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메이저리그 유망주 출신이에요”
1989년생 우투우타 외야수 초이스는 한때 메이저리그 정상급 유망주였다. 텍사스주 알링턴 소재 맨스필드 팀버뷰 고교 때는 프로 지명을 받지 못했지만, 텍사스 대학교 알링턴 캠퍼스에 진학한 뒤 기량이 급성장해 메이저리그 구단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 선수로 올라섰다.
초이스 이전까지 텍사스-알링턴 대학이 배출한 최고의 신인 선수는 2004 신인드래프트 2라운드 지명으로 휴스턴 애스트로스에 입단한 헌터 펜스였다. 그러나 이 기록은 2010년 마이클 초이스가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에 1라운드 10순위 지명을 받으며 깨졌다. 현재까지 초이스는 텍사스-알링턴 대학 출신으로는 유일한 1라운드 지명자로 남아 있다.
지명 당시 초이스는 “대졸 신인 가운데 최고의 파워를 자랑한다”는 호평을 받았다. 드래프트 전까지 대학에서 기록한 홈런만 34개. 17.8타석당 1개의 홈런을 때려냈고 4할에 가까운 타율에 5할대 출루율과 7할대 장타율로 ‘본즈급’ 활약을 펼쳤다.
오클랜드는 강력한 파워와 준수한 스피드, 중견수 수비까지 가능한 초이스에 200만 달러의 계약금을 안겼다. “잘 되면 홈런 치는 중견수, 못 해도 수비력 좋은 코너 외야수”를 기대하고 오클랜드 유니폼을 입혔다.
초이스도 구단의 기대대로 마이너리그에서 순조롭게 성장해 나갔다. 2010년 입단과 동시에 ‘베이스볼 아메리카(BA)’ 오클랜드 유망주 랭킹 3위에 올랐고, 2012년엔 순위를 2위까지 끌어 올렸다. BA 전체 랭킹에서도 2011년 80위, 2013년 98위에 오르는 등 꾸준히 상위권을 유지했다. 2013년 9월엔 입단 4년 만에 빅리그 데뷔의 꿈도 이뤘다.
그러나 초이스는 빅리그에서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오히려 처참한 실패에 가까웠다. 2013년 9경기 홈런 없이 타율 0.278로 별다른 인상을 남기지 못했다. 트레이드로 홈타운팀 텍사스 유니폼을 입은 2014년엔 86경기나 기회를 받았음에도 타율 0.182를 기록하는데 그쳤다. 2015년엔 1경기 1타석만 나선 뒤 클리블랜드 인디언스로 건너갔다. 지난해와 올해는 빅리그 구경을 하지 못하고 내내 마이너리그에 머물렀다.
특히 올 시즌의 부진은 심각했다. 볼티모어 오리올스 트리플 A에서 10경기 출전해 타율 0.038의 믿기 힘든 숫자를 남겼고, 밀워키 브루어스로 건너가서는 더블 A 레벨에서 뛰었다. 더블 A에선 48경기 타율 0.272에 9홈런으로 다소 나은 성적을 냈지만, 이러려고 1라운드 지명권을 썼나 하는 자괴감이 드는 현주소인 것은 분명하다.
여기까지만 보면 초이스의 지난 8년은 전형적인 ‘실패한 유망주’ 스토리처럼 보인다. 영화 [머니볼] 속 빌리 빈의 선수 시절 만큼이나 극적인 추락의 이야기다. 하지만 요즘의 메이저리그 선수들은 영화 속 빌리 빈처럼 곧장 프런트로 자리를 옮기지 않는다. 보다 좋은 대우와 많은 기회를 보장하는 KBO리그라는 새로운 무대가 마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번 넥센과 계약을 통해 초이스도 제 2의 야구 인생을 펼칠 기회를 잡았다.
벼락 같은 스윙, 그 뒤에 숨은 약점
한때 특급 유망주였던 초이스 메이저리그에서 실패한 데는 분명 이유가 있다. 마찬가지로 그가 드래프트 1라운드에서 뽑히고, BA 랭킹 상위권에 오른 데에도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다. 분명 초이스는 아주 뛰어난 툴과 운동능력을 갖춘 선수고, 그 잠재력은 아직도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다.
초이스의 가장 큰 장점은 무시무시한 파워와 뛰어난 운동 능력이다. 초이스는 프로 데뷔 당시 “엄청난 손목 힘을 바탕으로 맹렬한 배트 스피드를 자랑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메이저리그 스카우트 평가 기준인 20-80 스케일에서 파워는 70점 짜리란 평도 나왔다. “일단 배트에 맞기만 하면 대형 홈런을 때려낸다”는 게 BA의 평가다. 넥센 고형욱 단장도 “거포 유형이다. 밀어서도 홈런을 때려낼 파워를 갖췄다”고 소개했다.
