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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해 톰 오늘은 집사람 때문에 먼저 들어가 봐야 할 것 같아. 오늘 자료 정리 할게 좀 많던데 부탁 좀 해!”
“어, 그래 어쩔 수 없지. 내일 보자고”
BS 사에 연구직으로 입사한 톰 이었지만, 소심한 성격과우유부단함 때문에 주변 동료들에게 항상 이용당하는 그였다. 이전에 정부산하 무기개발 연구팀에 근무할때도 톰은 이런 성격 때문에 동료들과 적극적으로 어울리지 못하고 항상 주변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나늘 다른 사람들보다 자신이 우월하다고 생각하던 그는 그런 동료들의 부당한 처우를 자신이 베푸는 관용이라 생각하며 스스로 합리화하곤 했다. 톰은 BS 사가 소유한 각종 탐사 장비들에서 들어오는 데이터들을정리, 분석하여 관련 데이터들을 각각의 연구팀에 전달하는 단순 보직이었지만, 언젠간 자신의 팀을 꾸려 리더로서 누구도 해내지 못한 성과를 내고야 말겠다는 야망을 가지고 있었다.
톰은 저녁으로 도너츠 두 개와 제일 큰 사이즈의 진한 블랙 커피를 한잔 사 들고 연구실로 돌아와 전날 전송된 데이터들을정리하기 시작했다. 워낙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장비들이 많아 매일매일 들어오는 데이터의 양이 방대했지만, 일상적으로 들어오는 데이터들이란 것이 거의 같은 것들이라 이제는 요령이 생겨 정리하는 시간이 많이 줄었던 터라여유를 부리며 데이터를 분리해 나갔다. 톰은 화성 표면 탐사 로봇의 전송 데이터를 출력하여 대충 한번훑어 보고는 습관적으로 그리섬이라고 이름표가 붙어있는 종이 상자에 넣으며 라디오 채널을 바꾸려 의자에서 일어났다.의자에서 일어나 연구실 입구 옆의 라디오를 응시하던 톰은 갑자기 무언가 찜찜한 느낌이 들었다. 잠깐동안 그 자리에서 계속 라디오를 쳐다보던 톰은 황급히 상자에 넣었던 데이터 용지를 다시 꺼내 들고 천천히 살펴 보았다. 몇 번이고 다시 보았지만 그것은 틀림없이 생명체의 흔적이었다. 톰은누군가에게 뺏길까 두려워라도 하는 듯이 데이터 용지를 두 손에 꼭 쥐고 바닥에 쭈그려 앉아 머리 속에 떠오르는 생각을 정리하려 애썼다. 잠시 동안 그렇게 앉아있던 톰은 마침내 휴대폰을 꺼내어 전화번호를 찾았다.
“중위님? 오랜만이네요. 음.. 급하게 좀 뵙고 싶은데요..지금 당장 봤으면 좋겠네요”
단상 위에 서있던 테일러는 그리섬과 헤더를 한번씩 쳐다보고 살짝 미소를 지어 보였고 뒤편의 화면에선 조그마한 금속으로보이는 조각이 하나 올라왔다. 그림이 나오자 테일러는 신이 난 아이처럼 흥분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입을 열었다.
“우선 그리섬 박사님과 헤더 박사님에게 정말 감탄했다는 말을 전하고 싶네요. 정말 색다르고 창의적인 접근법이었습니다. 두 분의 박사님이 실제‘잔나’의 좌표를 가지고 있을 거라는 생각은 정말 못했었는데, 멋지네요! 음.. 아! 일단 본론으로 들어가야겠네요. 2년 전 화성의 혈액 사건이 있었을때 저와 피터는 메사추세츠 공대에서 천문학에 관련된 연구를 하고 있었죠. 그러던 중 여기 소머스 회장님의제의로 SM 프로젝트에 참여 하게 되었습니다. 프로젝트에서처음 저희가 맡게 된 임무는 여기 있는 이 조각에 새겨져 있던 하나의 도형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천문학이전공인 저희 둘에게 수학에 더 가까워 보이는 이 연구가 맡겨진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죠, 바로이 물체가 화성에서 발견됐다는 사실과 화성에서는 발견될 수 없는 물질이라는 모순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이물질은 우주 비행체에 흔하게 쓰이는 세라믹 합금으로 표면에 자연적으로는 생길 수 없는 인위적인 도형까지 새겨져 있습니다만, 지구에서 화성으로 보낸 것이 아니라는 거죠.”
