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종일 답답함이 가시질 않았어요.
헬조선 헬조선하는거, 탈조선 해야한다는거 이렇게 뼈저리게 느끼는건 처음인거 같아요.
사실 그렇게 고학력도 아니에요. 제목이 좀 어그로인것 같지만 이번학기 석사 들어가면 이제서야 석사생. 졸업을 6년만에 하게 된 무지랭이 입니다.
서울대 다녔습니다 그리고 대학원도 동대학원이에요. 그렇다고 공부를 잘하냐, 그것도 전혀 모르겠습니다.
휴학 3학기나 했고, 학점 나쁘고, 별 다른 스펙도 없어요. 대기업 인턴을 해본것도 아니고, 그냥 동아리 활동들 하고 언어 자격증 몇개 따고 그렇게 살았습니다.
남들이 보면 부러울수 있다고 생각은 해요. 그렇지만 이것들도, 나름 노력은 많이 해서 얻은 제 결과물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자격지심에 받쳐 툭툭 내뱉는 사람들은 참 싫습니다. 태어날때부터 머리 좋은거 힘들어요. 그리고 저는 정말 머리 좋지 않아요.
그냥 단지, 저는 다른 장기나 능력이 있는게 아니라, 오래 엉덩이 붙이고 앉아있었고 공부가 그나마 저랑 잘 맞아서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해요.
노래를 잘하는 사람은 그걸로, 그림을 잘그리는 사람은 그걸로, 다 자기가 잘하는 부분이 있잖아요.
대학원 합격 소식 들었을때만 해도 아 참 다행이다. 진짜 잘 됐다 생각했어요. 많이 가고싶었던 곳이었고, 한번 떨어진 후에 붙은거라
그래도 내가 그렇게까지 인간 쓰레기는 아니구나- 라는 생각 했거든요. 많이 답답했어요. 제 친구들은 다들 이미 박사를 시작했거나
옛날 옛적에 취직을 해서 일하고 있거나 로스쿨을 마치고 이제 변시를 쳤거나. 다들 성큼 성큼 나아가는데 저만 고여있는것 같았어요.
항상 그런말 하죠. 더 못한곳 더 낮은곳을 보라고. 그렇지만 사실 그게 무슨 소용이 있나요.
마음은 편할 수 있어요. 그래 나보다 공부 못하는 사람도 많잖아. 나보다 가난한 사람도 많잖아. 나보다 못생긴 사람도 많잖아.
너무 이상한 생각 아닌가요? 그래서 도대체 뭐. 다들 왜 더 잘돼야지, 더 예뻐져야지, 빨리 취직해야지, 빨리 결혼해야지
개인적으로 만나서 입만 열면 저런 수직상승적인 얘기만 늘어놓을거면서, 왜 또 사회는 나에게 한없이 겸손해지라고만 하는걸까요.
저는 아직까지도, 스스로가 참 별거 아니라는 생각에 시달리면서 살아요.
대학 와서도, 한번도 자랑스럽다는 생각 못해봤어요. 제가 학교 자랑을 하면 그건 자만이고 오만이였으니까. 서울대 다니는 주제에 니가 뭘 안다고.
틀린말 아닐 수 있어요. 여기서도 이렇게나 답답한데, 네임벨류가 아직도 최고인줄 아는 한국사회에서 다른 곳은 얼마나 더 서글플까요.
그리고 사실 맞아요. 한국 최고 대학이면, 그에 걸맞게 더 확실한 지성인 배출을 위해 학교가 노력을 많이 한다거나, 그래서 이런 곳을 졸업한 사람은 적어도 학문적 분야에서는 혹은 관련 분야에서는 그에 맞는 대우를 받을 수 있는게 어느정도라도 보장이 된 사회여야 하는데, 전혀 아니잖아요. 자랑스럽고 싶은데, 내가 그렇게나 열심히 해서 들어온 곳인데, 자랑스러워 할 수 없어요. 그래 본 적도 없어요.
모두가 이렇게나 힘겹게 노력하고 있는데, 왜 아무도 그걸 알아주지 않을까요. 우리는 도대체 어디까지 똑똑해져야하고 얼마만큼의 하이스팩을 쌓아야 하나요. 도대체 그걸 어디다 어떻게 써먹을껀데요. 왜 필요하지 않는것 까지도 요구를 하는건데요.
그리고 왜, 나는 항상 날씬하고 예뻐야 하는걸까요?
살이 많이 쪘어요. 저도 알아요. 그렇지만 겉으로 보기에 문제가 되거나(사실 이것도 정말 이상한 기준이에요...) 비만때문에 각종 성인병이 걱정되고 몸에 이상이 오는 그런정도도 아니에요. 168에 65에요. 그냥 통통한 사람이에요. 그걸로 됐잖아요. 내가 됐다고 하잖아요.
대학와서 참 이상하고 아픈소리 많이 들었어요. 10키로만 빼면 봐줄만 할거라던지, 너는 그래도 가슴은 크니까 살좀 빼봐라던지. 너는 앉으면 뱃살이 겹칠것 같이 생겨서 별로라던지. 서럽고 또 서러웠어요. 거울을 보면 나는 내가 참 좋은데, 쌍커풀 없는 눈도 작지만 귀여운 코도 도톰한 입술도 나는 참 좋은데, 왜 나보고 별로다 뚱뚱하다 예쁘지 않다고 하는건지. 나도 결국 성형하고 살빼고 그렇게 살아야 하는건지.