장점만큼 약점도 뚜렷하다. 고 단장도 “솔직히 3할 중반대 고타율을 기록할 정도의 컨택트 능력은 아니”라고 인정했다. 현지에서도 “모 아니면 도 식의 스윙이다” “오소독스(orthodox, 정통적)한 스윙과는 거리가 멀다”는 평가를 받았다.
초이스는 오픈 스탠스에서 발 끝으로 타이밍을 맞춘 뒤 왼 다리를 안쪽으로 옮기며 몸을 격렬하게 비트는 스윙을 한다. 스윙에서 탑핸드(top hand) 의존도도 높다. 스윙하면서 배트 위쪽에 자리한 손(탑핸드)을 자연스럽게 놓는 ‘탑핸드 릴리스(top hand release)’ 동작을 하지 않고, 끝까지 두 손으로 배트를 쥐고 스윙하는 ‘탑핸드 롤오버(top hand rollover)’가 특징이다.
보기엔 호쾌하고 벼락같은 스윙이지만, 메커니즘 면에선 머리부터 상하체까지 움직임이 많고 손목도 돌아가기 때문에 효율적인 스윙은 아니란 평이다. 준비 동작부터 컨택트까지 배트가 이상적인 궤적을 그리는데 한계가 있다. 자연히 컨택트 쪽에 약점이 생긴다. 높은 삼진비율, 브레이킹 볼에 대한 약점도 특유의 요란한 스윙이 원인이란 지적이다.
이 때문에 초이스도 프로 경력 초기부터 보다 간결한 스윙과 좋은 궤적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지속적인 성과로 이어지진 않았다. 특히 올 시즌 초에는 타격 밸런스가 완전히 무너지면서 트리플 A에서 ‘삼푼이’가 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고 단장은 “최근 들어 조금씩 좋아지는 모습을 확인했다”고 강조했다. “타격 밸런스 면에서 약점이 있는 건 사실이다. 미국 야구에선 그런 약점을 좀처럼 손대지 않는 편이다. 하지만 국내 야구에 와서는 충분히 극복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본다. 코칭스태프가 멘탈 쪽으로 조금만 도움을 주면 좋은 모습을 보여줄 거라 생각한다.” 고 단장의 말이다.
초이스는 마이너리그 레벨에서는 좋은 공격력을 발휘했지만, 메이저리그 레벨 투수와 상대할 때는 어려움을 겪었다. 빅리그 투수들의 빠르고 움직임이 좋은 공을 정확히 공략하기엔 초이스의 스윙 메커니즘엔 문제가 뚜렷했다. 하지만 KBO리그에서 빅리그 레벨의 스피드와 무브먼트를 자랑하는 엘리트 투수는 수가 많지 않은 편이다.
초이스의 또 하나 장점은 플레이트 좌우의 비교적 넓은 영역을 커버한다는 점이다. 초이스는 바깥쪽 적당한 높이의 공이나 몸쪽 어중간한 높이의 공은 대부분 배트에 맞혀 장타를 날릴 능력을 갖췄다. 대신 스윙 특성상 몸쪽 높은 볼은 좀처럼 맞히지 못한다. 국내 투수들이 초이스를 잡아내려면 몸에 맞힐 위험을 감수하거나, 코너워크를 보다 완벽하게 해야 한다. 애매한 높이의 공은 바깥쪽이라도 초이스에게 위험한 공이 될 수 있다.
그 외에도 초이스는 당겨치기 일변도 타자가 아니라는 점, 비교적 준수한 주력을 갖췄다는 장점이 있다. 미국 시절 초이스는 “평균 이상의 스피드로 추가 진루와 도루를 할 능력을 갖췄다. 베이스에서 리드하는 능력도 좋다”는 평을 들었다. 넓은 고척스카이돔을 홈으로 쓰는 넥센 타자에게 반드시 필요한 특성이다.
이제 나이 27살로 한창 전성기에 접어들고, 기량과 경험 면에서 원숙해질 시기라는 것도 넥센이 매력을 느낀 부분이다. 넥센 고 단장은 “올 시즌은 물론 내년 시즌까지 염두에 두고 영입했다”고 밝혔다. 올 한해 KBO리그 적응기를 잘 보내고 나면, 내년 시즌 더 좋은 활약이 기대된다는 설명이다. “물론 올 시즌에도 잘 해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고 단장의 말이다.
넥센의 초이스 영입, ‘굿 초이스’ 될까
초이스가 넥센의 기대를 채우려면, KBO리그 투수들의 집요한 변화구-유인구 공격을 견뎌야 한다. 많은 외국인 타자가 초구에도, 3볼에도 유인구를 던지는 KBO 스타일에 적응하지 못해 실패를 맛봤다. 초이스는 미국 무대에서도 항상 삼진이 많았던 투수다. 특히 커브와 등 아래로 떨어지는 공에 뚜렷한 약점을 보였다.
