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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의 '선택'... 일본 극우 찬사 '씁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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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릴케
추천 : 5
조회수 : 772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3/09/30 20:53:54
그리스 대문호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유명한 교과서 집필자였다. 그는 생계가 궁할 때마다 아동 교과서를 집필해 경제적 위기를 넘기곤 했다. 그를 세계적 유명 작가 반열에 올려놓았던 그 숱한 역작들은 그에게 별 경제적 이득을 안겨주지 못했다. 게다가 그는 경제관념이 무척 부족한 사람이었다. 그러니, 조르바 같은 사람을 사업 파트너로 해 무모한 사업을 벌이기도 했을 것이다. 

덕분에 <그리스인 조르바>라는 명작이 탄생했고 조르바의 강렬한 춤사위는 현재까지도 전 세계인에게 댄스 교본처럼 애독되고 있다. 하지만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광산업의 실패로 완전히 쪽박을 찼다. 잃을 것이 없는 피고용인 조르바는 하늘을 가르는 자유로운 춤이 절로 나왔지만, 고용주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그 사업의 여파로 우리로 따지면 신용불량자 신세가 됐다.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생의 대부분을 가난하게 보냈다.

공산주의 지식인이었던 그의 정치적 성향도 경제적 궁핍을 부추기는 큰 요인이었다. 쓰는 책마다 국내외에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지만 명성과 함께 사회적 물의도 일으켰다. 매 작품이 발표될 때마다 그는 신성모독으로 인한 오해와 누명, 추방, 투옥, 소송, 금서 조치 등의 후환에 시달렸다. 성인 프란체스코와 붓다 그리고 톨스토이를 흠앙하며 신성하고 청빈한 삶에 극도로 경도되었으나 그런 그에게도 지적, 문학적, 정치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최소한의 경제적 기반은 필요했다. 그때마다 그는 제도권의 교과서 집필이라는 수단에 상당부분 의존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도 교과서 집필자였다

그리스 신화에나 등장하는 듯한 신비한 산의 산장에 틀어박힌 대문호는 신과 영혼을 논하는 명작 대신, 국정 교과서 검정을 통과하기 위한 아동용 학습지 집필로 심신을 소진하곤 했다. 또 신화의 땅에서 동화를 저술하기도 했다. 교과서처럼 동화도 그에게 작은 벌이의 한 수단이었다.  

교과서는, 그리스 정교회 주교들을 경악시켜 그를 파면시키지도 않았다. 정치적 견해를 달리하는 반대파들을 자극해 국외로 추방당하지도 않았다. 신성을 모독했다고 금서조치 되지도 않았다. 무엇보다 교과서 작업이 좋은 건, 부인 갈라테아(Galatea Alexiou)와 공동저작이라는 점이었다. 2인1조 공동 집필의 시너지 효과 덕분에 부부는 한 번에 다섯 권의 교과서를 집필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51살 나이에도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여전히 경제적으로 몹시 쪼들렸다. 이번에도 역시 교과서 집필에 착수했다. 그러나 이때의 작업은 이전과 달랐다. 그동안 교과서 집필 때마다 공동 저자로 참여했던 전 부인 갈라테아 없는 단독 작업이었다. 

병마와 싸우며 힘겹게 완성한 세 권의 교과서 중에서 겨우 한 권만 어렵게 공인 기관으로부터 채택이 되었다. 그는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서 당시 그리스 교과서 검정 기준이 얼마나 까다롭고 공정했는가를 엿볼 수 있다.

