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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금] 요즘 읽었던 것들
게시물ID : lovestory_7744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EasyC언어
추천 : 6
조회수 : 1101회
댓글수 : 4개
등록시간 : 2016/01/29 21:42:10
 
B.G.M   Undertale Ost: 071 - Underta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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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막 시작되었다. 지난여름에는 모든 것이 명료했다.
품을 수 있는 희망과 버려야 할 갈망을 저울에 올려놓고 비교해볼 수 있을 만큼 분명한 무게와 질감을 갖고 있었다.
발뒤꿈치를 들고 가장자리를 걷는 일도 내게는 어렵지 않았다.
작별의 인사도, 그 후의 아릿한 고통도, 죽어가는 세포들 속에 각인된 낯선 촉감도, 서두르거나 질척거리지 않았다.
  
황경신, 박제로 남은 신호들
 
 
 
미래를 꿈꾼 적 없다면 거짓말이겠으나 그것이 알록달록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온 세상에 언제나 환한 불이 켜져 있기를 바란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가난하고 고집 센 나날들 속에서 유난히 반짝이던 하나의 빛이 꺼지는 순간,
한숨 같은 마지막 호흡을 내뱉으며 미래의 한 부분이 죽어버린다.
이를테면 한 사람의 뒷모습을 지극한 눈으로 응시할 때, 그의 검은 그림자가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지나간 시간을 부검할 때.
  
황경신, 뒷모습을 응시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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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할 일은 아이들이 절벽으로 떨어질 것 같으면, 재빨리 붙잡아주는 거야.
애들이란 앞뒤 생각없이 마구 달리는 법이니까 말이야. 그럴 때 어딘가에서 내가 나타나서는 꼬마가 떨어지지 않도록
붙잡아주는 거지. 온종일 그 일만 하는 거야. 말하자면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다고나 할까.
바보 같은 얘기라는 건 알고 있어. 하지만 정말 내가 되고 싶은 건 그거야. 바보 같겠지만 말이야.”
  
J.D. Salinger, 호밀밭의 파수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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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가 들리니?”
그 질문을 내게 한 건지, 아니면 그저 혼잣말인지 알 수 없었다. 아버지는 눈을 뜨지 않았고 얼굴을 돌리지도 않았기에. 나는 어찌해야 할지 몰라 말없이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뭐가 들리니, 조나단?”
“<엘리제를 위하여>.” 나는 대답했다. “제 열세번째 생일에 아버지가 연주해주셨던엄마가 녹음한 거잖아요,”
갑자기 숨이 막혔다. 그 자리에 머물러 있고 싶은 마음과 아예 사라져버리고 싶은 마음이 실타래처럼 뒤엉켜 조금 어지러웠다.
뭐가 들리니?” 아버지가 반복해서 물었다.
아버지가 좀 전에 내가 한 대답을 알아들었는지 궁금했다. 나는 여전히 눈을 감고 있었다. 내 팔에 아버지의 팔이 닿는 게 느껴졌고, 스피커에서는 계속해서 피아노의 선율이 흘러나왔다. 갑자기, 소리가 보였다. 아버지의 손가락이 건반 위에서 춤추는 소리. 어머니가 한낮의 햇살 속에서 아름답게 미소 짓는 소리. 아버지의 따뜻한 무릎에 앉아 있는 나의 모습이 선명하게 들렸다.
아버지의 피아노 연주가 들려요.” 나는 대답했다.
죠나단, 뭐가 들리는지 내게 말해줘.”
아버지의 음성은 애원에 가까웠다.
그 순간, 오디오에서 흘러나오던 곡이 끝났다. 녹음된 테이프는 계속 돌아가면서 고요한 정적만을 들려주고 있었다.
뭐가 들리니?”
아버지의 목소리에서 비 냄새가 났다.
나는 눈을 떴다. 아버지는 그저 그 질문을 반복할 뿐. 내 대답은 듣고 있지 않았다. 그는 시간의 작고 깊은 틈에 갇혀 있었다.
그 고요 속에서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아버지의 숨소리가 들려요.”
  
