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만난 사람 중에서 내게 가장 어려운 분은 장인어른이다.
기본적으로 사위에게 느껴지는 와이프의 아버지라는 위치에 대한 위압감에 평소 말씀도 없으시고 무뚝뚝한 성격의 포커페이스이신 편이라
사위인 내가 다가서기에는 부담스러운 편이었다. 특히 와이프와 나는 나이 차가 나는 편이기 때문에 장인어른께는 내가 사위라기 보다 금지옥엽
기른 소중한 딸을 하루아침에 훔쳐간 도둑놈이라는 인식이 강하셔서 그런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웬 만하면 장인어른과 단둘만의 자리는 피하는 편이었는데, 딱 한 번 장인어른과 5시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승용차에서 단둘이 보낸 적이 있다.
그리고 그날 나는 장인어른에게 잊지 못할 추억과 향기를 남겨 드렸다.
3년 전 여름 휴가 때 장인, 장모님을 모시고 부산에 있는 이모님 댁에 여행 겸 인사차 3박 4일 여행을 떠난 적이 있었다.
항상 무뚝뚝하신 장인어른은 이번 여행에 대해 아무 말씀이 없으셨지만, 장모님과 와이프는 몇 년 만에 떠나는 가족여행이냐며 들떠있는 분위기였다.
부산의 맛집을 찾아다니고 관광명소를 구경하면서 이틀을 보냈다. 3일째 되던 날 회사에 급한 일이 생겼다는 연락이 왔다.
내가 꼭 가야 하는 일이여서 가족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서울로 먼저 올라가기 위해 KTX 시간을 확인하고 있는데, 장인어른께서
"그렇게 급한 일이면 내가 데려다줘야지." 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장인어른의 차를 타고 부산에 내려왔었다.)
나는 장인어른께 "아버님, 차로 가는 것보다 KTX가 더 빠르고, 장모님이랑 **이도 함께 올라와야죠."
장인 어른은 "지금 여행이 중요한가! 자네 일이 중요하지. 다른 사람은 시간 많으니까 기차 타고 오라고 하면 되."
사실 장인어른은 나의 업무보다 본인이 이모님 댁에 계신 게 더 싫었던 모양이었다. 결국, 장인어른의 강력한 고집으로 나는 장인어른과 함께
단둘이 오붓한 부산에서 서울까지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물론 차 안에서 장인과 사위는 아무 말이 없었다. 조수석에 있던 나는 어색한 분위기를 깨기 위해 부산에서 먹었던 음식들을 말씀드렸다.
"아버님 첫 날 드셨던 밀면 어떠셨어요. 입에 맞으셨어요?"
"동네에서 먹던 국수랑 똑같더라."
"아...네.."
"그럼 어제 회는?"
"부산이나 서울이나 이천이나 회는 거기서 거기지 뭐...."
"아..네.."
또다시 차 안은 침묵에 빠졌다.
조용한 차 안처럼 조용한 내 배에 격동의 시간이 다가온 것은 경부고속도로를 지나 중부내륙 고속도로를 진입했을 때 즈음 이었다.
어제 먹은 활어회들이 식도와 위를 거치는 긴 잠복기를 거쳐 왕성한 장운동에 동참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 어제 먹은 활어회가 진짜 싱싱했구나."라고 생각하긴커녕 1일 1똥을 실천하던 내가 그 중요한
아침 1똥을 실행하지 않고 긴 장거리 여행에 나선 걸 후회했다. 하지만 곧 휴게소니까 참아야지 하며 식은땀과 소름을 동시에 온몸으로 느끼며
버티고 있는데, 장인어른께서는 '자네 바쁘니까 빨리 가세' 라며 휴게소를 지나치셨다.
나는 식은땀을 흘리며 "네.. 아버님.."이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관우가 팀 조조에 있다 적토마를 득하고 유비에게 돌아갈 때 여섯 장군을 베고 돌파했듯이 내 뱃속의 관우는 거침없이 오장육부를 관통하며
최후의 관문인 괄약근을 향해 돌파하고 있었다. 뱃속의 관우 장군은 정찰대인 방귀 부대를 보내 내 괄약근의 상태를 살피기 시작했다.
사장님의 썰렁한 유우머를 들었을 때 내는 소리와도 비슷한 피식피식 소리가 항문에서 났다. 괄약근은 정찰대인 1차 방귀부대를 맞아 성공적으로
격퇴했다.
하지만 자비함이 없는 관우 장군은 이번엔 선발대로 강력한 복통과 방귀를 함께 보냈다. 나의 괄약근은 '주군 아직은 버틸 수 있지만, 관우 장군
본진이 온다면 함락될 것 같습니다.'라고 신호를 보냈다. 나는 온몸을 전율하며 괄약근 장군에게 '16킬로만 버텨주시오. 그곳에는 여몽이 있소.."
라며 힘겹게 버텨 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1분도 채 안 되 압도적인 공격력을 가진 관우 장군의 본진이 드디어 괄약근을 돌파했다.
이랏샤이마세!
오장육부를 거쳐 최후의 보루인 괄약근마저 무너뜨린 관우 장군에게 세상은 반갑게 인사했다.
밀폐된 좁은 공간에서 맡을 수 없는 특유의 향을 맡으신 뒤 꿈도 희망도 잃은 표정으로 있는 나를 보신 장인어른의 표정이 굳어졌다.
"자네.. 지금.. 뭐.. 한 건가?"
"죄송합니다."
"아니 배가 아프면 아프다고 말을 하지..."
"죄송합니다."
장인 어른은 운전석 문 쪽의 물티슈를 내게 건네 주시며 말씀하셨다.
"일단 이걸로라도 닦아 보게. 애도 아니고 다 큰 어른이.. 츠츠.
그날 엉덩이와 다리를 닦은 그 물티슈는 세상 어느 물티슈보다 부드러웠다. 그리고 장인어른은 그날의 만행을 세상에 덮어주시기로 약속하셨다.
세줄 요약
1. 장인어른과 함께 차를 탐
2. 고속도로에서 똥 싸고 물티슈로 닦음.
3. 개운했음