그리스 최고 명문 아테네대학 법학과 출신에, 추앙받는 총리의 최측근이었고, 장관을 역임했으며, 노벨 문학상 후보에 오르내리는 세계적 명성의 대작가가 안면 습진과 싸우며 힘들게 집필한 초등학교 2,3학년, 저학년 용 교재가 채택될 가능성은 고작 30%에 불과했다. 더군다나 그는 교과서 집필 경험이 풍부한 경력의 소유자였다. 그런 그에게도 그리스의 교과서 검정 절차는 공정하고 까다로운 관문이었다, 

하지만 경제적 위기 때마다 요긴한 생계수단이었던 교과서 집필이 훗날 니코스 카잔차키스를 무척 곤란하게 했다. 초기 교과서 집필을 대부분 부인과 공동으로 했기에, 이혼 뒤 재산 갈등의 원인이 됐다. 다정한 공동 집필자였던 그들은 이제 저작권 관련 소송으로 팽팽하게 대치했다. 이 이혼 부부에게 법원은 공정한(?) 법집행의 전제 조건으로 각자 양쪽 입회 하에 각자 저작물의 글자 수를 세라는 고뇌에 찬 명령을 했다.

그 많은 교과서의 글자 수를 일일이 세야 하는 숙제를 받아 들고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당황했다. 지금이라면, 컴퓨터가 알아서 글자 수까지 표시해주니 간단히 해결될 일이지만, 당시로서는 무척 곤혹스런 일이었다.

교과서 집필은 니코스 카잔차키스에게 생의 매 고비마다 경제적 위기를 타개시켜준 고마운 생계수단이었고, 자라나는 세대에게 자신의 지식을 전수하는 의미 있는 학술 행위였다. 하지만 개인사적으로는 어처구니없는 부메랑이기도 했다. 

이 '불온서적'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런 상황은 교학사 역사교과서라는 '불온서적'의 공동 저자들이 조만간 맞이할 운명일지도 모른다. 특정 세력을 비호하는 이 불온 '찌라시' 내용을 보면 더욱 다양한 후환을 염두에 둬야 할 듯하다. 필진들은 훗날 자신의 후손들에게 공동 집필자로서 이름 석자를 떳떳이 밝힐 수 있을까? 

자신들이 활자를 동원해 자행한 이 어마어마한 범죄 행위를 지금은 전혀 수정, 보완할 의사가 없다고 버티고 있다. 수치 등 사실 관계 오류는 바로잡겠지만, 친일·독재 미화 논란을 일으킨 내용은 수정, 보완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언제까지 그 '학자적 자존심(?)'을 고수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우리가 기억하는 한 역사란, 아무리 왜곡해도 결국 진실의 자리를 찾아가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한 나라의 역사교과서다. 그 어떤 과목보다 학자적 양심과 올바른 사관이 필요하다. 그런 역사교과서를 집필하는 사명을 그들은 너무 쉽게 내던지고 특수 세력을 옹호하는데 나섰다. 이 '불법 유인물'을 감히 교과서로 합격시킨 국사편찬위원회의 범죄는 더 무겁다.

이 교학사 역사교과서는 내수용이 아닌 일본 문부성 납품용으로 특수 제작된 식민사관 교본으로 딱 알맞다. 대한민국 어용 사학자들의 '진충보국 멸사봉공' 정신이 녹아 있으니 아베 신조에게 헌정한다면 감격스러워할 것이다. 이들의 충정은 헛되지 않아서 일본 극우 언론 <산케이신문>이 이 한국 학자들의 노고를 치하하는 칼럼을 내놓았다. '한국판 후쇼사 교과서'라는 최고의 찬사로 이 책의 가치를 인정했다. 

아울러 <산케이신문>은 "한국에서 이번 '새로운 교과서 소동'은 일본의 교과서 문제에 대한 한국에서의 지나친 개입을 돌아보고 반성하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고 해석했다. 박근혜 정부는 일본 극우 신문에게 극찬을 받을 만하다. 박 대통령은 최근 국사편찬위원장에 뉴라이트 학자 유영익을 내정하는 결기를 보여주면서 교과서 문제로 인한 국민의 우려와 원성을 단박에 묵살했다. 

