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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없고 생각없는 20살인 자신이 너무 싫어요(스압)
게시물ID : gomin_117466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익명a2Vsa
추천 : 2
조회수 : 289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4/08/10 16:4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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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20살 남징어에요.
평범하게 조선소에서 노가다하고 있는 20살 남징어에요.
뜬금없지만, 저는 제가 정말 싫어요.
저 하나 때문에 가족이 많이 힘들어졌거든요. 많이 힘들어졌어요.

지금부터 할 이야기는 좀 많이 길어요. 어찌보면 단순히 이해받고 싶어서, 위로받고 싶어서 하는 이야기에요. 하지만 이 이야기는 정말로 한심한 이야기에요. 어쩌면 위로받을 가치도 없는 그런 이야기일지도 몰라요...

(참고로 저희집은 아버지와 어머니께서 이혼을 하시고 새아버지가 들어오셨답니다. 저번에 있던 아버지와는 일이 많았어요. 특히 고3땐 이혼한 아버지와 우리 가족이 계속 엮어지고 사건이 벌어지는 바람에 법정에도 가고 그랬어요. 하지만 이건 지금 할 이야긴 아니에요)


저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공부를 참 안했어요. 정확히는 고2때부터려나요. 
(아참, 저희 학교는 실업계였답니다) 고1땐 야자도 비교적 꾸준히 다니고 그랬는데, 고2 들어서부터 자기가 공부하는 이유를 찾기 시작했어요. 왜 나는 공부하고 있을까 하고.. 그렇게 자문자답하고 선생님과의 상담도 거쳐보고 그랬지만 결국 답을 찾지 못했어요. 저에겐 하고싶은 공부도, 가고싶은 대학도 없었거든요. 
그렇게 공부를 집어치우고 고등학교 생활을 허송세월로 보내다 졸업, 그동안 신세지던 외할머니집을 뒤로 하고 어머니께서 계시는 밀양으로 향했어요. 밀양에 도착하고 나서 한 것은 다름아닌 백수짓, 한달간 게임하고 애니나 보면서 그렇게 허송세월로 보냈죠.
사실 그 기간동안 어머니께서 일자리를 알아봐주시고 같이 이력서도 쓰고 했지만 정작 본인인 저는 아무런 의욕도 없었어요. 이래나저래나 백수였어요.
그렇게 밀양에서 일자리를 알아봤지만 남은자리도 없는데다 간신히 이력서를 넣은곳은 전부다 캔슬, 안되겠다 싶어 어머니는 다른 지역에 숙소제공해주는 일자리가 있나 싶어 알아봤어요. 
그렇게 나온 곳이 거제 조선소, 대우조선해양이었어요. 
아버지께서도 슬슬 일을 나가야 할 때인거 같다. 밀양에선 일이 도무지 구해지질 않으니 여기라도 가봐라 라고. 저도 이대로 백수생활만 하는건 사람으로서 뭔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거제로 향했습니다. 아무리 안되도 3개월은 버티고 오겠다는 큰소리와 함께 말이죠. 

그렇게 일을 시작한 곳은 A/S 센터 비슷한 일이었습니다. 배 내에서 잘못된 작업을 총괄적으로 수정하는 그런 일이었죠. 그라운더 작업에서부터 고무 끼우기 등 하는 일은 정말로 다양했습니다.
저는 가만히 서있다가 시키는 일만 하는게 다였어요. 그것만으로도 힘들었고요.

헌데 일을 시작한지 2주쯤 지났나..?
소장님이 부르시더니 천천히 다른곳에 직장을 알아보는게 어떻겠냐고 하시더라고요. 이유를 물어보니 사람들이 절 싫어한다고 하더라고요. 애가 재미있지도 않고, 그렇다고 일을 눈치껏 척척 하는것도 아니고, 자전거도 못 타니 같이 일하면 힘들어서 안된대요. 아무리 20살이라고 해도 자기가 커버쳐주는건 한계가 있대요. 이건 그거죠, 퇴사권고죠. 한달도 안되서 이런말이 나온걸 보면 여러가지로 문제가 정말 많았나 봐요. 저는 심란한 마음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그날 밤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다음날 일어나니 감기몸살이 왔어요, 그것도 움직이는것도 힘들 정도로 심하게..
아마도 갑자기 힘든 일을 하다보니 몸에 무리가 온게 아닐까 싶어요. 아버지께 연락을 하니 일단 병원에 가서 입원을 하라네요. 숙소에 간병해줄 사람이 없으니.. 
그렇게 입원을 해서 약 5일간을 누워있었어요. 사실 그때쯤엔 이미 몸은 다 거의 나았었는데 저는 더 쉬고싶은 마음에 소장님께 전화를 드려 몸이 덜 나아서 하루를 더 쉬겠다고 말씀드렸어요. 
다음날, 결과는 당연히 퇴사였죠.
그렇게 퇴사되고 나니 갑자기 마음에 탈력감이 밀려와요. 자기가 일을 제대로 못 해냈단 사실이 너무나도 한심하게 느껴졌어요.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어요. 
게임하고 놀고 자고, 아무 생각없이 그러고 싶었어요.
외로웠어요. 너무 외로웠어요.
아버지께 전화로 그 말씀을 드리자, 지금 당장 보자고 하셨어요.
사실 아버지는 미리 거제쪽에 일자리를 잡고 계셨어요. 오는데 20분 정도 걸리시더라고요.
근처 커피숍에서 마주앉고, 아버지께서 말씀하세요. 
넌 외롭지 않다, 내가 옆에 있다. 내가 옆에서 도와줄테니 한번만 더 힘내보자. 
저는 그 말에 힘을 얻어서 다시 한번 직장을 다녀보기로 했어요. 이번에도 똑같은 조선소이긴 하지만 배선이란 어엿한 직종이 있는 곳이에요. 숙소 식사 제공도 같고요. 어쨌든 여기서 열심히 해보기로 결심해요.

