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아이가 환갑이라고 여행 예약을 해줬네요, 요즘은 뭐 환갑을 따로 거창하게 안하고 그냥 가족들 다 같이 모여 식사하고 그런 게 보통이긴 한데, 저희 집은 친척도 없고 딸아이와 저 이렇게 둘뿐이라 그런 자리 만들면 오히려 우울할 것 같다고...”
정 주임을 돌아 봤을 때, 어울리지 않게 왠 해외 여행을 가냐는 순간적인 내 생각이 마치 표정에 그대로 중계라도 된 듯, 정 주임은 물어보지도 않은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딸이 보내 주는 여행이라는 사연치고는 대개의 한국의 부모들이 그렇듯 내 자식이 얼마나 능력이 있는지, 내 자식이 나를 얼마나 생각하는지에 대한 자랑의 섞인 말투가 아니라 마치 잘못을 들킨 어린아이처럼 애써 변명을 하고 있는듯한 그의 태도가 조금 인상적이었다.
게다가 자주 마주치지는 않았지만 볼 때 마다 늘 웃음을 짓고 있었고, 아직 부인과 사별을 할 정도로 나이가 들어 보이지 않던 그였기에 딸과 그 둘뿐이라는 말에 갑자기 그의 가족사에 살짝 호기심도 생겼다. 그러나 이야기를 더 이어가다 보면 출발 전까지 동행이 생겨버릴 것 같아 대화를 마무리했다.
“아 그러세요? 좋네요! 따님이 보내주는 여행인데 더 재미있게 보내고 오세요”
“네, 지사장님도 휴가 잘 보내시고 나중에 회사에서 뵙겠습니다. 몸 건강히 잘 다녀오세요.”
정 주임 역시 하나와 생각이 같았는지, 기다렸다는 듯 아니 그보다는 더 붙잡지 않아서 고맙다는 듯 대답하고는 반대쪽 Desk로 사라졌다.
하나는 다시 이어폰을 귀에 꽂으며 휴대폰 액정화면에 집중 했다. 사실 그녀가 휴대폰으로 하는 것이라고는 인터넷 검색이나 음악, 팟 캐스트 방송 듣는 게 다였다. SNS나 휴대폰 게임은 아예 하지 않았고 심지어 그 흔한 메신저 프로그램 하나 설치되어 있는 게 없었다.
특히 하나는 유행을 넘어 점점 삶의 일부가 되어가는 것 같은 SNS가 정말 이해 되지 않았다. 자신의 생각 혹은 자신의 생활이 얼굴 한번 본적 없고 말 한번 섞어 보지 못한 다른 이들의 즉흥적인 공감이나 동경을 얻는다는 것은 분명 매력적이긴 했다. 그러나 이 SNS가 점점 보편화, 일반화 되면서 매일 수도 없이 올라오는 그 생각이나 삶의 모습들이 정말 개개인의 그것들을 대변하는 것인지 의심스러웠다. 더 나아가 이제 SNS는 자신이 이미 다수의 공감대를 얻은 어떤 생각에 뒤처지고 있거나 이 '여론'과 나의 생각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Coming out 하는 장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나에게 SNS라는 공간은 비판적 사고의 가능성은 전혀 배제한 채 다수의 의견이 무조건 옳은 것이라 스스로 합리화를 해야만 하는, 그런 편집증적인 사고를 강요하는 그런 공간이었다. 그래서 하나는 뉴스 기사를 검색해서 볼 때도 댓글은 읽지 않았다.
이런저런 기사 검색에 몰두 하던 하나는 드디어 차례가 되어 Check-in을 하고 어깨에 대각선으로 맬 수 있는 조그만 손가방 하나만 가지고 더욱 더 가벼워진 마음으로 출국 Gate로 향했다.
이미 면세점에 들려 왔기 때문에 위탁 보관소에서 구입한 물건들만 찾으면 좋아하던 사람들 구경에 집중 할 수 있을 터였다. 소지품 검사대를 통과하고 전자 출입국 수속 Gate를 지나자 이내 넓은 인천공항의 공항 면세점이 펼쳐졌다. 항상 들었던 생각이지만 인천공항은 그녀가 그 동안 지나봤던 많은 공항들 중에서도 시설 면에서는 언제나 1등 이었다. 규모나 서비스 면에서 비슷한 독일의 뮌헨이나 스위스의 취리히, 싱가폴 공항과 비교했을 때도 어디 하나 떨어지는 면이 없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한국 사람이기 때문에 가지는 장점도 분명 있겠지만 오랫동안 외국에 살던 그녀에게 인천공항은 그녀가 처음 한국에 왔을 때 강한 첫 인상을 주었고 이 후 가끔씩 공항에 갈 때 마다 그때의 첫인상이 생각나 더 좋았다.
간단히 마실 거리를 찾아 커피하우스로 향하던 하나는 커다란 복도 위의 시계를 보고 한 시간 반정도의 여유가 있다는 것을 확인 했다.
공항 대합실 중앙으로 나온 하나는 생수를 한 병 사 들고 자신의 Boading gate와는 반대 방향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