역사시대란, 문자 기록물이 존재하는 시대를 일컫는다. 지금 대한민국은 역사 이전의 선사시대로 퇴행한 듯하다. 비단 8종의 역사교과서 중 1종의 불량품이 탄생해서 하는 말이 아니다. 뒤틀린 역사교과서가 대학 교수라는 학자 등에 의해서 집필되고, 국가 인증기관의 검정을 필하고, 마침내 배포가 용납되는 정치적 환경을 지적하는 것이다. 한 나라의 역사교과서를 기술한 학자들의 수준이 나머지 공부가 절실한 '지진 학자'들이라니, 놀랍지 않은가.  

역사교과서가 이 모양이라니....

전교조가 최근 일선 중고교 역사교사 770명을 상대로 온라인 설문조사 한 결과에 따르면, 99.5%가 교학사 역사교과서가 교재로 부적합하다고 응답했다. 여러 지자체 교육감, 교육청에서도 검정을 취소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출판사는 다른 교과서 매출에 미칠 파장을 우려해 출판 포기까지 검토했지만, 집필자들의 반대에 부딪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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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보물 돌리는 '친일·독재미화' 논란 교학사 교과서 저자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 저자인 이명희 교수(왼쪽)가 17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역에서 김충환 전 의원과 함께 "올바른 역사교육이 정립되기 위해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교과서 문제에 관심을 가져다 달라"며 고향으로 내려가는 귀성객들에게 홍보물을 건네주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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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집필자 이명희 공주대 교수는 추석 귀성객들을 상대로 해명 유인물을 배포했다. 자신이 주필진으로 공헌한 교학사 역사교과서에 대한 문제제기를 '좌파 세력들의 테러'로 규정하며 시민의 동의를 구했다. 그가 귀성객들을 상대로 펼친 캠페인의 유인물 제목은 '바른 역사'였다.  

광우병 쇠고기, 방사능 생선 못지않게 잘못된 역사교과서도 청소년에게 유해성분이다. 이 불온서적의 학내 유통을 차단하는 것은 기성세대의 절박한 의무다. 저질 교과서가 교재로 채택되어 역사시간을 교란시킬 끔찍한 사태는 막아야 한다. 교학사 역사교과서의 내용은 학생들에게 혼란을 야기할 것이다. 교과서 위주로 출제된 시험 문제지를 앞에 두고 당황할 아이들을 상상해 보라. 

어쩌면 여러 학생은 우리 민족의 영웅을 묻는 질문에 이승만과 박정희 사이에서 고민할 수도 있다. 윤봉길, 안중근의 직업을 묻는 질문에 테러리스트라고 답할지도 모른다. 백범 김구? 책 어디에서 본 것도 같은 인물로 가물가물하지만 아예 그의 이름은 시험에 등장하지 않을 것이다.

제주도 4.3사건? 남로당의 사주로 주민들이 봉기를 일으켜 무고한 경찰과 우익인사들이 많이 살해당한 사건. 광주민주화운동? 시민들이 도청을 장악하여 계엄군이 투입되었고 시민들을 향한 발포는 없었다. 어떤까. 끔찍하지 않은가?

이 교과서가 다음 학기 교재로 끝내 유통되면 가장 큰 피해자는 학생들이다. 불량 교과서에 항의할 의무와 권리는 당연히 미성년 학생의 보호자인 학부모들의 몫이다. 그런데 주변 학부모들의 반응은 의외로 낙관적이다. 이렇게 수준 미달의 교과서가 설마 채택될까 반신반의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학부모들 기대와는 달리 교육부가 합격을 철회할 의지는 그다지 커 보이지 않는다. 새누리당 의원들은 근현대 역사교실을 열어 필자들을 옹호하는 분위기 조성에 앞장서고 있다. 박 대통령은 심각한 우편향 학자를 국사편찬위원장에 임명했다.   

