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만원으로 승리를 살 수 있을까. 연간 300억~400억원을 쓰는 10개 구단이 경쟁하는 프로야구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다면 2013년 10월 15일 김승영 두산 베어스 대표이사가 최규순 당시 한국야구위원회(KBO) 심판위원에게 300만원을 빌려준 상황은 어떤 시각에서 봐야 할까.
김 대표는 "최 심판이 '음주사고를 냈다. 합의금이 급하게 필요하다'고 했다. 개인적으로 아는 사이여서 돈을 빌려줬다"고 지난 2일 말했다. 당시 두산은 LG와의 플레이오프를 앞두고 있었다. 최 심판은 엿새 후 김 대표에게 또 돈을 요구했다. 두산이 LG를 꺾고 삼성과의 한국시리즈를 준비하던 시점이었다. 김 대표는 최 심판 부탁을 거절했다. '도박에 빠졌다'고 소문이 파다했던 최 심판은 2013년 말 사직했다.
이번 '돈 거래' 파문은 지난해 KBO의 자체 조사에서 드러났다. KBO는 지난 3월 상벌위원회를 열어 김 대표에 대해 엄중히 경고했다. 비공개로 진행됐던 상벌위 내용이 공개되면서 이 사건은 '심판 매수 의혹'으로 커졌다.
정황상 김 대표가 300만원으로 플레이오프 승리를 샀다고 보기는 어렵다. 김 대표는 구단 계좌가 아닌 개인 계좌에서 제삼자(최 심판 음주사고 피해자) 계좌로 송금했다. 또 한국시리즈 직전에는 돈을 주지 않았다. KBO는 "최 심판의 유리한 판정을 바랐다면 한국시리즈 전에도 송금했을 텐데, (김 대표는) 최 심판의 두 번째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며 "모니터링에서도 최 심판의 승부 개입 혐의를 발견할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런데도 김 대표와 최 심판의 금전 거래를 개인 간의 일로만 치부할 수 없다. 최 심판은 1988년부터 2년간 OB(두산의 전신) 연습생이었다. 당시 구단 직원이던 김 대표와는 그때 인연을 맺었다. 알고 지내는 선수가 수백 명인 김 대표가 심야의 전화 한 통으로 선뜻 돈을 보내는 상황은 자연스럽지 않다. 300만원으로 승리를 살 수는 없어도 최소한 '판정 손해는 보지 않겠다'는 심리가 작용했다고 충분히 의심할 수 있다.
야구규약 제155조 1항은 "리그 관계자들끼리 돈을 빌려주거나 보증을 서는 행위를 금지한다"고 적시하고 있다. 이를 어긴 김 대표는 3일 구단에 사직서를 냈다. 최 심판은 다른 야구인들에게도 돈을 빌린 뒤 갚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심판 조장이었던 최 심판은 자신의 권한을 사적인 목적을 위해 '현금화'했다.
최 심판 외에 구단 관계자와 금전 거래를 한 심판은 없는 것으로 KBO는 파악 중이다. 그러나 현재의 심판 운영 시스템이 달라지지 않으면 '제2의 최 심판'은 다시 나올 수 있다.
이번 사건의 출발점은 개인적 인연이었다. 미국·일본과 달리 KBO리그 심판들은 모두 '경기인' 출신이다. 프로야구 선수 출신이 가장 많고, 적어도 고교 때까지 선수로 뛰었다. 각 구단 감독·코치·선수·직원들과는 한 다리만 건너면 선후배로 엮인다. 서로의 직무가 아니라, 나이 또는 학번으로 얽히다 보니 '심판이 돈을 요구하는 것'과 '후배가 돈을 부탁하는 것'을 구분하지 못해 이 지경에 이르렀다.
3년 전 비디오 판독 시스템이 도입되면서 오심의 여지가 줄었다. 주심은 볼·스트라이크 판정을 매일 200회 이상 한다. 이 판정은 판독 대상이 아니지만, 대신 수십 대의 방송 카메라나 최첨단 투구궤적 추적시스템을 통해 검증받는다. 요컨대 심판 판정도 이제는 불가침의 영역이 아니다.
하지만 심판이 신뢰와 권위를 잃으면 스포츠는 필연적으로 몰락한다. 심판이 심판다울 수 있도록, 그래서 야구를 지킬 수 있도록 모든 구성원이 심판과는 '안전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KBO는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행정의 투명성을 확보해야 한다. 그렇지 못할 경우 팬들은 심판 없는 야구를 보게 될지 모른다. 기술적으로는 이미 가능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