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들어 부쩍 피곤함이 늘었었다 일을 마치고 들어오면 푹 데친 숙주마냥 널부러지는 나를 보고 와이프는 '늙었네 늙었어~~" 라며 구박을 했지만 어쩔 수 없는 피곤함에 집에선 거의 쇼파와 물아일체가 되곤 했다
뭔가 이상하다 싶어 생각을 해보았다 '요새 일이 많아 스트레스가 심한건가' 하고 스트레스 해소에 특효라고 알려진 민간요법으로 근무 후 맥주캔 벌컥벌컥 요법을 해봤으나 피곤함은 더 늘어날 뿐이었고 와이프의 구박과 뱃살만 더 늘어날 뿐이었다
이 몸의 건강함을 전혀 의심하지 않고 살아왔던 0.3세기였건만 육체는 이미 붕괴중이었나보다 10여년간의 쌓인 의학 지식 속에서 각종 질병들이 머릿 속을 지나다녔고 과부가 되었다가 새로 시집가서 손녀를 안고있는 아내의 모습까지 상상한 뒤에 검사를 받아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혼자 죽을 순 없었다. (혹시 여보 순장이라고 알아? 순장할 생각 없어? 라고 했다가 순장을 검색해본 와이프한테 등에 빅장만 맞았다)
생각을 했으면 바로 실행에 옮길 때 지금 있는 병원의 내과 원장님을 찾아가 최대한 아픈 모습으로 검사를 받아야겠다고 했다 걱정하는 와중에도 잘 하면 병가를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쿼크단위의 사소한 희망을 안고 있기도 했다 응급실에 새로 들어온지 얼마 안된 간호사에게 내 혈관을 연습용으로 바치고 나서 1시간 뒤 결과를 들으러 원장님을 찾았다 살인범이 재판장에 갈 때 이런 기분이었을까 어떤 선고가 떨어질지 두려워하며 있는데
원장님은 간수치가 너무 올랐다 술 적당히 마셔야겠다고 하며 간장약을 1주일 분 지어주셨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간초음파를 한번 보자고 했는데 내 기억에 따르면 지방간의 경우 초음파에서 간이 조금 하얗게 나오는 걸로 알고 있었다 그래도 마신 술이 있으니 좀 하얗겠지 생각하고 영상의학과에서 간의 위치에 초음파를 댄 순간
이야~~ 눈이다아~~~~ 알프스와 같은 새하얀 설경이 펼쳐졌다...
지방간이 심하데스요.... 그래서 지금 와이프한테 혼나고 금주중입니다... 2달 정도 됐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