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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PT의 두 번째 Sheet에는 각종 언론 매체에 실렸던 화성에서 채취된 혈액 샘플 관련 기사가 어지러이 스크랩 되어 있었다. 기사에는 나사에서 진행한 극비 화성 탐사 중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데리고 갔던 침팬지가 현장에서 사고를 당했고 그때 침팬지의 혈액이 발견된 것이라는 이야기가 실려 있었다.
“과학자가 되어 여러 가지 연구를 진행하며 전 항상 새로운 진실을 알아가는 것과 더불어 새로운 의문을 끊임없이 찾아내는 것 또한 학자로서의 의무라고 생각 해왔습니다. 그런데 학자로서 ‘우주 어딘가에 또 다른 생명체가 있을 것’이라는, 이 너무나 당연한 확률적 가능성을 한번도 진지하게 고민해 본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크게 머리를 한대 얻어 맞은 것 같았죠. 회장님도 잘 아시는 화성에서 채취되었던 샘플은 적어도 저와 여기 있는 헤더가 분석한 바에 따르면 ‘사람’의 혈액이었고 나사에서 표본을 가져가 지금까지도 무수히 많은 음모론을 만들고 있는 그 우스꽝스러운 언론 발표도 더 이상 제겐 중요한 게 아니었습니다. 이후에 저는 헤더와 다른 연구에 몰두 했습니다. 그것은 우주에 우리와 다른 생명체가 존재하느냐 그렇지 않느냐가 아니었습니다. 어떻게 그들을 찾을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적어도 화성의 그 혈액 샘플은 저희에게 하나의 큰 가설을 제시해 주었죠.”
PPT의 세 번째 Sheet에는 섹시한 여성으로 의인화된 사과 벌레가 빨간 사과의 껍질을 뚫고 나와 정면을 바라보고 웃고 있는 만화의 한 장면이 나왔다. 벌레는 발표를 하고 있는 그리섬에게 빨리 진행하라는 듯한 표정을 보이다가 이내 다시 사과를 한입 베어 물고는 입을 우물거렸다.
“화성에서의 그 혈액 샘플은 제게 하나의 영감을 주었습니다. 여태까지 우리는 우주에 또 다른 생명체가 있다면 이렇게 넓은 우주 어디에 생명체가 있을까? 혹은 생명체가 있을만한 환경을 가진 행성이 있다면 어떻게 그것을 찾을까? 우리가 우주로 내보내는 일정한 신호를 주기적으로 내보낸다면 그 신호를 감지한 누군가가 회신을 보내지는 않을까? 하는 다소 근본적이고 수동적인 의문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혹은 우리가 알고 있는 물리학적 사고를 배제한 그야말로 초월적인 가설을 세워 그 의문을 풀어보고자 했었죠. 그런데 만약 지구가 아닌 또 다른 어떤 행성에서 우리와 비슷한 수준의 기술을 가진 어떤 이들도 다른 행성에서 그들과 다른 어떤 무언가를 찾고 있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화성에서의 그 혈액이 만일 우리를 찾고 있는 그 누군가의 그것이었다면 어떨까? 우리가 만약 화성의 혈액처럼 그들도 모르게 남겨놓은 흔적을 찾아 낼 수 있다면 이 근본적인 의문에 접근할 수 있는 좀 더 가시적인 방향이 잡히지 않을까? 그때부터 전 좀 더 다른 방향의 접근을 고민 했습니다. 그들이 어디에 있는지를 직접 알아내는 게 아닌, 그들이 남겨둔 흔적을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라는 의문으로 출발 하는 것이었죠. 화면에 보이는 사과를 우리의 우주 공간으로 가정해보죠. 그 무한한 공간에서 저 작은 벌레를 직접 찾는 것보다 벌레가 지나간 길을 찾아 그 길을 따라갈 수 있다면 그 확률이 훨씬 높아질 테니까요. 우리가 우주비행을 하게 되면 어떤 식으로든 우주공간에 흔적을 남기게 됩니다. 