그렇다면 가장 직접적인 피해자인 학생들은 어떨까. 고교 2학년인 딸에게 교학사 교과서의 한 내용을 읽어줬다. 의외로 아이는 명쾌했다. 학생들도 나름 보고 들은 것이 있는데 그런 엉터리 이야기를 누가 믿느냐는 반응이었다. 하지만 아이가 한 말은 충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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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학사 교과서 채택 안돼" '친일·독재 미화 뉴라이트교과서 무효화선언 전국 학부모 기자회견'이 25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 주최로 열렸다. 참석자들은 "아이들에게 교학사 교과서로 왜곡된 역사를 배우게 할 수 없다"며 "학교운영위원회에서 채택되지 않도록 불채택운동을 전개할 것"이라고 밝혔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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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하지 마세요. 나는 '이과'라 이제 한국사 안 배워요."
"역사를 안 배워? 이과는 원래 한국사를 안 배우니? 우리 나라 역사를 문과만 배워?"
"문과라고 다 배우는 게 아니고, 수능에 한국사 볼 애들만 선택과목으로 배워요."

수능에 반영되지 않기 때문에 역사 과목을 배우지 않는다는 사실이 내게는 이번 교과서 소동보다 더한 충격이었다. (지난 8월 교육부는 2017년 수능부터 한국사를 필수 과목으로 하겠다고 발표했다) 내 아이만큼은 쓰레기 역사교과서를 붙들고 씨름하지 않아도 돼 다행이라는 안도의 마음보다, 고교 2학년은 역사를 배우지 않는다는 사실이 더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반만년 역사를 자랑한다는 나라에서, 역사 과목이 '배제' 아니면 '선택'이라니.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부부 공동 저술 교과서 저작권 소송을 하면서, 교과서 활자를 두고 '내 것 네 것'을 구분하는 웃지 못할 상황을 맞았다. 교학사 역사교과서 집필자들 사이에도 머잖아 이런 사태가 벌어지지 말란 법이 없다. 아마도 정 반대의 상황이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

교학사 역사교과서보다 더 무서운 건...

'이승만을 민족 최고의 영웅이라고 치켜세운 꼭지는 네가 쓴 것.' 
'명성화후를 시해한 자객의 심정을 대변해주는 감동적인 부분은 모 교수가 고안한 것.' 
'현대와 별반 다르지 않은 1930년대 명동거리를 시간 여행자의 초능력으로 훤하게 묘사한 사람은 아무개 학자.' 
'정신 근로령이 1944년 전쟁 막바지에 창설되어 노력동원만 있었노라 축소한 것은 모교수의 아이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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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 표지.
ⓒ 윤근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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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추태가 벌어질지도 모른다. 그런데 가장 많은 책임은 인터넷 위키백과에게 떠넘겨지게 될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위키백과에서 'Ctrl+c' 키를 누른 뒤 교과서에 'Ctrl+v'로 붙여 넣은 정황이 곳곳에 드러났기 때문이다. 벌써부터 교학사 필진들 사이에 균열 조짐이 있다고 하니, '웃긴 상황'은 어쩌면 보다 빨리 현실이 될 수도 있다. (관련 기사 - "<한국사> 집필진 사이에 내분... 교사 3명 수정 거부")

교학사 역사교과서 표지모델은 미륵반가사유상이다. 가장 근접한 미래에 도래하여 중생을 구제하라는 임무를 받들고 인간세상을 관망중인 미륵보살. 불교 천수경에 열거된 열 가지 무거운 죄 중에 거짓말로 인한 죄가 네 가지나 포함된다. 그만큼 불교에서는 거짓말을 살생 버금가는 중죄로 친다. 도솔천에 앉아 있어야 할 미륵보살이 거짓 투성이 역사교과서의 표지모델로 앉아있으니 아이러니다.

미륵보살은 석가모니가 미처 구제하지 못하고 도태시킨 나머니 중생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구제한다는 서원을 세운 보살이다. 거기에는 물론 거짓말을 일삼은 중생도 모두 포함된다. 교학사 역사교과서 표지, 반가부좌 상태의 미륵보살이 그토록 시름에 잠긴 모습도 그 때문일 것이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909871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쓴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은 당시에 그리스 정교회로 부터 엄청난 압력을 받은 적도 있지만

영화화까지 될 정도로 작품성을 인정 받은 작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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