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 스스로를 멧돌만드는 사람에 비유한 적이 있다. 요즘 시대에 필요로 하지 않으나, 나는 그것이 중요했고 전부였다. 나이 서른을 넘겨 내가 썩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라는 것은 유쾌하지 않았으나, 어쩔도리가 없었다. 그저 난 멧돌이 내맘에 들게 나오면 그것에 기분이 좋았기에......
내 직업은 패턴사이다. 사실 디자인도 한다. 이것은 장점일 수도 단점일 수도 있다. 나는 패션을 전공했으나, 유행은 싫어했다. 유행을 이해하는 것은 나로선 불가능했다. 그래서 더 패턴에 끌렸는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자인도 할 수 있는 것은 내 이력과 상관이 있다. 꽤 오랫동안 난 복종을 정하지 못했다. 여성복, 남성복, 아동복 등등 전부 그밥에 그나물로 보였다. 그러다 어떤 일을 계기로 속옷을 결정하게 됐는데, 속옷 패턴사라는 직업은 없었다. 디자이너가 패턴까지 작업해야했다. 어쩔 수 없이 난 디자이너가 되어야만 했었다.
사실 난 여성인권을 위해 속옷을 만들고 싶었다. 여자들에게 속옷이라도 편하게 입히고 싶었다. 내 궁극의 목표는 맞춤속옷이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난 속옷 디자이너로서 오히려 내 인권이 사라짐을 느꼈다. 게다가 난 국내 소비자에게 너무 좋은 제품은 필요하지 않는구나 판단했었다.
속옷 회사를 퇴사하고 무역회사로 들어갔다. 그곳에서도 나는 곧 영혼없이 일하게 되었다. 내 패턴이 빛날 자리가 아니었다. 몇 개월 못가 회사는 내가 진행하던 바이어를 안하겠다 했고, 내게 그만둘 것을 요구했다. 십여년 전, 첫 직장에서의 상황과 비슷했다. 얘기가 끝난 다음날 난 새벽에 출근해 내 짐을 집으로 보냈다, 용달로.
직속상관이 물었다, 혹시 회사에서 부르면 다시올 생각있느냐고. 내 대답은, 아니오! 사람 쉽게 자르는 곳과 일하지 않겠습니다.
오전 열시경 회사를 나왔고, 난 곧장 독일어학원을 찾아가 초급반에 등록했다. 내 나이 34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