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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망의 그럴 듯한 그림 속 이야기. 'Marc Chagall, 탄생일'
게시물ID : readers_2393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좋아헤
추천 : 0
조회수 : 965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6/02/07 23: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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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샤갈-나의 생일.jpg



Marc Chagall, 탄생일(the Birthday), 캔버스에 유채.

  꿈을 꿨다. 내가 들어온 지도 모르고 분주하게 움직이던 벨라. 그녀의 뒷모습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나는 행복했다. 그러나 동시에 나는 그녀에게 입 맞추고 싶었다. 그녀의 앞에도, 뒤에도 있고 싶은 마음에 나는 꿈 속에서 몸을 띄웠다. 나는 날아가 나로 그녀를 둘러싼 채 그녀에게 키스했다. 눈동자를 즐거움으로 반짝거리면서 나를 위해 뭘 더 할 수 있을까 테이블을 둘러보던 나의 벨라. 내가 사랑하는 벨라. 꿈 속에서도 그녀의 입술은 따뜻했고 나는 그 따뜻함이 너무 사랑스러워 눈을 감은 채 코를 비볐다.
 

  창문 밖에서 들리는 신문팔이 소년의 목소리에 잠이 깼다. 벨라는 내 팔을 베고 안겨 잠들어 있었다. 방 안은 조용해서 그녀의 숨 쉬는 소리가 온전하게 들렸다. 속눈썹에 걸린 짧은 머리칼을 귀 뒤로 넘기자 벨라는 뒤척이며 내 품을 더 깊게 파고들었다. 그러다 다리에 닿은 그녀의 발은 차가웠다. 서로가 서로의 품에 안겨 잠이 들어도 발 하나가 밖으로 삐져나올만큼, 우리의 침대는 너무 좁았다.
 
  벨라의 목까지 끌어올린 다홍색 이불 옆으로 어젯밤 함께 마셨던 와인과 밤새 꺼지지 않은 초가 보였다.
 
  어제는 내 생일이었다. 나는 방에 들어오기 전까지도 몰랐지만 벨라는 그 전날 밤부터 기대감에 부푼 아이같은 눈빛이었다. 내일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어? 나는 물었지만 그녀는 눈으로 웃을 뿐 아무 말도 해주지 않았다. 아름다운 그 눈웃음에 나도 근거 없는 기대감에 젖어 잠들었지만 해가 뜨기도 전에 일어난 아침, 내 생일의 첫 시작은 내겐 그저 전날과 다를 바 없이 피곤하고 지친 새벽에 불과했다.
 
  일거리는 며칠 째 들어오지 않았고 나는 배를 곯지 않기위해 마을 근교에서 나무를 잘라야했다. 어릴 때부터 붓과 팔레트만 잡아왔던 내 손은 도끼자루를 잡기엔 너무 약했고 매일 아침마다 저릿한 통증을 느꼈다. 그런 내가 버틸 수 있었던 유일한 이유는 아침마다 잠도 못 깬 벨라가 내 손바닥에 입술을 대고 기도해줬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어제는 매일 똑같았던 기도에 한 구절이 덧붙여져 있었다.

  -오늘 하루는 이 이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되게 해주세요.

  고마워 벨라. 기도 덕분인지 하루 종일 좋은 일이 많았다. 아침으로 먹은 빵은 작지만 맛있었고 우유는 신선했다. 일터로 가는 길에 빅터를 만나 말을 빌려 탈 수 있었고, 점심시간에는 내 그림에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 몇 명이 내게 그림을 몇 장 사겠노라고 약속했다. 날이 더워 땀을 연신 흘렸지만 벨라가 곱게 다려 넣어준 손수건이 있어 그리 불쾌하지 않았다. 높았던 여름 해는 금방 넘어갔다. 저녁 무렵의 바람은 선선했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자전거를 타고 가던 테오를 만났다.

  -이봐 오늘 벨라가 아침부터 부지런히 마을을 돌아다니던데. 난 고작 인사나 하겠다고 손을 들었던 건데 그녀는 그 손을 잡곤 악수까지 하더라고.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어?

  -아니 나도 잘 모르겠군. 안그래도 어제부터 기분이 좋아보이긴 했는데. 나도 무슨 일인지를 도통 모르겠어. 

  -분명히 아침엔 마을 동쪽에서 만났는데, 정오쯤에는 마을 서쪽에 보이더란 말야. 나야 가끔 얼굴이나 보는 사이지만 자네는 그래도 자네 연인인데 속속들이 알아야지.

  -그랬어? 나도 오늘 하루종일 벨라에게 무슨 일이 있는지 생각해봤는데 딱히 뭐가 없더라고. 그래 아무튼 고맙네 잘 가게.

