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다 보면 메신저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는 날이 있다.
아무리 같은 말이라 할 지라도 그걸 누가 말하냐에 따라 주변의 반응이 달라진다.
똑 같은 사실을 보도해도 세계 정세를 뒤흔드는 언론사가 있는가 하면
찌라시 취급 받는 ㅑㅓ ㅑㅏㅇ 버ㅇ 같은 언론사(90도 돌려 보세요)도 있고
똑 같은 멘트로 고백을 해도 성공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처참하게 차이는 사람도 있... 크흡......
어쨌든 속담에 ‘콩으로 메주를 쑨대도 못 믿는다’는 말이 있듯이 메신저는 생각보다 중요한 요소이다.
그리고 얼마 전에 이를 직접 체감하게 된 사건이 있었다.
아직 방학 중이긴 하지만 간혹 동아리 방에는 몇 명의 사람들이 있는 경우가 있다.
가령 곧 있을 개강에 앞서 미리 상경했지만 딱히 할 게 없는 잉여라든가
집이 학교 근처라 부모님과 함께 살지만 집에서 빈둥거리는 게 눈치 보이는 잉여라든가
개강 시기에 맞춰 알바를 그만두거나 학원 강의도 끝난 잉여라든가
그런 할 일 없는 잉여들이 동방에 모여 있었다.
아, 물론 나는 마침 그 날 그 때 한가했을 뿐이다. 정말로.
그렇게 나를 뺀 잉여들이 모여 또 다시 잉여잉여 하고 있을 때
선배 한 명이 양 손에 피자를 들고 들어왔다.
비록 인생은 잉여일지라도 주머니만큼은 빈곤한 우리(물론 난 잉여가 아니다)였기에
선배님의 바다처럼 넓은 아량에 감동의 침을 흘릴 수 밖에 없었다.
그런 우리를 보고 선배가 한 마디 했다.
“먹자, 돼지들아.”
이에 우리는 화답이라도 하듯
“오늘도 우리에게 일용할 사료를 주시옵고....”
“학교에서 피자는 마주치기 힘든 대상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제 저녁이죠.”
“피자의 토핑에는 다량의 콜레스테롤과 나트륨 등의 성분이 함유되어 있는데요, 제가 한 번 먹어보겠습니다.
“선배님이 주신 피자의 맛, 잊지 않겠습니다!”
“치즈 가득한 피자! 고기 가득한 피자! 난 너만 있으면 돼!”
라며 각자 나름의 방식대로 꿀꿀거리며 피자를 영접했다.
물론 매우 상식적이고 정상적인 나는
‘이 사람들은 가축 취급 받는 걸 즐기는 구나’라고 생각할 뿐이었다.
그러다가 며칠 후, 내가 치킨을 사 들고 동방에 가게 되었다.
동방을 코 앞에 두고 마침 그 날의 기억이 떠오른 나는 동방 문을 열면서 외쳤다.
“먹자, 돼지들아!”
하지만 사람들의 반응은 사뭇 달랐다.
마치 연신 졸다가 국회 부의장에게 항의하러 나갔던 모 의원처럼
초점도 없이 풀려 있던 두 눈에 쌍심지를 켜고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러고는 나에게 폭언을 일삼기 시작했다.
“아가리 털고 있네. 내가 빙어 핫바로 보이냐? 슬슬 오함마 준비허야 쓰겄다.”
“사람은 말실수 할 수 있어. 사람은 그럴 수 있어. 그래도 넌 그러면 안 되지.”
“우리보고 돼지라 그랬지. 난 그 말이 좋아. 사실이니까. 그래도 날 돼지라고 놀리는 건 참을 수 없어!”
“내가…. 내가 돼지라니! 이건 말도 안 된다고! 어흐흐흑.”
이외에도 이루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폭언에
난 치킨을 미처 테이블에 올리지도 못하고 부들부들 떨고 있을 뿐이었다.
그 때 후배 하나가 내게 구원의 손길을 건넸다.
“에이, 오빠들, 그만해요. 여기 꼬망 오빠가 치킨까지 사왔는데 너무 그러지 마세요.”
여자라서 그런지, 사람들을 말리면서 따뜻하고 세심하게 날 배려해주고 있었다.
난 후배의 온기에 이끌려 드디어 치킨을 테이블에 올려놓을 수 있었다.
그리고 후배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근데 꼬망 오빠, 몸무게가 어떻게 돼요?”
“나? 나 5X kg.”
“뻗쳐.”
“응?”
“뻗치라고.”
결국 여후배는 서럽게 울면서 닭다리를 뜯었고
난 크리스 락의 동영상으로 백인이 ‘nigger’를 쓸 수 있을 때는 ‘Fxxk me harder, nigger.’ 밖에 없다는 것을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