 있고 나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으로써 '사람'들에게 쓰여질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인생관이었다. 그렇게 나의 인생은 누군가를 위한 도구였기 때문에 아직 '사람'이 된적이 없었다.
누군가를 위한 도구. 한 때 나는 그 누군가를 위한 도구가 되기를 갈망했다. 항상 기도했었다. 당신의 도구가 될 수 있도록 해달라고. 하지만 난 기회가 왔을 때 그것의 도구이길 포기하고 다른 길로 나아갔다. 이 길에서도 당신을 위한 길이 있을거라 위로하며. 그러나 나는 아직도 그 때의 길에서 벗어나지 못했나보다. 아직도 도구가 되기를 바라고 있었으니.
그러나 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를 위해서는 어떤 고난이, 어떤 아픔이 있을지 예상도 가지않는다.
하지만 나는 당당히 내가 내 인생을 가지고 휘두를 수 있다고 비록 내가 저 끝도 보이지 않는 기저에 있다 하더라도 단호히 나를 세울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