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우 샤오시엔 감독은 gv에서 액션 설계의 방향이나 원칙 있었냐는 질문에 "무슨 일이 있어도 중력법칙을 거스를 수 없도록 찍었다." 고 대답했다. 영화 보는 내내 섭은낭이 어떤 거스를 수 없는 운명적 힘에 속박되어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는데 설명을 듣고 야구 배트로 뒷통수를 강타 당한 것처럼 많은 것들이 이해가 됐다.
자객 섭은낭은 일견 줄거리가 복잡해 보이는 영화지만 '사부의 절대적 명령을 거스르는 자객의 이야기'로 요약할 수 있다. 사부의 명령은 반박이 불가능한 절대적 진리dogma로서 섭은낭을 억압하고 있다. 문제는 섭은낭의 사부가 도교적 가르침을 그릇 이해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는 점이다. 무위자연無爲自然이란 산속에 은거해 도를 추구하라는 의미가 아니라 세상만물이 '스스로 그러하도록自然' 인위적 힘을 가하지 말라는 의미가 아닐까. 세상의 도리, 사회적 질서라고 강요하는 가치들이 실은 개개인을 억압하고 고통에 빠트리고 있는 셈이다.
그런점에서 도사의 흰색 도포와 작은 울타리에 갇힌 염소의 이미지를 이어 붙이는 연출이 굉장히 흥미롭게 느껴졌다.
과거의 검술이 바람 앞에 흔들거리는 장막 같은, 비극적 운명에 슬피우는 난새의 춤 같은 느낌이었다면 사부와의 마지막 대결은 사뭇 다른 단호함이 베어있다. 단칼에 세상의 속박을 끊어 버리고 사랑하는 사람과 자신의 도道를 찾아 대자연의 품으로 떠나는 섭은낭의 뒷모습은 어찌 저리도 가벼워 보일까.
허우 샤오시엔 감독은 나비가 날아든 장면이 CG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나비가 날아들어 우연히 찍은 장면이라고 밝혔다. 흔히들 도가적 가르침에서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이 진리라는 편견을 일깨우기 위해 호접지몽을 인용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고려해보면 감독님의 말처럼 '하늘의 도움을 얻어' 촬영한 장면이라는데 공감이 간다.
좋은 영화는 인위적 기술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닌 것 같다. 허우 사오시엔 감독은 이야기 속에 배우들을 자연스레 던져놓음으로써 영화의 도, 영화의 법칙에서 오히려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처럼 보인다. 영화의 도인이 있다면 허우 샤오시엔 바로 그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