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개발기획사업이 본 궤도에 올라서려는 1961년, 5.16 군사쿠데타가 벌어졌고 모든 정책과 사업은 중단되었다. 기습적인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군부세력이 정권의 정통성 보강 작업이 시급한 마당에 대대적인 국토개발과 국민계몽사업을 펼칠 리 없다. 장면 정부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만 제3공화국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으로 바꿔 도시화와 공업화를 본격적으로 추진하고 국토개발기획사업은 폐기처분했다. 대신 국가재건최고회의에 직속기관으로 재건국민운동본부를 두고 군부의 개혁의지를 국민에게 선전하는 강력한 관주도의 국민동원운동을 전개했다. 마을·직장·학교를 대상으로 정신훈화 교육과 향토개발운동 등을 주관한 재건국민운동은 별 성과 없이 조직개편을 거듭하다 훗날 새마을운동에 흡수통합되었다. 이렇게 정권의 정통성 강화와 대국민 선전, 도시화와 공업화에 몰두하다보니 1970년대에 접어들며 방치되었던 농촌개발과 식량문제가 현실 과제로 대두됐다. 그리고 10월 유신이라는 장기집권의 토대를 위해 새로운 국민의식운동이 필요했다. '새마을 운동'은 그렇게 등장한다.
정리를 해 보면 일제 강점기에 민족운동으로 시작된 농촌계몽운동이 4.19의 힘을 받아 장준하 선생의 국토건설사업으로 다시 태어났다. 그러나 5.16 군사정권은 장면 정부의 이 거국적 사업을 폐기해버렸다가 10년이 지난 뒤 이를 적당히 짜깁기해 새마을운동이란 모방물을 만들어 낸 것이다. 이것을 10년 뒤에 리바이벌 시켰다고 해야 할까? 다른 각도에서 보면 1960년에 이미 시작돼 궤도에 오르려는 새마을 운동을 정치적·정략적 이유로 10년을 지연시켰다는 해석이 더 타당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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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남의것을 훔쳐 자신이 마치 경제를 살린거 마냥 도둑질한 인간이 박정희란 인간이였고 지금까지도 이나라의 반수에 가까운 사람들이 박정희가 경제를 일으켜 세웠다는 세뇌 망상에 빠져 있다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