타블로, 안단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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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기억의 천재니까 기억할 수도 있겠지
네가 그때 왜 울었는지, 콧물을 책상 위에 뚝뚝 흘리며,
막 태어난 것처럼 너는 울잖아
  
분노에 떨면서 겁에 질려서, 일을 하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 네가 일을 할 줄 안다는 것이
이상하게 생각되는 날이면, 세상은 자주
이상하고 아름다운 사투리 같고, 그래서 우리는 자주 웃는데
그날 너는 우는 것을 선택하였지. 네가 사귀던 애는
문 밖으로 나가버리고, 나는 방 안을 서성거리며
내게 네 남편이었으면 하고 바랐지
뒤에서 안아도 놀라지 않게,
내 두 팔이 너를 안심시키지 못할 것을 다 알면서도
벽에는 네가 그린 그림들이 붙어 있고
바구니엔 네가 만든 천가방들이 수북하게 쌓여 있는
좁은 방안에서,
네가 만든 노래들을 속으로 불러보면서
세상에 노래란 게 왜 있는 걸까?
너한테 불러줄 수도 없는데.
  
내가 그린 그림들은 하얀 벽에 달라붙어서
백지처럼 보이려고 애쓰고 있고
단아한 가방들은 내다 팔기 위해 만든 것들, 우리방을 공장으로, 너의 손목을 아프게 만들었던 것들
그 가방들은 모두 팔렸을까? 나는 몰라,
네 뒤를 서서 얼쩡거리면
나는 너의 서러운,
서러운 뒤통수가 된 것 같았고,
그러니까 나는 몰라
네가 깔깔대며 크게 웃을 때
나 역시 몸 전체를
세게 흔들 뿐
너랑 내가 웃고 있는
까닭은 몰라
  
먹을 수 있는 걸 다 먹고 싶은 너
플라타너스 잎사귀가 오리발 같아 도무지 신용이 안가는 너는, 나무 위에 올라 큰 소리로 울었지
네가 만약 신이라면
참지 않고 다 엎어버리겠다고
입술을 쑥 내밀고
노래를 부르는
랑아
  
너와 나는 여섯 종류로
인간들을 분류했지
선한 사람, 악한 사람..
대단한 발견을 한 것 같아
막 박수를 치면서,
네가 나를 선한 사람에
끼워주기를 바랐지만
  
막상 네가 나더러 선한 사람이라고 했을때
나는 다른게 되고 싶었어
  
이를테면
너를 자랑으로 생각하는 사람
  
나로 인해서
너는 누군가의 자랑이 되고
어느 날 네가 또 슬피 울때
네가 기억하기를
네가 나의 자랑이란걸
  
기억력이 좋은 네가 기억하기를
바라면서 나는 얼쩡거렸지
  
나의 자랑 이랑, 김승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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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그라미는 왼쪽으로 태어납니까
오른쪽으로 태어납니까
  
왼쪽으로 태어난 동그라미의 고향은 오른쪽입니까 어디서부터
오른쪽은 시작됩니까
  
동그라미를 그리는 자는 동그라미의 부모입니까 내가 그린 동그라미는 몇 개입니까
  
나는 그들에게 죄인입니다
  
왼쪽으로 걸어갔는데 왜 오른쪽에 도착합니까
왜 자꾸 동그라미를 그립니까
동그랗습니까
  
동그랗습니까
  
어둠을 뒤쫓던 후레시 불빛이 내 얼굴에 쏟아졌을 때
나는 유일한 동그라미 안에 갇혀 있었다
  
동그라미 안에만 비가 내리고
  
우리는 언제나 우리가 가진 가장 소중한 것을 착취당하지
너는 여자였고 나는 가난했어
무엇보다도 우린 젊어서
  
온통 가난하지
  
그러나 어둠은 한 번도 잡히지 않았다 후레시를 켤 때마다 보란 듯이 불빛 그 바깥에 있었네
  
동그라미 안에만 비가 내리고
  
나는 간신히 외치기 시작했어
비 내리는 밤이 있다는 것은 아직 우리의 슬픔이 젊기 때문이다
  
다음날부터
태양은 구정물 통에 담는 접시처럼 유일한 하늘에 떠 있었다
  
다음날부터
나는 깨뜨릴 수 있는 동그라미와 깨뜨릴 수 없는 동그라미에 대해 생각했지만
  
우리가 만났던 밤은 아직 젊었고
  
어떤 비도 슬픔을 씻기진 못하고
  
너는 여자였고 나는 가난했지
  
동그라미 안으로 쓰윽 들어온 손이 내 턱을 치켜올렸을 때
내 얼굴은 이미 깨져 있었다
  
후레쉬, 신용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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