물론 NC 다이노스의 재비어 스크럭스처럼 삼진도 자주 당하지만, 그만큼 볼넷과 홈런도 많은 유형의 타자도 있다. 초이스도 유망주 시절 공을 골라내는 능력은 괜찮은 편이란 평가를 받았다. BA에선 “(잘 풀리면) 35홈런과 100볼넷을 기록하는 타자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다”는 평을 하기도 했다. 초이스가 과연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는 지켜봐야 한다.
어떤 수비 포지션을 맡을지도 중요하다. 초이스는 미국 무대에서 외야수로만 뛰었다. 좌익수로 나선 경기가 가장 많았고, 필요에 따라 중견수와 우익수를 맡기도 했다. 준수한 스피드와 평균 수준의 어깨를 갖춰 외야 세 포지션을 소화하는데 큰 문제는 없는 수준이다. 점프(jump)도 데뷔 초기보다 많이 향상됐고, 포구능력도 안정적이란 평가다.
문제는 현재 넥센의 선수단 구성이다. 넥센은 지명타자-1루수 요원 윤석민을 트레이드로 kt 위즈에 보냈다. 외국인 타자가 1루수 거포 역할을 해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초이스는 프로에서 한번도 1루수로 뛴 경험이 없는 선수다. 자칫 포지션 문제가 딜레마로 작용할 가능성은 없을까.
이에 대해 고 단장은 “운동 능력 좋은 선수라면, 기본적으로 어느 포지션도 커버할 정도의 능력은 된다”며 “본인 및 코칭스태프와 상의가 필요한 부분이지만, 선수단에 합류하면 1루 수비도 테스트할 수 있다. 다만 아직 선수 본인과 구체적인 논의를 한 단계는 아니다”라고 밝혔다.
지난해까지 KBO리그를 평정한 에릭 테임즈(밀워키)는 미국에서는 주로 외야수로만 활약하다, NC에서 1루수로 전향해 성공을 거둔 바 있다. 외야 거포 유망주 출신으로 메이저리그에서 실패를 맛본 경력, 20대 후반의 비교적 젊은 나이는 NC 입단 당시 테임즈와 초이스의 공통점이다. 초이스의 1루수 전향 시도가 성공한다면, 테임즈와 좋은 데칼코마니를 이룰 것으로 보인다.
물론 1루수를 보지 못하더라도 해결책은 있다. 넥센은 이미 채태인이라는 좋은 1루 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외야수는 이정후, 고종욱 정도가 확실한 주전이고 이택근과 박정음이 교대로 출전한다. 초이스가 기본적으로 지명타자를 맡고, 채태인의 휴식이 필요할 땐 외야수로 나서는 방법도 얼마든 생각해볼 수 있다. 활용 방안은 얼마든지 있다. 문제는 초이스가 국내 선수들을 압도할 만한 공격력을 보여줄지 여부다. 수비 포지션은 그 다음 문제다.
최근 KBO리그엔 미국 프로야구 최상위권 유망주 출신 선수들의 진출이 활발하다. 에릭 테임즈를 필두로 윌린 로사리오, 다린 러프, 루이스 히메네스, 야마이코 나바로, 앤디 마르테, 헥터 고메즈, 헥터 노에시, 마이클 보우덴, 재크 스튜어트, 알프레도 피가로, 더스틴 니퍼트, 제프 맨쉽, 에스밀 로저스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하나같이 메이저리그 입단 당시 좋은 지명 순번을 받았고, BA 팀별 랭킹에도 매년 상위권에 든 선수들이다. 비록 미국 무대에선 실패를 경험했지만, KBO라는 새로운 무대에서는 이름값을 톡톡히 해낸 바 있다. 심지어 테임즈처럼 미국 무대로 돌아가 대성공을 거둔 사례까지 나왔다.
넥센 고 단장은 “미국 스카우트들이 엉터리라서 초이스를 뽑았을 리는 없지 않느냐”며 “드래프트 전체 10번은 대단한 재능을 갖췄단 의미다. 스카우트가 직접 만나 대화를 통해 성격과 성향, 가정환경 등을 체크했고 멘탈 면에서도 흡족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올해도 기대되지만, 앞으로 발전 가능성도 높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고 단장은 “결국은 적응이 관건”이라며 “한국 야구와 문화에 적응하고, 팀 분위기에 잘 적응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초이스가 넥센의 기대처럼 메이저리그 유망주 시절의 잠재력을 KBO리그에서 마음껏 펼쳐 보일 수 있을까. 초이스 영입이 넥센 구단 역사에 또 하나의 ‘굿 초이스’로 남게 될지 주목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