비행술이 발전하면서 추진체로 양성자를 쓰게 된 이후로는 그 흔적이 더 또렷이 남게 되었죠. 제 연구의 첫 시작이 그들도 저희와 비슷한 수준의 기술을 가지고 있다는 가정으로 출발 한 것이기에, 일단은 추진체가 남기는 흔적을 찾아 보는 것을 연구에 출발점으로 잡았었습니다. 그렇게 연구의 방향을 잡고 나자 저에겐 두 가지 문제점이 생기게 되었죠. 우리가 우주 공간에 남겨진 흔적을 찾아 그 것을 역추적해서 또 다른 생명체가 있을 가능성이 있는 행성을 찾아낸다고 해도 탐사를 위해서는 실질적인 탐사체를 보내는 일도 고려해야 합니다. 이미 우리는 편도 비행으로는 꽤 먼 곳까지 가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만 비행 거리가 늘어나면 늘어 날수록 우리가 고려해야 하는 탐사 범위의 면적은 훨씬 더 늘어나게 되고 한번에 그 범위를 모두 커버할 수 없기 때문에 여러 번의 탐사를 고려할 수 밖에 없다는 점 하나와 우리가 보내는 비행체에서 단순한 전파 전송이 아닌 실직적인 데이터를 효과적으로 얻으려면 궁극적으로는 편도의 무인체 비행이 아닌 연구팀이 직접 탑승한 왕복 비행을 고려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저는 이미 헤더와 BS사에서 함께 근무하며, 비행 속도를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는 방법에 대한 괄목할 만한 연구 결과를 가지고 있었지만, 이 두 가지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개인적으로 찾는 데는 한계가 있었죠.”
그리섬은 PPT sheet를 넘겨달라고 헤더에게 눈짓하고 소머스 회장의 표정을 잠시 살펴 보았다. 회장은 따분하다거나, 지루해 해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크게 흥미 있어 하는 것 같아 보이지도 않았다. 그리섬은 조금 조바심을 느끼며, 말을 이었다. 다음 sheet에는 복잡한 숫자들이 적혀있는 그래프와 사진이 하나 있었고 사진에는 중간에 붉은 원으로 표시되어 있는 부분이 있었다.
“저는 사업에는 소질이 전혀 없는 학자에 불과 하지만, 이런 가설들 만을 가지고 실제 연구팀을 만들어 지원을 할만한 기업이나 후원자는 없을 거라는 것은 알고 있었습니다. 물론 제게도 이런 의문들은 아직은 그냥 단순한 가설에 지나지 않았지만, 어렸을 때부터 습관이 되어버린 앎에 대한 욕구가 쉬이 멈추어 지지 않았었죠. 그런 욕구를 온전히 충족하기 위해서는 이 가설의 희박한 가능성을 충분히 투자가치가 있을만한 수준으로 올려야만 했습니다. 다행이 BS 사에 근무할 당시 저는 회사의 모든 기자재에 접근과 사용이 가능한 사람이어서 저는 하루를 둘로 나누어 오전에는 비행선 추진체에 관해 연구 하고 오후에는 앞에서 말씀 드린 그 흔적을 찾는데 열중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저와 헤더는 NH-001이라고 이름 지은 이 행성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추진체가 남긴 흔적을 찾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습니다. 물론 그 것이 우주 공간을 비행한 비행체의 것인지 아니면 또 다른 어떤 가능성인지는 확신 할 수 없었지만, 처음 연구를 시작할 때 예상 했던 것 보다 사과 벌레가 만들어 놓은 길이 너무 많더군요. 그런데 이 행성의 경우 그 길의 끝에 놓이게 되는 경우가 이상하리만큼 높았고, 주목할 만한 점은 이 행성에서 시작된 길이 중간에 끊어진 경우가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제 생각에,”
갑자기 소머스 회장이 끼어 들었다.
