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문득 포탈뉴스를 보다가 대통령의 경축사 내용이 눈에 띄어서 찾아보니...
아래 광복절 축사의 한 구절.
고려 말의 대학자 이암 선생은 "나라는 인간에 있어 몸과 같고, 역사는 혼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만약 영혼에 상처를 주고 신체의 일부를 떼어가려고 한다면, 어떤 나라, 어떤 국민도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을 것입니다.
일본은 이런 문제를 직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과거 역사에서 비롯된 고통과 상처를 지금도 안고 살아가고 계신 분에 대해 아픔을 치유할 수 있도록 책임있고 성의있는 조치를 기대합니다....
붉은 색 부분이 문제인데.
고려 말에 수문하시중(守門下侍中)까지 올랐던 이암(李嵒)이 편찬한 것이라 주장되는 『단군세기』 - 환단고기를 구성하는 3가지 책 중의 하나 -에 나오는 것이다. 『단군세기』의 서문에 다음과 같은 문장이 있다.
"나라가 형(形)이라면 역사는 혼(魂)이다. 형이 혼을 잃고 보존될 수 있겠는가."
그런데 이 문장은 박은식의 『韓國痛史』(1915)를 활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박은식의 책은 상해에서 출판되어 한문으로 된 것이므로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대개 나라는 形이고 역사는 神이다. 지금 한국의 形은 허물어졌으나 神만이 홀로 존재할 수 없는 것인가.”
박은식이 환단고기를 보았을리는 만무하고...
결국 환단고기가 박은식의 책을 보고 베껴서 활용한 것으로 간주된다. 환단고기가 위작(僞作)이고, 그 위작의 시점은 박은식의 책이 나온 1915년 이후라고 추정할 수 있는 유력한 근거가 되는 구절이 바로 이것이다.
상식있는 학계의 모든 학자들이 위서(僞書)로 간주하는 책을, 대통령이 버젓이 광복절 축사에서 인용해대고... 품격이 말이 아니구나...
차라리 그 원조 격인 박은식의 문장을 인용할 것이지... 독립운동을 하면서 임시정부 대통령도 지냈고...
환단고기를 인용하게끔 만든 연설비서관을 비롯한 참모들의 수준이 여실히 드러나고, (다른 일들을 하는 데는 수준이 다를까? 흠...) 그걸 분간못한 대통령도 참 ... 다들 어지럽다.
더구나 이번 광복절 축사에는 '광복'보다는 '건국'의 의미를 더 강조했다는 언론기사도 있다. 수년 전부터 시도되던 뉴라이트들의 건국절 제정 움직임을 떠올리게 된다.
한국사 교육이 제대로 될 필요가 있다. 여하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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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도 짧게 글을 올린 적이 있지만,
미디어 오늘의 부탁을 받고 조금 내용을 갖추어서 글을 만들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