여보세요들. 나는 가슴도 큰거에요. 눈코입 다 바른 위치에 잘 있어주는 거에요. 어디 한곳 불편한곳 없이 축복받은 사람이에요. 왜 그렇게 날 재단하려 해요? 왜 그렇게들 나를 깎아내리지 못해서 안달이에요?
이제는 하다하다, 그렇게 공부해서 뭐하냐는 소리까지 들어요.
그러게요. 내가 제일 숨이 턱턱 막혀요. 내가 더 알고싶은거, 더 잘 알고 싶은거 공부 하려고 하는 중이에요. 그런데 이게 언제 끝날지, 적어도 언제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을지, 얼마나 하고 또 해야 박사라도 받을지 내가 제일 모르겠어요. 그리고 그렇게 하고 나면요? 그러면 그냥 바로 강사가 되고 그리고 교수가 될 수 있어요? 그 동안 나는 어떻게 벌어먹고 학비는 생활비는 누가 대주는데요? 나도 답답해요. 왜 이렇게까지 도움 받지 못할 길을. 엄마 아빠 등골 빼먹어야 하는 길을 걸으려 하는건지 나도 참 갑갑하다니까요. 그렇지만 그래도 이게 내가 제일 잘 할 수 있는 분야인거 같은걸요. 내가 앞으로 잘 하고 싶은 분야인걸요. 그런데 왜 그렇게 말하는거에요?
결혼하고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 진짜 많이 부러워요. 나도 나이가 들어가는 중이라 그런지 모르겠지만
그냥 나도 막연하게 언젠가는 사랑하는 사람이랑 결혼하고, 좋은 엄마도 되고 싶어요.
그렇지만 그게 아무리 봐도 불가능해 보이는걸 나보고 어떡하란 말인가요. 솔직히 말해서 30대 중반이 되더라도 나는 돈 5000 모으기 조차 힘들거에요. 그때 내가 직업이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오늘도 같은 대학원 마치고 연구원으로 들어가서 일하던 친한 언니가 사표 냈다는 소리를 들었어요. 서울대 석사를 나와도, 초봉 2000밖에 안되는 사회에요. 심지어 언니는 심각한 열정페이에 시달리고 시달리고 또 시달리다가, 도저히 못하겠어서 그만 뒀다는걸 나는 알아요. 내 미래도 크게 다르지 않을거라는 것도 알아요.
그리고 나는 그래요, 한국사회의 기준에서 보기엔 뛰어나게 예쁘지도, 날씬하지도, 성격이 여성스럽거나 집에 돈이 많거나 한것도 아니에요. 그리고 나는 내가 하고 있을 그 공부나 그 일이, 내 인생 제일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할거에요. 아이를 낳고, 아이를 키우는 과정에서 남들이 열심히 도와주지 않는 이상 나는 자신이 없어요. 아무것도, 하나도, 제대로 해나갈 자신이 없어요.
하지만 난 그렇다고 엄마에게 내 아이를 떠넘기지 않을꺼에요. 엄마는 엄마의 노후를 즐길 권리가 있어요. 엄마도 내 애 봐주려고 그렇게 힘겹게 일하고 퇴직한거 아니란 말이에요. 그러면 난 도대체 어떻게 결혼하고, 어떻게 집을 얻고, 어떻게 아이를 낳아야 할까요. 안될꺼에요 아마.
그리고 자꾸만 욕심이 날텐데, 나의 소중한 아이에게 제일 좋은거 해주고 싶고, 아이가 하고 싶어하는 모든 것들 시켜주고 싶고, 아이랑 시간도 더 많이 보내고 싶을텐데. 그 어디를 어떻게 봐도, 지금의 내 미래에는 그런 능력이 보이지 않아요. 나는 할수 없어요.
하고싶은말이 너무 많아서 주절주절 거렸는데, 사실 이정도는 새발의 피조차 되지 않는게 더 답답해요.
모든 사람들이, 각자의 답답함과 슬픔속에 살고 있다는걸 나도 알아요. 모두가 겪는 성장통일 수 도 있어요.
그렇지만 우리는, 지금 우리를 둘러싼 이 사회, 이 틀, 이 구조가 제일 잘못돼서 이렇게까지 아픈거라는 생각을 해요.
나가고 싶어요. 너무 나약한 생각이지만, 이기적인 생각이지만,
어떻게든 정말 비행기 값이라도 벌어서, 그냥 일단 나가고 싶어요. 그 생각밖에 없어요.
내가 하는 일이 존중받을 수 있고, 내가 한만큼 남들이 그걸 인정해 주는 그런 곳에서 살고 싶어요.
내가 그냥 '나' 인것 만으로도, 예쁘다 사랑스럽다 보기좋다고 해주는 그런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살고 싶어요.
많이 미안해요. 이런 사회를 바꿔 나가는, 바꾸려 애쓰는, 그런 사람이 되지 않을거라서.
그렇지만 너무 답답해요. 정말 답답해요. 공부도 잘하고 예쁘고 날씬하고 돈도많고 성격도 좋은 사람이 난 될수 없어요.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나에게 더 노오오력 하라고 칭얼거려요. 도무지 잠을 잘 수 없을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