“NH-001이라… 그리섬 박사님이 지금까지 설명한 그 설레는 연구에 가장 근접한 결과물일 수도 있는 행성에는 좀 어울리지 않는 이름이네요. 너무 딱딱하다고 해야 할까? 과학자로서 박사님이 정말 대단하다는 것은 인정할 수 밖에 없지만 감성적으로는 제가 한 수 위인 것 같군요. 저는 그 행성을 ‘잔나’라고 부른답니다. 이슬람에서 잔나는 영원히 마르지 않는 샘과 우유와 술 그리고 꿀이 흐르는 강이 있는 낙원을 뜻하죠.”
소머스 회장은 자리에서 일어나 단상으로 내려오며 이야기 했다. 그리섬은 잠깐 동안 소머스 회장이 한 말을 다시 한번 생각하고는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잠시만요 회장님, 그러니까 지금 그 말은 회장님 역시 이 행성에 대해 이미 알고 계셨다는 겁니까?”
소머스 회장은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기분 나쁘게 생각지는 말아주세요, 박사님은 사실 지금 저에게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인재이고, 박사님을 테스트 해본다거나 박사님이 가진 정보를 엿보고자 이 설명회 제안을 드린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현재 저희가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가 박사님의 연구와 얼마나 결을 같이 하는지 사전에 인지하고 그에 맞추기 위해 저희 프로젝트에 어떤 변화를 주어야 할지 미리 알고 준비하고자 함이었습니다.”
소머스 회장은 단상에 올라와 그리섬과 헤더에게 아래 자리로 내려가 앉아 달라고 손짓으로 신호하고, 회의실 전등을 켰다. 전등이 켜지자 밖에서 대기하던 수행비서로 보였던 사람이 또 다른 두 사람을 데리고 회의실로 들어섰다. 새로 들어온 두 사람은 말쑥한 정장차림의 소머스 회장이나 수행비서와 달리 편한 복장을 하고 있어서 자리에 어울려 보이지 않았지만,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다는 듯이 망설임 없이 단상위로 올라가 들고 있던 노트북을 프로젝터에 연결하고는 그리섬과 헤더에게 가볍게 눈 인사를 전했다. 소머스 회장은 노트북이 연결되는 것을 확인 하고 의자에 앉은 그리섬에게 말했다.
“정식으로 소개 해야 되겠군요, 여기 이 마른 친구는 테일러, 저기 노트북 앞에 앉아 있는 친구는 피터 입니다. 저희 연구팀에서 진행 중인 ‘산타 마리아’ 프로젝트의 두뇌역할을 하는 친구들이죠”
두 사람의 이름이 나올 때 소머스 회장의 옆에 서있던 테일러라는 사람과 노트북을 보고 있던 피터라는 사람이 각각 그리섬과 헤더에게 손 인사를 하며 가벼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통칭 SM 프로젝트라 부르는 이 연구에는 미 연방 정부도 비 공식적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앞서 본 저기 양복 입은 친구가 저희와 항상 함께 하고 있죠. 군인은 아니지만 여기서는 이름 대신 그냥 중위라고 부르고 있으니, 두 분도 그렇게 호칭 해 주셨으면 좋겠네요.”
그리섬과 헤더는 갑자기 일어난 이 상황에 어리둥절하게 서로를 쳐다보며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런 두 사람에게 테일러가 얘기했다.
“실제로 보니 훨씬 미인이시네요. 꼭 한번 만나보고 싶었습니다. 헤더 박사님, 아! 그리섬 박사님도요.”
멍하니 상황에 빠져 어리둥절 하고 있던 헤더가 엉뚱한 테일러에 말에 정신을 차리고 얘기 했다.
“음.. 네 반갑네요! 그런데 소머스 회장님?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지 먼저 얘기 좀 해주셔야 하지 않을까요?”
“물론이죠 헤더 박사님, 여기 이 두 사람이 준비했다고 하는 설명을 우선 들어 보고 자리를 옮겨서 좀 더 얘기 하시죠, 가는 길에 자세한 설명 드리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