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도둑이 들었습니다.
<시나리오 1>
아버지는 어디서 녹슨 칼을 하나 집어듭니다.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를 비웃습니다. 녹슨 칼 하나로 도둑을 어찌 대적하냐고, 그냥 괜히 용기있는척 가족들 앞에서 쇼하는거 아니냐고. 그러길래 평소에 운동도 좀 하고 칼도 갈아놓으라 하지 않았냐고 타박합니다. 맞서 봐야 결과는 뻔하니 어차피 싸우는척하다 보내줄것을 용감한척 하지 말라 합니다. 큰 아들이 보다 못해 아버지를 도우려 나섭니다. 형이 영웅이 되는것이 못마땅한 아우는 평소에 아빠랑 사이도 좋지 않았으면서 왜 이럴땐 용감한척, 친한척 하냐고 궁시렁댑니다. 그러는 동안 도둑은 모든 재물을 들고 유유히 걸어 나갑니다.
<시나리오2>
아버지는 두렵지만 다른 방법이 없으니 옆에 있던 녹슨 칼이라도 집어 듭니다. 이길 자신은 물론 없습니다. 그냥 그거라도 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늘 비아냥거리기만 하던 아내가 격려를 합니다. 당신은 할 수 있어. 옛날 젊었을때 얼마나 잘 싸웠어? 그러니 한편 부담 백배이지만 은근히 기분은 좋습니다. 아들들도 빗자루며 허리띠며 있는대로 꺼내 들고 함께 나서려 합니다. 이제 물러설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 두렵기 보다는 가족들이 함께 해 주니 오히려 힘이 납니다. 온 가족이 하나되어 도둑과 맞서려 안방문을 나섭니다.
결과는 도둑의 승리였습니다. 미리 치밀한 계획을 세워 나쁜 짓을 하기로 마음먹고 훈련된 자에게 당해내기는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 이 가족에게 벌어진 일은 천양지차였습니다. 첫번째 시나리오를 따른 가족은 서로에게 비난과 책임전가에 바빴습니다. 그들은 그 이후 유사한 사태가 벌어졌을 때 똑같은 피해자가 되었고 무엇보다 그들의 일상은 계속 불행했습니다. 그러나 두번째 시나리오를 따른 가족은 비록 피해를 입었어도 희망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또 다시 그런 일이 벌어질때 어떻게 대처할지도 알았지만 무엇보다 그들은 서로를 신뢰할 수 있어 행복했습니다.
야당의 필리버스터링을 놓고 우리는 어떤 시나리오를 따라야 할까요? 희망이 없는 시대라 합니다. 그런 때일수록 우리는 희망을 억지로라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