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일로 온몸의 감각이 예민해져버려 보통 사람들이 들을 수 없는 아주 작은 소리도 나에겐 유리가 깨지는 소리만큼 크게 들린다.현실은 나에게 소음덩어리나 마찬가지였다. 그 날도 그저 소파에 앉아있을뿐이었는데 무언가 바스락대는 소리가 들렸다.그렇다고 꺼져있는 티비에 시선을 거두진 않았다.계속 바스락대는 소리에 나는 그저 엄마가 종이같은 것을 구겨서 버리나보다 생각했다.
하지만 엄마는 그 종이를 손에 쥐고 급하게 안방으로 들어갔다.나는 무슨 일인가 싶어 안방문이 닫히는 소리에 눈을 감고 귀를 열었다.
'정말로...해주는겁니까?' '..하지만 어떻게 처단한다는 건지...'
나는 가만히 듣다가 눈을 떴다.평소 엄마의 입에서 나올만한 단어들이 아니었다.나는 더 들어보기로 했다.
'..그 성폭행범이 학생인건 어떻게 아세요....?'
나는 눈을 번쩍 떴다.귀를 막고 눈을 감았다.순식간에 그때 일이 뒤범벅되어 머릿속에 펼쳐졌다.하지말라고,살려달라고,아프다고 울부짖던 내 모습이 환영이 되어 내 목을 아프게 죄어오는 것 같았다.나는 숨마저 쉬어지지않아 꺽꺽대다가 안방문이 열리는 소리에 급하게 누워 자는 척을 했다. 엄마가 아주 무겁게 한숨을 쉬는 소리가,내 가슴을 짓눌렀다.
이번엔 또 뭐지. 정말로 엄마는 나에게 뭔가 숨기는게 있는 것 같다. 집전화가 울리자 화들짝 놀란 엄마는 잠시 나를 보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소파에 누워 잠시 선잠이 든 나는 누운 자세 그대로 다시 귀를 열고 소리에 집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