그런데 어라?
결심과는 다르게 자꾸만 넘어져요.
처음 첫 주를 빼고는 결근, 조퇴가 자꾸만 나와버려요.
발목이 아파서, 몸살이 나서, 어깨가 아파서...
심지어는 별로 아프지 않은데도 결근한 날이 나오기 시작해요.
아버지께선 저를 불러서 호되게 야단치고 설득하세요.
저는 거기에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일을 시작해요.. 근데 어라? 또 결근, 조퇴가 나와요. 그것도 일주일도 안 되서..
아버지께선 다시 절 불러서 이야기를 해요, 저도 고개를 끄덕이고 일 잘하겠다고 맹세해요.

..하지만 또, 또 결근과 조퇴가 나와요.
이젠 아버지도 지쳐가요.
이 이상 너한테 시간을 할애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 나도 내 스케쥴이 있고 계휙이 있는데 이런식으로 너한테 시간을 뺏기면 지장이 생긴다.
저는 고개를 끄덕여요. 마침 팀장님께서 말씀하시길 이제부터 삼성에서 일한다고 하시네요. 그렇게 삼성에서 일을 시작했는데..

또 나와요. 결근 조퇴가.

아버지께선 드디어 이 말을 꺼내세요.
내가 방법을 잘못한 것 같다. 내 생각이 잘못됬던 것 같다. 지금까지 할머니와 너희 어머니를 설득시켜가며 널 편하게 풀어줄려고, 이성적으로 끌고갈려고 했는데.. 내 방법이 잘못됬던것 같다.
하지만 난 매를 들면서까지 널 끌고갈 생각은 없고, 그렇게 할 자신도 없다.
앞으론 네가 알아서 해라, 난 더이상 간섭하지 않겠다.

그 말을 들으니. 갑자기 두려워져요.
지금까지 누군가의 조언만 들어왔었는데 갑자기 자기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란 말을 들으니 무서움이 몰려와요. 
나이만 스무살, 마음은 아직도 어린아이인데..
나약하고 어리광쟁이인 어린이 그대로인데...


..하지만, 그것보다 더 강하게 몰려오는 감정이 있어요.

경멸감. 자괴감.
그렇게나 얘기를 해도, 그렇게나 말을 해도 알아먹질 못하고 결근 조퇴를 되풀이하는 자신.
힘들고 아프다고 주저앉아 버리는 자신.

검고 끈적거리는 깊은 늪이 제 마음을 저 바닥으로 끌고 가는것이 느껴져요.
한심하고 한심한, 학습능력이 없다시피한 자신이 너무나도 싫어져요.

약속을 아무렇지도 않게 저버리는 자신.
남의 마음은 생각도 안 하는 자신.
아무런 생각없이 약속하고, 그 약속에 대한 책임은 나 몰라라 하는 자신.
무엇보다 그렇게나 믿어주고 도와줬던 새아버지에 대한 미안함.
그것들이 전부 소용돌이처럼 휘감기더니, 이내 눈물로 변해 얼굴을 뒤덮어버려요.

난 쓰레기야.
난 병신이야, 약속도 안 지키는 병신.
아버지는 저렇게나 고생하고 내 편의를 봐주는데, 나는 결근 조퇴의 연속이야, 실망만 한가득 안겨줘버렸어.
착하면 뭐 해, 약속도 안 지키는데.
말만 번지르르하고, 일도 제대로 안 나가고. 


..그렇게 울고 나니, 온 몸에 탈력감이 몰려와요. 마음엔 더 이상 뭔가를 하겠다는 의욕도 없어요.
난 쓰레기야.. 하는 울림만 남아있어요.
지금 이대로는 일은 커녕 아무것도 못 할것 같아요.
그래서 아버지께 말씀드렸어요, 당분간 쉬면 안되겠느냐고.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돈에 얽힌 차가운 현실 이야기에요.
지금 제가 직장을 관두고 쉬면 파산이래요. 거제에서의 모든 생활을 접고 원점으로 돌아가야한대요.
덤으로 저랑 볼 일도 잘 없을거래요.

저는 생각했어요
아, 현실은 이렇구나
현실은 내 어리광을 받아주질 않는구나
내가 힘들면. 내가 못 버티면
남는 건 아무것도 없구나
가족도 마찬가지구나
내가 못하면, 내가 넘어지면
가족마저 등을 돌리는구나

내일은 또 통영으로 가야해요.
팀장님께서 말씀하시길 지금 숙소엔 숙소비가 안나와서 적자래요.
짐을 옮겨서 내일부터 통영 직장으로 출근해야한대요.

저는 두려워요. 또 제가 잘못할까봐
또 넘어질까봐. 더욱 제가 싫어질까봐
또 철없는 행동으로 누굴 힘들게 할까봐

저는,
이렇게 철없고, 생각없고
참을성 없는 제가, 너무 싫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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