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국립박물관이 도난품으로 추정되는 조선 왕실 물품을 전시해 파문이 일고 있다. 일본 도쿄국립박물관은 1일 ‘조선시대의 미술’이라는 기획전시를 시작했다.
여기에는 고종이 사용하던 것으로 알려진 투구를 비롯해 왕실 물품이 다수 포함됐다. ‘용 봉황무늬 두정 갑옷과 투구’라는 이름으로 조선 왕의 갑옷과 투구가 선보였다. 박물관 측은 이것이 왕실 유물이라는 사실은 명시하지 않고 19세기 조선 물품이며 ‘오구라 컬렉션’으로부터 기증받았다는 안내문을 달아서 공개했다. 시민단체 문화재제자리찾기 대표인 혜문 스님은 이날 도쿄 박물관을 방문해 “박물관으로부터 왕실 물품이라는 사실은 확인받았고 시기 등으로 미뤄볼 때 고종이 사용하던 것이 확실하다”고 말했다. 그는 투구의 이마 가리개 부분이 백옥으로 돼 있고 발톱이 5개 달린 용이 새겨진 점, 투구 양쪽에 날개가 달린 점 등을 근거로 들었다.
명성황후를 시해한 자객이 당시 방에서 들고 나온 소반도 전시됐다. ‘풍혈반’이라는 이름을 붙인 이 소반은 나무로 제작해 옻칠을 한 것으로, 19세기 후반물품이라는 설명이 기재됐다. 고종의 관복(동달이)과 익선관 등 왕실 복장도 전시됐다. 고종의 투구와 갑옷을 비롯한 다수 유물은 이날 일반에 처음 공개됐다.
‘조선시대의 미술’ 기획전으로 이날 공개된 20건의 유물 가운데 10건이 오구라 컬렉션으로부터 기증받은 것이어서 도난품 전시 논란을 낳고 있다. 일본인 사업가인 오구라는 도굴 등 불법적인 방법으로 문화재를 무차별 수집한 인물로 알려졌다. 일제 강점기에 조선에서 다수의 문화재를 수집했고 그가 사망한 이후 아들이 문화재 1040점을 1982년 도쿄국립박물관에 기증했다. 국제박물관협의회(ICOM) 규약은 도난품 등을 기증받거나 구매하면 안 된다고 정하고 있다.
이날 박물관을 방문한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안민석 의원은 “박물관이 반입 경위를 조사해 밝히도록 촉구하는 국회 결의안 채택을 추진하겠다”며 “한국과 일본의 신뢰, 우호 증진 차원에서도 일본이 성의있게 조사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주한 일본대사관 측은 이날 공개된 유물 내용을 파악해 필요한 대응을 검토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