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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의 흐름에 따라 쓰는 먹부림에 대한 이야기
게시물ID : lovestory_7757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청파동
추천 : 2
조회수 : 597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6/02/13 01:3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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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1.
내 친구는 오이 알러지가 있다. 오이를 먹으면 입술이 부르트고 온 몸이 간지러워진다고 한다. 어렸을 때 그 야채의 향이 너무 싫었음에도 엄마의 눈초리가 무서워 억지로 꼭꼭 씹어 먹었던 것이, 이제는 심리적 거부 반응을 넘어서 신체적으로 나타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제 그녀는 어른이 되었고, 그래서 샌드위치나 김밥을 주문할 때면 당당하게 오이 빼고 주세요! 꼭이요!”를 외친다. 그렇다. 그녀는 스무 살 이후로 비로소 오이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었던 것이다.
 

반면 내가 싫어하는 음식은 딱히 없다. 사실 내 성격은 굉장히 예민하고 까끌까끌한 편이라서 일상생활이나 대인관계에서는 호불호가 꽤 심한 편인데도 먹는 것에 있어서만큼은 매우 관대하다. 물론 탕수육은 찍어먹는 게 제 맛이지만 같이 식사를 하는 상대가 굳이 부먹을 고집한다면 어쩜 그럴 수 있어? 그건 탕수육의 튀김옷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해!”라며 필사적으로 반대하지는 않는다. 매운 것도 잘 먹는 편이라서 각종 오돌뼈나 닭발, 불족발 등도 소주만 있으면 열심히 먹는다. 뒤탈도 없다.
 
 

2.
 
다만 조금 더 생각해보니 내 친구처럼 먹는 것은 아니지만 잘 먹는 것이 있는 것 같기는 하다. 주로 해산물들이 여기에 해당된다. 비린 향의 동태찌개는 국물을 다섯 번 떠먹으면 많이 떠먹은 것이고, 순대에 들어간 허파, 멍게나 해삼처럼 흐물흐물 혹은 울퉁불퉁하게 생긴 것들은 애초에 입에도 대지 않는다. 국물 위에 둥둥 떠 있는 핏덩이들이 끔찍해서 선지 해장국도 싫어한다. 그 밖에도 쓰다 보니 몇 개가 더 생각나지만 그것들의 이름들을 듣고는 그걸 못 먹어? 특이한데?’라고 생각할 사람들은 몇 없을 것이기에, 여기까지만 적어도 괜찮을 듯 싶다.
 

아무튼 식성이라는 것에 있어서 내 친구는 애초에 시도는 해보되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생각하면 그 때부터 거부를 시작하는 타입이고, 나는 싫은 것은 애초에 시도도 하지 않아버리는 타입인 것이다.
 

그런 내가 어금니에 힘껏 힘을 주어가며 꽉꽉 씹어 삼켰던 게 있었으니 바로 네가 내 접시에 놓아준, 소고기 사이에 동그랗게 맺혀 있던 떡심이다.
 
 
 
 

3.
 
너와 고깃집을 갔던 날 나는 우리가 마주 앉은 식탁에서 그 부위를 처음 보았다. “이게 뭐야?”라고 묻는 내게, 너는 이게 소고기에서 제일 맛있는 부위야. 우리 아빠는 이걸 늘 내게 양보해주셔. 내가 제일 좋아하는 부위거든!”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가위로 그 부분을 휙, 도려내어 내게 권했다.
 

맛있어, 먹어봐.
 

자세히 살펴보니 과연 그것은 마치 잘 구워진 가래떡 살처럼 쫄깃해보였고 먹음직스러운 마시멜로우 같이 말랑말랑해보였다. ‘선심을 써서 주면 맛있게 먹는 게 예의지!’ 라는 생각에 그것을 입으로 가져간 순간부터, 나는 턱을 열심히 움직였다. 네 양보에 감동하며 그렇게 (체감시간) 7분을 씹었다.
 

739초쯤 지났을까? 나는 생각했다.
 

내가 호두까기 인형이 된 건 아닐까? 이대로 지구가 멸망할 때까지 씹어도 결국엔 다 못 씹어서, 인류 최후의 음식이 내 입 안에서 발견되는 건 아닐까? 지금쯤 내 턱은 저 달력의 사진에서 보이는 해안 절벽처럼 위풍당당하게 각 져가고 있겠지...? 사각턱엔 보톡스가 짱이라는데 고기 먹고, 살찌고, 보톡스를 맞게 된다면.... 이게 왠 쇼야 증말.
심지어 나중엔 나 이거 먹는 동안 지가 나머지 고기 다 먹을려고 하는 거 아니야?’하는 원초적인 이기심까지 들었다.
 

하지만 열심히 먹는 것처럼보이는 나를 사랑스럽게 바라봐 주는 네 눈동자 앞에서, 게다가 네가 가장 좋아하는 부위를 내게 건네준 그 손길에서 그런 의심이 얼마나 갈 수 있었을까?
 
 
 

너는 나를 사랑했다.
이건 누구보다도 그 날의 내가 잘 안다.
 

 
 

4.
 
이번 명절에 구워먹은 소고기에서 떡심이 나왔다. 접시의 구석에 수줍게 올려 진 저것을 먹을까 말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그새 아빠가 자신의 입으로 떡심을 쏙 하고 가져가버리셨다. 그러니까, 나와 내 동생이 좀 더 부드럽고 맛있는 부위를 먹도록 본인이 제일 먼저, 가장 질긴 부위를 선택하신 거다.
 

도대체 우리 아빠는 내가 모르는 사이에 그 살점을 얼마나 오랫동안, 턱이 아프게 씹어야 했을까? 내가 소고기를 처음 먹던 날로부터, 아빠는 몇 번이나 떡심에게서 내 턱을 보호해 주었던 것일까? 아빠가 씹어야 했던 떡심의 시간들은, 그 인고의 세월들은 얼마였을까?
 

열심히 오르내리는 아빠의 턱을 보면서 오만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그리고 이건, 그날 네가 내게 그것을 건네지 않았으면 평생 모르고 지나쳤을 또 하나의 사랑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불현듯 그토록 질겼던 그 부위가, 그토록 턱이 아프게 씹어 삼켜야 했던 그 부위가 너무도 그리워졌다. 너에게는 사랑이었고 나의 아버지에게는 희생이었던 그것을 나는 앞으로 어떻게 추억해야할까? 먹어보고 정 아니올 시다 싶으면 몸부터 아파버리는 내 친구와 달리, 나는 이제 그것을 영영 싫어하지 못하게 되어버려서 큰일이다. 그래. 어쩌면 나는 위풍당당하게 오이를 빼고 달라는 내 친구의 주문과는 반대로 우물 쭈물거리며 평생, 뼈저리게 그것을 씹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빨간 구두를 신고 죽을 때까지 춤추던 한 아가씨처럼. 그렇게 그 부위로부터 영영 자유로워질 수 없을지도 모를 일이다.
 

 
 
5.
 

근데, 그래도 행복할 것 같다.
왠지. 그냥 그럴 것 같다.
 

나는 앞으로 그것을 꼭꼭 씹을 때마다
사랑받았던 기억만을 떠올릴 테니까.
 
그 사랑이 어떤 형태였든,
 
오래오래 앉아서 되새김할 수 있을 마음들이
내 안에 여전히, 그리고 영원히 남아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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