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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숙종 - 정유악건의로 집없는 지방출신 군인에 빈땅 나눠줘..
게시물ID : history_2515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잠룡815
추천 : 2
조회수 : 931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6/01/26 10:5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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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도감의 업무일지인 훈국등록(訓局謄錄)....이런게 있었다는걸 첨 알았습니다.

조선시대 기록물들은 국가적으로 빠른시일내에 일반인들도 볼수있게 번역을 해주신다면

많은몰랐던것들을 알수있을거같다는 생각듭니다.


ps 기사에 나온 숙종에게 건의한 정유악 이란 분은 남인 이셨네요

1675년(숙종 1) 승지로 있을 때, 환관(宦官)이 인사(人事)와 상벌(賞罰) 등에 간여하는 것을 금지하도록 왕에게 간언하다가 파직     영의정 허적(許積)의 상소로 다시 기용되어 북한산성을 축조할 때 도청(都廳)을 지냈다.

그 뒤 좌승지·공조참판·도승지를 역임

1680년 남인 일파가 대거 실각하게 된 경신대출척으로 가장 먼 변경에 안치

1689년 기사환국으로 경기도관찰사에 등용, 이듬해 도승지 

1694년 갑술옥사로 다시 진도(珍島)에 안치되었다가 1697년 귀향하게 되었고, 1699년 사면

24년 관직생활이 참 파란만장하셨네요... 그래도 좋은일많이하신듯...




http://media.daum.net/culture/others/newsview?newsid=20160126030812850

조선시대 병영일지 보니.. 집없는 지방출신 군인에 빈땅 나눠줘

유네스코 기록유산 등재 추진290년간 업무일지 군영등록에 기록.. 당대 생활상-하멜 관련 사연도 등장
“남소문 안쪽 빈 땅을 집 없는 병사들에게 무상으로 나누어 주라.”

1679년 6월 23일 즉위 5년을 맞은 숙종이 내린 전교다. 직업군인인 훈련도감 병사들 중에는 지방 출신이 적지 않아 식구와 함께 남의 집 행랑채 등을 빌려 사는 경우가 많았다. 당시 폐쇄됐던 남소문(서울 중구 국립극장 인근)이 개방되자 남소문 안쪽의 너른 빈 땅을 일부 양반이 차지하려고 했다. 이에 병조판서 정유악이 집 없는 군인들에게 이 땅을 주자는 의견을 내자 숙종이 따랐던 것. 현대의 ‘군인 아파트’와 같은 주거복지 정책이었던 셈이다.


조선에 표류한 네덜란드인 벨테브레이(박연)의 훈련도감 근무기록이 적힌 훈국등록. 한국학중앙연구원 제공


이 같은 기록은 훈련도감의 업무일지인 훈국등록(訓局謄錄)에 나온다. ‘기록의 나라’ 조선은 병영일지도 꼼꼼하게 남겼다. 한국학중앙연구원(한중연)은 훈국등록을 비롯해 어영청 총융청 수어청 금위영 등의 업무일지인 군영등록(軍營謄錄)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추진하고 있다고 최근 밝혔다. 이배용 한중연 원장은 “지난해 국내 후보 선정 심사에서 아쉽게 탈락했지만 이만한 분량의 원본 병영일지는 세계에서 유일하다”고 밝혔다.

군영등록은 1593∼1882년 290년간 군영의 일일 업무를 기록한 것으로 한중연과 서울대 규장각이 모두 689책을 보유하고 있다. 조선의 주요 장수와 관련된 내용은 조선왕조실록 등 다른 사료에서도 확인할 수 있지만 일반 병사들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는 자료는 군영등록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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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media.daum.net/culture/others/newsview?newsid=20160126030812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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