“잠깐만요, 그럼 그때 나사에서 그렇게 언론에 발표하고뒤로는 추가 탐사를 했다는 건가요?”
헤더가 끼어 들었다.
“진부하네요, 소머스 회장님도 처음부터 알고 있었고요? 너무들 하시네요! 이게..”
“헤더, 일단 테일러 설명 먼저 끝까지 한번 들어보죠”
그리섬이 헤더를 말리며 말했다.
“그 부분은 저도 학자로서 늘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만, 두 분께 따로 연락 하여 사실을 말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는 것을 두 분이 한편으로나마 이해 해 주셨으면 합니다. 저도 두 분과 마찬가지로 학자로서의 호기심을 포기하기 정말 어려웠습니다.”
“이해해요. 테일러 박사님, 잘잘못은 나중에 가려보기로 하고 우선은 계속 진행할까요?”
그리섬이 웃으며 말했다.
“아.. 네, 박사님!”
화면은 다음으로 넘어가 금속 물체의 표면에 있던 도형이 확대되어 좀 더 선명하게 처리된 사진이었다.
“상황을 전해 듣고 저와 테일러는 여러 가설을 세워 놓고 연구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이 도형이 별자리를 도식화한 것이라는 걸 알게 되었고 이에 해당하는 실제 천체 또한 찾아 내게되었습니다.”
다음 화면에서는 그리섬이 PPT에서 사용한 MH-001의 사진과는 비교도 안 되는 선명한 행성 사진이 나왔다.
“그리고, 이 별자리를 관측할 수 있는 행성이 ‘잔나’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테일러는 마치 ‘잔나’를처음 발견했을 때처럼 기쁜 표정을 지으며 그리섬을 처다 보며 말했다.
“인상적이네요, 그리고 한편으론 의문점이 드네요. 회장님이 진행하고 있다는 SM 프로젝트가 이미 이 정도까지 진척이되었다면 굳이 저에게 설명회 제안을 한 이유가 뭘까요?”
그리섬이 담담하게 말했다. 헤더는 대놓고 불쾌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일어나 단상 위의 테이블로 가 놓여있던 노트북을 챙기며 얘기 했다.
“이미지와 달리 참 독특한 취향이 있으시네요 회장님?”
소머스 회장은 여전히 가벼운 미소를 띄우며 자리에서 일어나 얘기 했다.
“아직 두 분이 모르고 있는 게 있습니다. 카스텔사가진행한다는 산타 마리아 프로젝트의 목적이 무엇일까요? ‘잔나’를탐사해서 그 곳에 또 다른 생명체가 살고 있다는 것을 단순히 증명하기 위해서? 그리섬 박사님 그리고헤더 박사님, 저는 언제나 미래를 보며 사는 사람이랍니다. 전우리 인류가 이제 저 우주 밖의 새로운 생명체를 맞을 준비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서로의 조우가평화롭고 평등 하려면 반드시 누군가는 사전에 그들에 대해 알아보고 그들이 나름대로 준비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우리와의 조우가 우리에게 어떤 방식의의미가 될지 판단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그들은 지구와 불과7,800KM 밖에 떨어지지 않은 화성에 그들의 흔적을 남겼습니다. 어쩌면 벌써 지구에다녀갔을지도 모르는 일이지요. 하지만 우리는 아직 ‘잔나’에 적당한 인재들을 파견해 조사하기에는 몇 가지 문제 점이 남아 있습니다. 사실대부분의 문제들은 이제 거의 해결 단계에 있다고 볼 수 있지만 가장 큰 문제는 현재의 비행 기술로는 ‘잔나’까지는 편도 비행으로만 6년이 걸리는 데다 유인선으로 양성자 추진최고 속도를 내는 경험도 없었죠. 저는 박사님과 헤더 박사님이 저희와 힘을 모아 우리의 마지막 숙제를함께 풀어주셨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