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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에마쓰 카즈요시가 말한 이병도
게시물ID : history_2562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그때그인간
추천 : 0
조회수 : 1374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6/03/08 18:22:40
 연속심포지엄 「일본에 있어 조선연구의 축적을 어떻게 계승할 것인가」 제 6 회, <조선사편수회의 사업을 중심으로>, 조선연구월보 14, 일본조선연구소,1963, ,
"다만 진단학회의 주요 멤버의 한 명인 이병도씨가 청구학회의 멤버이기도 했습니다만 이름뿐이었습니다. 이씨는 우리들이 가기 전부터 조선사편수회의 수사관보로 있었고, 후에는 촉탁이 되었습니다만, 어떤 것도 이름뿐이었습니다." 32페이지, 스에마쓰 카즈요시(末松保和)의 증언 중에서


로 246년(고이왕 12년에 해당) 위나라와 고구려의 요동전쟁입니다. 이 전쟁으로 고구려는 엄청난 타격을 받게됩니다. 그러나 전쟁의 후반부에서 고구려는 유격전술과 탁월한 전투의지로 위군을 결국 몰아냅니다. 이 전쟁은 승자도 패자도 없이 전쟁이 종결되어 압록강에서 요하지역까지는 상당한 힘(Power)의 공백상태가 나타나게 됩니다. 바로 이 때문에 한반도 남부로 내려간 부여계는 상당한 시간적 여유를 벌게 된 것으로 봐야 합니다. 이 시기 부여계의 적은 위나라와 고구려였습니다. 고이왕의 부여계는 상대적으로 약화된 틈을 최대한 활용한 것입니다. 또 다른 수혜자는 선비계의 모용씨입니다. 즉 위 - 고구려 전쟁으로 양국이 모두 타격을 받은 사이에 모용씨는 강력한 세력을 형성하고 부여계는 각종 체제정비를 하게되는 것입니다.
▲ [그림 ④] 3세기 고구려와 위의 요동전쟁(245)

임나일본부 설을 제창하여 한반도가 일본의 식민지였다는 것을 주장한 스에마쓰 카즈요시(末松保和)는 대체로 저의 견해와 흡사합니다. 즉 스에마쓰는 만주에서 크게 침공을 받고 고립된 부여계가 옥저 지역(현재의 함경도 지역)을 거쳐 마한(馬韓)의 여러 나라 가운데 하나인 백제(伯濟) 지역으로 남하하여 머무르다가 마한을 통일하였고 이 과정에서 350년경 백제를 건국하게 되었다고 보고 있습니다.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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