  정말 뚜렷하게 생각나는 것이 없었다. 내가 집을 나설 때만 해도 자고 있던 사람이었는데 내가 나가자마자 집 밖에 나온걸까? 궁금함도 궁금함이었지만 그보다 오늘 같이 날씨가 좋았던 날, 광이 나는 검은 구두를 신고 또박또박 마을을 걸어다녔을 벨라 생각에 웃음이 났다. 

  집에 벨라가 와있는지 멀리서부터 도로 쪽으로 난 창문 안에서 불빛이 보였다. 오늘 점심에 만나 그림을 사겠다고 한 사람들에 대해 말해주면 벨라가 얼마나 좋아할까. 좋아할 그녀 생각에 나도 기분이 좋아졌고 집으로 가는 발걸음은 왼발이 오른발을 따라잡을 수도 있을만큼 점차 빨라졌다.

  집 안은 환했다. 집 안에 있는 촛불은 모조리 꺼낸 듯했다. 이게 무슨 일일까 하고 들어서는 방 한가운데에, 나의 벨라가 꽃다발을 들고 서있었다. 

  그 때야 알았다. 오늘이 나의 생일이었다는 것을. 

  머리 위로 작년 크리스마스에 봤던 폭죽들이 한꺼번에 터지는 기분이었다. 나도 기억 못했던 내 생일을 내 연인이 기억하고, 또 축하하기 위해 저렇게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 것을 보는 마음이란 정말이지 세상 모든 하늘이 폭죽으로 수놓아지는 것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손끝에서부터 저릿하던 느낌은 심장을 지나 눈에까지 와닿았다. 나의 아름다운 벨라. 내가 사랑하는 벨라.

  꽃다발은 마을에 피는 들꽃으로 가득했다. 일터로 가는 길에 봤던 꽃도 있었고 처음 보는 작은 꽃도 있었다. 결코 한 곳에서 모두 꺾진 못했을 꽃들이었다. 그리고 벨라는 그 꽃다발을 어디에 두면 가장 예쁠지 고민하는 모습이었다. 창틀에 걸쳤다가, 의자 위에 올렸다가, 아직도 광 나는 그 검은 구두를 신은 채 벨라는 방 안을 쉬지 않고 움직이고 있었다.

  테이블에는 어제까지만 해도 보지 못했던 예쁜 식탁보가 깔려있었고 그 위에는 내가 좋아하는 음식과 생선 스튜가 김을 피우고 있었다. 내가 올 시간에 맞춰 그녀가 아끼는 그릇에 음식을 담았을 벨라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창틀과 침대 옆에는 촛불이 빨갛게 타고 있었다. 내가 없는 동안 벨라가 사랑으로 준비했을 우리의 생일 만찬이었다.

  -벨라.

  -왔어요?

  어디에 놓을지 정하지 못했는지 결국 손에서 놓지 못한 꽃다발을 들고 벨라가 내 앞에 섰다.

  -받아요. 생일 축하해요. 오늘 당신 생일인 거 알고 있었어요?

  -아니, 몰랐어. 여기 와서야 알았어. 

  -그럴 줄 알았어요. 일주일 전부터 생각하고 또 생각했는데 이 꽃다발을 어
디에 둬야 할지는 도저히 모르겠는거에요. 

  -괜찮아. ……. 괜찮아. 고마워 벨라. 꽃이 너무 예쁘다. 하나하나 다 너무 예뻐.

  -미안해요 꽃집에서 파는 꽃다발이면 더 좋았을텐데….

  -아니야 괜찮아. 이 꽃다발이 훨씬 예뻐. 꽃도 예쁘고 음식도 너무 맛있을 것 같아. 전혀 생각 못했어. 당신에게 무슨 좋은 일이 있을까만 생각했지 내 생일이라는 생각은 떠올리지도 못했어.

  -당신이 태어난 날이잖아요. 태어나서 나에게 이렇게 와 준 당신이고. 내게 이보다 더 좋은 날이 어디 있겠어요?

  벨라는 아무렇지도 않게 내게 안겨 땀에 쩔었을 셔츠에 얼굴을 묻었고 나는 그저 팔을 올려 내 사랑스러운 연인을 감싸는 것 말고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쥐고 있던 꽃다발은 벨라의 얼굴 옆에서 우리에게 지금껏 한 번도 맡아보지 못한 아름다운 향기를 전했다. 
 
 아름다운 날, 아름다운 밤. 나는 내 생일날 이 여자로 인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었다. 다른 어떤 누구도 나보다 행복한 사람이 될 수는 없었다.


  -샤갈, 일어났어요?

  -응 벨라. 꿈을 꿨어. 내가 날아서 당신에게 키스하는 꿈이었어.

  -그래요? 어땠어요. 나는 채로 키스했던 느낌이?

  -응. 언제나 그랬듯 내게는 그보다 더 좋을 수 없는 느낌이었어.   
   사랑해.    
   고마워, 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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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2-07 23:4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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